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파국(破局)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는 각각의 색채를 갖고 있다.
동쪽에 청룡이 사니 청색!
서쪽은 백호가 거하니 흰색.
남쪽은 주작의 영역이니 붉은색이며, 북쪽은 현무의 땅이라 흑색을 그 상징으로 삼는다.
황궁의 성문은 동서남북 모두에 있었다.
때문에 각각의 성문을 지키는 금군은 자신의 방향색을 견장에 수실로 달고 있었다.
보고를 하겠다며 달려온 금군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청백적흑, 네 개의 수실을 각각 모두 매달고 있었다.
“빠르게, 상세히 보고하라.”
도광효가 외치자 청색의 수실을 단 금군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의 무림인들이 동문으로 침입했습니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젊은 검수로 스스로를 연자강이라 밝혔습니다.”
흰색 수실을 매단 금군이 고개를 조아렸다.
“서문에서 아룁니다. 마공을 쓰는 여고수가 나타났습니다. 적암마계의 무공을 쓰고 있어, 지옥문의 문하인지 확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적색 수실을 단 금군은 이미 어깨를 다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남문 상황입니다. 비침을 쓰는 여고수가 출현했습니다. 아군의 고수를 조종, 아군을 공격합니다. 속수무책입니다.”
백색 수실을 단, 새로운 금군 한 명이 중간에 달려왔다.
“서문에서 다시 아룁니다. 적암마계의 무공을 쓰는 여자가 적군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금군들이 대응하고 있으나, 모든 고수들이 내궁으로 들어갔기에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검은색의 수실을 단 금군은 가장 마지막에 보고했다.
“북문입니다. 수백 명 무림인들이 난입했습니다. 저마다 놀랍도록 강합니다. 특히 외팔이와 곱상한 인상의 두 고수는 살인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남문의 금군이 덧붙였다.
“아무래도 정파의 고수가 아니라 흑도 출신으로 보입니다.”
도광효는 얼굴에 핏기를 모두 잃은 채로 황제를 보았다.
황제의 표정은 그와 달랐다.
흥분하여 벌겋게 달아오른 황제의 얼굴이 표현하는 것은 적어도 노여움은 아니었다.
“항상 뜻밖의 일이 생긴다. 세상은 절대로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 그 예측이 누구의 것이건 상관없이!”
사도명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원하지 않았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의 오른손에 두 줄기 황금색의 빛이 솟아서 서로 똬리를 틀며 뒤엉키기 시작했다.
황제는 사도명으로부터 백여 장 거리에 있었다.
그들 사이를 막아야 하는 금군과 어림위는 모두 겁을 먹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일 초면 될 터였다.
한 호흡만 사용하면, 사도명은 백 장을 뛰어넘어 황제의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제왕검형의 마지막 제삼결 제왕결이냐?”
황제가 물었다.
사도명의 오른손, 두 갈래 금빛은 각각 용과 봉황의 형상을 이루며 서로의 몸을 타고 돌았다.
전국 옥새의 위에 새겨져 있는 문양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으리.”
“누가 주더냐?”
“원의 마지막 황태자가 전했소.”
“용과 봉황의 뜻을 아느냐?”
“음양을 뜻하고, 또한 서로 다른 것의 조화를 뜻하오.”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맞다. 하지만 나는 조화로울 생각이 없다. 네가 날 죽이지 못한다면, 나는 무림을 숫제 말살시켜 버릴 것이다.”
사도명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나으리는 죽지 않을 기회가 있는데도 왜 굳이 그리 말하오?”
“너는 날 죽일 기회가 있는데도, 왜 굳이 말이 긴 게냐?”
사도명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군과 황군을 합한 숫자는 너무 많아서, 한눈으로 전체를 보기조차 어려웠다.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두려운 거구나. 설사 나를 죽여도, 이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우냐?”
“두렵다면 왜 혼자 왔겠소?”
“그럼 다른 것이 두렵구나. 혼자 왔는데도, 저들이 기어코 너를 따라와서. 내 말이 맞나?”
사방 성문을 지키던 금군의 전갈이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네 방향에서 네 갈래의 집단이 나타났다.
동쪽에서 연자강이 왔으며, 서쪽에서 은교교가 왔다.
남쪽에서 곽소혜가 나타났다.
그리고 북쪽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집단은 왕삼과 도언직이 이끄는 조화결사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했다.
일반의 군사인 금군과 황군이 막을 수 있는 고수가 아니었다.
연자강이 사도명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일로종횡은 길고 먼 길이다. 먼 길을 쉽게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나, 망할 놈아?”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내쉰 후에 대답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
좋은 사람과 있다고 해서 험한 길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즐겁게 걸어갈 수는 있는 것이다.
연자강이 걸어왔다.
몇몇의 금군이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의 앞을 막았으나, 연자강은 오른손을 휘둘러 그들의 검을 세 조각으로 부수고, 각각의 가슴 옷에 구멍을 뚫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전의를 상실한 금군은 결국 연자강을 막지 않고 물러섰다.
연자강은 무인지경인 듯한 길을 걸어 사도명의 앞에 섰다.
“알면서 혼자 가려 해? 우리를 두고 혼자서 간다고?”
사도명의 왼쪽에 은교교가 나타나더니 방긋 웃었다.
“나, 지금은 웃지만 나중에 단둘이 되면 각오하세요. 오늘의 잘못은 반드시 야단칠 테니까.”
세 명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사이, 곽소혜는 사도명보다 황제를 먼저 보았다.
그녀는 극락문의 서왕모였기에, 어기 전혼으로 황제를 만났었다.
“귀하는….”
곽소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명이 아니군요. 누구죠? 누군데 지옥문주의 흉내를 내죠?”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자신 또한 느꼈던 것을 곽소혜가 확인시켜주자, 사도명은 마침내 확신했다.
“영무자가 있소.”
“영무자?”
은교교가 묻자, 사도명은 설명해 주었다.
“그림자. 같은 얼굴과 같은 체형을 지닌 가짜.”
사도명은 황제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지옥문주 태명은 한 명이 아닐 거요. 그리고 저기에 있는 황제는, 우리가 알았던 태명은 아닌 거지. 내 말은 그러니까….”
사도명은 자신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황제를 죽이러 왔고, 당신들은 나를 따라왔지만, 그 모든 걸 원했던 사람은 우리들뿐만이 아니었던 거지.”
연자강의 눈이 커지고, 은교교는 미간을 찡그렸다.
곽소혜가 입술을 깨물자, 왕삼과 도언직은 영문을 알지 못해서 다급히 물었다.
“무제는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곽소혜가 앞을 가리켰다.
이때까지 떨고만 있던 도광효가 갑자기 몸을 세웠다.
그의 눈빛에 더 이상은 두려움이나 당황이 담겨 있지 않았다.
황제도 계속 미소짓고 있었다.
왕삼과 도언직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서, 설마….”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 자체가 함정이라고요? 우리가 황제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황제가 우릴 유인한 것이란 말입니까?”
“하하하. 푸하하하.”
황제가 껄껄 웃었다.
“짐은 천하를 평안케 만들기 위해 위해 조카를 해쳤다. 내 형제와 핏줄들, 짐이 죽인 자는 대체 얼마나 많단 말인가?”
“황상!”
도광효가 황제를 보았다.
“그 많은 희생을 일으켜놓고, 스스로의 희생만은 거부한다면 타당한가? 일국의 황제란 자가 낯 뜨겁게 졸렬하지 않겠느냐?”
도광효의 눈이 커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지만, 결국 눈물이 글썽글썽 고였다가 그의 뺨으로 줄줄이 떨어져 내렸다.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두운 길이었지만, 이제야 겨우 끝이 보이는군요, 황상.”
황제가 도광효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완성시키자.”
“네. 완성시키겠습니다.”
도광효가 몸을 돌려 사도명을 보았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와라. 와서 당장 나와 황상을 죽여라.”
사도명은 연자강, 은교교, 그리고 곽소혜를 보았다.
“모두 들었지? 수십만 금군이 지켜보는 앞이다. 우리는 황제를 죽인 무림인이 되고, 세상은 무림과 황실을 양립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지켜보는 금군들까지 모두 죽이지 않는 한, 우리는 이 함정을 벗어날 수 없다.”
연자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지 말아야 했단 거냐?”
“건녕제는 반드시 혼자 오라고 했었지. 나 혼자면 함정에 빠져도 된다 생각했던 거야.”
연자강이 물었다.
“자네 혼자라면 달아날 수 있다 여겼다는 뜻인가?”
“그럴 수 있으라고, 나에게 제왕검형 천자결을 전했으니까.”
왕삼이 소리쳤다.
“황제의 함정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달아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도망치면 될 것이지 않습니까?”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너무 많아.”
그는 왕삼을 향해 되물었다.
“너는 여기가 황궁이면서 동시에 지옥문이란 걸 기억하느냐?”
“예? 물론 기억합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금군을 많이 만났지? 하지만 지옥문의 무사들은 대체 얼마나 만났느냐?”
왕삼의 눈이 커졌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나가는 길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터였다.
“그, 그럼 이 주변은 이미?”
왕삼과 도언직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 곳곳에서 끔찍한 마기를 흘리는 고수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었다.
연자강은 한때 지옥문의 외곽인 극락문의 문주를 맡았었다.
나타나는 마두들이 누구인지, 연자강은 잘 알고 있었다.
그중 왼쪽의 한 명과 오른쪽의 한 명이, 누구보다 선명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연자강이 핏빛처럼 붉은 무복을 걸친 왼쪽의 중년인을 가리켰다.
“적마교주 혁담!”
황제가 그의 소개를 다시 했다.
“혁담은 좌도독으로 나라 군사의 절반을 맡고 있지. 본래의 적마교주는 오래전에 죽었다.”
혁담이 황제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생각나는군. 그 밤.”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내 손으로 적마교주를 죽이고 적마교의 모든 것을 얻었지. 그 밤에 짐은 새로운 시대의 건설을 꿈꾸기 시작했다.”
연자강은 오른쪽에 있는, 연두색 하늘거리는 옷을 걸친 중년의 미부도 알고 있었다.
“심마문주 구옥화.”
“지금은 내궁 전체의 관리를 맡고 있지만, 구옥화는 처음부터 심마문의 출신이다. 짐의 이상을 설명 듣자 기꺼이 협조하겠노라 약조해 주었다.”
구옥화도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나타났다.
모두 적마교와 심마문에 속하는, 하나같이 강한 고수들이었다.
왕삼과 도언직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들의 포위망에서 달아날 수 없음을 절감했다.
“하지만 무제나 대장님, 그리고 은령신녀와 사모님은 벗어나실 수 있지 않습니까?”
혁담과 구옥화는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고수였다.
하지만 연자강, 은교교, 곽소혜라면 상대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저들만이라면 달아날 수 있지. 하지만 이곳에는 저들보다 한층 뛰어난 고수가 있다.”
“네? 그게 누구… 헉.”
사도명에게 묻던 왕삼의 눈이 극도의 경악으로 커졌다.
먼 곳, 용상에 앉아 있던 황제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라진다 싶더니 곧바로 왕삼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무, 무공을 알고 있다는 거요, 황제?”
왕삼이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천왕권의 강력한 힘이 일어나며, 황제의 얼굴을 노렸다.
“감히!”
다음 순간, 왕삼은 거대한 봉황이 수백 개의 날개를 자신의 앞에서 활짝 펴는 환상을 보았다.
“왕삼! 위험하다!”
연자강의 고함이 아득한 거리에서 들려왔다.
콰콰콰-콰쾅!
수십 개의 이어지는 폭음!
왕삼은 머릿속에서 수 없는 종소리를 들으며 뒤로 날려갔다.
연자강이 없었더라면, 그는 오른팔이 찢기고 온몸이 박살나서 죽었을 것이다.
연자강은 천극멸을 전개하고도 황제의 파멸봉황강을 견뎌내지 못해, 두 발로 바닥에 긴 고랑을 그리면서 밀려났다.
“젠장.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너무 악독한 것이 아니오, 가짜 황제 나으리?”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너는 가짜 극락문주였지만, 나는 진짜다. 내가 있는 한 누구도 여기에서 달아나지 못한다.”
사도명은 결국 마지막으로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결국은 파국인 건가?”
사도명은 자신으로부터 십 장 거리에 서 있는 금군의 검을 오른손으로 가리켰다.
흡인력이 일어나 사도명의 손에 검이 들어갔다.
사도명은 그 기세를 그대로 빌어 허공을 날았다.
사도명의 손에 들린 금군의 검이 황제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푸하하하하!”
황제가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