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구패객(求敗客)
사도명은 뒷마당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불을 피운 채 생선을 굽고 있었다.
민물고기가 아니었다.
바다에서 나는 종어(宗魚)였다.
하북성은 바다가 멀다.
조금 먼 정도가 아니라, 까마득히 멀다.
그런데 그가 굽고 있는 종어는 신선할 뿐만 아니라, 숫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사내는 머리카락이 길고 무성하여, 얼굴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눈빛만이 초롱초롱했다.
사내가 생선을 굽는 나무에는 분명히 불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연기가 전혀 없었다.
붉은 불은 생선의 표면을 조금씩 구워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생선은 살아 있었다.
연기가 나지 않는 불.
구워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생선.
사도명이 물었다.
“그 불! 만져 봐도 됩니까?”
사내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생선을 굽던 나뭇가지를 사도명의 앞으로 내밀었다.
사도명은 붉은 불을 만지다가, 얼른 손을 뒤로 뺐다.
“…뜨겁군요.”
“불이 뜨겁지, 차갑겠소?”
“하지만 불이라면 왜 연기가 나지 않는 겁니까?”
사도명은 종어를 가리켰다.
“그 물고기는 또한 분명 구워지고 있는데 왜 여태껏 살아있는 겁니까?”
사내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산발된 머리카락을 옆으로 열었다.
맑은 눈과 우뚝한 콧날의 얼굴이 사도명의 시야에 드러났다.
“불은 반드시 연기를 뿜어야 하고, 구워진 생선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소?”
“그런 법은 없겠지만….”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귀하께서 굳이 제가 물어주기를 바라는 듯 보여서요.”
이번에는 사내의 눈이 이채가 스쳤다.
“바라는 듯 보였다?”
“평범하지 않은 일을 평범한 듯 보여주는 이유는, 그 모습을 이용해 굳이 제게 전할 말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내는 물끄러미 사도명을 보며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계속 말해 보시게.”
“불에 연기가 없듯 실상과는 달리 보이는 것이 있으며, 죽은 생선이 살아 있듯 죽었으나 산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까?”
사내의 눈이 커졌다.
그가 뿜어내던 기운이 사라지자, 가지의 불은 연기를 뿜었고, 종어는 부르르 떨더니 죽었다.
“과연! 과연이군.”
사내가 껄껄 웃었다.
그는 잘 구워진 생선의 한쪽 살을 발라내어 사도명에게 건네고, 다른 쪽의 살은 자신이 먹었다.
“먹게. 맛있다네. 생선 중의 최고이기에 이름조차 생선 중의 최고인 종어라 불리지 않나?”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생선은 맛있었다.
사도명은 사내가 건넨 종어를 한 점의 살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먹어 치웠다.
“종어는 민물에 살지 않습니다. 바닷고기를 밖으로 빼내어 살려둘 수 있는 시간은, 제 능력으로는 일다경도 안 될 겁니다.”
사도명은 사내의 머리카락 속, 맑은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귀하는 대체 얼마나 긴 기간 동안 생선을 살려두실 수 있습니까?”
“어릴 때, 어떤 어부에게서 생선을 기절시키는 법을 배웠지.”
“얼마나 오래 가능합니까?”
“열두 시진. 기절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 정확하게 하루를 살려둘 수 있다네.”
“가장 가까운 바다는 저의 신법으로도 꼬박 이틀이 걸립 겁니다. 귀하는 저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군요.”
“연기 없는 불은 존재할 수 없네. 하지만 피어오르는 순간에 모든 연기를 잘라버린다면, 누구도 연기를 보지 못할 것 아닌가?”
“연기는 표홀합니다. 그런 연기조차 가를 수 있다는 겁니까?”
“죽었으나 산 생선도 간단하지.”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껍질과 속을 생선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베면,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지.”
“대체 얼마나 빠른 겁니까? 자신의 생사조차 느끼지 못하는 빠름이란 겁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사내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나를 보여주면 열을 짐작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왜 그 많은 운명과 안배가 모두 사도명, 자네를 택했는지 이제 알겠군.”
사도명은 마침내 물었다.
“귀하는 누구입니까?”
“누구 같은가?”
“왜 금(禁), 단 한 글자를 저에게 전했습니까?”
“왜라 생각하는가?”
사내는 한 번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사도명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질문이 아직 남았지만, 사도명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혼자 오라는 것.”
“뭐?”
“그것 때문에 당신이 누군지, 겨우 짐작해냈습니다.”
사도명은 이채를 떠올리는 사내를 보며 말했다.
“그는 십여 년 전에 강호에 나타났습니다. 특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늘 한 사람만을 불렀고, 일대일로 싸웠습니다. 왜 싸우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는 똑같은 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사도명과 사내가 뒷말을 동시에 이었다.
“패배를 구하고 있다.”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나를 알아봐 주니 무척 고맙구먼, 조화무제.”
“무림의 육객(六客)은 저마다 기묘한 성격과 취향을 가졌죠. 구패객(求敗客)은 그중에서도 특이합니다. 강호인이면서도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구하니까요.”
“왜냐하면 오직 패배만이 나를 납득시켜 줄 테니까.”
“어떤 납득입니까?”
“말하자면 내 존재의 증명. 내가 이런 모습으로, 이러한 곳에서 있어야만 하는 이유.”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자네가 만약 나를 패배시킨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걸세.”
“구패객의 비무는 항상 일대일이며, 둘 사이에 조건을 건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자네의 조건부터 말해 주겠나?”
“연기 없는 불과 죽지 않은 생선의 정체를 말해 주십시오.”
“바깥의 사람들은? 그들을 풀어주어야 할 필요는 없나?”
“괜찮습니다. 귀하와 대화를 나누었더니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풀어 줄 수 있습니다.”
구패객은 사도명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조건을 걸지.”
구패객이 바닥에 글을 썼다.
<금禁>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문에 써 놓았던 글이 바로 이것이었죠.”
“가지 말게! 오늘 가기로 했던 곳. 자금성에 가지 않는 것이 바로 나의 조건일세.”
동쪽 하늘로 햇살이 떠올랐다.
사도명은 구패객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불과 하루 만에 바다를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신법이 빠르고, 연기를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손이 빠르며, 당하는 상대가 잘린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는 사실은 이미 알았다.
“황실과 어떤 관계인지를 물어도 대답해주시지 않겠죠?”
구패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도명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몸을 바로 세웠다.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그의 온몸으로부터 일어났다.
날카롭고 살기가 넘치는 기운이 구패객의 양손에서 일어났다.
“검을 사용 않으십니까?”
“검은 손에 없더라도, 마음에는 존재하니 염려 말게. 자네 또한 심검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귀하가 사용하는 무공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건 혹시…?”
“아직 시작이 멀었나? 내겐 시간이 별로 없는데.”
**
해가 중천했다.
왕삼이 연자강에게 물었다.
“제 생각에 따르면 새벽에! 은령신녀의 생각에 따르면 지금! 황실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연자강은 뒷마당 쪽을 보았다.
은교교는 아침부터 줄곧 시선을 그 방향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곽소혜가 말했다.
“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조화무제는 대체 뒷마당에서 뭘 하고 계신 걸까요?”
“비무!”
연자강의 대답에 모든 사람이 그를 보았다.
놀란 도언직이 물었다.
“아무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말입니까?”
“기척에 뜻을 담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뜻으로 기척을 모두 지울 수도 있겠지?”
은교교는 참지 못했다.
“가 봐야겠어요.”
놀란 연자강이 외쳤다.
“하지만 새벽의 그 기척은 분명 혼자 오라고 말했잖소.”
“지금은 어떤가요?”
“아! 지금은….”
은교교의 반문에 연자강은 잠시 느껴보더니 대답했다.
“지금은 사라졌군요.”
“그러니까 이젠 가도 괜찮겠죠?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어요.”
은교교가 사찰을 돌았다.
연자강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녀의 뒤를 따랐다.
뒷마당에는 사도명이 혼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나요?”
“있었소. 육객 중의 구패객.”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나와 매우 치열하게 싸웠지만, 지금은 떠나고 없소.”
연자강이 주변을 살폈다.
바닥에 생긴 발자국, 풀이 누운 방향과 꺾인 정도, 무엇보다 대기 중에 남겨진 진기의 흐름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연자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싸웠다는 겐가?”
“치열하게.”
“그러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어. 이곳은 마치, 바람조차 불지 않았던 장소처럼 고요해.”
“하지만 우린 싸웠지. 심지어 목숨조차 걸고서.”
사도명이 다시 한번 웃었다.
연자강의 눈이 커졌다.
한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앉아 있는 사도명을 보며 다급히 외쳤다.
“이, 일어나 보게! 어서!”
사도명이 몸을 일으키다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도명!”
은교교교 놀라서 달려와 사도명의 몸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괜찮을 리 있나? 구패객은 소문보다 훨씬 강해. 결국 그는 오늘도 패배를 구하지는 못했지.”
“피, 피가 나요.”
사도명은 코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을 닦았다.
“싸움은 격렬하고 길었어. 우리는 거의 백 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웠거든.”
연자강은 비로소 깨달았다.
“알겠다. 다름 아닌 심내전(心內戰)이었던 거구나.”
마음속의 싸움, 심내전!
불과 한나절을 뒷마당에서 보낸 사도명이 백 일을 싸울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사도명이 다시 웃었다.
“맞아. 구패객은 심지어 일찍 떠났고, 나는 그가 남긴 의지와 오래 싸웠다네.”
연자강이 미간을 찡그렸다.
“자네는 대체 왜 계속 웃는 것인가?”
“우리는 내기를 했다네. 구패객은 내기를 하지 않으면 싸움에 임하지 않으니까.”
“내기의 내용은?”
“내가 이기면 연기 없는 불과 죽지 않는 생선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가 이기면 황실에 가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네.”
“구패객이 오늘도 패배를 구하지 못했다는 건, 자네가 졌다는 의미인가? 졌는데도 웃어?”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겼나? 그래서 웃나?”
“왜 웃냐 하면, 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대원들에 대한 비밀을 알아냈거든.”
앞마당에는 여전히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모두 허공의 한 점을 향했다.
“저 지점에 나뭇가지와 생선이 나타났을 거야.”
“나무와 생선?”
앞뒤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연자강은 미간만 찌푸렸다.
“생선은 연기 없는 불에 구워지고 있으면서도, 살아서 펄떡거렸겠지?”
말하면서, 사도명은 오른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오른손이 결사대원 송사강의 주변 허공에 무엇인가를 그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송사강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콜록! 콜록!”
몇 번 크게 기침을 하더니, 송사강이 갑자기 소리쳤다.
“무제의 말씀이 맞습니다. 구워지는데 살아 있는 생선! 그 모습에 놀라서 소리쳤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글이 보였습니다.”
송사강이 바닥을 가리켰다.
“저겁니다. 바로 저것!”
그곳에, 곽소혜가 썼었던 금(禁)자가 아직 남아 있었다.
연자강이 사도명에게 물었다.
“어떻게 푼 건가?”
“기혈을 막거나, 경락에 내공을 주입한 것이 아니었어. 구패객은 이들의 몸에 단지 의지를 남겨 놓았던 거라네.”
“의지?”
“의지란 지극한 뜻이며, 뜻은 생각을 만들지. 뜻을 소리로 굳히면 말이 되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영구히 세상에 전하는 수단을 개발해 냈지.”
연자강은 송사강이 가리키고 있는 글자를 다시 한번 보았다.
금지한다는 뜻의 금!
사도명이 다시 두 번째 결사대원의 앞으로 갔다.
연자강은 사도명의 오른손에 허공에 글을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해(解)?”
글자를 알아본 연자강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두 번째 결사대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무제. 저도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산발한 괴인이 나타났고, 그가 손을 움직이자, 금(禁)자가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