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06화 (106/168)

106화. 검령은 생명을 살린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타는 듯 붉은 옷을 걸쳤고, 얼굴의 피부에는 한 점의 티조차 없었다.

지나가다가 그녀를 본 사내들의 얼굴은 모두 벌겋게 달아올랐다.

순진한 자는 부끄러움으로!

수치를 모르는 자는 욕망으로!

그녀는 검을 들고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어귀에 앉아 있었다.

검은 작았고, 검집 속에 있었으며, 언뜻 보기에 집안에 장식용으로나 쓸 수 있을 용도로 보였다.

검에는 은으로 된 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자 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어깨에 흑색의 견장을 단 병사 하나가, 순찰을 지나다가 시장 어귀에 앉은 여인을 보았다.

그는 허리에 찬 검을 한 차례 툭 친 후에, 여자의 앞으로 갔다.

“무림인이냐?”

“백성일 뿐입니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병사는 여인이 들고 있던 방울이 달린 검을 빼앗았다.

딸랑! 딸랑!

방울이 흔들렸다.

“왜 사람을 죽이는 검을 지니고 있느냐?”

“이건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흥!”

병사가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반짝거리는 방울과는 대조되게 낡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갈리지 않은 듯 둔탁한 검날은, 두부조차 제대로 베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반대라는 게 무슨 말이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병사의 어깨에 매단, 검은색의 견장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었다.

황실 동창의 직속 조직인 흑운문은 이름 그대로 검은 그림자의 문양을 표식으로 삼는다.

동창은 무림인을 잡아들이기 위해 천하 네 곳에 큰 조직을 만들었다. 바로 천하사문이었다.

흑운문은 천하사문의 하나다.

흑운문 산하의 병사는 매우 잔혹했고, 여자나 어린아이를 다룰 때도 인정을 두지 않았다.

“원하면 설명해줄까요?”

여자가 묻자 병사가 허리의 검은 다시 튕기며 피식 웃었다.

“필요 없다. 본단으로 가자. 그곳에 가면 모두들, 매우 빨리 필요한 것을 털어 놓으니까.”

병사가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특히 너 같은 여자가 되도록 늦게 입을 열면 우리는 모두 즐거워진다. 하하하.”

흑운문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흑운문에 잡혀갔다가 나오면 남자는 모두 폐인이 되고, 여자는 대부분 자살했다.

흑운문 안에서 당했던 수치와 치욕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병사는 검을 돌려주었다.

방울 달린 검을 받아서 소중히 쥐는 여인을 보며, 병사는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가자.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매우 많다.”

여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쪽은 이름이 뭐죠?”

“한성곤. 이제 곧 너는 나를 성곤님이라 부르게 될 게다.”

“좋아요. 성곤. 아무래도 나는 설명할 수밖에 없겠네요.”

“설명할 필요 없다니까.”

“이 검은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니라 살리는 검이에요.”

“살린다고? 어떻게?”

여인이 검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맑은 방울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깨닫게 돼요. 아, 방울은 저기에 매달면 되는구나.”

- 거기에 방울을 달면 되나요?

구경꾼들 사이에서 맨발의 소녀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딸랑 딸랑 딸랑.

소녀는 손에 방울 하나를 들고 있었다.

소녀가 든 방울은 쉬지 않고 계속 울었다.

소녀의 왼쪽 다리가 불편해서 절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냐, 꼬마?”

한성곤이 물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여인의 앞까지 걸었다.

걸음이 멈추자, 소녀가 든 방울도 비로소 울음을 멈추었다.

소녀가 여인을 보며 물었다.

“방울은 여기에 매달면 되는 거지요, 언니?”

여인이 검을 내밀었다.

“맞다. 이름이 뭐니?”

“정아예요. 양선정이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정아라 불렀어요.”

“그래, 정아. 천천히 매달렴. 오느라 수고 많았다.”

정아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방울을 달았다.

두 개의 방울이 달린 검을 여인이 흔들자, 더욱 크고 맑은 방울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한성곤이 허리의 검을 뽑았다.

“너의 검이 사람을 어떻게 살리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의 이 검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확실하게 보여 주마, 계집들아!”

여인이 한숨을 쉬었다.

“흑운문 소속인 거죠?”

“그렇다. 나, 성곤은 흑운문 안에서도 가장 사람을 잘 죽인다. 어린 계집애는 특히 잘 죽이지.”

한성곤이 검을 휘두르려는 바로 그 찰나에, 굵은 목소리 하나가 그를 불렀다.

- 그 손을 멈추지 않으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목소리에 담긴 힘은 강하면서 동시에 압도적이었다.

놀란 한성곤은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어, 어떤 놈이 감히 흑운문 소속 병사의 일을 빙해하느냐?”

한성곤의 앞으로 머리도 희고 수염도 흰 노인이 걸어 나왔다.

한성곤은 숨이 멎도록 놀라, 황급히 검을 아래로 내렸다.

“우, 우 도독님!”

전 우도독 냉겸!

홀연 사직서를 내고 초야로 사라졌던, 금군의 제일인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냉겸은 한성곤과 맞은편의 여인, 그리고 정아라는 소녀를 번갈아 본 후에 한숨을 쉬었다.

“생명이란 귀한 것이다.”

한성곤이 발끈했다.

“하지만 저 여자는 검을 갖고 있습니다. 무림인이 틀림없어요. 황명에 따라 흑운문은 모든 무림인을 추포할 권한이 있습니다.”

“당장 물러 나거라!”

“우도독님은 이미 관을 떠났잖습니까?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권한은 어디에도….”

“가라는데도!”

냉겸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한성곤은 한 마리의 거대한 호랑이가 울부짖는 환영을 보았다.

놀란 한성곤이 손에 힘을 잃고 검을 떨어뜨렸다.

“아, 알겠습니다. 가, 가긴 하지만 오늘의 일은 분명히 상부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한성곤이 달려갔다.

냉겸은 여인을 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이 정도로 용서해주시오. 다시 말하지만 생명은 어쨌거나 소중한 것이 아니겠소?”

여인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본래는 목을 베려 했어요. 하지만 우도독이 말씀하시니….”

그녀가 발을 굴렸다.

바닥에는 한성곤이 떨어뜨린 검이 있었고, 여인의 발끝에 바로 그 검이 살짝 닿았다.

“가져가야지, 성곤!”

쐐액!

그저 슬쩍 닿았을 뿐이건만, 검은 파공음을 뿜어내며 한성곤을 향해 날아갔다.

“헉!”

놀란 한성곤이 몸을 돌려 날아오는 검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검에 실린 힘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스-컥!

검은 한성곤의 손목을 자르고도 힘이 남아, 백여 장 떨어진 아름드리까지 날아가서 깊이 꽂혔다.

검 끝이 부르르 떨릴 때, 한성곤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내 손! 내 손!”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손만으로 만족할게요.”

냉겸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봐 달라고 이미 말했는데! 너무 잔인하시구려.”

“본래는 이렇지는 않았어요. 왜 이렇게 변했는지는, 냉겸 장군이라면 충분히 아시잖아요?”

냉겸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여인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었소.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사람이 검에 방울을 바치면, 검령이 생명을 구해준다는 소문! 계속 찾아다녔소.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됐구려.”

여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양선정을 안아 들더니, 물었다.

“네 사연은 뭐니? 누구의 생명을 구하기를 원하니, 정아?”

“부모님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금 흑운문의 감옥 안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냉겸은 여인에게 무엇인가 더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양선정을 안은 여인의 몸은 허공에서 꺼지듯 사라졌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크으윽!”

한성곤은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손목을 부여잡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냉겸 장군. 당신이 무림인의 편을 들다니! 보고할 거요.”

냉겸이 다가가서 한성곤의 손목을 지혈했다.

한성곤은 냉겸이 자신을 구했음에도 계속 소리를 질렀다.

“황명을 어긴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될 거요!”

냉겸은 대꾸하지 않고 한성곤에게 물었다.

“지금 흑운문에 혹시 양 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갇혀 있느냐?”

“흐흥! 냉겸 장군. 설마 양거창을 구하려고 온 거였소?”

냉겸의 안색이 변했다.

“양거창? 양 씨 창문 가주?”

내공을 실은 냉겸의 고함이 한성곤의 고막을 찢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오랑캐와 싸우는 일에 삼대가 목숨을 바쳐 충렬제일이라 불리는 양가장의 양거창을, 감히 흑운문이 가두어두고 있단 말이냐-?”

**

여인은 날듯이 허공을 달렸다.

양선정은 그녀에게 안긴 자신의 몸도 허공을 날고 있음을 느끼곤 무서워 눈을 꼭 감았다.

“부모님은 갇히셨는데, 너는 어떻게 탈출했느냐?”

“어머니가 절 침상 아래에 숨겼어요. 절대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셨죠. 검에 찔려 쓰러진 유모의 피가 침상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데도 입을 막고 있었어요.”

양선정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게 연락하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주었지?”

“어떤 아저씨요. 아주 잘 생겼어요. 이름은 몰라요.”

“무림인, 이더냐?”

“아뇨. 아버지랑 어머니가 무림인이었기에 저도 아는데…”

양선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아저씬 좀 달랐어요. 그냥 서 있는데,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고, 신기했어요.”

“좀 더 자세히 말해주겠니?”

“세 달쯤 되었나? 갑자기 나타나서 제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어요. 감당하기 힘든 큰일이 생기면 마을 어귀에 검 한 자루와 방울 하나를 그려라. 그럼 누군가가 너를 찾아올 거다. 그리고 나서 또 갑자기 사라졌고요.”

여인의 두 눈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물들었다.

“성공한 건가요? 살아…나신 거 맞죠? 이제는 미래까지 보게 된 건가요? 아니라면…?”

양선정은 어렸지만 여자였다.

여자는 타인의 마음을 남자보다 훨씬 더 잘 알아차린다.

“아시는 분이세요?”

“사랑하는 남자다.”

“아! 그럼 언니가 바로 교교. 달빛이 교교하다고 할 때의 그 교교! 맞아죠?”

“그가 내 얘기를 했니?”

“했어요. 아저씨가 말하길, 자신은 교교한 빛을 사랑한다고.”

은교교가 달리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언니의 얘기를 잠시 해 줄까? 흑운문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 얘기를 잠시 들어보겠니?”

**

사도명은 스무 명으로부터 이십 갑자의 내공을 흡수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공이 강해져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절반 이상 넘었다.

[내공이 필요한 이유는, 천자결을 시전하기 위해서요.]

사도명은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혜광심어로 설명했다.

[검형으로 남길 글자는 환(幻)! 지금부터 일백이십만 명 모두에게 환상을 보여줄 거요.]

사도명은 무림맹 맹도들에게, 모두 비수로 자신의 손바닥을 베어 피를 바닥에 흘리도록 시켰다.

[피가 흩뿌려져 있다면, 더욱 실감날 테니까.]

무림맹 맹도들은 사도명이 금군에게 환영을 보여주는 사이에 아무도 모르게 달아났다.

사도명은 혼자 남아 황제에게 전하는 전갈을 알렸다.

“지켜보다가 약속한 세상이 아니면 나타날 거라고. 검과 방울. 검령의 소리가 들리면, 내가 나타난 줄 알라고 전해라.”

모든 이들이 다시 모인 것은 다음날 깊은 밤, 숭산에서 백여 리 떨어진 장소였다.

이십갑자 내공을 소진하며 무리를 한 사도명의 목숨은 마침내 경각에 달해 있었다.

[나는 죽을 운명이며, 이 운명을 되돌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

사도명은 다시 혜광심어로 말하며, 마지막 희망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아는 장소가 있다더군. 황천법문!]

황천법문은 무림 육객 중 생사객의 출신지이다.

또한 고금구천강 중의 한 명을 탄생시켰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긴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곳이잖아요.”

[존재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자강과 단둘이 간다.]

“싫어요. 나랑 가야 해.”

반발하는 은교교의 머릿속에 사도명의 전음이 다시 울렸다.

[그럴 순 없지. 멋진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야 하잖아. 그리고 난 멋진 남자거든.]

전음인데도, 사도명의 목소리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자강과 갈 거야. 당신은 남아야지. 그래야 당신 보고 싶어서라도 나, 열심히 돌아올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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