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95화 (95/168)

095화. 역모의 밤

과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건녕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모두가 번왕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음을 염려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대하게 힘을 확장시키고 있는 ‘태’에 대한 경계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건녕제는 그 모든 청원을 거부했었다.

“당신이 황제였으니 막을 수 있었던 거잖소. 아니, 막아야만 했던 거잖소. 상소를 올린 사람 중에는 내 아버지도 있었소.”

“누, 누구였나?”

“정과 후자를 쓰셨소.”

“기억나네. 사정후 학사의 상소는 아직도 기억을 해. 하지만 그 내용대로 실천할 수는 없었네. 도광효가 계속 주장하여, 벼슬을 거두고 낙향하게 하였지.”

“왜 실천할 수가 없었소?”

“왜냐하면 나, 나는 차마… 차마 ….”

“차마 숙부를 해칠 수가 없었다는 거요?”

건녕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때도 이미 숙부는 덕문을 데리고 있었네. 내가 숙부를 쳤다면, 덕문까지 함께 목을 베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당신 동생 살리고, 당신 숙부 죽이지 않기 위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둔 거요?”

사도명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당신이 제대로 결심만 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도명은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건녕제를 붙잡았던 멱살을 놓아주고 말았다.

“그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던 거잖아. 당신은 황제였잖아.”

건녕제는 고개를 숙였다.

“자네의 말이 옳네. 짐은 황제가 될 재목이 아니었지. 황제의 자리는 숙부가 더 어울리네.”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소. 갑시다. 주문덕 속에 있는 망할 모충을 가서 태웁시다. 그럼 도광효를 죽여도, 당신이 방해하지 않게 되겠지.”

사도명은 더 이상 건녕제를 황제라 부르지 않았다.

어떤 자리건 그에 걸맞은 자질이 필요하다.

능력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권좌에 앉으면 백성이 고통을 받게 된다.

건녕제가 떨리는 눈빛으로 사도명을 보았다.

“도, 도와줄 겐가?”

“귀하는 제왕검형을 지녔음에도 황위를 빼앗겼소.”

“제왕검형은 숙부도 갖고 있네. 무공은 숙부가 뛰어났지.”

건녕제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숙부는 나보다 훨씬 더 황제로서의 일을 잘하고 있어. 솔직히 그 자리에 어울리는 건 내가 아니라 숙부가 맞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귀하는 빠지시오. 내기에 걸었던 약속만 지켜. 연기가 나지 않는 물이 대체 무엇인지, 그것만 설명하시오.”

**

그 밤!

그래 역모의 밤 말일세.

그날 밤엔 달이 없고, 별빛마저 구름 속에 숨었다네.

어림위장 단소추가 잠들어 있던 짐을 깨웠어.

“역모입니다, 폐하.”

무척 놀랐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것도 같아.

이미 많은 이들이 내게 상소를 올렸던 후니까.

그중에 자네의 아버지 사정후의 상소도 있었다 했지?

옳다 여겼고, 그 내용대로 실천해야 함도 알았어.

짐 역시 평소에 ‘태’숙부를 무척 두려워했으니까.

하지만 짐은 마음이 약했고, 실천하지 못했어.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지.

짐을 지키던 어림위사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네.

짐과 진소추는 황궁 가장 깊은 곳의 밀실에 숨었지.

도광효가 환관들을 모두 포섭해 놓았다네.

우리가 숨은 밀실을 들키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지.

진소추가 말하더군.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폐하. 방법이 있습니다.”

짐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네.

황실에만 전해오는 사대무공의 구결 모두를 외우고 있는 사람은 황실에서 나밖에 없었어.

하지만 제대로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기에, 내공은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

“내공을 급성장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제왕검형 천자결을 시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밀실 주변을, 수천 명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었네!

만근 거석과 한철로 보호되는 밀실도 곧 열릴 운명이었지.

짐은 은(隱)을 시전해 군사들과 숙부의 옆을 빠져나왔네.

소리죽여 울었지.

사람이 살기 위하여 타인의 죽음을 타고 넘어야 한다면, 그건 옳은 일일까, 그른 일일까?

짐에게 내공을 모두 건네고 먼지로 변해버린 진소추 어림위장은 짐의 속에서 계속 사는 것인가, 이미 영원히 죽은 것인가?

아무도 해치고 싶지 않다는 내 소망은 악한 것이었을까?

도광효는 자모충을 이용해서 내 동생의 목숨을 인질로 삼았네.

짐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때 대체 무엇이 있었겠나?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네.

바뀐 세상에서 희생당하는 내 충신들과 백성을 보며 생각했지.

대체 나는 어떻게 했어야, 이 모든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까?“

짐은 짐을 아네.

하늘이 무너져도, 짐은 숙부를 베고 동생을 죽이는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네.

천하를 떠돌았다네.

마음이 약한 짐을 대신하여 그 일을 할 수 있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테니까.

강한 사람을 찾았네.

숙부 또한 짐과 같이 제왕검형을 익히고 있으니, 제왕검형을 이겨낼 수 있을 사람을 찾았지.

구패객은 그렇게 탄생했어.

아흔아홉 번.

싸우며 패배를 구하고, 다시 싸우며 패배를 구하고!

수없이 싸웠으나, 패배는 구해지지 않았고, 나는 늘 실패만을 거듭 했었네.

그러다가 마침내 성공하였지.

자네는 나의 제왕검형을 깨뜨린 첫 번째 사람일세.

내가 남기는 의지를 극복하고 이렇게 황궁에 왔으니.

자아, 자네는 이미 죽었으나 죽지 않은 물고기를 보았네.

이제부터는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을 보도록 하세.

그 불이 태우고 있는 나뭇가지가 무엇인지를 보면, 내가 자네에게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걸세.

**

주덕문은 자고 있었다.

사도명과 건녕제는 주덕문이 자고 있는 침상의 좌우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이런 성격은 아니었네.”

주덕문은 듣지 못한다.

잠든 탓도 있지만, 건녕제와 사도명이 그들의 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아니었다? 그럼 본래는 어떤 성격이었습니까?”

“밝았네.”

건녕제가 한숨을 쉬었다.

“수많은 황실의 핏줄들이 모두 황위를 노렸지. 하지만 이 애만은 믿을 수 있었네. 덕문은 단 한 번도 황위를 욕심내지 않았어.”

사도명은 중산국 고분 아래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주덕문은 황제 모양을 한 옹기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더없이 즐거워했다.

‘그러한 자가, 황위를 욕심내지 않았다고?’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주덕문은 수백 개의 병마용보다 황제 인형 한 개가 부서진 것을 더 크게 슬퍼했었다.

“덕문은 나를 좋아했어. 내가 욕심이 없는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사도명은 굳이 건녕제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왜 변했습니까?”

“이 녀석은….”

건녕제가 한숨을 쉬었다.

“보고 만 거지. 친척이, 핏줄이, 사촌 동생과 형이 죽는 걸.”

“그래서 변했다고요?”

“피와 죽음을 보면 누구든 두려워하게 돼. 어떠한 실수라도 자신이 책임지면 죽을까봐 염려했고, 모든 공로를 자신이 가지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믿게 됐지.”

사도명은 왼손을 들어 축융지환을 건녕제에게 보여 주었다.

“추측은 멈추고, 현실을 시작합시다. 축융의 불은 모든 사마의 기운을 태웁니다.”

사마를 태우는 물은 자모충의 모충도 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도명의 오른손이 주덕문의 이마에 닿았다.

손길을 느낀 주덕문이 놀라서 눈을 떴다.

“두려워 마라, 덕문. 형이다. 지금부터 너의 몸속에 있는 모충을 태울 것이다.”

건녕제의 손이 주덕문의 아혈을 짚었다.

축융의 불이 일어나 주덕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신의 불이 몸 안을 태우는 고통에, 주덕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하지만 아혈이 짚여 있기에, 소리는 내지 못했다.

“축융의 불은 모충을 죽이고, 그 시체가 뿜는 독마저 함께 태울 겁니다. 주덕문을 구하고 나면 나는 곧장….”

사도명은 주덕문의 이마로부터 손바닥을 뗐다.

“도광효를 죽이고, 황제를 베러 갈 겁니다. 그 때는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할 겁니다.”

건녕제가 고개를 끄덕인 후, 주덕문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주덕문을 일으켜, 침상 위에 앉혔다.

“콜록. 콜록. 커헉!”

주덕문이 기침을 연달아 몇 번 하더니, 시꺼먼 핏덩이를 여러 개 토해냈다.

모충이 불탄 시체가 되어 죽은 피와 함께 나온 것이다.

“괜찮으냐? 아픈 곳은 없느냐? 아무 걱정하지 마라. 모충은 제거 되었다. 넌 괜찮다, 이제.”

주덕문이 건녕제를 보았다.

“살아 계셨군요, 형님.”

“살아 있었다. 내 걱정을 했었느냐? 나는 멀쩡하다.”

사도명은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았다.

건녕제가 원하는 일은 끝났다.

이제는 사도명이 원하는 일을 할 차례였다.

사도명은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사도명이 완전히 나간 후, 주덕문이 건녕제를 보며 다시 물었다.

“살아 있으면서도, 그토록 숨어다녀서 날 괴롭히신 게요?”

건녕제의 눈이 커졌다.

단순히 놀란 것이 아니라, 극도의 고통과 함께 눈끝이 찢어지도록 커졌다.

“너, 너는… 날….”

건녕제의 가슴 깊이 한 자루의 비수가 박혀 있었다.

주덕문이 평소 베게 아래에 넣어두던 비수였다.

독혈비(毒血匕)라 부르는 것으로, 날카로웠고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었다.

“도광효가 늘 말했습니다. 형님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날 찾아올 테니, 베갯머리 아래에 독혈비를 두고 자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요.”

“공? 큰 공이라고?”

“대업의 완성 말입니다.”

주덕문이 웃었다.

“전대의 황제가 살아 있다면, 어찌 대업이 완성되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건녕제는 웃지 못했다.

가슴에 박힌 독혈비가 전하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을 아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왜 자신의 가슴에 독혈비를 찔렀을까?

“내가 너에게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느냐?”

“황제로 태어나 황위를 지키지 못했잖소.”

건녕제의 눈이 커졌다.

주덕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황제의 아우일 때, 난 아무것도 욕심낼 필요가 없었소.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쫓겨난 황제의 아우는 이미 죽어간 다른 숙부들, 형제들처럼 언제 죽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잖냐고-!”

- 당연히 너와 같은 자는 지금 당장 죽여도 이상하지 않다.

목소리는 창밖에서 들렸다.

주덕문은 깜짝 놀라서, 창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가, 가지 않았느냐?”

사도명이 그곳에 서 있었다.

건녕제가 힘없이 말했다.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직 연기 없는 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까.”

창밖의 사도명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건녕제와 주덕문의 사이에서 나타났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금강부동신법이었다.

주덕문이 건녕제를 보았다.

“혀, 형님도 알고 있었소?”

“처음에 연기가 없기에 불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건녕제는 사도명을 보며 힘없이 말했다.

“숙부의 야망. 그래. 나만 사라지면 불은 꺼지고 천하의 모두가 행복하겠구나, 라고 믿었다.”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어리석게!”

“맞다. 짐이 어리석었다. 연기가 없음에도 불이더구나. 모든 것을 바꾸고, 태우더구나.

건녕제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서 주덕문의 목을 향했다.

“내가 끄지 않았던 불이, 이 아이마저 바꾸더구나.”

주덕문의 눈이 커졌다.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왕검형 중의 천자결!

그중 지(止)의 형이 펼쳐졌음을, 사도명은 알아보았다.

“천성이 선한 녀석이 아님을 안다. 그래도 내가 황제였다면 변하지 않았겠지? 내 동생은 이제 살아남고 싶어서 형을 죽이는 녀석으로 바뀌었다. 연기가 없어도 불이라는 것을, 내가 알아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건녕제는 울기 시작했다.

“끄으으!”

목이 졸린 주덕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혀, 형님! 목을 좀! 아, 아픕니다. 제 품에 해독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목 쫌… 크윽!”

“아니! 함께 죽자, 아우야. 조화무제여. 짐이 죽으면 몸이 독에 녹도록 두게. 그리고….”

건녕제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사도명을 보았다.

“짐이 차마 해치지 못한 나의 숙부, 황제를 없애 주게나. 그는 살아 있어선 아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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