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74화 (74/168)

074화. 불귀

호마가 달려들었다.

호랑이의 손톱 모양으로 접힌 호마의 손 그림자 스물네 개가 허공에 나타났다.

화운악은 달려오는 호마의 손을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호마의 두 손이 자신의 심장과 허리춤 반 푼 앞까지 다가온 후에야 움직였다.

바닥에 일곱 개의 발그림자가 나타났다.

단지 그 정도의 움직임뿐이었음에도, 호마의 이십사 광호살조는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휘이-잉!

허공만 가른 호마의 두 손이 파공음을 만들어냈다.

호마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천강칠성보? 화산파 출신인 네가 어떻게 전진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거냐?”

호마의 음성이 전과 달랐다.

화운악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 해도 나를 막을 수 있다는 착각 따위는… 컥!”

고함을 이어가던 호마의 목소리가 돌연 멈추었다.

호마의 가슴에 눈부신 꽃송이가 피어났다.

피는 단지 꽃을 피울 정도 외에는 더 이상 튀지 않았다.

매화영롱검 중의 일섬홍이었다.

“지금의 너는 태황이지? 이미 말했다, 태황! 네가 들어온다면 누구든 죽인다.”

호마의 눈이 자신의 갈라진 가슴을 향했다.

호마의 눈은 고통 대신 의혹을 호소하고 있었다.

“매화영롱검을 심검까지 끌어올렸단 건가? 화산파로서는 터무니없는 고수를 얻은….”

호마의 입이 끝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태황의 혼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멀쩡하던 호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으! 태, 태황 존좌! 나, 나를 죽이려고 일부러 내 몸에 드, 들어왔던 겁니까? 나는….”

호마의 몸은 옆으로 쓰러졌다.

심장이 갈라진 육체는 이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화운악이 옆을 보았다.

대풍마가 화운악과 시선이 마주치자 부들부들 떨었다.

“내 아우들을 모, 모두 죽이다니! 자, 잔인하다!”

화운악은 호마의 검에 뚫린 대풍마의 배를 보았다.

“흑사련의 련주. 그 말은 너희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편이 좋겠는데.”

대풍마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화운악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킨다, 태황. 네가 누구의 몸에 들어오건 반드시 죽여주지.”

“이놈! 내 이름은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모르느냐!”

고함에 놀란 요화빙빙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광혈방의 보주인 칠점사 사태곤이 고함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평소 사태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젠 모두에게 익숙한 목소리!

“태, 태황 존좌님!”

츠카-악!

혈매화가 사태곤의 등 뒤로 피어났다.

화운악이 내쏜 검기가 사태곤의 심장을 단숨에 뚫은 것이다.

“이, 이 자식이 점점!”

사태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주름이 드러내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분노였다.

“네, 네놈은 감히 내 말을 듣지도 않고서….”

“말이 왜 필요한가?”

심장이 뚫려 쓰러지는 사태곤을 내버려둔 채, 화운악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닷새 후, 소림사에서 모든 매듭을 마무리한다. 너희는 어때?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을 작정이냐? 말릴 생각은 없다만.”

요화빙빙이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한 문파의 주인들은 앞다투어 그 자리에서 가부좌했다.

“우, 우리는 당신이 일러준 방법을 써 보겠소.”

“나도 해 보겠다.”

대풍마도 가부좌를 했다.

“정말 이 방법이면 태황 존좌의 혼이 깃들지 않을 수 있는 거지? 해 볼 테니까 제, 제발 목숨만은… 컥!”

대풍마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끄으으!”

호마의 검에 뚫린 복부뿐 아니라, 입과 코에서도 피가 흘렀다.

가슴 부분이 무섭게 부풀어 올라서 금세라도 터질 것 같았다.

“태상 련주님?”

요화빙빙이 놀라서 외쳤다.

“시, 싫어. 거부한다. 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크윽.”

고통스러워하는 대풍마를 보며, 화운악이 대신 설명했다.

“태황의 전혼이 들어오려 하고 있다. 거부하자, 심장을 터뜨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화운악의 두 발이 다시 한번 일곱 개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천강칠성보가 또다시 일어나며, 화운악의 몸은 대풍마의 바로 앞까지 미끄러졌다.

“약속했듯이, 나는 태황의 혼이 깃든 자만 죽게 한다.”

콰-앙!

화운악의 손이 흔들렸다.

대풍마의 가슴에서 강력한 폭음이 일어났다.

“치, 칠절 산수?”

대풍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태황의 것이었다.

칠절산수는 자하강기, 매화영롱검과 더불어 화산의 삼대절기라고 인정받는 무공이었다.

흔들리는 손이 상대의 영혼까지 흩어놓는다고 전해진다.

“스스로를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죽게 두지 않는다.”

대풍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쿵!

한참 날아가 벽에 부딪히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헉!”

떨어진 대풍마가 검은 피를 한 사발 토했다.

하지만 얼굴에 가득했던 고통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고, 고맙소. 정말로 되는구려. 태황 존좌의 전혼을 무, 물리칠 수가 있다니.”

“조화진기를 일부 주입했다.”

화운악이 밀했다.

“조화진기는 모든 사악함에 대한 저항! 널 도와준 건, 최소한의 노력에 대한 상이라 여겨라.”

화운악은 열두 문파의 주인들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모두 보았지? 이것이 지옥문이 너희를 대하는 방식이다. 이용하고, 필요 없을 때는 죽인다.”

죽은 사태곤을 제외한, 열한 개 문파의 주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화운악이 말을 이었다.

“또한 너희가 세상의 사람들을 대해왔던 방식이기도 하지.”

요화빙빙이 물었다.

“저희가 어떤 잘못을 범하며 살아왔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이미 지은 죄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죄를 짓고 뉘우치면, 그 죄가 용서될 수가 있어요?”

화운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 대풍마를 다시 보았다.

대풍마는 어느새 가부좌하고 조화심결을 외고 있었다.

복부의 상처는 여전했지만, 부풀어 올랐던 그의 가슴은 이제 가라앉아 터질 기미가 없었다.

“조화심이란 잘못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반성이다. 또한 앞으로는 바르게 걷겠다는 결의다.”

화운악이 요화빙빙을 비롯한 열한 문파의 주인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진정한 결의에는 하늘과 땅이 반응한다. 나는 길을 제시했고, 남겨진 건 너희의 선택뿐이다.”

“저는 제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지 물었어요.”

“네가 나에게 죄를 짓은 것이 아닌데, 어떻게 내가 용서를 판단할 수 있을까, 요화빙빙?”

화운악의 말은 단호했다.

“사도명이 말하더구나.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것이라고. 또한 그 선택이 만드는 결과도, 마찬가지로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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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봤는데….”

사도명이 말했다.

“가능성은 이제 단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법허 선사가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가능성이라면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게요, 맹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 근방에 있습니다.”

사도명이 눈을 감았다.

“소림사 안에 존재하는 장소. 그런데도 선사께서 간과하는 장소.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소림에 그러한 장소가 없습니까?”

“그런 곳이라면….”

법허 선사도 눈을 감았다.

사도명은 눈을 감고 마음을 두 갈래로 나눈 다음, 다시 각각을 둘로 나눴다.

모두 네 조각으로 나눈 마음을 동서남북으로 분산시켜,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천천히 훑어나갔다.

법허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든 기를 합하여 주변을 살폈다.

‘아! 이건?’

법허가 눈을 뜰 때, 사도명도 마찬가지로 눈을 떴다.

“느끼셨습니까?”

사도명은 물은 다음에 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법허는 뒤를 따르며 한발 늦게 대답했다.

“아미타불. 느꼈소.”

두 사람은 똑같은 방향으로, 날듯이 빠르게 달렸다.

내공을 유형화시킨 진기를 다리 대신 사용하는 법허는, 정말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미타불. 불귀옥이라는 장소가 있소. 소림 내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장소기도 하오.”

두 사람은 소림사 대웅전을 돌아 가장 뒤쪽으로 갔다.

뒤쪽이면서도 가장 구석진 곳이었고, 수풀이 우거져 가기 힘든 장소였다.

수풀을 지니고 탑림을 지나, 다시 한번 더 빽빽한 수풀을 넘어서고 나서야 암벽이 나타났다.

그늘져서 검은 이끼가 가득한 암벽 아래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여기가 돌아올 수 없는 장소, 바로 불귀옥의 입구요.”

법허가 구멍을 가리켰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구멍이지만, 들어가면 아래로 끝도 없는 무저의 공간이지요.”

사도명이 미간을 찡그렸다.

“무저? 바닥이 없다고요?”

“있긴 하겠지요. 아주 한참을 추락하면 나오는 바닥이.”

법호가 불호를 다시 읊었다.

“아미타불. 주변의 벽은 온통 미끄러운 이끼 투성이. 한 번 떨어지면 누구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에 불귀옥이라 불리오.”

사도명이 웃었다.

“재미가 있네요.”

“돌아오지 못하는 깊은 감옥이 어찌 재미있단 말이오?”

“누구도 돌아올 수 없는데, 바닥이 깊고 벽이 미끄럽다는 것은 누가 알아냈다는 겁니까?”

“!”

법허는 단숨에 사도명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미타불. 듣고 보니 과연! 빈승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떨어진 사람이 있었기에, 바닥이 깊음을 알 것이다.

돌아온 사람이 있었기에 벽이 미끄러운 것이 알려졌을 것이다.

“들어가 볼까요?”

사도명이 구멍을 가리키자, 법호는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오.”

“누군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면, 우리 또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법허가 고개를 흔들었다.

“중대한 때잖소? 닷새 후면 연합군이 옵니다. 지옥문과의 최후 결전이 열릴 겁니다.”

“중요한 때이기에 이럽니다.”

사도명이 구멍을 보며 말했다.

“일로종횡의 끝을 소림사로 정한 이유는, 3년 전 패배의 치욕을 명예롭게 씻기 위함입니다.”

“소림을 배려하는 맹주의 마음 에 감사하고 있다오.”

“하지만 지옥문이 왔을 때, 소림사가 없다면 어찌합니까?”

사도명이 다시 구멍을 보았다.

“소림의 제자는 없이, 연합군이 승리한들 잃어버린 명예는 회복되지 못합니다.”

“불귀옥의 안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선사도, 저도, 이 근방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꼈습니다. 오면서 누구도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이 안이 아니겠습니까?”

“알겠소. 같이 갑시다.”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갑니다.”

“하, 하지만, 맹주!”

“선사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중요한 때를 앞두고 있다고! 저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직은 모릅니다.”

사도명이 웃었다.

“저는 삼 년간 지하에 묻혀 있었죠. 깊은 지하의 생황이라면 제법 익숙합니다.

“아미타불. 들어가기 전에 알아두셔야 할 게 있소, 맹주.”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알아두어야 할?”

“소림은 사찰이오. 불문의 도량.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 때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거나, 감추어야 할 일이 벌어진다오.”

사도명이 고개를 돌려 법허를 보았다.

법허의 안색은 창백했다.

“사람에겐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소. 그건 문파도 마찬가지여서, 소림 역시 세상에 알리기 싫은 비밀을 갖고 있다오. 이 비밀은, 빈승이 애초 불귀옥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오.”

법허 선사는 감추고 싶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소림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는 내용이오.”

사람에게는 무의식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은연중에 작용하여, 법허로 하여금 불귀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법허 선사는 세 차례나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밀(密) 소림이라는 이름을 혹시 들어 보았소?”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밀 소림? 혹시 혈소림이라 불리는 암흑소림 말입니까?”

“소림의 오랜 비밀이자, 무림 전체의 비밀이기도 하오. 소림이 공식적으로 부인한 밀소림은 사실….”

법허 선사가 탄식하듯 말했다.

“존재하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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