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화. 악연과 인연
여와방은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오래 전, 변경의 번왕 중 한 명이었던 지금의 황제는 도광효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언젠가 황제가 된다. 황제가 되면 무림을 없앨 것이다. 해악은 많고 도움이 되지 않는 곳. 방법을 찾고 준비하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다.
하지만 남자를 은밀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여자다.
은나라의 주왕조차 달기의 미색에 굴복하여 나라를 잃었다.
도광효는 천하를 뒤져 여인을 모았다.
그들 중 미색이 뛰어나고 재능까지 갖춘 여자를 뽑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그렇게 여와방을 만들었다.
미녀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드물다.
여와방은 세상에 침투했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여인들은 무림 강자의 아내가 되고, 그 강자의 자식을 낳았다.
많은 정보를 모았고, 자신이 모은 정보를 도광효에게 보냈다.
새외의 오대마문과 우내의 삼대마문, 합하여 팔대마문!
그들을 아울러 지옥문을 만드는 계획은 여와방의 활약 속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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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옥경! 이 자식….”
포옥경이 이를 갈았다.
“이런 것까지 누출시켰나? 아니, 생각만 한 것이니 잘못은 없는 건가? 그렇지 않지. 생각이 날 때, 그 때 빠르게….”
포옥경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양손 엄지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힘껏 찔렀다.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죽여서 입을 막겠다? 지금에는 쓸모없다. 필요한 생각은 이미 대부분 읽어냈다.”
“하지만 이건 아닐 텐데.”
포옥경의 입이 빙그레 웃었다.
“나도 지금 막 알았거든. 이 즐거운 악연을 네게 보여주마.”
황제가 빙의체에게 내렸던 마음의 장막을 걷었다.
사도명은 포옥경의 마음속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 마음에 연결된 황제의 눈을 통해, 황제가 직접 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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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
다시 네 명이 죽었다.
도황효는 지금까지 일곱 명을 차례로 죽였다.
방유는 그들의 주검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몸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마혈이 짚여,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사도명은 황제의 눈을 통해 보고 있었다.
황제가 외치는 목소리가 황제의 귀를 통해 사도명에게 들렸다.
“스승께서는 아직도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으신가?”
“돌아오셨군요, 황상.”
도광효가 황제를 향해 고개 숙인 후 다시 방유를 보았다.
“다음엔 여덟 명이고, 그 다음엔 열여섯. 얼마나 많이 죽은 후에야 마음을 돌릴지, 저도 이젠 기대가 되기 시작합니다.”
도광효는 이제 피 묻은 검을 더 이상 닦지 않았다.
“시간이 됐습니다. 다시 시작할까요, 방유?”
방유가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 나의 고집에 대해 용서를 빌겠소. 여러분, 용서하시기를.”
도광효가 검을 높이 들었다.
“잠깐만! 그 전에….”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광효가 검을 든 채로 황제를 향해 몸을 돌렸다.
황제가 다시 말했다.
“나는 지금 소림사에 있다. 사도명을 여기로 데려왔으니, 조금 전의 그 말을 다시 해 보라. 시간이 별로 없다.”
도광효가 황제의 눈, 사도명의 마음이 통해서 보고 있는 눈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사정후의 자식 말입니까?”
황제의 마음속,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지금의 그 말, 무슨 뜻이냐? 네가 나의 아버지를 어찌 알지?”
황제의 입을 통해 사도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광효는 다시 웃었다.
“네 아버지가 네 사부의 손에 죽었다지? 그 죽음에 감사해라. 살아 있었다면 네 아버지도, 너 또한 여기서 목 베어져 죽을 자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그 말은 설마…?”
“사정후가 상소를 올렸지. 내가 막았다. 감히 황실의 일에 참견하다니! 목을 베어야 한다 말했으나, 그 때의 황제는 유약했다. 죽이지 않고 벼슬만 빼앗아 유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도광효는 계속 웃었다.
“그때 사정후를 죽였더라면, 하하, 너 같은 방해물은 없었을 것임을 최근에야 알았지 뭐냐?”
시선이 흐려졌다.
사도명의 의식은 빠르게 황제로부터 벗어나 소림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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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예요?”
은교교가 다가와서 사도명에게 물었다.
사도명은 포옥경을 살폈다.
양쪽 관자놀이를 자신의 손으로 찌른 상처로, 그의 숨은 이제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황제와 연결되어 황실로 갔었소. 그곳에서 내 아버지와 황제의 인연을 듣고 돌아왔소.”
사도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황실에서 듣고 본 것을 설명했다.
“아! 심마문의 사술에 그런 효용이 있다니! 마음의 무공에는 탐구할 것이 정말 많군요.”
제갈청미가 제갈세가의 후예다운 반응을 보였다.
은교교가 사도명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아버님이 대학사 방유님의 제자셨군요. 어쩐지….”
“황제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의 악연으로 얽힌 모양이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런 악연은, 교교. 그대도 예외가 아니오.”
사도명은 포옥경의 생각으로부터 알아낸 것을 전음으로 말했다.
이야기 듣는 은교교의 안색이 쉬지 않고 변해갔다.
“아버지도 알고 계셨던 걸까요? 혹시 아시기에 어머니를 바, 받아들이시지 않았던 걸까요?”
“설청산 맹주의 본심을, 우린 이미 모두 알잖소.”
이번에는 사도명이 은교교의 손을 잡아 주었다.
“한 가지만 생각합시다. 황제에 대한 나와 당신의 악연. 어쩌면 그게 우리의 또 다른 인연.”
“그런 걸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은교교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슬프고 아파요. 어머니는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도명이 북쪽을 보았다.
해는 이제 완전히 중천하여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저곳 멀리,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소. 십족을 멸한다는 황제와 도광효.”
사도명은 포옥경의 생각을 통해 읽어냈던, 승려 도연의 본명을 떠올렸다.
“자금성으로 가고 싶다. 가서 방유님과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늦었겠지? 구하러 달려가도, 죽은 후겠지?”
은교교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해요. 해낼 수 있는 일만 해내기로.”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명을 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시신이 많았다.
대부분 지옥문 혼돈마인의 것이었다. 그리고 포옥경과 백호위, 주작위의 시신이 있었다.
“구하지 못한 죽음에 슬퍼하기에는, 앞으로 구해야 할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아요.”
은교교의 말이 옳았다.
사도명은 내공을 끌어올려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일로종횡을 시작하고, 정확하게 일 년이 지났다.
이곳은 소림사.
삼 년 동안 귀식대법으로 무덤 속에 숨어 지내던 소림사의 고수들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었다면, 기뻐해야 마땅하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허공 높이 뜬 사도명을 향했다.
“싸움이 끝났소.”
사도명의 말에 무림연합군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오늘 우리는 지옥문의 진실을 알게 됐소. 앞에 놓인 싸움이 더 크고 흉험할 거요.”
무림연합군의 환호성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지옥문이라는 무림 문파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무림연합군이 싸워야 하는 상대는, 무림의 적이 아니라 황실일 수도 있었다.
대역죄인의 굴레를 쓰지 않고서는 끝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
사도명이 말했다.
“황제는 심마문의 최혼술을 사용하고, 가족을 인질로 붙잡아 백성을 주구로 부리고 있소.”
사도명은 온몸이 갈가리 찢긴, 처참한 상태의 백호위와 주작위 시신을 보았다.
“저 둘도 같은 희생자요.”
“맹주님!”
“그들은 이용당했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희생자를 이용해 먹은 포옥경과 같이 취급할 수는 없지. 묻어줍시다.”
사도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시신도 화장하시오. 불쌍한 죽음을 애도한 후에, 세상 전체에 알립시다. 싸움은 끝이 났고, 우리는 승리했소!”
“와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법허가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무림맹의 재건을 제안합니다. 십구성좌가 참여해 주시고, 부맹주는 진행을 총괄해 주시오.”
법허가 눈을 끔벅였다.
“맹주께서는 어이해, 조화결사대는 왜 제외하십니까?”
“조화결사대는 여기서 곧장 황실로 갑니다.”
사도명이 조화결사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강행군이다. 지쳤거나, 망설임이 있는 자는 지금 당장 말해라.”
왕삼은 피식 웃었다.
“무제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죽어 있는 혼돈마인의 꼴이 우리 모습일 겁니다.”
도언직도 고개를 흔들었다.
“모든 일의 배후가 황실? 반역자가 되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한 번 버려졌던 목숨입니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더니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나라의 반역자가 될 거요. 황제의 목을 취하는 역모. 다시 걸어갈 이 길에, 은교교! 연자강! 동참해 줄 테지?”
“물론이에요.”
“데려가지 않겠다면, 강짜라도 놓을 참이었다. 하하.”
사도명은 다시 법허를 보았다.
“실패하면 우린 죽습니다. 성공한다 해도, 우린 역적이 되죠. 어떤 경우건 무림맹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뒤이어 화운악을 보았다.
“더 이상 정사와 흑백을 구분하는 싸움이 아냐. 화운악! 자네가 제압한 흑사련과 여타 흑도 방파에게도 사실을 알려주겠나?”
사도명은 품에서 청옥소검을 꺼내 화운악에게 던졌다.
“당연하오, 맹주.”
화운악이 청옥소검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자, 사도명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청옥소검은 무림태자의 신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가 제 칠대의 맹주가 될 겁니다.”
“하. 하지만 나는 과거 동심결에 들어 크나큰 죄를….”
“누가 죄 없이 살겠는가?”
사도명은 화운악을 본 다음, 은교교와 연자강을 보았다.
그들은 각각 한때 적암의 마녀였고, 극락문의 문주였다.
그리고 조화결사대원 모두는 한 때 염라탈혼의 마기에 빠졌던 자들이기도 했다.
“잘못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반성. 그리고 죄를 씻으려 최선을 다하는 일!”
사도명이 후르르 몸을 날렸다.
연자강은 화운악을 보고 한 차례 웃었다.
“정말 악연과 인연은 어떻게 엮일지를 모르겠군. 평이하게 흘러갔으면 그대는 청옥소검을, 나는 백옥소검을 지키는 사이로 살았을지도 모르지.”
“아! 나, 나는….”
화운악이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연자강도 사도명을 따라갔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숭산 아래로 사라졌다.
“화운악 공자가 무림 태자가 된다니 안심이 되네요.”
은교교가 방긋 웃었다.
그녀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 화 공자가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일이 그렇듯, 해 본 사람이 가장 잘 하겠죠?”
은교교도 사라졌다.
화운악은 손에 들린 청옥소검의 무게를 차마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건 무겁군. 아아, 정말로 너무나 무거워서 들 수가 없어.”
법허가 옆에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도와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있지 않소?”
무림연합군.
일 년간의 일로종횡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모였다.
화운악은 일로종횡의 진짜 목적을 비로소 깨달았다.
무림은 때로 분열되었다.
십구성좌는 서로가 서로에게 반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소림사에 오늘 모인 십구성좌의 태도는 달랐다.
공통의 적!
무림에 닥칠 재액과 싸우겠다는 의지로 모든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 있었다.
일로종횡 동안 이어진 처절한 싸움의 결과였다.
“무림은 이어질 겁니다.”
청옥소검을 소중히 잡아 품에 넣으면서, 화운악이 말했다.
“아무리 황제가 원한다 해도, 무림은 생존합니다. 저는 맹주이신 조화무제님의 모든 행동과 의지를 철저하게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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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소문은 빠르다.
소림사에서의 승리에 대한 소문은 삼 일이 지나지 않아 강호 전체에 퍼졌다.
다른 하나의 소문도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지옥문주의 정체에 대한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