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78화 (78/168)

078화. 마계주(魔界主) 출현

- 그러게! 너희는 왜 일 년 동안이나! 하하하.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웃음소리였다.

법허가 옆을 보았다.

깔끔하게 잘려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화괴 한 구의 머리가 입을 벌리고 껄껄 웃고 있었다.

콰-앙!

구양걸의 발이 웃고 있는 머리를 부쉈다.

불타는 숯이 조각나듯, 벌겋게 불기 머금은 머리통이 하나하나 벌건 재처럼 흩어졌다.

“본래 사람의 머리다. 죽고서도 고통을 당해야 한단 거냐? 대체 어떤 조작질을 해 놓았냐?”

구양걸이 이를 갈았지만, 웃음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너희는 마땅히 의심해야 했다. 하하하. 왜 적암마계에서 버린 물건들만 여기에 있는지!”

“물건?”

츠카칵!

화운악의 검이 두 번째의 머리를 네 조각으로 나눴다.

“본래 살아있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을 버린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 지옥문의 방식이라고?”

잔혹한 죽음일수록 오히려 고통은 덜한 법이다.

무림연합군의 사람들은 지난 일 년간 지옥문과 싸워오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적이라 해도,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자비심이라는 사실!

옆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지옥문의 힘이 겨우 이 정도일 뿐인데, 너희는 일로종횡을 왜 일 년이나 계속했을까?”

남궁태보가 주먹을 들어 세 번째의 머리를 부수려 했다.

연자강이 남궁태보의 손을 막으며 한숨을 쉬었다.

“잘린 머리는 많소. 남은 마계의 괴인들도 아직 많고! 우리에겐 태명이 죽은 자의 몸을 빌려 외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소.”

“막을 수 없다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 좋다는 거요?”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인 후, 부서지지 않은 머리를 보았다.

“계속 말하라, 태명.”

“내 이름은 너 같은 놈이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큭!”

연자강의 손에서 올라온 검기가 말하고 있는 머리를 잘랐다.

“쓸데없는 소리까지 지껄이게 두진 않는다, 태명!”

“…너희는 어기전혼이 살아있는 몸만 조종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옆쪽에서 또 다른 저주혈강이 소리쳤다.

연자강은 그곳으로 날아가 저주혈강의 목을 벤 다음, 달랑거리는 목을 자신의 앞으로 들었다.

“그래서? 심마문의 무공이 이젠 죽은 자도 다룰 수 있다. 그 말이 하고 싶으냐?”

“푸하하. 극락문을 맡았던 녀석답다. 말귀가 빠르구나.”

“겁이 나나? 그따위 말조차 직접 나서서 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모든 머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연자강의 앞에 떠 있는 머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다만!”

태명이 고함을 질렀다.

“경고해주고 있다. 함정에 빠진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는 걸 알려주려고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것은 함정이라고 말하는 건가?”

연자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화괴와 빙마, 저주혈강. 오래 두면 물건은 낡는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했던 것은 벌써 이 년 전의 일이다.”

“새로운 시도? 어떤 시도?”

“혈강시에 화, 빙, 강을 모두 갈아 넣었지. 재밌을 거 같지 않나? 적암마계와 적마교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강시라는 건?”

잘린 목은 계속 웃었다.

연자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화괴, 빙마, 저주혈강. 세 종류의 괴물로 우릴 유인하고, 사실은 이 숭산의 바깥에 훨씬 넓은 지옥문의 포위망을 펼치고 있다. 그 말이 하고 싶나?”

“…….”

잘린 목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빙그레 웃었다.

“두려우냐, 연자강?”

머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연자강이 들고 있던 목을 터뜨려 버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져요. 다가오고 있어요. 강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위험도예요.”

대방 선사가 물었다.

“위험은 느껴지지만 얼마나 많은 숫자가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일 천이 넘는 듯하네.”

법허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나같이 저주혈강보다 더 강하군. 아니, 솔직히 비교가 되지 않도록 강해.”

화운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보며 그가 말했다.

“결전의 날을 나흘 후로 선언했다. 지옥문은 빠르게 움직였고, 우린 그걸 짐작하고 더욱 빠르게 대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정을 파 놓았다는 건가? 태명, 혹은 태황, 어느 쪽이라 불리건 대단하다. 실로 대단하구나.”

- 하하하. 비로소 태황 존좌의 위대함을 느꼈다면….

웃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 경배하기를. 무릎을 꿇고 존좌의 발아래 엎드리거라.

법허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향했다.

무림연합군은 적암마계의 삼대 괴인을 거의 제압하고 있었다.

그러니 괴인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은교교도 마지막 저주혈강의 목을 베어낸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그는 몸에 관복을 걸쳤고 머리에는 조관을 썼다.

무사의 복장이 아니라, 조정에 등청하는 관료의 복장이었다.

무림연합군의 무사들은 그 앞을 막지 못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관인의 복장을 한 중년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좌우에 서서 호위하고 있는 두 명.

그들은 관병 차림이었다.

백호와 주작의 문양을 새겨 넣은 병갑을 걸친 두 사람의 손에 각각 옥패가 들려 있었다.

황제가 증명하는 신분패.

관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녔다.

하물며 관병 두 명이 보여주며 다가오는 신분패는 황실에서 직접 발행하는 봉황패였다.

은교교가 후르르 몸을 날려 관리의 앞을 막았다.

“감히!”

미간에 깊은 골이 떠올리면서, 관리가 소리쳤다.

“봉황패를 보고도 앞을 막는다는 건, 황실을 거역하고자 하는 역심으로 보아도 되겠느냐?”

은교교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 자가 누구인지 아는 분이, 혹시 계신가요?”

“그는 포옥경입니다. 개봉부의 부윤입니다.”

옥현신개가 나서면서 말했다.

개방은 개봉부에 총타가 있다.

그들은 동냥 다니는 거지들을 통해 천하의 정보를 모은다.

개방의 정보는 그래서 언제나 믿을 수 있으며, 정확했다.

“이제 내 신분을 알았으니, 봉황패를 향해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겠느냐, 은교교?”

포옥경이 빙그레 웃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포옥경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자, 은교교가 다시 물었다.

“네게서 더러운 냄새가 풍긴다. 마기의 냄새. 흑암의 마녀가 된 후, 난 이 냄새가 더욱 역겹다.”

포옥경이 고함을 질렀다.

“감히 봉황패를 가져온 나를 보고도 무례한가?”

“봉황패는 황실의 상징이다. 그 패를 든 자가 어찌하여 지옥문의 주구인 거지?”

포옥경의 안색이 변했다.

은교교가 오른손을 휘저었다.

흑암의 마녀를 이은 그녀의 몸에는 적암마계의 화, 빙, 강이 모두 존재했다.

은교교는 그중 어떤 기운이라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교교가 내쏜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청상검의 서릿발 같은 검기였다.

“적암의 마녀가 아직도 이런 장난 같은 검기를 사용한다고?”

포옥경의 왼쪽에 서 있던 백호의 병갑을 걸친 자가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뽑은 검을 앞으로 내쏘는데, 사방을 휘어 감는 끔찍한 한기가 일순간에 일어났다.

“소개하지. 그는 관부에서는 백호위 섭인경이라 불린다.”

휘우-우웅!

얼음으로 이루어진 백호위의 검이 은교교의 얼굴을 노리며 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포옥경은 다시 한번 웃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서면 마땅히 다르게 불려야만 하지. 하하하. 그가 바로 적암마계 중 빙계를 다스리는 빙백기주 섭인경이다.”

은교교는 청상검기를 포기하고 다른 내공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라 생각하느냐? 내가 누군지, 너희는 이미 알 텐데.”

은교교는 적암의 마녀였다.

그녀는 빙백진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빙백기주가 펼치는 빙백진기는 은교교가 지닌 빙백진기에 조금도 못지않았다.

오히려 차가움의 정도는 저 깊고 정순했다.

은교교는 차가운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지옥염화를 끌어올렸다.

불길이 빙백진기를 덮어가자 포옥경은 다시 한번 웃었다.

“주작위 하인회 역시 강호에 다른 이름이 갖고 있지! 염화기주! 그의 불꽃을 볼 테냐?”

콰콰콰콰콰콰콰-쾅!

불과 얼음이 서로 뒤엉키며 격돌하는데, 폭음이 일어났다.

“적암마계의 무공들끼리 격돌한다는 건가?”

연자강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화운악도 검을 뽑았다.

한열(寒熱)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교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지 마세요. 이건 저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입니다.”

포옥경이 껄껄 웃었다.

“은교교는 아버지 설청산의 성정을 닮아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다더니 과연! 하하하.”

그가 데려온 두 명의 위사와, 은교교가 뿜는 공격이 거울에 비친 듯 똑같았다.

은교교의 몸은 세 갈래 내공을 동시에 모두 뿜었다.

“너는 단순한 관부의 관료가 아니구나.”

“하하하. 당연히!”

은교교는 화, 빙, 강의 세 가지 내공을 몸 주변에서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포옥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아-!

포옥경은 계속 웃었다.

“적암마계를 이루는 세 가지 내공이 합하여지면, 태초의 모습, 모든 거의 시작인 혼돈이 나타난다.”

포옥경의 몸에서도 강력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 기운의 정체에 놀란 연자강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화, 빙, 강?”

“푸하하. 소개하지. 나야말로 적암마계의 진짜 주인, 마계주! 적암의 마녀가 탄생하면, 그 주인이 될 신분이었지. 하하하.”

포옥경의 몸 주변에서 세 가지 기운이 하나로 합쳐졌다.

일어나는 가공할 기운은 은교교가 쏘는 것과 똑같았다.

심지어 훨씬 더 강력했다.

꽈쩌어-어어어엉!

두 갈래 가공할 힘의 격돌이 사방에 폭풍을 일으켰다.

“스스로를 보호해!”

연자강이 방어막을 펼치며, 뒤쪽에 있는 연합군의 앞을 막았다.

‘소혜를 데려오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다.’

곽소혜는 제갈세가가 마련한 은밀한 곳에 제갈평과 함께 있다.

곽소혜가 왔다면, 연자강이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그녀의 신변을 보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폭풍이 가라앉았다.

은교교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찍힌 다섯 개의 발자국을 보았다.

포옥경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단 일 초의 교환으로 우열이 드러난 것이다.

포옥경이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흑암마계 무공의 궁극! 세 가지 힘이 하나로 더해진 혼돈폭강이라 불리는 것!”

은교교도 혼돈폭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속에 깃든 세 가지 기운도 혼돈폭강의 기초를 마련해 가는 도중에 있었다.

하지만 포옥경의 혼동폭강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달아나야겠어요.]

은교교는 포옥경을 노려보는 한편으로, 연자강과 법허의 귀에 전음을 보냈다.

[무제가 없는 지금, 적암마계주를 당해낼 고수는 우리 쪽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연자강은 강했다.

화운악도 강했다.

하지만 사도명과 비교한다면, 그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옥경이 다시 웃었다.

“달아날 궁리를 하느냐, 적암의 마녀?”

은교교가 내공을 끌어올려서 온몸을 강기로 감쌌다.

“너와 백 초 정도는 겨룰 자신이 있다. 내게는 친구가 많고 너에겐 둘뿐이니, 유리한 건 결국 우리 쪽이 아닐까, 포옥경?”

“하하하.”

포옥경이 오른손을 들었다.

사방에서 소리도 없이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동폭강에 적혼혈기를 섞어서 만든 혼돈마인이다. 얼마나 강할지는, 느낌이 오지? 하하하.”

은교교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연자강과 법허, 화운악, 연합군 모두의 얼굴이 핏기를 잃고 창백해졌다.

은교교는 헤어지기 전에 사도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태명이 말했어. 내가 기대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건 지옥문의 준비가,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뜻일 거야.

사도명의 예측이 옳았다.

지옥문의 준비는 연합군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법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암마계의 삼대 괴인. 그리고 다시 저 수천 구의 혼돈마인과 우리가 싸워왔던 염라마인까지.”

그의 두 눈이 참지 못할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

“너희 스스로의 힘으로는 싸울 수 없는 게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너희의 욕심을 위해서 희생시킬 생각이냐?”

법허는 분노 가득한 일갈을 터뜨리며, 가장 앞에 서 있는 혼돈마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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