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재회
은교교는 미친 듯 달렸다.
신강에서 구했던 말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지 오래였다.
그 후로 은교교는 자신의 발을 이용해서 계속 달렸다.
사도명으로부터 배웠던 창천사해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이미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을 정도로 긴 시간!
잠도 자지 못하고 달리는 것이 벌써 나흘이었다.
다시 말해, 회천연합의 총수로부터 그 말을 들은 지가 나흘이 흘렀다는 의미였다.
- 풍, 우, 뢰가 사도명의 행방을 마침내 찾아냈네.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해. 이걸 갖고 가게. 도움이 될 거야.
사도명은 많이 다쳤다.
그 혼자 세상을 위해 다시 희생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무사해야 해요, 제발.”
음식을 먹는, 가장 기본적인 시간조차 아까웠다.
은교교는 건량을 사서 달리면서 조금씩 먹었다.
양선정이 보았던 사도명과, 풍우뢰에 의해 공격당한다는 사도명이 어떤 관계인지 은교교로서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 그 한 가지였다.
은교교는 자신이 아는 모든 신에게 빌면서 달렸다.
달리는 도중에 밤이 깊어갔고, 다시 날이 밝았다.
그녀는 은령선자로 지녔던 본래의 힘과 적암의 마녀로서 물려받은 힘까지 모두 소진한 후에야, 마침내 아미태산에 도착했다.
몽골의 성스러운 산.
위대한 왕 징키스 칸이 언젠가는 되살아나서 강림하리라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
거기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피안과 맞닿는 동굴이 하나 존재한다고 했다.
- 몽골인들은 칸을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저승에 닿는 통로를 만들었지! 몽골 용사들이 저마다 내공을 모아, 무한대의 내공을 제공할 수 있는 대를 만들었고! 그걸 은하대라고 불렀다네.
“오 일이나 지났어. 도명이 버티지 못했으면 어떡하지? 내가 돕지도 못한 거면 어떻게 해?”
은교교는 멈추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손과 발이 무거웠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음에도, 그녀는 단숨에 산을 올랐다.
멀리, 붉은 옷과 푸른 옷과 흰 옷의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싸우는 모습이 아니었다.
‘벌써 끝이 났다고? 싸움이 이미 끝났다고?’
은교교는 내공을 더욱 끌어올려 단숨에 그들을 뛰어넘었다.
“멈춰라-!”
고운, 그러나 내공을 실은 고함이 쩌렁쩌렁 사방으로 퍼졌다.
은교교는 둥글게 비어 있는, 병사들의 앞쪽 공간에 내려섰다.
검에 걸린 방울이 울었다.
딸랑 딸랑 딸랑.
네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한 사람만 서 있었다.
은교교는 쓰러진 사람 중의 셋을 알고 있었다.
연자강과 곽소혜, 그리고 법허.
얼굴을 알지 못하는 마지막 한 사람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검은 피부의 미부였다.
그녀가 은교교에게 물었다.
“방울 소리! 혹시 은령선자 은교교가 맞나요?”
“누구죠?”
“나는 황천법문의 문주인 야율라예요.”
네 사람이 쓰러져 있었지만, 누구도 숨이 끊어진 사람은 없었다.
은교교는 내심 안도하며 유일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종심기였다.
“기찰령주 종심기! 당신은 왜 전혀 다치지 않은 거죠?”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종심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치지 않은 사람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죠.”
종심기는 은교교 뒤쪽에 앉아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적우방! 청뢰각! 백풍전! 본래 다쳐야 할 병사들이지만,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은교교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혹시 배신인가요?”
종심기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닷새나 전부터 당신들은 싸우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모두 무사하죠? 왜 아무도 다치지 않았나요?”
- 모두 나 때문이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본래 칠 주야만에 깨어날 예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빨리 깨어나고 말았거든.
은교교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한 만큼 그리웠고, 그리운 만큼 안타까웠던 사람.
차마 몸을 돌리지 못했다.
몸을 돌려 확인하면, 다른 현실이 펼쳐질 것 같아 두려웠다.
목소리의 주인이 은교교의 앞으로 왔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깨어나자마자 내가 뭘 한 줄 알아? 알고 나면 깜짝 놀라서, 마구 존경스러워질걸.”
사도명이었다.
은교교는 사도명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양선정의 앞에 나타났던 사도명이 지금의 사도명과 어떤 관계인지도 묻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사도명이 서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사도명을 와락 안았다.
“아아. 우린 이렇게 다시 만났어. 그것만이 중요해요.”
허리의 방울이 다시 흔들렸다.
지칠 대로 지쳐서 누워 있던 연자강과 곽소혜가 일어나 앉았다.
법허만 계속 누워 있었다.
종심기가 말했다.
“그래도 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난 이틀 사이에 여기에서 벌어진 일. 조화무제께서 깨어난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아는 건, 차후를 위해 중요합니다.”
**
일행은 빠르게 지쳐갔다.
연자강과 곽소혜, 그리고 법허는 강했지만, 사람이었다.
병사들이 너무 많았다.
지나치게 많아서 한 명을 쓰러뜨리면 열 명이, 열 명을 쓰러뜨리면 백 명이 몰려왔다.
일행은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병사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이지 않고 그저 쓰러뜨리는 일은 지극히 어려웠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 황제의 명령에 따를 뿐이지만, 그 황제조차 배화교의 명령에 따름을 알지 못한다.”
법허의 설득이 연자강과 곽소혜에게 모진 짐이었다.
죄 없다 생각하기 시작한 병사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곽소혜가 가장 먼저 지쳤다.
한 번에 여덟 개의 비침을 모두 쓰는 건 막대한 내공의 소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종심기가 나서서 곽소혜에게 힘을 보탰다.
덕분에 삼재진의 균형을 가까스로 잡았지만, 이번에는 법허가 지치고 말았다.
“빈승은 더 이상은….”
그의 몸을 허공에 띄우던 내공이 약해지자, 삼재진의 균형도 완전히 무너졌다.
법허의 방위는 인(人)이었다.
천과 지의 방위에 있던 병사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하는 인의 방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삼재진을 깨고, 각자 살아남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삼대 조직의 수장들이 비로소 나섰다.
적우방주 적보운!
청뢰각주 청희태!
백풍전주 백산!
세 사람의 무공은 연자강이나 곽소혜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종심기와 충분히 겨룰 능력은 갖고 있었다.
“너희가 왜 병사들을 죽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는지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백산이 뚱뚱한 몸을 흔들며 손짓했다.
전력 공격의 신호였다.
“황상의 명령은 지엄하다. 아무도 죽이지 않으려는 너희들의 유약함은….”
모든 병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뒤로, 세 명의 조직장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백산은 그들 중의 가장 앞에서 다시 외쳤다.
“우리가 너희를 살려둘 이유는 절대 되지 못한다.”
연자강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말이 옳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사부?”
뒤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려 호흡을 가다듬던 법허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 말 무슨 뜻이냐, 자강?”
“불살(不殺)의 계를 부숴야겠습니다. 이용당하는 병사? 그래도 어쩝니까? 저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도명을 지켜야겠습니다.”
연자강의 몸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
강함을 초월하는 섬뜩함.
살기였다.
천극멸이 세 갈래 일어나, 병사들 너머에서 달려오는 세 명 조직장들의 몸을 동시에 덮쳤다.
“이제부터는 죽인다.”
- 내 친구의 결심이 이러하니, 내가 더 게으르다가는 친구를 살인자로 만들게 될 것!
동굴 안으로부터 맑은 빛이 뻗어 나온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빛은 천극멸을 휘감더니, 그대로 소멸시켰다.
동시에 빛은 천극멸에 의해 죽임당할 뻔한 세 명 조직장들의 몸도 함께 감았다.
- 그리고 그대들도 내 친구가 끝끝내 살수를 참으려 했던 진심을 알지 못하게 될 것.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보운과 청희태, 그리고 백산은 연자강 등을 향해 달려들던 몸을 그저 멈추었을 뿐이었다.
“이, 이상합니다.”
적보운이 백산에게 말했다.
청희태도 창백해진 낯빛으로 백산을 보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살기가 사라졌어요.”
백산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자신도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사술을 부린 거냐?”
백산이 동굴 입구를 보았다.
연자강도 그와 마찬가지로 동굴을 보았다.
천극멸이 허무하게 사라졌지만, 연자강은 더 이상 검을 움직일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동굴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람은 과연, 사도명이었다.
“도명! 사, 살아났느냐?”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덕분에 편안히 잤고, 제대로 깨어났다. 그냥 나무꾼이 아니라, 조화의 뜻을 잇는 사도명으로.”
연자강은 사도명이 편안히 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평생 한 번 겪는 고통을, 수백, 아니 수천 번 겪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연자강은 굳이 반박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반갑구나.”
사도명은 후르르 아래로 내려와서, 연자강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격려의 동작뿐이었건만, 연자강은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곽소혜가 곧장 달려와서 그를 안았다.
“쉬어야 해요.”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 소저도 쉬시오. 모두 쉬시오. 이제부턴 내가 모두 맡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소.”
일단 말을 하면 어떤 경우라도 안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사도명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사도명은 적우방, 풍뢰각, 백풍전 세 곳의 주인을 각각 보았다.
“얼굴이 낯이 익다. 황궁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 금의위 출신 무장들 맞지?”
세 명의 안색이 변했다.
적우방주 적보운이 소리쳤다.
“누가 우리에 대해서 알려 주더냐? 우린 그때 수십만 대군 중에 있었는데 알아본다고?”
“죽음과 삶을 수천 번 넘나들었다. 죽는 순간의 주마등. 살아왔던 모든 시간을 낱낱이 펼쳐지기에 하나하나 돌이켰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죽은 횟수만큼 다시 태어났다. 내 감각은 지금 갓난아이처럼 순수하다. 불어오는 바람, 떨어지는 먼지, 모두가 선명하구나.”
적보운이 검을 고쳐 쥐고 사도명을 향해 몸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도명이 엄지와 검지를 튕기자, 적보운은 그 자리에 멈추고 눈만 깜빡이고 말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또, 또다시 살기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사술이냐?”
“일의생멸의 힘은 본래 사람의 몸에만 적용되었다. 하지만 생사를 오가는 와중에 모든 구분이 무의미함을 깨달았지.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간섭하는 무공이라고? 살기를 어, 없앨 수 있는 무공이 존재한다고 믿으라고?”
사도명이 다시 웃었다.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을 건가?”
적보윤이 청희태를 보고, 다시 백산을 보았다.
두 사람은 차마 사도명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면서 분석하고 있다. 우선 너희의 본명은 뭐지?”
“황명에 의해 죽을 자가, 그걸 알아 어디 쓰겠단 거냐?”
청희태가 소리를 질렀다.
사도명은 차분했다.
“공희태! 성만 바꾸었을 뿐 이름을 바꾸지 않았구나. 황제가 내려준 성! 그렇구나. 모두가 마찬가지! 너희는 황명의 수행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기쁘지는 않구나.”
“마, 마음을 읽는다고?”
“걱정 마라. 더 깊이 읽지는 않으마. 한 가지는 알았으니 됐다. 너희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사도명이 몸을 돌렸다.
“법허 선사! 저들을 왜 내가 있는 곳까지 끌어들인 거요?”
갑작스런 질문에 법허의 눈이 커졌다.
“예? 다만 뒤를 밟혔을 뿐, 제가 끌어들인 것은 아닙니다.”
“돌리지 말고 물을까요?”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들을 끌어들이면서, 저들이 날 해칠 거라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