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무사가 되는 이유
무공이란 방법.
일개인의 능력으로 수천, 수만의 군사와 맞설 수 있는 극강의 힘을 보유할 수 있는 방법!
황제는 무공과 무공을 지닌 자들을 두려워했다.
그들의 힘이 황실의 안녕을 위협할까봐 우려했다.
그리하여 황제는 무림에 대한 말살령을 내렸고, 스스로 내공을 폐한 자들만 살려 두고자 했다.
그것이 무림말살령!
힘과 싸우는 이는 두 종류다.
힘의 부당함을 거부하는 사람과, 그 부당함을 소유하려는 사람.
황제는 무림을 없애면서도, 무림이 지녔던 힘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 안에 넣으려 했다.
그는 항복한 무림문파가 지니고 있는 영약과 비급, 모두를 헌상 받았다.
그 선봉에 도광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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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교는 사방의 벽을 부수며 나타난 흑운문 병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병사라 불리었지만, 실상은 무사라 불려야 마땅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탁탑제 흑강 역시, 제왕이 아니라 무림의 문주라 불려야 타당했다.
“흑강은 마을 외곽의 작은 방파 흑탑루의 주인이었습니다. 몇 번 제게 도전했었지요.”
양거창이 설명했다.
“그때마다 삼 초를 넘기지 못했는데, 언제 저토록 강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흑강이 오른손을 들었다.
쿠우우-!
검은 기류가 주변의 공기를 흡수하듯 빠르게 맴돌았다.
은교교가 그 무공을 알아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적암의 마녀가 지닌 기억 속에 분명 그 무공이 있다. 흑탑전륜마공! 새외의 오대마문에 들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세를 떨쳤던 사파의 무공이다.”
“크흐흐. 잘도 아는구나.”
흑강이 오른손을 휘저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검은 공 네 개가, 그 손바닥에서 일어나 양거창을 노렸다.
“아빠!”
놀라서 외치는 양선정의 손을 은교교가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네 아버지는 강하시다.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양거창이 양손을 휘둘렀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또 다른 쇠사슬 조각 네 개가 한꺼번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양 씨 가문의 창법 중의 사해질풍을 뿜어내는 네 개의 창으로 변신한 쇠사슬은, 흑강이 쏟아낸 네 개의 흑탑강과 곧바로 부딪쳤다.
콰콰콰-쾅!
흑강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흑운문의 병사들 십여 명이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신음을 흘리며 사방으로 물러났다.
양거창은 그 자리에 있었다.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들썩였던 어깨만 진정시켰다.
그는 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지도 못했다. 우세가 아니라 열세임이 분명했다.
“흥!”
흑강은 자신의 한 손과 양거창이 동원한 두 손을 번갈아 본 뒤 코웃음 쳤다.
“세 번을 싸워 늘 삼 초를 버티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 것 같지, 양거창? 나와 싸우면 백 초는 버틸 자신이 있나, 지금?”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고문을 하지 말고 멀쩡할 때 겨뤘어야지, 겁쟁이.”
은교교가 말했다.
흑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하는 계집이냐?”
“나를 모른다? 이 음모의 중앙에 있지 않고, 그저 이용만 당하고 있음을 확인. 호호, 나도 모르게 누구의 말투를 흉내 냈네.”
은교교가 웃었다.
“뒷골목 하오배에 불과한 너를 강하게 만든 건 도광효인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했지?”
흑강이 꿈틀 미간을 찌푸리며,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자리를, 흑운문의 병사들이 대신 채웠다.
“이 년을 죽여라.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는 죽여 놓고 알아보마.”
“와아아!”
병사들이 청강검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위험해요, 언니!”
양선정이 놀라서 외쳤다.
은교교는 방울이 딸랑거리는 검을 오른손에 들며 웃었다.
“위험할 일은 없어. 언니가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니?”
은교교가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기 전, 양거창이 먼저 움직였다.
쇠사슬을 창 대신 휘둘러, 앞쪽에 달려들던 열세 명 병사가 든 청강검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까가가가-가가강!
“큭!”
“크윽. 견뎌낼 수가!”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병사들이 떨어뜨린 검.
그 검을 다시 양 씨 가문 창법의 새로운 창으로 이용해, 양거창은 주변 삼 장 공간을 휘감았다.
후우-우우웅!
열세 자루의 검들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창처럼 회전했다.
연환절명창!
창으로 변한 검에서 뿜어 나오는 강기는 강력해서, 병사들은 감히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양선정이 대답했다.
“알아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죠.”
양선정이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언니는 제 엄마와 아빠를 구해주셨어요.”
“생명을 구하는 일은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은 퍼진단다.”
은교교는 검으로 자신의 주변도 보호해 주고 있는 양거창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내가 네 아버지를 구했더니, 네 아버지가 나를 구해주시잖니?”
병사들이 물러났다.
그들 또한 무사였다.
하지만 상승의 무공은 알지 못하는 일반 무사에 불과했다.
누구도 감히 양가장의 장주가 휘두르는 양가 창법의 범위를 침범해 들어갈 수 없었다.
“진짜 싸움을 원하면 직접 나서야 할 것이다, 흑강!”
양거창이 소리쳤다.
“내가 내 가족을 지키려 직접 나서듯! 너는 확실히 강해졌다. 하지만 스스로 약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덤비던 무사 흑강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느냐?”
흑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두 물러나.”
그는 손을 흔들어 병사들을 물러나게 하고 양거창의 앞에 섰다.
흑강은 본래 병사들을 이용해 양거창의 힘을 뺀 후에, 그와 싸우려고 했다.
은교교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양거창의 일갈이, 그에게 오래 전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흑탑루의 루주일 때, 그는 확실히 약했다.
하지만 끝없이 도전했었고, 보다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런 지저분한 기분!”
흑강이 양거창의 앞에 서면서 웃었다.
“느끼기 싫었는데, 막상 느껴보니 기분 좋군.”
은교교가 양선정과 하승연을 안았다.
“가족은 걱정 말아요, 장주.”
은교교는 두 사람을 각각 좌우에 안고 멀리 물러나, 몸의 주변에 보호강기를 피워올렸다.
양선정이 물었다.
“아빠가 싸우려 해요! 왜 아빠를 보호해주지 않죠, 언니?”
“예전의 싸움과 지금은 달라. 이제는 무사의 싸움이란다.”
은교교가 한쪽 무릎을 꿇어 양선정과 눈을 맞춘 다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명예를 건 싸움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가 없단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양 씨 가문의 창법은 천하제일로 추앙받는 것이었다.
오직 서문일가의 신창만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알려진 무공.
흑탑전륜마공도 강했다.
게다가 흑강은 모종의 방법을 통해 강력한 내공도 지니게 된 상태였다.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쟁이고 호투였다.
양선정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하승연이 한숨을 쉬었다.
“내 딸이 저런 모습을 보지 않고 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은교교가 그녀를 보았다.
“그래서 황제가 무림이란 곳을 없애겠노라 말했을 때,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 싶기도 했고요.”
은교교가 빙그레 웃었다.
“힘은 싸움을 하기 위해 지니는 것이 아니에요.”
하승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편의 싸움을 보고 절감했어요. 지키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을 지켜주기 위해서.”
양선정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버지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은교교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가, 질 거 같아요. 저 커다란 남자, 나쁜 사람이 너무 강해 보여요.”
“지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기지도 못할 거 같아요. 불안해요.”
“사람마다 강해지는 이유가 다르단다, 정아. 네 아버지는 지키기 위해서 강해졌지.”
은교교는 양선정과 하승연을 번갈아 보더니 웃었다.
“그러니 너와 어머니가 있는 한 더욱 더 강해질 거야. 아버지를 믿어보겠니, 정아?”
밤이 깊어갔다.
늦은 저녁에 시작된 싸움은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병사들은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양거창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흑강은 완전히 바닥에 쓰러졌다.
싸움이 시작될 때 보다 강한 쪽은 흑강이었다.
흑강은 황실에서 요구한 봉황금제를 감내하는 대신, 마령강화대법을 받을 수 있었다.
강해진 내공을 바탕으로 흑탑전륜마공도 대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거창은 싸우면서 더욱 더 강해졌다.
본래 이길 거라 예상되던 쪽은 흑강이었는데, 결국 이긴 사람은 양거창이었다.
“…말도 …안 돼.”
누운 채로 흑강이 중얼거렸다.
창으로 인한 상처로, 그의 가슴과 배에 여러 군데 구멍이 보였다.
양거창이 다가왔다.
그의 복부도 큰 상처가 나서 내장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양거창은 흑강의 상처를 먼저 지혈했다.
흑강의 눈이 커졌다.
“뭐… 뭘 하는 거냐?”
“삼 초도 당해내지 못하면서 네가 도전해 왔을 때, 나는 화가 났던 적이 없다.”
양가청은 흑강에게 내공을 밀어넣다가, 울컥 피를 토했다.
“더 강한 것에 대한 도전. 그것이 무인의 마음이기에.”
양가청은 가까스로 흑강에 대한 임시처치를 마쳤다.
하승연과 양선정이 달려와서 그를 부축했다.
양거창은 바닥에 주저앉아 마지막으로 흑강을 보았다.
“대답해 보라, 흑강. 그때와 너와 지금은 너, 어느 것이 나은가? 너 또한 정말 황제와 마찬가지로… 무림을 없애고 싶나?”
양거창은 정신을 잃었다.
그는 힘겹게 싸웠고, 큰 상처를 입었으며, 마지막에는 죽어가는 적을 살리려 힘을 썼다.
은교교가 다가와서 양거창의 혈도를 짚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안심해라, 정아. 아버지는 죽지 않을 거고, 그 사이의 깨달음으로 더욱 더 강해질 거야.”
“믿어, 언니. 고마워.”
양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교교는 시선을 흑강을 향해 돌렸다.
“어린 아이도 진실을 꿰뚫을 줄 알고 고마움에는 감사를 표한다. 너는 어떠냐, 흑강?”
“…….”
흑강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양거창을 보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는 한참이나 생각한 후에, 가까스로 대답했다.
“나도 무림이 사라지는 건 싫소.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무림 속에서 강해지려고, 더 강해지려고 노력했거든.”
주변의 병사들은 검과 칼, 창을 들고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그들은 모두 병사이면서 동시에 무사였다.
언제나 강해지려고 노력하면서, 밤낮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강해지려는 이유는 달랐다.
하지만 저마다 다르면서도 또한 모두가 같았다.
그것이 자신의 꿈이건, 행복이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건에 상관없이, 강함을 통해 추구하려는 이상이 있었다.
무림을 없앤다는 건 그 꿈도 없앤다는 뜻이었다.
일반의 무사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거부감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양거창과 흑강의 싸움을 통해 확실해졌다.
“나도, 싫다. 나는 무림이 사라지는 건 원하지 않아.”
“고향의 부모님께 약속했어. 더 강한 무사가 되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부모님 편하게 사시게 해 드린다고.”
병사들이 검을 놓았다.
창과 칼이 맑은 소리를 내며, 계속 바닥으로 떨어졌다.
병사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흑!”
하승연이 눈물을 터뜨렸다.
양선정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울지 마, 엄마. 아빠가 이겼는데도 왜 울어?”
“슬퍼서! 사람들은 왜 힘겹게 싸우고 난 후에야 겨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달을까? 그게 너무 슬퍼서!”
은교교가 긴 한숨을 쉬었다.
흑강도 자신의 뺨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이런 미친! 평생 착하게 살아본 적이라곤 없는 내가 왜?”
“왜냐하면 그건 당신 역시 무림인으로서… 아!”
은교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선가 맹렬히 회전하면서 날아온 한 자루의 검이 흑강이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무, 무슨 짓이야?”
은교교가 몸을 돌렸다.
선회하여 돌아간 검을 허공에서 붙잡는, 푸른 그림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