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83화 (83/168)

083화. 십족을 멸하겠소

십구 년 전 역모가 있었다.

그 때, 방유의 학식과 명망은 비할 사람이 없이 높았다.

황제는 방유가 역모에 찬성하는 글을 써 주면, 천하인들이 조카를 해친 행동을 납득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람은 절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방유는 황제의 요구를 받자 네 글자를 써냈다.

<대적찬위大賊簒位>

큰 적이 나라를 훔쳤다!

방유가 적은 글은 세상에 유명해졌고, 황제는 크게 노하여 방유를 감옥에 가두었다.

“죽이셔야 합니다.”

도광효가 늘 말했으나, 황제는 미루고 또 미루었다.

방유는 황제의 스승이었다.

지금의 황제는 방유가 황실과 인연을 맺어 가르쳤던, 첫 번째 제자였던 것이다.

“살려두고 싶어 살려두는 것은 아니다.”

황제는 도광효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었다.

“내 목적은 나라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죽일 수 있어도, 모두를 죽일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부강한 나라지, 백성이 모두 사라진 나라는 아니다.”

**

동창 위사 두 명이 방유를 데리고 왔다.

이십 년 가까운 투옥.

방유는 깡말랐고 초췌했다.

기개 높고 당당하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여 흩어 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밝은 빛을 뿜었다.

“큭큭! 큰 도적이 황제의 위에 앉아 계시는구려.”

늙어 거친 목소리지만, 깃든 힘과 기개는 여전했다.

“지금은 변방을 훔치오. 많이 훔쳐 나라를 부강케 하려고.”

황제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금 황제는 변방을 복속시켜 나라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해야, 스승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떠나간 백성의 마음도 다시 훔칠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하하.”

방유가 갈라진 목소리로 껄껄 크게 웃었다.

“재밌구려. 하하. 훔치고, 다시 부강하게 하다니? 전대 황제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지 않고, 망하게 하려 하셨다는 뜻이신가? 하하하.”

“어떤 방법이 좋겠소, 도연?”

황제가 도광효를 보았다.

황제는 언제나 도광효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도광효가 스스로 밝힌 법명인 도연이란 명칭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도광효가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십족을 멸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구족이 아니라 십족?”

구족이란 본인을 중심으로 하여 구 대에 걸친 친족을 뜻한다.

위로는 고조부모까지의 사 대와, 본인, 그리고 아래로 현손까지의 사 대를 뜻하는 것이다.

거기에 스승과 문하생, 같이 살던 이웃까지 더하면 십족을 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방유의 구족은 이미 처형되었던 바, 오늘은 십 족까지 데리고 와서 방유의 뜻이 여전히 굳건한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도광효가 손짓을 보냈다.

다른 동창의 위사들이 수백 명의 사람을 줄줄이 끌고 왔다.

방유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와 살았던 마을의 주민, 심지어 집안에서 부렸던 노비가 같이 있었다.

“도광효! 네놈은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

도광효는 방유를 보지 않고 황제만 보았다.

황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제자까지라? 그럼 나도 저곳에 함께 있어야 하려나?”

“황상께선 하늘의 아들이시니 이미 인간 세상을 벗어나셨습니다. 어찌 인간계의 인연에 구속받으신단 말입니까?”

“하하. 도연의 말솜씨 역시 이미 인간계를 한참 벗어났군.”

황제가 껄껄 웃었다.

“나흘간 자지 못해 피곤하던 차에 위안이 된다. 한데 한 명이 빠져 있지 않은가?”

황제가 모아 놓은 수백 명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사부의 마지막 제자가 있다. 나랑 동갑이었으나 막내였지. 아마도 나의 제거를 가장 먼저 조카에게 상소 올렸다고 들었다만. 이름이, 음, 사정후?”

도광효가 허리의 검을 뽑았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자를 또 죽일 순 없죠.”

도광효가 방유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정후에 대해서는, 매우 재밌는 인연이 있으니 차후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황상!”

“저, 정후가 이미 유명을 달리하였다고?”

방유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광효는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시오. 이제 곧 볼 수 있을 거요. 여기에 있는 자들과 함께 말이오. 지금부터 이렇게 하려하오. 우선은 한 명.”

도광효가 검을 휘둘렀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명이 목에서 피를 뿜었다.

“아악. 아버지!”

옆에 있던 처자가 놀라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양 노사!”

도광효는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노인은 도광효가 젊은 시절에 그의 집안 대소사를 관리해주었던 양원칙이었다.

“그리고 일다경마다 두 배씩 숫자를 늘려서 벨 거요. 다음엔 두 명이 되겠지?”

도광효는 검을 돌려, 오열하는 양언칙 딸의 목에 겨누었다.

여자의 옆에는 엄마를 붙잡고 울부짖기 시작한 양언칙의 어린 손녀가 있었다.

“걱정 마라, 아가야. 이제 일다경 후엔 네 엄마와 나란히 편안해질 거다. 조손이 함께 하니 저승길이 외롭지 않겠구나.”

끔찍한 짓이 황제의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좌우로 도열한 문무관료들은 한 마디의 말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가 침묵이었다.

황제가 길게 하품했다.

“도연의 일처리는 언제나 너무 과격해. 지켜볼 게 있어 나흘이나 눈 뜨고 있었더니 피곤하군.”

방유가 소리쳤다.

“나으리는 최소한의 인륜조차 무시하는 자를 신뢰하오?”

“그러나 도연의 일처리가 효과적이란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

황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방유를 보며 웃었다.

“스승님은 도연의 앞에서 끝까지 고집부릴 자신이 있소?”

“아아!”

한숨을 길게 내쉬며 방유는 눈을 감고 말았다.

“미안하오, 모두들! 나 하나만 뜻을 꺾으면 여러분은 살겠지? 그러나 나 하나만이면, 또 다른 나 하나만이 생길 거요.”

눈 감고 있는 방유의 온몸은 쉬지 않고 떨렸다.

“도적이 인정을 받으면, 천하엔 도적이 들끓게 되오. 훔치기만 하면 무엇이든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이로 넘칠 거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방유가 입을 크게 벌렸다가 힘껏 닫았다.

“하하! 어림없지.”

도광효가 지풍을 튕겼다.

혀를 깨물려 했던 방유는 마혈을 짚여, 벌렸던 입을 제대로 닫지 못했다.

도광효가 빙그레 웃었다.

“죽는 건 너무 쉽잖소?”

“으으!”

“한 명 한 명이 뜻을 꺾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했나? 그럼 한 명 한 명이 죽어가는 건 끝까지 봐야지. 그렇잖소, 방 학사?”

방유의 뺨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려내렸다.

황제가 다시 한번 길게 하품을 했다.

“뭐야, 이거? 상황이 왜 이따위로 전개되는 거지?”

황제의 눈은 눈앞 태화전의 상황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주 먼 곳의 상황!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황제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었다.

“일다경이 지났습니다, 황상! 두 명의 목을 벱니다.”

황제는 귀찮다는 듯 손짓만을 보냈다.

눈앞에 아닌 곳을 보던 황제가 돌연 분노하여 외쳤다.

“포옥경! 네 이놈!”

도광효의 눈이 빛났다.

영문을 몰라 대답하려는 동창의 위사들에게, 도광효는 왼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답할 필요 없다. 황상은 잠시 이곳에 계시지 아니하다.”

도광효는 오른손으로 쥔 검을 휘둘렀다.

피가 튀었다.

여인과 그 딸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마혈이 짚였지만 아혈은 짚이지 않은 방유가 소리쳤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대관신료들은 저 무도함을 보고도 어찌 입을 다무시는가?”

“약속은 지킨다. 그러니까 다음 일다경 후엔 네 명이다.”

도광효가 검에 묻은 피를 옷자락에 닦았다.

“계속 지켜볼 거요, 방유? 마음을 꺾어서 이 불쌍한 사람들을 구할 생각은 없으신가?”

“연왕! 진정으로 하늘의 벌이 두렵지 않단 말이오?”

“황상께 말해도 소용없소. 황상은 이곳에 계시지 않아.”

도광효가 다시 웃었다.

“먼 곳에서 일하고 계시오. 포악한 종족! 무림인이란 자들로부터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

“포옥경! 네 이놈!”

포옥경의 입이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로 외쳤다.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태명?”

“무엄하다. 네가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아니란 걸, 이미 알지 않았느냐?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마땅한지도 알 것이다.”

태명의 어기전혼이 빙의되자, 포옥경의 생각이 흩어졌다.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대적찬위! 대학자 방유가 선언했었지? 지금… 그분을 괴롭히고 있다는 거냐?”

“내 생각까지 침입할 수 있다고? 더는 허락하지 못한다.”

태명이 소리쳤다.

사도명은 그의 마음이 검은 장막으로 가려지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포옥경의 마음을 억지로 열었던 사도명이지만, 태명의 마음은 포옥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심마문?”

“천 년 간 마음만을 연구했다. 마음에 관계되는 무공이라면 어느 것도 심마문을 능가할 순 없어.”

포옥경의 얼굴이 웃었다.

“생각을 막았으니 말로 설명해 줄까? 방유는 곧 죽을 거야. 너희도 곧 죽는다.”

사도명이 소림사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은교교가 가장 먼저 사도명의 뒤로 와서 섰다.

연자강이 왔고, 법허가 왔으며, 십구 성좌를 움직이는 장문인들이 모두 왔다.

그들은 모두 제갈청미로부터 어기전혼과 빙의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였다.

“개봉부 부윤 포옥경은 폭정을 일삼고 있소.”

옥현신개는 어깨가 찔렸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개봉부에 우리 개방의 수하들이 늘었지. 내가 개방 문도의 수가 는 것을 기뻐할 것 같소? 아니면 슬퍼할 것 같소, 황제?”

포옥경의 몸이 부들부들 거칠게 떨렸다.

“하나같이 무엄한 것들! 황제가 되고 나서 생각했다. 고통 받는 백성들을 기쁘게,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란 대체 무엇일까?”

“폭정을 일삼는 신하를 내려, 고통을 주는 것이 귀하가 내린 결론이오, 황제?”

“과정일 뿐이다.”

포옥경의 눈빛은 형형했다.

“황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무림의 폭도들을 없애면 백성의 고통은 덜어지겠지?”

구양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 쓰레기 같은 결론이 어디에 있소, 황제?”

“황제가 되기 전부터 생각했다니까. 도연에게 방법을 찾게 했지. 아수라혈교와 삼대마문. 하하하. 도연의 일처리가 언제나 효과적이란 걸 부인할 수가 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도명의 눈이 이글거렸다.

“당신의 그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나?”

“피를 흘리지 않고 종기를 잘라낼 방법은 없다. 세상 절반의 고름을 없애, 세상 절반의 사람이 평안해진다면 의미가 있겠지?”

“언제까지 저 헛소리를 듣고만 있을 겁니까, 맹주?”

구양걸이 커다란 주먹에 내공을 실은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

“허락해 주신다면, 당장 저 머리통을 부숴 입을 막겠소.”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포옥경을 죽인다고 태명이 죽지는 않소.”

“이 몸은 천자이다. 경배하고 존중하라, 이놈!”

“새외의 오대마문과 우내의 삼대마문. 그들을 찾아내 힘을 합하고, 그 힘으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맞나?”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내 결심은 이미 알 터! 모든 일이 끝나면, 지옥문도 제거된다.”

포옥경의 입이 빙그레 웃었다.

“사냥을 끝난 개는 삶아져서 먹이가 되는 법이지.”

“그렇다면 여와방은?”

장내의 모든 이들이 처음 듣는 문파의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여와방? 그런 문파가 있나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어요.]

여와(女媧)는 고대 전설 속 삼황 중의 한 명이다.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뱀이었던 반인반수의 신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포옥경이….”

사도명은 전음이 아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육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저기 황제에게 빙의된 포옥경이 아니라, 적암마계주 포옥경이 생각하는 걸 읽었소.”

사도명은 포옥경 속 황제의 전혼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황제가 되기 전, 변경의 번왕일 때부터 이 사람은 여와방이란 걸 만들어 자신이 교육시킨 여자를 무림에 풀었던 모양이오.”

사도명의 마지막 말은 전음으로 은교교에게만 들렸다.

[교교. 그대의 어머니 은요진 또한 여와방의 일원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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