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73화 (73/168)

073화. 작은 숲의 무덤

소림이란 작은 숲을 뜻한다.

사도명은 숭산 소실봉의 소림사 뒤편의 숲 안에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사도명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죽림을 스치며 불어온 바람에는 은은한 죽향이 가득 배어 있었다.

“모든 것은 통한다.”

사도명은 바람의 향내를 깊이 음미하며 앞을 보았다.

“죽림이 자신을 스친 바람에 향을 전하듯, 세상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영혼 역시 세상 모든 이에게 숭고한 뜻을 남긴다.”

사도명의 앞쪽으로 여러 개의 무덤이 보였다.

이곳저곳에 만들어진 무덤은, 하도 숫자가 많아 한 번의 시선으로는 세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도명이 수라겁황을 제거하고 난 후, 지옥문이 만든 가짜 수라겁황이 세상에 나타났다.

당시 십구성좌는 법허를 중심으로 소림사에서 뭉쳐 있었다.

그들은 힘을 합하여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무당파와 곤륜파가 무림맹을 배신했다.

그 결과 소림사는 장문인을 비롯한 삼대의 제자 대부분이 옥쇄하는 비운을 당했다.

그것이 강호에 퍼진 소문.

하지만 그 소문은 지옥문이 만든 것으로 사실이 아니었다.

무당파와 곤륜파가 무림연합군에 합류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소림사가 철저하게 궤멸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치열했던 전투.

소림의 제자들 대부분이 삼대재액 중 우내 삼대마문을 맞아서 싸우다가 죽었다.

죽인 이들은 모두 사도명이 서 있는 숲의 무덤에 묻혔다.

소림에는 조사동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숫자가 한 번에 죽었다.

방장이었던 대방 선사조차 조사동에 묻히지 못한 것은 가히 소림의 비극이었다.

“아무도 없었소, 맹주.”

사도명의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도명은 몸을 돌려 법허 선사를 보았다.

그는 내공을 다리의 대용으로 활용해, 허공에 떠 있었다.

법허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지객당, 계율원, 팔대호원은 물론이고 목인방을 포함한 삼십육방, 게다가 장격각과 탑림, 심지어 방장실까지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소림 제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소이다.”

사도명과 법허는 하루 전에 소림사에 도착했다.

천하에 널리 공언한, 일로종횡을 시작한 지 꼭 일 년째의 날을 육 일 앞둔 때였다.

연합군이 소림사에 도착하는 때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세상 모두가 그 시기를 안다.

무림연합군은 닷새 전에, 삼문협에서 지옥문이 동원한 연합군을 철저하게 부쉈다.

사도명은 혼자서 소용돌이를 일으켜 열세 척의 배를 한 번에 가라앉히는 위용을 보여주었다.

승리한 후, 사도명은 세상을 향해 공언했다.

- 마지막 결전이 열흘 남았소. 열흘이 지난 후, 우리는 소림사에서 무림의 모든 것을 건 싸움을 한바탕 벌일 거요.

공언한 날의 육 일 전, 그러니까 어제 사도명과 법허는 소림사에 먼저 도착했다.

사도명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알리는 이유는 지옥문이 대비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옥문이 모든 힘으로 자신에게 부딪쳐오기를 소망했다.

숨어있는 적은 부술 수 없다.

부술 수 없다면 그 적은 영원히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도명은 또한 숨어있는 소림사 제자들도 나타나기를 바랐다.

무당파가 지하에 숨어 자신의 진짜 힘을 기르고 있었듯, 소림사 또한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법허와 함께 연합군을 앞질러 소림에 도착했던 이유는, 그렇게 숨어있던 소림사의 후예들이 자신을 기다릴 거라 믿어서였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소림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법허 선사는 만 하루 동안 소림사를 샅샅이 뒤졌다.

그럼에도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소림은 정말로 단 한 명도 남기지 못했을까요? 빈승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열반했을까요? 아미타불. 소림의 법통은 삼 년 전의 그 참담한 패배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맹주?”

“아닐 겁니다!”

사도명은 고개를 돌렸다.

작은 숲속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무덤이 보였다.

사도명은 그 무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무도 없다면, 저 많은 무덤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법허도 사도명과 함께 늘어선 무덤을 보았다.

가장 앞서 있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이 법허의 가슴을 찔렀다.

<大方>

소림의 장문인 대방 선사.

“배분으로 따지면 사질입니다. 사형의 제자. 품성이 단정했고 실로 총명하였습니다.”

법허가 염주를 굴렸다.

“아미타불. 극락왕생하기를.”

“대방선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부맹주.”

“그는 천하를 아끼고, 소림을 아꼈습니다. 그 외에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소?”

“소림을 아낀 사람이, 단 한 명의 후예도 남기지 않고 전원 옥쇄하였다는 겁니까?”

“!”

“소림의 숲에 무덤은 있지만, 방치된 시신은 단 한 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도명은 법허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연합군보다 일찍 여기 온 이유가 소림사의 멸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겠습니까?”

**

청년은 안대를 풀었다.

그는 애초 장님이 아니었다.

멀쩡한 눈을 가리고 다녔던 이유는 참회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죄를 지었다.

자신의 죄로 자신의 스승이 눈을 잃었기에, 차마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다.

“나는… 화운악이다.”

사도명이 검몽이 될 때, 차석을 차지했던 화산파의 후예.

한때 동심맹에 속했으나, 화운악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의지로 무림맹을 선택했었다.

“어렸을 적, 배고프던 고향의 이웃사람들을 보며 강해지겠다고 결심했었다. 진짜 강해졌을 때 나는 약한 사람을 비웃었고, 어느 날 겨우 잘못을 깨달았다.”

화운악은 백팔번뇌 노예 중의 한 명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화운악은 백팔 노예로 끌려오는 한 사람과 자신의 신분을 바꾸었다.

참회하는 마음.

백팔번뇌라는 이름의 노예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화운악의 자신의 잘못 일부를 씻어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잘못을 회개했다. 그래서 너희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 믿는다. 말했었지? 백팔번뇌를 죽이려면 반드시 가장 먼저 나부터! 그 말의 의미를….”

화운악의 온몸에서 스멀스멀 자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제는 너희도 알겠지?”

호마와 적발마가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대풍마는 계속 피가 흐르는 복부의 상처를 움켜잡았다.

“자, 자하강기?”

화운악의 몸에서, 처음에는 아지랑이처럼 흐릿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손에 잡힐 듯 또렷한 자색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자하강기는 화산파가 자랑하는 3대 절기 중의 하나다.

소림사가 두려워서 백팔번뇌라는 인질을 잡고 있던 흑사련.

그들에게 화산파도 소림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너, 너는 처음부터….”

대풍마가 말을 더듬었다.

“우리들이 백팔번뇌를 해치려 하면 죽이겠단 생각으로 계, 계속 기다렸던 거였나?”

“너희 행동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가 기다린 건….”

화운악이 주변을 모두 둘러보며 한 사람을 불렀다.

“태황! 지옥문의 문주!”

화운악의 장심에서 붉은색 검기가 피어올랐다.

검이 필요 없이 몸에서 바로 나타나는 검기는,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닮았다.

매화영롱검.

화산이 자랑하는 절세의 검술이, 놀랍게도 심검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제갈세가로부 너의 재주를 전달받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침습한다지? 번뇌마에게 했던 것처럼 마음을 공격해 몸을 조종한다지?”

화운악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누구에게 빙의할 거냐? 나서 보라. 나는 또 베어준다. 아까 번뇌마에게 했던 것처럼.”

“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적발마가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했다.

“사도명만 재밌는 줄 알았더니 재밌는 녀석이 또 늘었구나. 화운악! 너는 무림태자의 자리를 뺏기고도 사도명이 밉지 않… 웃!”

매화영롱검의 검기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말 그대로 허공에 피어난, 영롱한 꽃송이였다.

꽃이 한바탕 흐르자, 적발마의 머리가 비스듬히 갈라졌다.

붉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적발마의 윗머리가 옆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의 단면을 드러낸 채 비틀거리던 적발마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대풍마와 호마조차 놀라서 헛바람을 삼켰다.

요화빙빙을 비롯, 대청을 메우고 있던 흑도 열두 방파의 주인들의 얼굴이 핏기를 잃었다.

두려움은 빠르게 전염된다.

사람을 죽이기를 두려워 않던 흑도 방파의 주인들이, 눈부신 꽃을 손바닥에 피운, 준수한 젊은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놀이를 이어가자. 태황! 네놈이 들어서는 자는 누구건 벤다. 무조건 벤다.”

화운악이 소리쳤다.

“아무도 죽고 싶지 않지? 살아남고 싶지? 방법도 알려준다. 태황의 어기전심이 깃들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그걸 지금부터 알려줄 테니까 집중하고 들어라.”

백팔번뇌는 인질이자 노예인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

그들도 화운악의 말을 듣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번뇌마가 죽었다.

백팔번뇌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해독약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번뇌마의 독은 하루만 해독약을 복용하지 못해도 치명적이다.

“은인은 절대로 우리를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집회에 쓰일 술을 나르던 중년인이 소리쳤다.

“번뇌마가 죽었으니, 더 이상 저희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저희는 만족합니다.”

“모든 건 발전하오.”

화운악이 빙그레 웃었다.

“당문의 피독환이 과거와 같은 약효밖에 없다면, 왜 내가 여러분들의 음식에 약을 타면서 몇 달이나 이곳에 머물렀겠소?”

“그, 그렇다면?”

“당신들은 이미 해독되었소.”

화운악이 밖을 가리켰다.

“떠나도 좋소.”

백팔번뇌란 이름의 인질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문의 피독환을 복용한 것이다.

모두가 중독에서 풀려났다.

“자, 자유다.”

중년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화운악에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마음에, 숫제 감사의 인사조차 잊고 달려나가는 이도 있었다.

화운악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예의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져 고통스럽게 지낸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서임을, 화운악은 이해하고 있었다.

백팔번뇌는 모두 도망쳤다.

평소라면 그들의 앞을 막아섰을 열두 문파의 주인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화운악의 장심에 피어난 매화영롱검의 검기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치명적이었다.

대청 내부에 있는, 흑사련의 모든 무사들은 절실하게 느꼈다.

‘조금만 움직이면?’

화운악의 장심에서 핀 아름다운 매화가 자신들의 심장에서 피를 먹고 피어날 것이다.

“번뇌란 풀리기 마련이지. 백팔번뇌를 벗어던진 느낌이 어떠한가, 흑사련?”

화운악은 웃으며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백팔번뇌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풀려났다.

대신 흑사련의 무사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요화빙빙이 입술을 떨며 화운악에게 물었다.

화운악이 한숨을 쉬었다.

“이미 말했다. 너희 중의 누구건, 태황에게 빙의되면 죽는다.”

태황의 어기전심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었다.

요화빙빙이 소리쳤다.

“그럼 어서 알려주세요. 태황 존좌를 막을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하늘의 중앙에 존재하는 마음에는 치우침이 없다.”

화운악이 입을 열었다.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심오한 무공 구결이었다.

“모든 깨우침이 극으로 통하지만, 시작과 끝은 구분되지 않는다. 애초 극 또한 본래 없으니 일컬어 천중무극이라고 한다.”

천중무극신공.

조화심을 만들어내기에 조화심법이라고도 불리는 심법!

무림맹 제1대의 맹주였던 천무제 좌능후가 창안했고, 제2대의 맹주 호불군이 완성시켰다.

마음에 치우침이 없다면, 올바른 삶의 길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조화심을 얻는다면, 그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고자 할 것이다.

조화심은 그렇게 전염된다.

“이는 잘못된 심성을 바로잡고자 하는 삶의 태도이다. 삼문협의 싸움 후, 너희의 수하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마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화운악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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