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09화 (109/168)

109화. 진정한 반성이란

연자강은 오래 감았던 눈을 뜨고, 낮지만 긴 호흡으로 진기의 일주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가부좌하고 있는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여전히 검게 타들어가 바스러지는 피부 속에 있었다.

끊임없이 도지는 상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끝없이 공급되는 내공이 없었다면 사도명의 몸은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한 내공의 근원은 사도명이 앉아 있는 좌대(座臺)였다.

은빛을 뿜는 좌대, 은하대.

은하대는 사도명의 상처가 끝없이 재생할 수 있는 힘을 계속 공급하고 있었다.

“육체는 버티고 있다.”

연자강은 운기행공으로 정순하게 만든 자신의 내공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좌대의 위치를 교정한 후에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너는 어디 있나?”

눈 감고 있는 사도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저 피부만 끝없이 상처 나고, 다시 재생될 뿐이었다.

놀라운 점은 사도명의 가슴 부위가 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흡도 전혀 없었다.

사도명은 실질적으로 죽었고, 은하대는 그의 죽은 육신을 보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자강은 은하대(銀河臺)가 놓인 동굴을 떠날 수가 없었다.

친구의 육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 육신을 보호하기 위해, 연자강은 계속 머물러야만 했다.

그는 자지 못했다.

음식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운기조식을 하여 천지의 기를 흡입하는 것만이 연자강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젠장. 나는 굶는데 너만 속 편하게 혼자 돌아다니는 거냐?”

연자강은 사도명의 영혼이 육신을 두고 떠나서 돌아다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몰랐다.

그곳이 다만 피안(彼岸) 너머가 아니기만 바랐다.

데-엥!

동굴 입구에 걸려 있는 풍경이, 바람에 맑게 울었다.

풍경의 아래에는 눈꺼풀이 없는 물고기가 달려 있었다.

항상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굴을 만든 사람이 걸어 놓은 것이었다.

“지겹다. 진짜 황천(黃泉)도 이처럼 지루할까?”

사도명이 앉아 있는 은하대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비스듬해졌다.

은하대 속에 깃든 것은 무한대에 가까운 내공이었다.

그 내공이 사도명의 몸에 흡수되기에, 좌대는 조금씩 닳았고 그때마다 좌우로 약간씩 어긋났다.

연자강은 다시 한번 은하대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누가 이 동굴을 만들었을까?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내공의 발원체 또한 누가 만든 것일까?”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갑자기 사도명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깨어나는 거냐?”

덜덜 떨리던 사도명의 몸이 돌연 진동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온몸의 혈도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퍼퍼-퍼퍼퍽!

재생되고, 바스러지는 과정을 반복하던 사도명의 몸 곳곳에 깊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 구멍은 모두 일곱 개였다.

죽을 때만 열린다는 칠성의 공혈여 열린 것을 보고, 연자강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닌 거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빠르게 죽어가고 있는 거냐, 사도명?”

연자강은 가부좌하고 앉았다.

사도명의 뒤에 앉아 명문혈에 자신의 내공을 넣었다.

“육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음의 도움이 없으면, 몸은 버티지 못한다. 돌아와라, 도명!”

연자강이 소리쳤다.

“네가 헤매는 거기가 어디든! 저승이건 혹은 이승이건 상관없다. 무조건 돌아와라. 아직 천하는 어둡다. 암흑만이 가득하고, 새벽은 밝지 않았다.”

**

돌아간 검을 붙잡은 자!

푸른 그림자는 허공에 무게도 없이 떠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붙잡은 채로,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은교교가 소리쳤다.

“흑강은 이미 잘못을 뉘우쳤어요! 이게 무슨 짓이죠, 냉겸?”

전 우도독 냉겸!

그는 팔십만 금군의 최종 통수권자였다.

그의 무공이 낮을 리 없었다.

냉겸은 대답 대신에 흑강의 잘린 머리를 가리켰다.

바닥을 뒹구는 흑강이 머리에 붉은 균열이 번져 있었다.

냉겸이 자르지 않았다면 균열은 온몸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흑강의 머리 전체와 몸까지 터뜨렸을 것이다.

폭발의 힘은 은교교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했겠으나, 흑운문 병사 중 내공이 약한 자는 크게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은교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봉황금제?”

“마령강화대법은 지옥문이 만들어온 육체강화술의 총화!”

냉겸이 목을 잃고 쓰러진 흑강의 몸 옆으로 왔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었다.

“도광효는 지옥문을 맡은 후, 마령강화대법을 시전해 주는 대신 봉황금제와 맞교환하고 있소.”

화르르르르-!

삼매진화가 냉겸의 오른손에서 일어나 흑강의 몸을 태웠다.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냉겸의 무공이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부처의 불! 냉 장군의 무공은 소림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냉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역 소림사! 혜천 선사가 서역에 별도로 세운 소림사의 분파! 그곳에서 나는 무공을 배웠지.”

흑강의 몸이 완전히 탔다.

냉겸은 합장하며 재로 변한 흑강의 시신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배분을 따지자면, 나는 법허 선사를 사숙이라 부르게 되오. 그래서 묻는 것인데….”

냉겸이 은교교를 보았다.

“법허 사숙은 지금 대체 어디에 계시오?”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몰라서 묻는 건가요? 그날 숭산에서 직접 보았잖아요. 우린 모두 자결했고, 시신조차 불탔어요.”

냉겸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봤던 시신 속에는 분명 은령선자의 것도 있었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라고 설명하면 만족하실까요?”

“법허 사숙의 시신을 만져 보았소. 사람의 몸이 아니었어. 정확히 말하면 까끌까끌한 나무의 감촉이었던 걸로 기억하오.”

“…그랬나요?”

냉겸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제왕검형 상의 천자결이 환상을 보여주는 걸 아오. 내가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소.”

“뭐가 궁금한가요?”

“대체 어떤 사람이, 얼마나 내공을 소모해야만, 일백만이 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동일한 환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스무 명이 각각 일 갑자씩의 힘을 보탰어요.”

은교교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도합 스무 갑자의 내공! 엄청난 광경이었겠죠?”

“조화무제가 한 일이오?”

“그때 무제의 생명력은 절반도 채 남아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죠. 그랬으니까 ….”

은교교의 눈빛이 변했다.

냉겸은 그녀가 뿜는 기운에 몸이 저릿저릿 저려옴을 느꼈다.

“상상해 봐요. 내가 귀하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요?”

냉겸은 주변의 흑운문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누구도 은교교와 자신의 대화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제야 냉겸은 은교교가 주변에 강기로 막을 만들어 소리의 유출을 막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은교교가 점점 살기를 강하게 뿜어냈다.

냉겸은 비로소 은교교가 모든 걸 순순히 대답해준 이유를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해치고 싶겠구려!”

“죽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건만, 귀하는 왜 굳이 나를 따라왔나요? 왜 참지 못하게 하나요?”

냉겸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어떤 종류의 감정은 한 번 일어나면 참기 힘드오. 살기가 그런 종류지. 은령선자는 굳이 참아낼 필요가 없소.”

“닥쳐요!”

“만나러 올 때 모든 각오를 했소.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은 소저는 듣지 않을 거잖소.”

은교교가 땅을 박찼다.

“닥치라 했지!”

적암마계의 강기가 청상검의 검신을 타고 냉겸의 머리와 가슴을 한꺼번에 노렸다.

냉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숫제 눈을 감아 버렸다.

은교교가 내쏘던 검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냉겸의 심장은 뚫리고 머리는 터졌을 것이다.

미처 멈추지 못해 냉겸의 몸 옆을 스쳐 간 검강의 여력이 멀리 떨어진 세 그루의 나무에 맞았다.

퍼퍼-펑!

아름드리 세 그루가 강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냉겸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의 가슴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정지한 은교교의 검이 떨렸다.

“왜… 피하지 않았죠?”

“나는 죄를 지었고 은 소저의 분노는 정당하오. 죄를 지은 자가 단죄를 피한다면, 그것이 어찌 정당한 반성이겠소.”

은교교는 냉겸을 한참 동안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결국 검을 거두며 말했다.

“용서했다 생각지 마세요. 타인의 용서를 받아도, 스스로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 거니까.”

“이렇게 합시다.”

냉겸이 자신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왼 손목을 들었다.

“우선은 내 스스로의 단죄를 보여드리겠소. 충분한 속죄는 차후, 다시 정산합시다.”

냉겸은 망설임 없이 오른손의 검으로 자신의 왼 손목을 벴다.

까-앙!

은교교가 청상검으로 막지 않았다면, 냉겸의 왼 손목은 분명 잘리고 말았을 것이다.

냉겸이 튕겨나간 자신의 검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은교교를 보았다.

“왜 막았소?”

“당신의 진심을!”

은교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믿어 줄게요. 믿어줄 테니까, 왜 위험을 무릅쓰고 날 따라왔는지, 그 이유를 말해요.”

냉겸이 주변을 보았다.

수백 명의 흑운문 병사들이 그와 은교교를 보고 있었다.

양거창과 하승연, 그리고 양선정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양선정이 물었다.

“언니는 거기서 왜 계속 입만 벙긋거려?”

냉겸이 말했다.

“소리를 가두는 막을 풀어 주시오. 저들이 같이 들어야 하는 얘기가 있소. 이 잘못된 세상을 다시 바꾸려 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말하겠소.”

**

사도명의 발작이 잦아들었다.

은하대 위에서 한없이 떨던 사도명의 몸이 겨우 진정되었다.

연자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등에서 손을 뗐다.

“이, 이젠 괜찮냐?”

묻고 나서 혼자 웃었다.

은하대 위의 사도명은 단지 몸만 남았을 뿐, 그의 정신은 몸을 떠나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이다.

“망할 자식. 저 혼자 편안한 곳에서 쉬고 있단 거지?”

[알잖아! 아니라는 거.]

사도명의 혜광심어가 몇 달 만에 들려오자, 연자강은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

[나, 드디어 찾은 거 같아. 내가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유.]

연자강이 사도명을 안고 황천법문에 온 것은 네 달 전이었다.

몸은 죽고 정신만 살아 있는 사도명이, 황천법문의 정확한 위치를 연자강에게 알렸다.

천무제 좌능후가 남긴 기억 속에 황천법문의 위치가 있었다.

[몽골의 철목진은 위대하다는 뜻으로 칭기즈 칸이라 불렸다. 그는 서하를 정벌하러 갔다가 죽음을 맞았고, 삼남에게 대제국을 맡겼지.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왕을 되살리고 싶어 했어.]

사도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황천법문에 대한 정보를 연자강에게 혜광심어로 설명했었다.

[염원은 훗날 쿠빌라이 칸이 원을 세운 이후에도 이어졌어.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연구! 그게 황천법문의 시작이었지.]

황천법문은 죽어서 피안으로 간 사람을 되돌리는 방법과,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 이후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죽음 이후로 간 사람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건….”

황천법문의 문주인 야율라는 피부가 검은 미녀였다.

“생각보다 훨씬 행복한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 건너간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 것만 봐도 확실하겠죠?”

한눈에 보아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야율라는, 사도명을 보자마자 적통자로 인정했다.

사도명은 원 최후의 황손인 좌능후가 남긴 제왕검형과 조화심결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판단을 내렸어요.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는 방법은 아예 없다고!”

야율라는 사도명의 정신에 직접 제안했다.

“하지만 반쯤 죽었을 때는 돌아올 방법이 있어요.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면 돼요. 반드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사도명은 이미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있었다.

은교교! 그리고 동료들!

몸이 죽었건만 정신이 살아 있는 이유는 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단순히 살고만 싶은 건 아니오. 해야 할 일이 많소. 힘을 간직한 채 살고 싶어.]

“그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야율라는 난색을 표했다.

“단순히 육체만을 살리는 거라면 은하대가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힘을 유지한다? 엄청난 고통에 따를 텐데 괜찮아요? 무림이라는 곳이 그런 고통을 감당하면서까지 지켜야만 할 가치가 있는, 그런 곳이 정말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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