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90화 (90/168)

090화. 금강호갑(金剛護鉀)

- 뒤집어라.

황제 병마용의 소리가 들렸다.

주변이 크게 흔들리더니, 땅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황제 병마용이 강철 인형을 시켜 땅을 파는 모양이었다.

왕삼과 도언직은 땅굴의 위쪽 땅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찾았다, 이놈들.”

열린 땅으로부터 황제 병마용이 왕삼과 도언직을 내려다보았다.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분명히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괴물아!”

왕삼이 고함을 지르며, 손과 발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었음에도, 사력을 다한 공격이기에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선우척이 죽었다.

그는 왕삼의 오랜 친구였다.

분노가 힘을 증가시켰다.

“오른팔만 남은 후, 내 주먹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겠느냐?”

집중의 힘!

기합으로 강해진 왕삼의 오른손이 황제 병마용을 노렸고, 이번에도 강철 인형은 그 앞을 막았다.

끼이-익!

강철 인형의 배 부분이 움푹 밀려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왕삼의 팔은 팔꿈치 부근에서 부러져, 뼈가 살점을 뚫고 뒤로 튀어나왔다.

왕삼은 신음하지 않았다.

강철 인형의 오른손이 고통을 참는 왕삼의 목을 잡았다.

“주제를 모르는 자는 빨리 죽는 법. 목을 뜯어내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피를, 오늘 마음껏 보자.”

황제 병마용이 즐거운 양 웃었다. 강철 인형의 왼손이 왕삼의 머리 위를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왕삼!”

도언직이 달려왔다.

두 개의 강철 인형이 그를 막았고, 도언직은 가슴과 배에 각각 일장을 맞고 뒤로 튕겨 나왔다.

“크윽! 왕-사암!”

- 이럴까봐 말했는데!

바로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좌우 모든 공간에서 울렸다.

빠른데도 묘하게 부드러운 흐름이 왕삼의 목과 머리를 쥔 강철 인형의 팔을 스쳤다.

소리도 없이, 심지어 미약한 충격파조차 없이 강철 인형의 두 팔이 잘려나갔다.

왕삼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고, 도언직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무제!”

“너희들이 예전부터 공식적 호칭인 맹주를 두고, 언제나 나를 꼭 무제라 불렀던 이유는….”

사도명이 표표히 몸을 띄운 채 도언직의 앞에 나타났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서 해결해 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하려는 의도! 내 생각이 맞지?”

퍼어-엉!

팔이 잘린 강철 인형이 저절로 폭발했다.

일의생멸이 인형의 몸속에 폭발의 힘을 만들었던 것이다.

풀려난 왕삼이 목을 만지면서 한 차례 기침을 토한 후에, 고개를 돌려 사도명을 보았다.

“무제!”

“야단은 나중에 치마.”

사도명은 당황하여 말을 잃어버린 황제 병마용을 보았다.

“너는 황제가 아니다. 도광효도 아니구나. 누구냐?”

“흐흐흐. 이긴다 싶으냐, 사도명? 겨우 한 개의 강철용을 부수고 나니 만족스러워?”

“일단 내 이름을 아는 건 확인! 나이는 …나와 비슷한가?”

“…….”

황제 병마용이 입을 다물었다.

사도명이 다시 말했다.

“내가 강철 괴물을 부순 걸 보고 놀라지 않는구나.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의 힘을 모르는 듯싶으니, 생각보다 정보는 없구나.”

황제 병마용이 다시 입을 열어 소리쳤다.

“하, 함부로 평가하다니?”

“자존심이 강한 것도 확인. 자, 시작할까? 교교!”

얼음과 불과 강기가 하나로 뒤섞여 날아왔다.

콰오오오-!

세 가지 힘은 하나로 합해지며 혼돈폭강이 되어 단숨에 두 개의 강철 인형을 부쉈다.

꽈아-아아앙!

은교교가 날아오더니 사도명의 옆에 섰다.

황제 병마용이 소리쳤다.

“적암의 마녀 따위! 은교교는 빼앗겼다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적암마계와 관련이 있다는 걸 확인! 마계주는 이미 죽었고, 그 상위에 있는 녀석이냐?”

“감히! 무엄하게!”

“말투가 특이한 걸 확인! 자, 다음 순서는 더욱 놀라울 걸. 나와 주시겠습니까?”

반짝이는 빛이 네 개 날아왔다.

빛은 네 개의 강철 인형에 각각 꽂혔다.

황제 병마용이 소리쳤다.

“비침? 규화보전 속의 진사비침술이라고?”

황제 병마용은 느꼈다.

비침이 꽂힌 네 개의 강철 인형이 그 자신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목우종형이건 철우광형이건에 상관없이….”

진사를 타고 나풀나풀 날아서 내리는 사람은 곽소혜였다.

“내 의지를 전달해 상대를 조종하는 술법은 비침술이 우위에 있어요, 무제. 비침술에 장악당한 상대는 더 이상 너의 조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괴물아.”

제갈호연이 전한 내공이 모두 그녀의 몸속에 있었다.

“제갈호연이 배신한 거냐?”

황제 병마용이 곽소혜 몸을 위아래 훑어본 뒤에 물었다.

“내공까지 전했다고? 그 년이 제 부모의 죽음을 이미 알아차린 거구나, 흐흐!”

“인질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도 확인! 여와방의 일도 알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 너는 도광효보다도 신분이 높으냐?”

“푸하하. 내가 누군지가 왜 그렇게 궁금하느냐?”

“당황할 때 웃는 것도 확인.”

황제 병마용이 웃음을 그쳤다.

“검성과 천라대제와 호불군과, 혜능이 모두 너의 출현을 예견하고 눈을 감았단 거냐?”

병마용은 어조가 차분해졌다.

“겨우 너희 세 명이 일백팔십 강철용을 모두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강철 인형의 총 숫자 확인. 자, 이 정도 알아냈으면 자강. 너도 실력을 보여 줘야지.”

“뭐?”

황제 병마용이 옆을 보았다.

그 옆에 연자강이 서 있었다.

“대, 대체 어느새?”

“여기 남은 강철 인형은 열하나. 나 혼자 상대하기엔 너무 적지 않느냐, 도명?”

연자강이 오른손을 들었다.

황제 병마용은 깜짝 놀라서 옆으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그는 연자강이 나타나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었다.

“의형수형(意形隨形)의 신법이었다고? 황실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을 네가 어떻게?”

“그 말은….”

사도명이 다시 웃었다.

“너 또한 황실 사람이란 얘기인 거지? 황제와 어떤 관계냐? 제갈호연처럼 이용당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혹시 황제와 조력 관계냐?”

“…….”

황제 병마용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이든 하면, 정보를 빼가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황제 병마용이 강철 인형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죽여라!”

열한 개의 강철 인형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연자강이 혼자 그 앞을 막았다.

“연 공자는 괜찮겠어요?”

걱정스런 얼굴로 묻는 은교교에게 사도명이 활짝 웃었다.

“황실 비전으로 알려진 무공은 모두 네 가지야. 우린 그중의 두 가지를 구경했지.”

“규화보전 속의 진사비침술. 그리고 파천봉황신공?”

“맞아.”

열한 개의 강철인형이 휘두르는 주먹의 위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연자강의 몸은 마치 유령처럼 주먹들 사이를 자유자재 빠져나가고 있었다.

“뜻이 일어나면 몸 또한 따른다는 의형수형! 저절로 외부의 힘에 반응하는 신법이지.”

사도명이 연자강의 움직임을 가리키며 웃었다.

“힘주어 피할 필요도 없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회피술이지.”

“하지만 계속 피할 순 없어요. 상대가 피할 곳이 없도록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죠?”

“핵심을 짚었군.”

은교교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강철 인형들의 움직임에 절도가 생겼다.

서로의 거리와 주먹을 내미는 시간을 절묘하게 배합하면서 진식을 형성한 것이다.

“저런 식이라면, 아무리 의형수형이 절묘해도 피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어요.”

사람의 몸이 아무리 빨라도, 종잇장 사이에 들어갈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야지. 만약 저런 경우에 의형수형을 몸속에서 돌린다면 어떨까?”

“네? …아!”

콰콰-콰쾅!

연자강은 결국 강철 인형들의 손에 가슴을 얻어맞고 말았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쾅!

계속 강철 인형들의 손에 얻어맞으면서도, 연자강의 얼굴은 오히려 혈색이 좋아졌다.

“어, 어떻게 된 거죠?”

“몸속의 강기로 의형수형을 일으키는 거야. 몸속의 진기가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도록!”

“아! 호신강기가 외부의 힘에 저절로 대응한다는 건가요?”

은교교는 차분하게 서 있는 곽소혜를 보았다.

“곽 소저는 이미 알고 있군요. 그래서 태연할 수 있는 거군요.”

“제갈호연 부인에게 조종당하면서, 연자강에게 의형수형을 배우게 만든 건 저예요. 신법을 내재화하는 방법 말이에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저건 무슨 힘이건 대응하고, 그걸 흡수할 수 있는 무공이오.”

“무공의 이름이 뭐죠?”

“금강호갑.”

“아!”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갑옷. 무슨 힘이건 받아내고, 그걸 적에게 되쏠 수도 있는 갑옷.”

연자강의 눈빛이 변했다.

“황실 사대무공 중의 세 번째.”

연자강이 계속 받아들이던 힘을 되돌려, 강철 인형에게 쏘았다.

“차핫!”

단 한 번의 고함에 열한 개의 강철 인형이 한꺼번에 뒤로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아-앙!

동시에 일어난 폭음.

“금강호갑은 의형수형이 내재화된 갑옷이요. 최강의 방어무공.”

강철 인형들은 일그러졌다.

우그러진 공 모양이 되어,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했다.

“…….”

황제 병마용은 바닥을 뒹구는 열한 개의 강철 덩어리를 아무 말 없이 보았다.

“당황하고 있나?”

황제 병마용이 사도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히 황실에 저항하고도, 너희가 무사할 것 같으냐?”

“저항하지 않아도 무사하진 못하겠지? 내 말이 틀렸나?”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감히라는 말! 무엄하다고 했던 말. 당신이 누군지 알겠다.”

“…내가 누구냐?”

“이름은 몰라도 신분은 짐작이 가! 황제는 역모를 일으킨 후에 다른 이가 또 다른 역모를 일으킬까 두려워서 조직을 만들었다.”

사도명이 다시 웃었다.

“동창!”

“…….”

“하하하. 환관만 제독동창의 자리를 맡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넌 아니군. 황실의 핏줄이 환관 자리를 맡을 줄이야 하하하.”

“네, 네놈이 어째 나의 핏물을 안단 말이냐?”

“아까 눈치챘던 걸 슬쩍 떠보았다. 그랬더니 귀하가 지금 질문으로 확인시켜 주잖아. 하하하.”

“…….”

황제 병마용이 또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말할수록 손해임을 이미 깨달았음에도, 잠시 잊고 만 것이다.

사도명이 물었다.

“입을 다문다고 해결이 되나? 황실의 핏줄이 환관의 행세를 하고 이름을 밝힐 용기조차 없어 입을 다문다? 귀하는 도대체 얼마나 용렬하고 비겁한 것인가?”

“…나는 주덕문이다.”

황제 인형이 자신을 밝혔다.

“황실로 오라. 알려 주마. 그때 황족을 능멸한 죄로 네놈을 여덟 조각으로 찢어 죽….”

콰-앙!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사도명의 장력이 황제 형태의 병마용을 부순 것이다.

연자강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동창 제독의 화를 돋우려고 한 행동인 건가? 하지만 물어볼 일이 꽤 남았었는데.”

“아냐! 화가 나서 그랬네.”

사도명도 한숨을 내쉬었다.

“황실을 능멸한 죄라며 떠들기에! 사람을, 인간의 도리를 능멸한 놈에게 그런 말, 더 이상은 듣고 싶지는 않았거든.”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몸을 돌려 왕삼과 도언직을 화난 표정으로 보았다.

두 사람이 즉시 무릎을 꿇었다.

“대장님!”

“분명 말했었다.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했었다.”

“죄송합니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연자강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옆을 보았다.

그 곳에 자신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왕삼 일행의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나오셔도 좋소, 주지!”

“…처, 척아! 네가 죽다니.”

옆쪽에 뚫린 벽에서 보광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네놈이 죽다니! 으흐흑.”

사도명 일행은 결사대의 흔적을 쫓아 융흥사로 갔었다.

그곳에서 보광을 만나 이곳까지 함께 왔던 것이다.

보광이 선우척의 주검을 붙잡고 구슬프게 울었다.

왕삼과 도언직도 함께 울었다.

연자강도, 사도명도 더 이상 그들을 야단칠 수가 없었다.

사내에게 우정을 나눈 친구의 죽음만큼 슬픈 것은 없다.

연자강은 왕삼과 도언직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었다.

사도명이 말했다.

“황실로 같이 가자. 가서 받아내자. 지금 그 울음의 대가를 열 배, 백 배, 아니 천 배로 받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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