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02화 (102/168)

102화. 누가 납득 따위를

“하하하. 푸하하하.”

자신의 죽음을 느끼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황제는 분명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금군이 사용하는 검은 청강검으로 수백 번 정련해서 만든다.

날카로우며 지극히 강하다.

사도명이 찌른 청강검은 황제의 복부를 깊이 찌르고 들어갔다.

황제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이상이 절실했고 또한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아무도 돌아갈 수 없다. 운명을 돌이킬 방법은 누구에게도 없다.”

황제의 말에 도광효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모실 수 있어 광영이었습니다, 황상. 이내 따라가서 다시 모시겠습니다.”

사도명이 고함을 질렀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소?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무림을 없애야만 하오?”

“짐은 강하다. 하지만 짐의 자식은, 그 자식의 자식은 어떨까? 이처럼 쉽게 짐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너희 무림인들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그들도 강할까?”

황제가 사도명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공평하지 않으냐? 조카를 희생해 황위를 차지한 짐이, 스스로를 희생해 황위를 지킨다는 건!”

사도명은 황제를 깊이 찌르고 있는 청강검을 보았다.

검을 뽑으면, 피가 치솟을 것이고 출혈로 인해 황제는 이내 죽게 될 것이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요? 어떻게 살아왔기에 타인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마저 이처럼 쉽게 죽일 수 있는 거요?”

“보겠느냐?”

황제의 눈이 사도명을 똑바로 향했다.

“마음을 읽는 재주가 있지? 막지 않으마. 마음껏 보거라.”

**

사도명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스물세 조각으로 찢겨 바닥에 흩어져 있는 시체였다.

살인자는 지금의 황제.

죽은 사람은 전대의 적마교주 적광요였다.

찰랑거리는 핏물에 비치는 황제의 얼굴이 젊었다.

오래전의 일이었다.

“이 녀석의 자리는 네가 대신 맡아라, 혁담.”

마찬가지로 젊은 혁담이 무장 특유의 차렷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존명!”

“나는 언젠가 황제가 된다. 황제가 되면 영원히 이어질 권좌를 완성할 것이다. 그때에, 이런 사악한 무리는 방해가 될 테지.”

젊은 황제는 적마교 교주 방의 여러 가지 비급과 쓸 만한 물건들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하오나 왕께서 황제가 되시려 한다면….”

“조카 말이냐?”

젊은 황제가 웃었다.

“큰일을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 나의 어린 조카는 그 점을 모르니, 숙부로서 잘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장면이 바뀌었다.

구옥화가 황제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입지 않았고, 황제도 벌거벗은 채였다.

열락의 시간이 지난 후, 구옥화가 황제의 가슴을 베고 말했다.

“당신은 꿈이 크군요.”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내 진짜 꿈이 얼마나 큰지를 알면, 너는 깜짝 놀랄 것이다.”

“지금 놀라게 해주신다면, 말씀하신 대로 심마문은 황제의 말에 복종할게요.”

“꿈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모든 것? 어디까지요?”

구옥화의 반짝거리는 눈에 비치는 젊은 황제가 활짝 웃었다.

“나의 목숨까지! 심지어 나의 명예까지! 어떠냐?”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약간은 나이가 든 황제가 부들거리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의 건녕제.

사도명은 산발 괴인이 되기 전의 건녕제를 황제의 마음속에서 읽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숙부. 숙부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황상 또한 모르시는 게 있지요. 그 모르시는 것을 지금 가르쳐 드리고 있습니다.”

“연기가 보이지 않아도 불은 피어납니다. 숙부! 제발 여기서 멈추십시오.”

“멈추지 않으면? 황상의 그 작은 손으로 이 숙부를 해치기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덕문이를 잡아 놓고 있습니다. 그 녀석이 피 흘리며 죽는 모습을, 설마 보고 싶으신 것은 아닐 테지요, 조카?”

콰-앙!

옆의 벽이 부서지며, 한눈에도 강건해 보이는 사십대의 무장이 달려왔다.

무장을 검을 휘둘러 황제를 밀어내고, 건녕제를 안고 달아났다.

“진소추! 결국은 네놈이 가장 큰 방해가 될 줄 알았지.”

황제의 마음이, 건녕제를 구한 무장을 어림위장 진소추라 부르는 것을 사도명은 들었다.

지금보다 젊은 도광효가 황제의 옆에 나타나 고개 숙였다.

“염려마소서, 황상. 환관을 모두 포섭했으니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아직 황제가 아니다.”

“곧 황제가 되셔서, 황실의 힘을 천 년 만 년 이어갈 반석에 올리실 것이잖습니까?”

“후회하지 않겠느냐?”

황제가 물었다.

“학사 도광효! 방유 대학사에게도 비견되던 너의 이름은 이제 시궁창에 처박혀, 썩어 냄새나는 것으로 변할 것이다.”

“지금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얻겠습니다.”

“새로운 이름?”

“황상께서 내려주십시오.”

“…도연으로 하자. 적어도 내겐 이제부터 너는 도연이다.”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

도광효가 웃었다.

“가장 사악하고 악독한 자로 천하에 기억되기 바랍니다. 그 악취 나는 시궁창 위에서, 황상의 큰 꿈이 연꽃으로 피어나시길.”

황제는 혼자 울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은 가족의, 형제의, 친구의 시신을 보며 혼자 울었다.

사도명은 황제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많은 울음을 보았다.

여러 장소에서 여러 모습으로 황제는 계속 울었지만, 언제나 혼자라는 것만은 같았다.

황제가 이윽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듯, 사도명을 돌아보았다.

“이런 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있겠느냐?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도 보여주마. 짐이 이런 마음이 되었던, 그 날의 일을, 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

꽈-앙!

사도명은 둔탁한 충격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황제의 마음을 읽다가 깨어난 그에게 연자강이 고함을 질렀다.

“뭘 멍청이 있어? 달아나!”

“자강!”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너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다고. 은 소저는 같이 데려갈 수 있지? 뒤는 우리가 막는다. 나와 소혜가 뒤를 맡을 테니까 어서 도망쳐.”

곽소혜가 양손 도합 열 개의 손가락마다에 진사를 걸고 비침을 발사했다.

날아간 비침이 주변 열 명의 금군에게 꽂혔다.

비침에 맞은 금군들은 곽소혜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그녀와 연자강의 주변을 보호했다.

“우리 걱정은 마세요, 무제. 황제가 무력화됐으니 무제와 은 소저가 달아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습니다.”

사도명이 황제를 보았다.

“나으리가 보여주려던 마지막 생각을 보지 못한 채 깨었소. 그 생각을 봐 주는 대가로, 내 친구들을 밖으로 나가게 해 주시오.”

“푸하하. 짐을 찔러 놓고도, 감히 거래를 하겠다?”

“청강검은 충분히 깊이 들어갔소. 하지만 결정적인 급소를 피한 데다가, 나으리는 제왕검형까지 익힌 몸이잖소.”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나으리는 아직 죽기 어렵소. 내가 검을 다시 뽑아, 심장을 한 번 더 찌르지 않으면.”

황제가 터무니없다는 표정으로 사도명을 보았다.

“너처럼 어이없는 녀석을 짐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나으리처럼 어이없는 사람 또한 결코 흔하지는 않소.”

“푸하하. 짐을 죽여준다는 것으로 짐을 위협한다는 건가?”

황제가 고개를 돌려 도광효를 보았다.

“저자들을 보내줘라.”

“존명. 하오나 잠시 더 산다고 하여 의미는 없을 겁니다. 무림 자체를 없앨 것이니, 저자들 또한 이내 죽을 것입니다.”

도광효가 금군과 어림위, 그리고 그 뒤를 다시 포위한 삼대마문의 제자들을 향해 외쳤다.

“포위를 풀어라.”

혁담의 그의 말을 받았다.

“포위를 풀어라.”

혁담은 정일품의 좌도독이면서도 도광효의 말에 따랐다.

구옥화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황상의 명이시다. 포위를 풀고, 난입한 무림인들을 밖으로 나가게 해 주어라.”

연자강이 사도명을 보았다.

“도명!”

“먼저 나가. 나는 황제를 죽여주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켜야만 하지. 어서 나가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황제가 연자강의 말을 끊으며 웃었다.

“하하하. 짐을 완전히 죽이지 않는다 해도, 이미 한 차례 찌른 대역죄인! 사도명은 죽어서야 황궁을 떠날 수 있을 뿐이다.”

연자강의 귀에 사도명의 전음이 울렸다.

[어서 가. 황제의 말처럼 나는 죽어서야 여길 나갈 수 있어.]

사도명은 은교교와 곽소혜의 귀에도, 같은 전음을 보냈다.

[그러니 먼저 나가. 거기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구해 줘.]

연자강이 잠시 사도명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몸을 돌렸다.

그가 은교교와 곽소혜를 데려가고, 그런 세 사람의 뒤를 조화결사대가 따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도명은 다시 황제를 보았다.

“책임감이 강하구나, 사도명. 짐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사도명이 황제를 응시했다.

“다시 시작합시다. 나으리가 왜 스스로 죽고자 하는지! 왜 굳이 내게 나으리의 과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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