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15화 (115/168)

115화. 천사(天使) 등장

백산의 오른손에서 밝은 빛이 일어났다.

그 빛이 병사의 이마 속에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은교교는 사도명을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회천연합은 회천객을 움직여요. 회천객은 성화산인을 찾고, 굉천환을 제거하죠.”

사도명은 또 다른 병사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수백 명 병사들 모두의 마음을 진정시키던, 생사일여의 힘이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마음이 흔들린 이 성화산인이, 자신의 굉천환을 폭발시키려는 마음이 드는 걸 막고 있소.”

백산은 한 병사의 굉천환을 부쉈다.

그리고 천천히 병사들 사이를 걸어서 사도명의 옆에 섰다.

“내 차례요.”

백산의 손이 사도명이 붙잡고 있던 병사의 가슴에 닿았다.

퍼-엉!

또 다른 굉천환이 폭발했다.

사도명은 병사의 마음에 주입하던 생사일여를 거뒀다.

그리고 은교교에게 물었다.

“마음이 세상을 떠돌 때, 무너지는 세상을 되살리려는 의지들을 느꼈소. 그게 회천연합인가?”

은교교 대신 다른 사람이 사도명의 물음에 대답했다.

“우리는 내려앉은 빛을 하늘로 돌리려 하오.”

백산이었다.

“배화교는 뜻을 이루지 못할 거요. 성화산인이 있는 곳에는, 우리들 회천객도 있으니까.”

적보윤이 놀라 백산을 보았다.

“이,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장군. 회천객이라고?”

청희태도 물었다.

“들어보니 장군은 배화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백산이 법허를 향해 걸어갔다.

“맞소.”

“그럼 왜 말하지 않은 거요?”

“말한들 믿어 주었겠소? 배화교가 황상을 조종하고, 우리들은 그런 배화교의 성화산인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백산의 손이 법허의 가슴 어름에 닿았다.

퍼-엉!

“크으!”

법허는 굉천환이 터진 자신의 가슴을 잡고 뒤로 밀려났다.

“때를 기다렸소. 모든 진실을 밝힐 기회! 어딘가 숨어 있을, 성화산인을 찾아내고자 했소.”

법허가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상처는 컸지만, 시원했다.

굉천환의 낙인은 이제 더 이상 법허를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겨우! 진짜 법허가 되었군.”

법허는 백산을 보며 진심으로 웃었다.

“고맙소, 장군.”

“나 또한 선사를 돕고 비로소 진짜 제가 되었습니다, 조화무제 덕에, 성화산인도 찾았고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비슷한 면이 참 많구려.”

법허가 공력을 끌어올렸다.

몸뚱이 채로 바닥에 앉아 있던 그의 몸이, 새로 만들어낸 내공의 발을 타고 허공에 떠올랐다.

“진짜 자신이기 위해서 참으로 오래 기다렸고, 너무 많이 희생해야 했었다는 것.”

멀리서 연자강이 활짝 웃었다.

사부의 마음 깊이 숨겨진 고충과 아픔을, 제자인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사부! 사부님!”

법허를 부르는 연자강의 두 눈에 뿌연 습기가 차올랐다.

은교교는 사도명을 안았다.

“기뻐요. 이제야 실마리가 보이네요. 배화교가 삼재액의 마지막인 거죠? 우리에게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은교교는 냉겸 장군으로부터 받았던 제안을 빠르게 설명했다.

“회천객과 회천연합! 그들과 힘을 합하면, 우린 이 마지막 재액도 이겨낼 수 있어요.”

“ …몰라.”

사도명의 목소리가 하도 낮아, 은교교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도명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상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건너면서, 내게 무엇인가 일어난 걸까?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은교교가 물었다.

“이상한? 어떤 느낌 말예요?”

“…이런! 위험하다!”

사도명이 발작적으로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에 연자강과 곽소혜가 서 있었다.

사도명이 몸을 돌리자, 그제야 연자강도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고함을 질렀다.

“사부님! 피하세요.”

허공에 둥근 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원의 가운데에서, 검은색 검 한 자루가 쏟아졌다.

츠칵!

검은 빨랐다.

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법허는 허공에서 갑자기 쏟아진 검이 만든, 자기 가슴의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허공에 나타났던 검은, 법허 등 뒤의 또 다른 구멍으로 사라졌다.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법허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는 제자를 보았다.

“사부님-!”

연자강이 몸을 날려 법허에게로 달려왔다.

“안 돼!”

사도명도 땅을 박찼다.

법허의 옆,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한 명의 청년이 태연히 서 있었다.

흑발에 검은 무복.

이마부터 뺨으로, 붉은 꽃의 문신이 선명했다.

그의 손에는 칠흑처럼 검은 한 자루의 검(劍)이 잡혀 있었고, 검집은 보이지 않았다.

법허는 청년이 잡은 검이 자신의 가슴에 구멍을 뚫은 물건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죽기 전, 시간의 흐름이 늦춰진다더니! 부처시여. 제자가 지금 그걸 경험하는 겁니까?’

법허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연자강에게 고개를 저으려 했다.

‘안 돼! 오면 안 된다!’

말이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와주지 않았다.

마음은 늦춰진 시간 흐름을 인지했지만, 몸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는 본래 시간을 살고 있었다.

법허는 자신 옆의 청년이 검을 앞으로 내미는 것도 보았다.

내미는 검의 앞에, 둥근 구멍이 생겼고, 또 다른 구멍은 연자강의 바로 옆에 나타났다.

하나의 구멍으로 들어간 검이, 다른 구멍을 통해 나타났다.

공간을 건너뛰어 공격하는, 터무니없는 검공!

‘피, 피하라니까!’

“피해라, 자강!”

사도명의 고함이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까-앙!

사도명이 쏟아낸 일의생멸의 힘이, 청년이 쏜 칠흑의 검을 옆으로 쳐냈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하며, 몸과 마음에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일의생멸!

옆으로 튕겨난 칠흑의 검은 또다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법허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양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합장했다.

그는 명교의 교도로 태어났으나, 불문에 귀의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선택했고, 성화산인으로서의 운명에 끝내 저항했다.

그렇게 오랜 고통을 지나, 마침내 온전한 법허의 삶을 얻었다.

운명은 공교롭다.

법허는 자신을 찾은 그 순간에, 자신을 완전히 놓치게 된 것이다.

“사부님-!”

연자강이 다시 울부짖었다.

그것이 법허가 살아서 들은, 세상의 마지막 소리였다.

법허의 숨이 끊어졌다.

연자강의 왼쪽 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사도명이 옆으로 튕겨낸 덕분에 칠흑의 검은 연자강에게 닿지 않았지만, 강기에 의해 연자강의 귀가 찢겨나간 것이다.

연자강이 쓰러지는 법허의 시신을 안았다.

사도명은 그런 연자강의 옆에 내려서면서, 붉은 꽃 문신을 얼굴에 새긴 청년을 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청년은 단지 웃었다.

대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혈화(血花) 천사?”

백산이었다.

붉은 꽃의 청년이 그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회천을 말하는 자들이 우리에 대해 제법 안다더니! 우리를 알면, 또한 알겠지? 우리를 세상으로 불러낸 실수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

청년이 검을 손에서 놓았다.

아래로 떨어진 검이 둥근 구멍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피하시오, 백산 장군!”

사도명은 청년 주변의 공간이 묘하게 뒤틀림을 느꼈다.

종이처럼 접히는 느낌이었다.

고함을 지르며 동시에 사도명은 다시 한번 일의생멸을 내쏘았다.

멀리 서 있는 백산을 향해 날아간 일의생멸은, 백산의 가슴 바로 앞에 나타난 구멍에서 쏟아지는 칠흑검을 옆에서 쳤다.

까-앙!

“내 검을 두 번이나? 이름이 뭐냐, 애송이?”

사도명을 보며, 청년은 마치 오래 산 늙은이처럼 물었다.

그러면서 한 걸음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검을 이동시켰던 것과 똑같은, 그러나 매우 큰 구멍이 청년의 앞에 나타났다.

청년의 몸은 그 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백산의 옆에 나타났다.

“멈춰라!”

사도명이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청년의 왼손은 사도명이 오기도 전에 백산의 배를 깊이 찔렀다.

“내 이름은 율천이다. 혹은 혈화천사라 불러도 좋고.”

율천은 백산의 내장을 산산조각 찢어놓고, 사도명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장군!”

사도명이 쓰러지는 백산을 부축할 때, 율천은 십 장 떨어진 뒤쪽에서 칠흑의 검과 함께 나타났다.

사도명은 몸을 돌리며 다시 한번 일의생멸을 내쏘려 했다.

하지만 결국 멈추었다.

율천은 빨랐다.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공간 자체를 단숨에 초월하여 움직였다.

‘막을 수 없다. 나도, 저자는 절대 막을 수 없어.’

사도명은 만약 율천이 백산을 공격한 것과 똑같은 수법으로 자신을 공격한다면,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 내렸다.

그래서 소리쳤다.

“하지 마! 그럼 안 돼!”

연자강이 반대편 쪽에서 율천을 노리며 몸을 날려왔다.

그는 검성의 후예로 가장 빠른 검, 무영섬을 하고 있었다.

[나도 안다! 못 당한다는 거! 그래도 사부를 해친 놈이잖냐.]

때로는 패배를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사부가 죽임을 당했을 때가 그렇고, 친구가 위험에 처했을 때가 또한 그랬다.

‘치잇!’

사도명은 위험을 경고하는 이성을 누르고, 다시 날아갔다.

“이 멍청한 녀석아!”

“위험해요!”

은교교가 걱정 가득한 고함을, 멀리에서 질렀다.

“재밌다, 감정이란 건! 슬픔! 분노! 이 터무니없는 모순!”

율천이 환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대충 휘둘렀다.

연자강이 달려가던 기세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 나갔다.

그의 손에 들렸던 검이 허공을 날았다. 검을 잡고 있었던 오른손 아귀가 찢겨 피가 튀었다.

“여보!”

곽소혜가 고함을 지를 때, 사도명의 금강천극멸은 율천의 등을 그대로 후려쳤다.

“내 친구를 건들지 마-!”

금강천극멸이 율천의 등뼈를 파고들었다…는 것은 착시!

율천은 이미 옆으로 움직였고, 그곳의 구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은교교 바로 옆에 생긴 구멍에서 나타났다.

“어디 보자! 이 여자가 죽으면, 너도 저 멍청이처럼 슬퍼하고 분노할 거 같은데, 맞아?”

율천은 사도명에게 묻고서도, 정작 대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그대로 은교교의 목을 노렸다.

“하지 마! 그러지 마!”

사도명은 빛살처럼 쏘아가면서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구하지 못한다! 나는 절대로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다.’

절망과 분노!

사도명은 제왕검형 천자결 중의 지(止)를 마음에 쓴 다음, 율천을 향해 던졌다.

율천의 몸은 아주 짧은 순간 멈추었으나, 이내 지의 검형을 깨뜨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히 잔재주 따위를!”

찰나와 다름없는 틈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매우 큰 것을 바꾸었다.

은교교의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허공을 움직였고, 거기 반사된 빛이 율천의 눈에 닿았다.

“그 목걸이는?!”

율천이 뻗어가던 자신의 손을 뒤로 거두었다.

손을 거두었지만, 미처 거두지 못한 내공의 여력이 은교교의 어깨를 쳤다.

“악!”

은교교가 비명과 함께 뒤로 날려갔고, 그녀 허리의 방울이 맑은 울음을 울었다.

딸랑 딸랑-

그 순간에 사도명의 오른손은 율천의 등을 때렸다.

“죽인다, 율천!”

율천이 몸을 돌렸다.

그 동작이 하도 빨라, 마치 뒤통수가 사라지고 곧바로 얼굴이 나타나는 느낌이었다.

율천의 양손이 사도명의 양손과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쩌-어엉!

“크윽!”

사도명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고, 율천은 바닥에 고랑을 길게 그리며 밀려났다.

“하하하. 나와 겨룰 만한 놈이 세상에 정말 있었다는 건가? 이름이 뭔지 물었다.”

사도명은 일곱 번이나 몸을 돌린 후에야 몸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어깨를 맞고 물러나,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은교교를 보았다.

사도명은 율천을 바라보며 비로소 대답했다.

“삶을 이끈다, 하는 도명! 지옥에서 염왕이 널 죽인 사람을 묻거든, 사도명이라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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