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79화 (79/168)

079화. 태명의 정체

법허가 몸을 날렸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지옥문은 잔혹했다.

주변에 보이는 혼돈마인.

그들의 처참한 모습은 평생을 수련에 바쳐 온 고승의 심성조차 뒤집어놓을 정도였다.

본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옥문에 의해 신지를 잃었고, 사람다운 모습과 행동, 생각조차 모두 잃었을 것이다.

연합군은 지금까지 계속 사람에서 괴물로 변한 존재와 싸웠다.

염라마인이 그랬고, 혈강시가 그랬으며, 지금은 혼돈마인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너희 욕심을 위해 희생시키느냐?”

소림사의 무공 중에서 가장 살기가 강한 서천여래가 펼쳐졌다.

법허의 오른손이 혼돈마인들 중 가장 앞에 있는 자를 노렸다.

콰아아-

“고통은 짧을 것이다. 마물로 오래 살기보단 짧은 고통만으로 열반하기를. 아미타불.”

염라마인은 조화심의 전파를 통해 회복시킬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혼돈마인은 달랐다.

적혼혈기에 혼돈폭강까지 씌어,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지옥문은 혼돈마인을 만들 때, 그 점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쩌-엉!

굉음과 함께 혼돈마인 한 구의 가슴이 폭발했다.

가슴이 뚫렸음에도, 혼돈마인은 고통의 표정을 떠올리지 않았다.

“캬아앗!”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양손을 뻗어 법허의 양어깨를 쥐었다.

“!”

법허에게는 다리가 없다.

혼돈마인에게 어깨를 잡히자, 그는 벗어나지 못하고 얼굴만 일그러뜨렸다.

“가, 가슴이 뚫렸음에도 반격을 한다고?”

바로 옆에 서 있던 소림 제자 공지가 철장을 휘둘렀다.

“사숙조!”

까앙!

공지가 휘두른 철장이 혼돈마인의 팔뚝에 명중했지만, 뼈나 살점이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르르!”

혼돈마인이 핏기 가득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이렇게 강하다니!”

공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지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파, 팔뚝이 아니라 금강석이다. 이미 죽은 시, 시체인가?”

혼돈마인이 법허의 어깨를 잡았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 곧장 팔을 휘둘러 공지의 머리를 노렸다.

공지는 피하지 못했다.

혼돈마인의 눈에 떠오른 핏발이 맹렬히 회전하며 공지의 몸과 마음을 흐트러지게 했다.

“푸하하. 혼돈마인에 심마문만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멀리서 포옥경이 소리 높여서 껄껄 웃었다.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눈빛은 심마문의 혼돈안이다. 혼돈폭강에 혼돈안이 섞였기에, 혼돈마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공지는 혼돈마인의 두 손이 자신의 머리통을 부수러 오는데도 움직이지 못했다.

혼돈안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그의 정신을 빼앗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세 갈래의 힘이 날아와 혼돈마인을 덮쳤다.

츠카칵!

세 갈래 중의 두 갈래 힘이 혼돈마인의 손목을 잘랐다.

남은 한 갈래의 힘은 혼돈마인의 목을 갈랐다.

세 갈래 힘은 삼태극 문양의 회오리로 변했다가 사라졌다.

혼돈안으로부터 풀려난 공지가 몸을 돌리면서 외쳤다.

“삼안신창입니까? 서문세가의 분이 도와주셨군요!”

서문용맹이 삼안무류의 신법을 펼치면서 날아와, 공지와 법허의 사이에 내려섰다.

“괜찮으십니까, 부맹주님? 괜찮으십니까, 공지 선사?”

“아미타불.”

법허가 진기를 다시 뿜어 두 발처럼 몸을 떠받쳤다. 그는 서문용맹을 향해 합장했다.

“빈승은 제 사대의 맹주님도 모셨소. 삼안신창 서문광님의 환생을 보는 것 같아 기쁘구려.”

서문용맹이 내공의 창을 등 뒤로 돌리며, 남아 있는 수많은 혼돈마인을 보았다.

그의 안색은 밤하늘처럼 어둡게 가라앉았다.

“부맹주께서 가슴을 부숴놓지 않으셨다면, 삼안의 창이라도 놈을 베지 못했을 것입니다.”

혼돈마인은 그 정도로 강했다.

포옥경이 다시 한번 웃었다.

“하하하. 제법이구나. 그러나 너희 같은 고수가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까? 일천팔백 구의 혼돈마인을 당해낼 자신이 있느냐?”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서문용맹이 또 다른 혼돈마인을 노리며 날아갔다.

“용기란 끝까지 싸우고 멈추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승리는 우리 것이다.”

허공에 세 개의 눈이 나타났다.

신창의 회오리!

서문용맹이 삼안신창으로 새로운 염라마인을 노릴 때, 돌연 그의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잠시만요, 서문 소가주.”

아홉 마리의 용이 허공에서 나타나, 서문용맹이 내쏜 신창의 앞을 막았다.

꾸워어-엉!

콰콰콰콰콰콰쾅!

“무량수불!”

도포를 걸친 도사 한 명이 서문용맹의 앞에 나타났다.

“뉘십니까? 왜 막는 겁니까?”

“운학이라 하오.”

곤륜파는 연합군의 가장 외측에 있었다.

그러다가 서문용맹이 두 번째 혼돈마인을 공격하자 돌연 그의 앞을 막은 것이다.

“곤륜의 장문인이십니까?”

법허가 미간을 찡그렸다.

“운학 장문인. 지옥문은 곤륜파가 무림맹을 배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었소. 설마 그것이 거짓이 아니었단 게요?”

“그것이 아니라 제가….”

운학자가 몸을 돌리면서, 구룡강림을 다시 거뒀다.

“이 아이를 압니다.”

운학자가 보는 대상은 또 다른 혼돈마인이었다.

운룡대구식 중의 구룡강림을 자신의 몸 주변에 한정하여 돌리면서 운학자가 혼돈마인에게 물었다.

“장휴! 네가 왜 거기에 있는 것이냐?”

**

장휴는 곤륜파의 제자였다.

법명을 받지 않은 외문의 제자로, 곤륜산의 경비를 담당했었다.

장휴는 삼 년 전 아수라혈교가 일으킨 대혈겁에서 아주 많은 피를 보았고, 동료를 잃었다.

동문의 제자들은 더 없이 처참하게 적들의 손에 죽었다.

절망과 슬픔, 그리고 좌절.

그 사건 이후에 장휴는 무림에 뜻을 접었다.

장휴는 무과에 응시했고, 급제하여 관직에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운학자는 크게 기뻐했다.

떠나는 장휴를 위해 성대한 환송식을 열어주기도 했었다.

“대체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운학자가 내공을 담아 외쳤다.

항마의 효험이 있는 곤륜파의 진기가 머릿속을 두드리자, 장휴의 눈빛이 변했다.

“캬앗!”

장휴는 운학자의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공격했다.

눈빛에서 혼돈안이 일어나 운학자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혼동폭강이 운학자의 온몸을 단숨에 뒤덮었다.

“이놈! 정신 차리거라!”

운학자는 혼돈안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의 몸 주변에서 맴돌던 구룡강림이 혼동폭강을 분쇄하며 앞으로 쏘아나갔다.

꽈드드등!

폭음과 더불어, 운학자는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앞쪽에서는 먼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어올랐다.

“이, 이런 터무니없는.”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운학자는 일그러진 장휴의 얼굴과 그의 두 발을 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 걸음밖에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장휴는 계속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승부를 내지 못한 동수!

“무량수불. 이 결과를 정말 나더러 믿으라고?”

장휴는 곤륜파의 제자였고, 당연히 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일반 제자의 기준일 뿐, 장문인과 일대일로 겨룰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너는 관부에 들어 대장군이 된다고 떠났다.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냐, 장휴?”

“의문이 많았어요.”

은교교가 말했다.

그녀는 포옥경이 스스로 일천팔백 구라고 밝힌, 혼돈마인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지옥문의 총단은 대체 어디 있기에 개방의 정보망에 잡히지 않을까? 수많은 괴물! 그 재료가 되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공급되는 것일까?”

연자강이 은교교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은 소저. 저도 이제야 겨우 의문을 풀었습니다.”

포옥경이 빙그레 웃었다.

“하하하.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다면, 그건 멍청이겠지?”

포옥경은 개봉부의 부윤이었다.

백호위와 주작위는 모두 관군의 병갑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봉황패는 황제만이 친히 명령하여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정황이 한 곳을 가리켰다.

믿을 수 없는 결론이었지만,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너, 설마 황군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그랬던 거냐?”

운학자가 장휴를 보며 물었다.

“크르르! 캬앗!”

장휴가 괴성을 지르더니, 그대로 운학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운학자가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고오오-!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승천하듯 일어났다.

운룡대구식은 모두 아홉 개의 초식으로 이뤄지지만, 지금 운학자가 선보이는 초식은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교교와 법허 등은 그 초식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은교교가 마음속으로 낮게 설청산을 불렀다.

설청산이 처음 선보였던 무공.

운룡대구식의 마지막 완성.

운룡십천식이라 표현해야 마땅한, 천룡일세의 공격이 운학자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츠콰콰콰쾅!

가공할 힘의 회오리가 장휴의 몸을 하늘 높이 날렸다.

장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먼지로 바스러졌다.

“미안하다.”

운학자는 장휴의 고통이 길지 않았길 바라면서, 몸을 돌려 포옥경을 보았다.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

제자를 자신의 손으로 해친 슬픔이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황실이었나? 지옥문이란 것의 정체가 황실이었다는 건가?”

황궁은 은밀한 곳이다.

황군에 자원한 병사들 중에서 차출하여 마인을 만들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겨우 알았구나?”

포옥경이 계속 웃었다.

“알았다면 이제 어떤 행동을 취해야 대역죄에 해당하지 않는지도 알겠구나. 하하하.”

무림 연합군의 모두가 백호위와 주작위가 각각 들고 있는 봉황패를 보았다.

지옥문의 문주, 태명.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함부로 이름 부를 사람이 아니라 말했다.

자신을 태황이라고 칭했다.

“극락문이라고 스스로를 포장했던 지옥문. 우리 제갈세가는 지옥문의 최초 활동 시점이 대략 이십 년 전임을 밝혀냈어요.”

제갈청미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포옥경도 제갈청미를 보았다.

“더 알아낸 건?”

“이십 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황제가 바뀌었죠. 황제의 숙부가 조카를 몰아내고 새 황제가 되는 일이 벌어졌었죠.”

무림과 황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갖고 있다.

무림은 황실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고, 황실도 마찬가지였다.

황실과 마찬가지로 무림도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 원한을 품으면 무림도, 황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두 집단은 서로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제갈청미가 은교교를 보았다.

“새로운 황제.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알고 있니?”

은교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사람들은 황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황제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사용하지 못할지를 알아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태(兌)! 밝다는 뜻의 태!”

“똑같이 밝다는 의미에는 명(明)이라는 글도 있지.”

은교교의 눈이 커졌다.

장내에 있는 무림연합군들 중, 지옥문주의 이름을 아는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태는 밝다는 뜻이며, 명(明) 또한 밝다는 뜻이었다.

태명!

지옥문주 태황.

“자신을 왕 중의 왕인 황제라 불렀지. 이제 보니 그랬던 것이구려. 아미타불.”

법허가 불호를 외웠다.

포옥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존좌께서 뉘신지 알았다면, 당장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제갈청미가 한숨을 쉬었다.

“맹주님께서 여기에 계셨어야 했는데.”

“지금으로선 우리끼리 싸울 수밖에 없지, 뭐!”

은교교의 말에 제갈청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얘기가 아냐. 맹주님과 지금의 황제 사이엔….”

“푸하하. 우리가 누군지 알고서도 무릎 꿇지 않는 자들이다. 대역죄인이다. 더 이상 시간을 줄 필요가 없겠구나.”

포옥경이 말을 끊었다.

삐이익!

백호위와 주작위가 동시에 호각을 불었다.

혼돈마인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앞다투어 무림연합군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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