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82화 (82/168)

082화. 일의생멸(一意生滅)

“밀 소림?”

포옥경이 은교교의 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소림 제자들이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방 선사가 환하게 웃었다.

“불화 사조께서는 성불하신 겁니까, 맹주?”

“다행스럽게도.”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계속 백호위의 눈에 머무르고 있었다.

“좋다. 계속 생각하라. 태명의 정체가… 그랬던 건가? 황제가 무림을 없애려고 했기에, 이번의 재액이 이토록 무섭고, 피할 수단이 없었던 것인가?”

백호위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만둬.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으으.”

“아수라혈교의 잔당을 흡수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던 거구나.”

사도명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건 뭐지? 은…요진?”

포옥경이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백호!”

“으아아!”

백호가 흡사 절규와도 같은 고함을 질렀다.

사도명조차 깜짝 놀라서 백호의 목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백호 위의 얼굴에 굵고 가는 균열이 빠르게 번지더니, 이윽고 그의 몸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봉황금제입니다. 파천봉황신공의 일부죠. 필요할 때 스스로 죽게 만들어, 비밀의 누설을 막는 장치입니다.”

제갈청미가 외쳤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균열이 번져 가던 모양이….”

사도명은 균열의 모양새가 봉황의 그림과 닮았음을 떠올렸다.

그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스스로 죽을 생각이냐? 아니라면 어서 말해라. 네 몸속에도 있을 봉황금제를 어떻게 하면 해제시킬 수 있지?”

주작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맥없이 웃더니, 고개를 돌려 포옥경을 보았다.

“약속, 지켜주십시오. 저희 가족은 죄가 없습니다, 부윤.”

주작위의 몸에서도 봉황 형상의 균열이 만들어졌다.

“어리석은!”

콰아-앙!

주작위의 몸이 굉음을 토하며 산산조각 폭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사도명의 몸은 주작위의 옆에서 사라졌다가 포옥경의 바로 앞에 있었다.

놀란 포옥경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 무슨 신법이?”

사도명의 신법은 흡사 공간을 건너뛰는 듯한 모습이었다.

법허가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듯한 표정으로 기뻐했다.

“아아. 금강부동신법이다! 이 역시 대반야능력으로 시전할 수 있는, 우리 소림의 실전되었던 무공이다. 실로 소림의 복이구나!”

포옥경은 놀랐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은교교가 여전히 잡혀 있었다.

“조화무제가 강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솔직히 이 정도라 생각하진 못했다. 하지만 내 손에는 아직 인질이 있고… 헉!”

포옥경이 비로소 당황했다.

그의 오른손에 잡혀 있던 은교교가 어느새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교교는 사도명의 손에 잡힌 채 이십여 장 떨어진 연자강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다친 곳은 없소?”

사도명이 은교교의 마혈을 풀어주며 몸을 살폈다.

“잘도 사람 속을 애태우더니, 이제야 겨우 나타났네요, 당신.”

“사정이 많았소. 시간이 멈춘 곳에 있었지. 자강과 함께 잠시 쉬시오. 백호위로부터 당신 어머니의 일을 읽어냈소. 그 일을 저자로부터 마저 알아내고 오겠소.”

은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명을 보는 포옥경의 표정은 흡사 귀신을 보는 듯했다.

그는 보이지 않게 움직였고, 포옥경의 능력으로는 그 종적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포옥경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혼돈 마인들아! 저놈을 공격해!”

명령은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혼돈마인들조차,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온몸이 폭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퍼퍼-퍼퍼퍼펑!

[더 강해진 거냐?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질 거냐?]

연자강의 묻자 사도명은 웃었다.

[걱정마. 혼자만 강해지지는 않을 테니까.]

사도명이 포옥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몇십 장이 아니라 몇백 장의 거리도 단숨에 건너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굳이 걸었다.

천천히 걷는 걸음 하나하나에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 걸음은 마치 지난 일 년의 일로종횡 같았다.

걸을 때마다 사도명은 강해졌고 천하인들이 뭉쳤었다.

한없이 커져가는 압력이 포옥경의 몸과 마음을 억눌렀다.

“이, 이래서 말씀드렸는데! 한시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고….”

포옥경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땀으로 변해, 마치 빗물처럼 흘렀다.

“그래, 계속 생각해라.”

사도명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은교교의 어머니, 은요진! 떠올려라. 아니, 태명에 대한 것 말고! 그가 이십 년 전 조카를 해치고 황위에 올랐으며, 무림을 없애서 후환을 제거한단 생각을 가진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포옥경은 백호위가 외쳤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사도명의 생각이 자신의 머리에 들어와서 헤집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도명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포옥경은 이와 비슷한 감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옥문주, 아니 황제가 자신의 머릿속에 어기전혼을 보내올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 내 생각을 빼앗아 가게 둘 것 같으냐?”

포옥경은 시선을 사도명으로부터 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이 동하여 생성하고, 버려서 소멸시킨다. 하나의 뜻이 생성과 소멸을 모두 관장하기에….”

포옥경은 혼돈안을 끌어올려 사도명을 조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사도명의 몸에 깃든 끝 간 데 없는 내공을 확인하고는 절망하고 말았다.

지하에서 나흘 동안, 사도명은 이미 불화의 내공 태반을 자신의 몸에 흡수한 것이다.

“일컬어 일의생멸이라 한다.”

사도명의 눈이 금빛을 뿜었다.

“저항은 소용없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절망만 해. 떠올려라. 너의 잘못을! 지옥문의 죄과를! 그리고 교교의 어머니에 대한 것을.”

“이, 이 힘은 대체 무엇이냐? 무엇이기에 내가 저, 저항할 수 없는 것이냐?”

사도명은 계속 다가와서 결국 포옥경의 앞에 섰다.

“창천사해의 융합이자 궁극! 일의생멸은 시작이며 끝이다.”

포옥경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지만 시선을 돌리지는 못했다.

“나, 나는 적암마계의 주인이다. 절대로 허,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으으.”

“허세는 소용없다. 너의 마음은 모두 읽혔다. 너는 비겁하다.”

사도명이 오른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무섭지? 백호위와 주작위에게 죽으라 명령을 내렸으면서,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지?”

“그, 그런….”

“가족을 인질로 잡았던 거구나? 역모죄를 덮어씌우고,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도 했구나.”

“으으으! 내… 내 생각을 읽지 마-! 내 머리에서 나가!”

고함을 지르는 포옥경의 몸 뒤로, 붉은 색 봉황의 그림자가 활짝 피어올랐다.

“하나는 스스로 힘을 기른 단전에서 피워올린 기운인 거고!”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자, 포옥경의 단전이 갑자기 폭음과 더불어 폭발했다.

꽈-앙!

붉은 봉황의 한쪽 날개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며, 사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주입된 기운! 백회에 넣어 놓은 거 맞지?”

퍼-엉!

이번에는 포옥경의 정수리가 폭음을 내면서 터졌다.

일의생멸.

사도명은 뜻으로 포옥경의 몸속에 응축된 강기를 생성시켰고, 그것을 폭발까지시킨 것이다.

혼돈마인을 터뜨렸던 방법과 조금의 다름도 없이 동일했다.

“끄으으-!”

입과 코와 눈에서 피를 토하며, 포옥경이 몸을 떨었다.

그가 만들었던 봉황의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포옥경이 부들부들 떨면서 사도명을 보았다.

“저항할 방법이 더 있느냐? 뭐든지 시도해라. 부숴주마.”

“…사, 살려 주십시오.”

사도명이 큰소리로 옥현신개를 불렀다.

“장문인이 말해 주시오. 개봉에서 부윤의 평판은 어떠합니까?”

“빼앗아 가는 것이 많아 백성은 어려운데, 개봉부 관청의 잔치는 끝날 줄 모릅니다.”

옥현신개의 답변이 끝나자, 포옥경의 몸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저, 저를 죽이면 존좌께서, 화, 황상께서 노하실 겁니다.”

“지옥문주는 나중에 노하겠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노했다. 어떤 식으로 죽을지 말해.”

“으으. 살려 주십시오. 알고 있는 건 뭐든 말하겠습니다.”

“말하지 마. 생각만 해라. 말은 거짓을 씌울 수 있지만 생각은 그럴 수 없지. 모든 걸 생각해라. 네 뒤에 있는 자! 존좌든, 황제든!”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상관없다. 그자가 널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 다 생각해.”

**

천하에서 가장 화려한 곳.

하늘의 아들이어서 천자라 불리는 인간의 거처.

북두성의 북쪽에는 천제가 사는 자미원이 존재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중심.

인간은 하늘의 모습을 본떠서 지상에서 궁궐을 만들었다.

자미원을 본떴기에 ‘자(紫)’라 불리고, 함부로 다가설 수 없기에 ‘금(禁)’이라 불린다.

당대의 황제는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의 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금성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년 전에 완공된 자금성에 들어갔다.

암살자가 숨을 수 있을까 염려하여, 나무는 심지 않았다.

바닥에는 여러 겹의 벽돌을 겹쳐 깔아, 아무리 조심해서 걸어도 소리가 나게 하였다.

천 개가 넘는 방.

밤에 어느 곳에 잠드는지를 모르게 하여, 궁중 내부까지 들어올지도 모르는 절대고수의 암살마저 방지했다.

황제는 환관 중의 무공 고수로 친위대를 만들었다.

그들 모두에게 봉황금제를 심어 자신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동창의 탄생이었다.

동창은 황제 직속으로, 관료 누구나 사찰하고, 체포하거나 죄를 물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황제가 발행하는 봉황패가 그들의 특권을 증명했다.

그리고 전대의 황제, 즉 자신의 조카를 도왔던 자들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처형했다.

능력이 있는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려놓고, 인질로 위협하여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들은 황실의 사람들에게 미망노(未亡奴)라고 불렸다.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아직 죽지 못한 노예라는 의미였다.

미망노는 어디에나 있었다.

황군 속에도, 심지어 동창 속에도 미망노가 존재했다.

도광효란 자가 그들을 통제했다.

황제는 대신과 관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주변에 인(人)의 장막을 두르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만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황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도광효였다.

도광효는 스스로 승려라 했다.

하지만 어느 사찰에서 정식 승적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모든 관료와 대신이 황제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거쳐야만 했다.

천하는 언제나 변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곳이 황실이다.

황제는 지금 태화전에 있다.

평소 건청궁에 머물며 외조로 잘 나오지 않는 황제가 친히 나선 건 일이 중대하기 때문이었다.

중신들은 문관과 무관으로 나뉘어, 좌우로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옆에는 도광효가 서 있었다.

“오늘은 결정해야 합니다. 너무 오래 시간만 끌었습니다.”

황제가 도광효를 보았다.

도광효는 불경스럽게도 황제의 용상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허리에 장검을 찼다.

하지만 대신들은 아무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황제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 도광효라는 사실을, 황실의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황제의 눈빛은 몽롱했다.

현재 앉아 있는 태화전이 아니라 아주 먼, 현실이 아닌 곳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라.”

황제가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도황효가 좌우로 도열한 대신 관료들을 보며 외쳤다.

“방유를 데려오라.”

**

방유는 대학자였다.

그는 지금의 황제가 번왕이었을 때, 제자들과 함께 전대의 황제에게 그의 야욕을 지적했었다.

- 황상의 숙부는 반역의 상이며, 야심이 큽니다. 당장 왕의 자리에서 폐하고 압송해야 합니다.

전대의 황제는 방유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방유는 오히려 벌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은 벼슬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방유가 예견했던 역모가 일어났다.

지금의 황제가 조카의 자리를 없애고, 옥좌를 빼앗았다.

새로운 황제는 방유를 회유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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