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00화 (100/168)

100화. 제지극한 분노

날이 밝았다.

전각을 옮겨 다니던 불은 마침내 꺼졌다.

황실에 불이 났고 그것이 전 무림맹주 사도명이 짓이라는 소식은 천하에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그리고 무림 자체를 없애려는 황제의 의지에 명분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황제의 의지는 확고했다.

“무림은 극락문의 통치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극락문은 무림을 통제했겠지만, 최소한의 선에서 남겨 놓았을 것이다.”

황제가 지옥문의 문주로서 천하에 선언한 말은, 아직도 세상에 깊은 공포를 선사하고 있었다.

“너희가 극락문을 지옥문으로 바꾸었다. 이런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나을지, 너희는 곧 실감하게 될 것이다.”

팔십만의 군사가 무림맹을 없애려, 소림사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다가 간밤에 황제의 명령에 의해 행보를 바꾸었다.

자금성의 앞마당.

그곳에 뿌연 강기의 보호막, 군림옥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사도명이 서 있었다.

대제국의 모든 힘이 그 한 사람을 둘러싸고 모였다.

황제는 임시로 가져온 용상에 앉아, 사도명을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은 채로 보고 있었다.

그는 밤을 꼬박 샜다.

하지만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수한 군병들이 군림옥을 공격해 보았지만 모두 무위로 끝났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면 날이 빠졌고, 철시는 중간에 막혔으며, 주먹으로 때리면 뼈가 부러졌다.

도광효가 황제를 향해 조심스레 권했다.

“들어가서 수면을 취하소서. 군림옥이 열두 시진 이어질 수 있다면 사도명이 방어의 강기를 풀고 나올 시각 역시 아직도 꽤 많이 남았습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 중이다.”

도광효가 급히 허리를 숙이면서 물었다.

“어떤 가능성 말입니까?”

“사도명은 늘 예상보다 빨랐었다. 오늘 밤 깊어서가 아니라, 만약 지금 당장 군림옥을 풀고 나온다면?”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내가 없으면 그가 무척 섭섭해하지 않겠느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섭섭했을 거요.”

황제와 도광효가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군림옥의 기운이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다.

도광효가 고함을 질렀다.

“철노대! 뭣하고 있는가?”

노(弩)는 팔의 힘이 아니라, 기계를 이용해 철화살을 연속적으로 발사하도록 만들어진 장치다.

도광효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삼천 명의 철노대가 일제히 사도명을 노리고 화살을 쏘았다.

쉬이이-이익!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수만 발의 철시가 허공을 메웠다.

사도명을 보호하던 군림옥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피할 장소도, 피할 방법도 없는 철화살의 인해전술!

사도명은 눈을 뜨자마자 허공에 보이는, 철화살의 해일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다행히 나으리가 내 옆에 계속 있어주어 섭섭지는 않군.”

사도명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장심에서 막강한 기운이 일어나며 날아오는 철화살을 허공에 멈추도록 만들었다.

푸푸푸푸푸푸푹!

사도명이 막지 않은 철화살은 땅에 깊이 박혔다.

“아직도 수만, 수십만 발의 철화살이 남아 있다.”

도광효가 소리쳤다.

“주변을 둘러 봐라, 사도명! 나라 전체의 힘이 너 하나를 없애려고 모였다. 보이느냐? 이것이 황제가 가지는 힘이다.”

사도명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어찌나 깊어졌는지, 눈빛이 흡사 늪과 같았다.

사도명은 동창위사와 금의위와 그 뒤의 십팔로 금군 모두를 빠르게, 남김없이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가 찾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사도명은 인질의 행방에 대해 물으려 하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죄수들 대신, 백여 개의 강철 인형이 사도명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쿵! 쿵! 쿠쿵! 쿠쿠쿵!

강철 인형의 발이 땅을 디디는 소리가 둔탁했다.

도광효가 전개하는 박혼제신의 대법이 그들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었다.

강철 인형은 백(魄)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심마문의 구혼술은 자신들이 죽이는 사람의 혼백을 분리해, 강철 인형에 담을 수 있다.

“나는….”

사도명이 차분히 말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무 깊은 분노는 오히려 차갑게 느껴진다.

도광효는 윗입술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고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만졌다.

코피였다.

사도명은 숫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뿜어낸 살기가 도광효의 코피를 터뜨린 것이다.

도광효는 정신없이 물러났다.

황제의 앞을 막으면서, 금의위를 향해 소리쳤다.

“황상! 위험합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을 죽여라.”

금의위장 마영창이 앞장서서 검을 쏘며 소리쳤다.

“황상을 지켜라. 금의위는 역도를 제거하라!”

쩌-엉!

마영창의 검이 부서졌다.

그는 날아가던 기세보다 더욱 빨리 뒤로 튕겨 나왔다.

“크흑!”

잘려서 떨어진, 마영창의 오른팔이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도광효가 고함을 질렀다.

“네가 황상을 해치려 든다면, 여기 모인 우리들 전부를 해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럴 생각이 있다.”

사도명의 온몸에서 뭉클거리는 살기가 숫제 눈에 보이는 강기로 변해서 피어났다.

“여기 모인 너희들 모두, 아니 나라의 절반을 죽여야 한다 해도 나는 오늘 황제를 죽인다.”

“하하하. 하하하하!”

황제가 마침내 다시 웃기 시작했다.

“피로가 풀렸느냐? 상처도 나은 거냐? 제대로 되었구나. 건녕이, 구패객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패배를 구했구나. 푸하하.”

어림위가 진법을 만들어 황제의 앞을 막았다.

황제의 모습이 뿌연 진법의 기운 뒤로 사라졌다.

금군이 다시 그런 어림위의 뒤를 포위했다.

하나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훈련된 모든 무력.

그 강대하고 공고한 힘이 사도명의 주변을 빽빽하게 감쌌다.

무림사는 이때의 싸움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

<일인전쟁!

전 무림맹주, 조화무제 사도명은 자금성에서 제국 전체의 무력과 전쟁을 벌였다.

황제를 격살하려는 사도명과 그런 사도명을 막으려는 군세들!

사도명이 전개한 무공은 무림맹 제일대 맹주 천무제 좌능후가 격세하여 전한 것이었다.

대대로 천하의 패권을 잡은 천자에게만 전해진 비공!

원나라 황실에도 전해졌던, 제왕검형의 완전한 형태였다.

조화무제를 보호하며 감쌌던 군림결은 그가 지닌 본연의 힘이 아니었다.

천무제가 남긴 힘이었다.

하지만 그날 조화무제의 손에서 최초로 구현된 힘은 달랐다.

그건 오롯이 조화무제의 힘, 세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제왕검형 제삼결 제왕결이었다.

천무제 좌능후의 본래 신분이 원나라 마지막 황태자 야율라후였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후의 일.

수십만 마리의 토끼와 한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조화무제의 일인전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아무도 막지 못했다.

아니, 누구도 감히 그 앞을 막아 서지 못하였다.>

**

“하하하. 이래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들을 좋아한다.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황제는 자신의 앞에서 빠르게 비켜서는 금의위의 위사들과 금군 병사를 보며 웃었다.

그들을 사도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앞을 열고 있었다.

모두 공포에 질린 것이다.

황제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다고 하나,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창 위사는 달랐다.

그들은 입술을 깨물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황제의 앞을 비켜서지 못했다.

도광효의 작품이었다.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고 두려워하는 것을 만들어, 생명까지 버리도록 이용하는 치밀함.

동창 위사는, 자신이 물러서면 스스로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을 잃는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절대로 배신하지 못하는 자들! 그런 백성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야말로 짐의 소망이다.”

도망가지 않은 존재는 동창 위사 외에도 있었다.

사도명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강철 인형들을 보았다.

사도명의 걸음이 멈추었다.

강철 인형에 깃든 백이 어떤 사람들의 것이었는지, 사도명은 알고 있었다.

“짐은 절대의 힘을 원한다. 짐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황제가 소리쳤다.

“배신하지 못하는 백성과 짐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군세만이 짐의 과업에 도움이 되다.”

사도명은 황제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강철 인형 하나하나를 둘러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들의 원한이 풀릴까?”

쿵! 쿵! 쿵! 쿵!

도광효의 조종을 받는 강철 인형들은 표정조차 없이 사도명의 앞으로 전진했다.

사도명은 차마 그들을 부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강철 인형들 중의 한 개가 부르르 몸을 떤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 강철 인형이 몸을 돌렸다.

도광효가 안색이 변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뭣 하는 거냐, 이놈? 왜 명령을 거부하느냐?”

사도명을 향해 가는 다른 강철 인형들과 달리, 한 개의 강철 인형이 몸을 돌리더니 도광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사도명은 무엇인가를 느꼈다.

‘혹시?’

혜광심어를 역천으로 시전하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혼이 아닌 백에게도 마음이 존재한다면….’

사도명은 도광효를 향해 달려가는 강철 인형의 마음에 접속했다.

“너 같은 놈 때문에 내가 죽는 것이다, 조화무제.”

강철 인형 안에서 우언봉의 마음이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힘을 가지고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너희 때문에!”

우언봉의 마음이 강철 인형의 주먹을 이용해 도광효의 얼굴을 쳤다.

쩌-엉!

도광효의 반격에 강철 인형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불량품이냐? 구혼술을 해제시킨다. 흩어져라, 혼백아.”

우언봉의 백이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최후의 순간까지 구언직의 마음은 사도명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힘이 있으면 사용해. 눈앞이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해 사용해!”

우언봉의 마음이 사라졌다.

날뛰던 강철 인형은 멈추었다.

부작용이 없는 강철용을 향해 도광효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조화무제를 죽여. 죽이지 못한다면, 너희가 죽어서라도 놈의 힘을 빼!”

강철 인형들이 달려들었다.

사도명은 마침내 모든 망설임을 떨칠 수 있었다.

우언봉의 마음이 곧 모든 죽어간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강철 조각 속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느니, 풀려나 해방되는 것이 혼백에게도 좋을 터였다.

사도명은 양손에 끌어올리는 내공을 극대화시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앞으로 걸어가는 사도명의 몸 주변으로, 강철 인형들의 파편이 과하게 익은 석류알처럼 터졌다.

“막을 자는 얼마든지 있다.”

도광효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내기할까? 제국 모든 군세가 죽는 것이 빠를지, 네가 지치는 게 빠를지, 조화무제?”

도광효는 겁을 먹고 사도명을 막지 못하는 군사들을 보았다.

“이해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지. 걱정하지 마라. 조화무제를 죽인 후, 너희도 저들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게 만들어 주마.”

군사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충성해야 하는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도광효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들이 황제가 살아남기를 빌어야 할지 사도명이 성공하기를 빌어야할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도명은 앞을 막는 모든 자들을 베었다.

모든 강철 인형을 부쉈다.

하지만 한 명을 베면 두 명이 막아섰고, 하나를 부수면 두 개가 더 다가왔다.

도광효는 달콤하게 웃었다.

“중과부적! 사도명. 너 혼자는 이들을 모두 상대하지 못한다. 너는 죽는다. 무림은, 머지 않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와아아아아아아-!

소란스런 환성이 멀리서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가장 바깥을 포위하고 있던 팔십만 금군의 포진 일부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누군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침입자가 생겼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도광효의 안색이 변했다.

놀라서 황제를 보자, 황제가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했다.

“예측하던 일만 벌어진다면 이 얼마나 따분한 세상일까? 그래, 누구냐? 어떤 놈들이 감히 금지된 성의 담장을 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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