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화. 똑똑한 사람이라면
“감히!”
주덕문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뒤쪽, 백여 개기 훨씬 넘는 강철 인형들이 일제히 주덕문을 따라서 일어났다.
“멍청이들! 누가 이런 것까지 따라하라더냐?”
주덕문은 고함을 지르며 박혼제령(縛魂制身)의 대법을 풀었다.
강철 인형들이 마지막 동작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왜 그토록 화가 나셨습니까, 창왕(蒼王) 전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광효가 조심스레 물었다.
“알 것 없다.”
도광효가 다시 물었다.
“강철용을 데리고 어디로 가셨던 것입니까, 전하?”
“쓸 만한 혼이 있는지, 병마용이 있을 고분을 파고 있었다.”
“석가장에서 중산국의 고분을 파고 있었군요, 전하?”
“그러다가 무엄한 놈을 하나 보았지. 너처럼, 하나를 듣고 둘을 짐작하는 척 나서는 놈이었다.”
도광효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도명을 만나신 것이군요.”
“놈은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도한 놈이었다.”
“저도 황상의 용체를 통해 놈을 한 번 만났기에 압니다. 주제를 모르는 자이옵니다.”
“고문 안에서 만났다. 놈의 일행에게 쓸 만한 병마용 수백 개와 강철용 열여덟 개를 잃었다.”
도광효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열여덟입니까?”
“신경 쓸 것 없다.”
“그렇습니까?”
“고분에서 좋은 걸 발견했었다. 중산국 왕의 인형인데 마음에 들었지. 하지만 그놈까지 부서지고 말았다. 참으로 아깝구나.”
도광효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강철용은 만들기 간단한 물건이 결코 아니었다.
강철에는 혼이 없기에, 본래 움직이게 만들 방법이 없다.
박혼제신대법으로 조종할 혼을 넣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 강철용을 열여덟 개나 잃고 와서, 주덕문은 도기 인형 하나가 없어진 것만 말하는 것이다.
주덕문은 황실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왕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살아왔다.
주덕문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은 소모품이고, 자신을 위해 소비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존체가 다치시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입니다.”
“너의 실수다.”
“네?”
“사도명이 근방에 온 것을 알았어야지! 마땅히 내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준비했어야지!”
“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도광효가 화제를 바꾸었다.
“사도명은 강철용을 얼마나 힘들게 상대했습니까?”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서 팔을 자르고, 폭파시키더구나.”
“그랬습니까? 녀석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해졌군요.”
“그 놈뿐만이 아니었다.”
주덕문이 미간을 찡그렸다.
“강철용을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최소 셋은 더 있더구나. 연자강과 두 명의 계집. 그 두 계집은 흐흐. 지금도 욕심이 난다.”
“한 명은 적암의 마녀? 다른 한 명은 누구입니까?”
“진사비침술을 사용했다. 강철용이 비침술에 약한 건 알지? 주호연이 배신한 모양이다.”
도광효가 미간을 찡그렸다.
“확인하겠습니다.”
“알지? 나도, 형님도, 도 국사를 믿는다. 도 국사는 언제나 방법을 찾아낸다고 믿어.”
“감사합니다.”
도광효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 일로종횡. 혼자만의 움직임이 될 거라 방치했던 것이, 생각해보면 큰 실수였습니다.”
“그래. 실수를 했지.”
“이해해 주소서. 궁의 완성과 천도! 아수라혈교 잔당의 흡수. 여러 가지 큰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실수는 실수!”
주덕문이 동작을 멈추고 있는 일백 개가량의 강철 인형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심마문과 비침술을 결합해, 박혼제신대법도 만들어야 했기에 바빴다고 해도 여전히 실수는 실수! 하지만 이해하여 주마.”
도광효는 고개만 숙였다.
세상에는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은 기이하게도 남의 공은 늘 자신의 것으로 돌린다.
“사도명은 소림에서 무림맹주의 자리를 버린다 선언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림맹주가 아니란 거냐?”
“내일, 그는 개인의 자격으로 황궁으로 올 것입니다.”
“내일 온다고 했으면 새벽에 올 것이다. 우리의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고 싶을 테니까.”
“예측을 빗나가게?”
도광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방법을 준비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방법은 있지?”
“이미 생각해 놓은,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좋아. 믿으마, 도 국사!”
주덕문이 오른손을 들어 한 차례 크게 휘저었다.
뿌연 기운이 넓게 퍼지며 강철 인형을 휘어 감았다.
박혼제신의 대법의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자, 아기들아.”
주덕문이 걸어가자 강철 인형들이 그의 동작을 흉내 내어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힘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 강해지자, 아기들아.”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주덕문의 뒤를 따라 백 개 가까운 강철 인형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멀어졌다.
“적당한 것이 있다. 그놈까지 장치하면, 사도명 그 무엄한 놈이 너희를 함부로 터뜨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도광효는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주덕문을 배웅했다.
이윽고 마지막 강철 인형마저 사라진 후에야, 도광효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뒤에 두 명이 나타났다.
각각 청룡과 현무의 문양을 옷자락 가슴에 새긴 무사였다.
“군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실종되는 자들이 늘어나 이상하다 하는데, 열여덟 개가 부서졌으면, 또다시….”
청룡을 새긴 무사의 말에 도광효가 고개를 저었다.
“말이 많아졌구나, 청룡위. 하루 동안 일체의 말을 금한다.”
“…….”
청룡위가 말없이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현무위가 포권하며 물었다.
“창왕 전하의 예측처럼 조화무제는 정말로 새벽에 올까요, 합하?”
도광효는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융흥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자금성으로 지금 갑니까?”
왕삼의 질문에 사도명이 대답 없이 되물었다.
“가고 싶으냐?”
“네? 하지만 천하에 알리길, 조화무제가 오늘 자금성으로 황제를 만나러 간다고….”
왕삼이 다시 물었다.
“가지 않으실 겁니까?”
“똑똑한 자라면 내가 새벽에 오리라 짐작할 거다. 잠에서 미처 깨지 않았을 때, 그 빈틈을 노려서 올 거라 생각하겠지.”
왕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똑똑하다면 모양입니다. 그리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더 똑똑하다면.”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당신의 생각에는 어떨 것 같소, 교교?”
“가장 밝은 시각인 정오. 그때 갈 거예요. 남몰래 싸우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황실에, 세상에 우리의 뜻을 알리기 위해 가는 거니까요.”
왕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과연 그렇군요. 저는 제법 똑똑하지만 제대로 똑똑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도명이 이번에는 연자강에게 물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강. 네가 대답해 볼래?”
“아무래도 오늘 황실에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응? 뭐라고?”
연자강이 오른손을 들어 삼십여 장의 거리로 다가온, 융흥사의 정문을 가리켰다.
“저기! 뭔가 이상해.”
사도명도 이상함을 느꼈다.
정문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붉은 색으로 쓰인 글자는 분명히 본래는 없었던 것이었다.
<금禁>
“금? 금한다고?”
단순히 글만 있었다면, 연자강의 얼굴이 굳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명과 연자강뿐만이 아니라, 은교교와 곽소혜도 융흥사 내부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도명이 가장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연자강 등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서 굳어 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결사대의 대원 모두가 융흥사의 마당에 모여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는 모습이 똑같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석고처럼 굳어 있었다.
사도명은 서둘러 마음을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결과의 앞에는 원인이 있다.
조화결사대원 모두가 마당에 모여 있다면, 그들을 마당으로 나오게 만든 원인이 있을 것이다.
놀란 표정이니 놀라게 만든 원인과, 굳어 버렸으니 굳게 만든 원인을 찾아야 했다.
도언직이 굳어 있는 대원들의 몸을 만져보고, 눈앞에 손을 대 흔들어보고,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연결해 보았다.
“모두 한 점을 가리킵니다. 이 손가락들이 모이는 허공에 무엇인가 있었고, 그건 매우 놀라운 것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사도명의 갈라진 마음들이 마침내 사람의 기척을 찾아냈다.
융흥사 뒤쪽이었다.
“느꼈어?”
사도명이 연자강을 보았다.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느꼈네.”
“저도 느꼈어요.”
은교교의 뒤를 이어, 곽소혜가 가장 늦게 말했다.
“희미하게, 저 뒤쪽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기척이! 이런 것이 사람을 느끼는… 것이 맞나요?”
“곽 소저는 내공을 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 느끼는 건, 정말로 대답합니다.”
사도명의 평가에 곽소혜가 멋쩍게 웃었다.
사도명은 웃지 않은 채, 연자강을 보았다.
“그런데 이런 게 가능해?”
고개를 끄덕이는 연자강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가능하니까 너도, 나도 느끼는 거겠지? 세상에! 일부러 기를 쏘아 보내면서 거기에 뜻을 담는 재주가 가능하다니.”
곽소혜가 말했다.
“느껴지는 기척 속에, 글자 하나가 있어요. 이거 맞나요?”
곽소혜가 바닥에 글을 썼다.
<금禁>
앞쪽 정문에 붉은 색으로 쓰여 있던 것과 같은 글이었다.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당신이 좀 더 내공 운용이 익숙해지면, 그 글의 위에 하나의 의지도 담아 놓고 있음을 느끼게 될 거요, 여보.”
“어떤 의지죠?”
“말하고 있어. 혼자 오라! 전음도 아니면서, 몸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에 글자와 뜻을 담다니. 대체 이게 무엇인 거지?”
“이 기세의 말을 거부하고 여러 명이 마당 뒤로 가면 결사대원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자강?”
사도명이 물었다.
연자강이 굳어 있는 결사대원 한 명의 앞에 섰다.
은교교와 곽소혜도 각각 한 사람씩을 맡아서 그 앞에 섰다.
곽소혜가 가장 먼저 고개를 흔들며 포기했다.
“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마혈을 짚고, 풀고! 그런 것마저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걸요.”
“저도 포기합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은교교도 창백한 낯빛으로 손을 내렸다.
“마도 수법은 아닙니다.”
은교교의 머릿속에는 적암마계의 모든 무공이 있었다.
그 모든 무공의 조합을 검토했지만, 은교교는 결사대원을 움직이게 만들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는, 시도해 볼까 싶네.”
연자강이 굳어 있는 결사대원, 송사강의 가슴에 손을 댔다.
“의형수형의 원리를 적용해 볼 거야. 송사강의 몸속에 그를 굳게 만든 내공이 있다면, 의형수형이 그걸 느끼고 따라서 흐르도록 할 수 있다면….”
“기의 흐름을 파악하겠단 거지?”
사도명이 물었다.
“일단 흐름을 파악하면, 역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 맞지?”
“정답이야, 무제.”
마혈을 짚을 때 사람이 굳게 되는 건, 혈맥을 따라 흘러야 하는 기의 흐름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연자강은 결사대원들을 굳게 만든 내공을 찾아내려 애썼다.
“뭐야, 이거? 말도 안 돼!”
하지만 굳어 있는 결사대원 송사강의 몸에서는 막힌 혈맥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느껴지는 기의 흐름은 멀쩡해. 어떤 혈도도 짚이지 않았다고. 더없이 멀쩡한데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어이, 송사강!”
송사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입술을 달싹이거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했다.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황당하군. 내 머릿속 여러 개의 구결 중 몇 개는 심지어 고금구천강의 무공들이라고.”
“자랑하는 겐가?”
연자강의 농담에 쓰게 웃으며, 사도명이 말을 이었다.
“그걸 모두 동원해도 해결 방법을 모르겠다는 얘기야. 혹시 이건 또다른 고금구천강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지금부터 사실을 알아보러 가겠네.”
사도명은 뒷마당 방향을 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 전해오는 기척에 실린 의지가, 그렇게 하라고 경고하고 있으니까.”
사도명은 뒷마당을 향해 혼자서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