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88화 (88/168)

088화. 석가장(石家莊) 괴사

제갈호연은 여와방 소속이었다.

그녀는 제갈평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냈음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했다.

여와방주는 제갈세가의 모든 것을 알아내 보고하라고 제갈호연을 침투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배신했다.

제갈평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기에, 여와방을 배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호연은 곽소혜에게 진사비침술과 내공을 넘겼다.

그리고 연자강에게는 금강호갑의 비법도 전수했다.

모두 황실에만 전해오는, 비전의 무공이었다.

곽소혜와 연자강은 치열한 한바탕의 혼전 끝에 제갈호연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바닥에, 제갈호연이 곽소혜의 손을 빌어 떴던 저고리가 보였다.

작은 저고리는 언젠가는 태어날 연자강과 곽소혜 사이의 아이를 위한 제갈호연의 선물이었다.

연자강이 털실 저고리를 집어 드는데, 옆쪽의 벽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 하하하. 그거야 당연하다. 네가 지금 당장 떠나지 않는다면, 네 부모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주호연!

콰-앙!

옆의 벽이 터지고 붉은색 그림자 하나가 제갈호연을 덮쳤다.

“감히!”

제갈평의 노한 음성이 쩌렁하게 방안을 울렸다.

그는 벽을 뚫고 날아온 붉은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홍교! 네가 감히 내 아내의 목숨을 노린다고?”

꽈-앙!

제갈평이 내쏜 장력이 붉은 옷을 걸친 여시종의 몸에 명중했다.

여시종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웃음소리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하하하. 하하하하.”

여시종 홍교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사도명이 달려가 그녀의 맥을 짚고 혈도 몇 군데를 눌렀다.

“웃고 있는 건 이 여자아이가 아닙니다. 대부인을 공격하려 덤빈 것도 아니었고요.”

사도명은 웃음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황제의 옆에 있던 자.

검으로 방유를 협박하기 위해, 여인과 어린아이마저 스스럼없이 베던 도광효!

제갈호연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떠오르더니, 크고 작은 균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갈평은 제갈세가의 가주다.

황실에만 전해지는 특이한 금제법에 대해, 그는 알고 있었다.

“보, 봉황금제!”

“방주는 홍교를 통해 나, 나를 감시하고 있었어요. 내가 당장 죽지 않으면 내 부모님을 죽이겠다, 그 말을 하러 온 겁니다.”

사도명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더니, 제갈호연의 옆에 나타났다.

그의 손이 금빛으로 빛났다.

“일의생멸. 뜻이 이르는 곳에 생성과 소멸이 자유로운 도리!”

빛나는 손으로 제갈호연의 이마를 덮으며, 사도명이 말했다.

“봉황금제를 몸속에서부터 제거합니다. 대부인이 협조해 주신다면,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콰아아아아아아-!

휘황한 금빛이 제갈호연의 이마로 들어가 온몸에 가득 찼다.

제갈호연이 소리쳤다.

“시, 싫어요. 제가 살면, 부모님이 죽게 됩니다.”

“그분들은 이미!”

사도명이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이었다.

“황궁에서 도광효가 방유 대학사의십족을 멸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가 말하더군요. 역모자의 구족은 모두 죽었다. 그들 중 살아남은 자는 세상에 없다!”

“그, 그런….”

사도명이 제갈평을 보았다.

“가주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역모에 가담하지 않은 번왕들 중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까?”

제갈평이 고개를 저었다.

제갈호연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럴 수가. 그럼 제 부모님은… 두 분은 이미?”

“대부인을 조종하기 위해, 도광효는 죽은 사람조차 이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콰아아아아아아-!

제갈호연을 감싸고도는 일의생멸의 금빛이 더욱 강해졌다.

“복수는 살아남은 사람의 몫입니다, 언제나!”

**

말은 오래 달리지 못한다.

빠르게 달리지만, 너무 오래 달리면 각혈하게 된다.

조화결사대는 자금성으로 출발하면서 숭산 아래에서 말을 샀다.

중간에 그 말을 버리고 한 차례 갈아탔고, 갈아탄 말은 석가장 근처를 지났을 때는 지쳤다.

왕삼은 석가장의 동쪽 융흥사로 사람들을 인도했다.

“어린 시절에 이 근방에서 살았지. 형제와 다를 바 없는 친구가 있다. 여기에서 쉬자.”

풀을 뜯도록 말을 풀어 놓고 나자, 도언직이 옆으로 왔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은 아닐까? 자금성까진 불과 백 리도 남지 않았어.”

숭산을 떠날 때 사도명이 연자강, 은교교와 함께 다녀올 곳이 있다 하면서 떠났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말한 기한이 이제 하루 남았다.

“무제께서 돌아오신다는 시각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지?”

“우리끼리 싸워야지, 뭐.”

왕삼은 태연히 말했다.

왼쪽 팔을 잃은 후 왕삼은 대담해졌고, 거칠어졌다.

덕분에 조화결사대 안에서 그의 별명은 ‘진짜 남자’였다.

“역시 ‘진짜 남자’군!”

도언직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싸움은 용기만으론 안 돼. 힘이 없는 용기를 우린 만용이라 부르잖아.”

왕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나도 겁이 나. 무제가 안 계신 싸움이라니! 오줌이라도 쌀 지경이라고.”

도언직은 껄껄 웃고 말았다.

날이 저물었기에 융흥사에 머무르기로 했다.

오가는 사람이 적고, 왕삼이 융흥사 주지와 친분이 있었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왕삼이 결사대원들에게 말했다.

“무제는 내일까지 오신다 했다. 오전에 오시면 같이 움직이고, 아니라면 자금성 근방으로 가서 무제를 기다린다.”

밤이 깊었다.

주지인 보광 스님이 왕삼과 도언직이 머무는 자씨각(慈氏閣)의 문을 두드렸다.

“여보게, 삼! 주무시는가?”

왕삼과 보광은 어릴 때의 친구로, 보광의 말에 의하면 형제와 다르지 않은 정을 나누었다 했다.

“아직이긴 하지만….”

왕삼과 도언직이 밖으로 나오자, 보광은 선우척을 소개해 주었다.

“기억하지? 선우척이야. 요즘은 가문 선조들의 유물을 되찾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네.”

왕삼이 뒷머리를 긁었다.

“보지 못했던 사이 말로 꾸미는 솜씨가 많이 늘었네, 보광.”

“허허. 실례의 말을.”

보광이 뒷머리를 긁었다.

“지나가는 행인들 두들겨 패서 돈을 벌던 녀석이 진중해졌으니, 나도 할 말 하지 않을 말을 가려야지 않겠는가? 아미타불.”

도언직이 전음으로 물었다.

[뭔 소리들이야, 왕삼?]

[선우척은 선우 족의 후예야. 백적(白狄)이라 불렀던 선우부(鮮虞部)가 세웠던 중산국! 석가장 인근에는 중산국의 무덤이 아직도 매우 많이 남아 있지.]

[아하. 그렇군.]

도언직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는 보광과 선우척을 번갈아 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 주지승과 도굴꾼을 친구로 둔 왕삼! 과연 진짜 남자의 모습이군. 하하하.”

선우척이 인상을 쓰며 도언직의 멱살을 잡았다.

“내 친구에게 말조심해라, 이놈! 계집애 같은 얼굴을 이 주먹으로 짓이겨 줄까, 응?”

보광은 벽에 걸린 계도를 들어 휘둘렀다.

“자를 거면 넘겨 줘. 요즘 통 피를 못 봐서 말야.”

그러나 도언직은 태연한 표정으로 왕삼을 보았다.

“내가 누군지, 친구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거야?”

왕삼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미리 소개하면 놀랄까봐! 인사들 해라, 흑사방주 도언직이다.”

도언직의 멱살을 쥐고 있던 선우척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 하하. 하하하.”

보광은 계도를 다시 벽에 걸면서 계면쩍게 웃었다.

“하핫. 이런! 흑사방의 방주셨구려. 몰라봤습니다.”

도언직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오랜 친구냐, 왕삼?”

“어릴 때부터의 친구. 내가 폭풍보를 만들고 난 후에, 융흥사 주지가 뒷돈 밝히고 재물을 탐하는 걸 알았지 뭐야. 놈을 쫓아내고 보광을 주지로 만들었지.”

“혹시 조화심을 전해주어야 할 대상인 것은 아니고?”

“보광의 본심은 매우 착해. 척이도굴꾼이 된 것도 뜻밖이라고.”

선우척이 머리를 긁었다.

“나쁘게 표현하지 말아 줄래? 선조님의 것을 되찾는 거라고.”

보광이 선우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융흥사의 주변 곳곳을 가리켰다.

“근방에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가끔씩 절이라고 먹을 걸 주세요, 하고 찾아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

선우척이 스스로를 가리켰다.

“이 몸이 도와주고 있지.”

“가짜 주지와 도굴꾼. 그 정도면 뭐 내가 한창 나쁠 때보단 선량하군, 그래! 들어봅시다. 이 밤중에 인사만 하겠다고 나까지 불러낸 건 아닐 거잖수?”

도언직의 말에, 선우척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보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우척은 네 명의 부하를 이끌고 도굴을, 아 실례! 선조의 보물을 되찾는 일을 줄곧 해 왔어.”

“당연히 그랬겠지. 도둑질은 여럿이 할수록 짜릿하거든.”

왕삼의 말에 선우척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형제와 다를 바 없이, 믿을 수 있고 다정한 놈들이었다.”

“…었다?”

“오늘, 놈들이 죽었어.”

왕삼의 눈이 커졌다.

“아! 그런 일이. 미안.”

“놈들은 동시에, 같은 곳에서 죽었어. 무덤 안에서.”

“도굴 현장을 들킨 건가? 관군에게 살해당한 거야?”

“관군? 굳이 따지자면 맞아. 관군이지. 관군일 수 있어.”

“알아듣게 설명해 줄래?”

선우척이 소리쳤다.

“본래 살인을 할 수 있는 관군이 아니었어. 너는 강하지, 왕삼? 네 친구도 모두 무림인이지? 같이 가주라! 제갈 같이 가줘, 응?”

왕삼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우린 내일 중요한 일이 있다.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듣게는 설명을 해 줘야지.”

“그놈들이 내 동생들을 죽였어. 같이 가 줘, 제발! 나는 내 동생들의 원한을 갚지 않곤 견딜 수 없단 말이다.”

**

선우 일족의 중산국은 석가장 근처에서 번영했었다.

그리고 많은 능과 묘를 남겼다.

선우척은 그런 능과 묘를 몰래 도굴해서 생활하고 있었다.

보광의 말대로,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조상의 묘를 훔쳐 번 돈으로 인근의 빈민을 돕고 융흥사의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날 선우척과 네 명의 동생들은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별생각 없이 파 들어간 갱(坑) 속에서, 옹기로 만들어진 병마용(兵馬俑)을 발견했던 것이다.

용(俑)에는 보병과 노병과 차병과 기병이 모두 있었다.

“시, 시, 심 봤… 읍!”

선우척이 심 봤다고 크게 외치려는 막내동생의 입을 막았다.

“관군 여러분! 우리가 보물을 파냈어요. 얼른 와서 우릴 붙잡아주세요, 라고 외칠 작정이 아니라면 주둥이 다물어.”

중산국 왕이 남긴 병마용.

하나씩 몰래 팔아먹으면, 더 이상 도굴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보물이었다.

선우척 일행 다섯 명은 각자 스스로의 입을 막고 소리 없는 환호성을 마음껏 질렀다.

비극은 그 후에 일어났다.

막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병마용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들도 관군 아닙니까? 옹기로 만들어진 병사긴 해도, 죽은 황제를 지키는 관군은 맞잖아요?”

막내는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보병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그 보병 형태의 용이 갑자기 검을 뽑아 막내를 베었다.

츠칵!

하도 놀라서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활을 든 노(弩)병용이 화살을 쏘아서, 셋째의 목을 뚫었다.

차병용이 모는 수레가 둘째를 짓이겼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어서 도망치십시오, 대형!”

자신들이 들어온 입구를 가리키며 고함을 지르던 둘째는 말을 탄 기병용이 든 창에 가슴이 찔렸다.

도굴을 하러 파고 들어간 갱!

그 속에 묻혀 있던 수백 개의 병마용이 살아나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

“어떻게 달아났는지 솔직히 생각조차 나지 않소.”

어둠 속, 도언직을 안내하면서 선우척이 소리 죽여 말했다.

그 뒤를 왕삼이 따랐다.

도언직과 왕삼은 결국 선우척을 따라서 석가장으로 왔다.

조화결사대원들을 쉬도록 두고, 두 사람만 왔다.

낮에 파고 들어갔다던 무덤구덩이를, 지금 선우척을 따라서 함께 들어가고 있었다.

“무서워서 달아났던 거라면 다시 오고 싶진 않을 텐데?”

도언직이 묻자, 선우척이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었다.

“헤헷. 그러나 내 동생들이 죽었잖수. 귀신이든 허수하비든, 혹은 사람의 짓이든 상관없지. 동생들의 원한인데 사내로서 어찌 갚지 않을 수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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