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삼문협 회전
<지옥문은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방파를 총동원했습니다. 산서성의 흑풍회와 오독방, 파천궁, 흑요각은 물론이고 살수들의 집단인 광살막까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남성의 흑사련은 산하 열두 개 흑도 문파를 모조리 출동시킨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제갈평의 서찰은 길었다.
그 속에 언급된 수많은 흑도의 방파들은 모두가 나름의 방면에서 유명했다.
잔인함에서! 악독함에서! 그리고 살인의 무참함에서 남다른 악명을 지니고 있는 자들!
그들이 십여 척의 배를 나누어 타고 무림연합군의 앞을 막으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주면, 더구나 삼문협이라고까지 알려주면, 기습당하기에 더할 나위 좋을 줄 알았어.”
연자강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도명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조차 머금은 채 황하의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진짜 준비는 저분들의 몫이었지요, 지금까지 줄곧!”
그 방향에서도 여러 척의 배가 오고 있었다.
“지옥문은 모여서 움직이는데, 뜻을 함께 하기로 하는 구파일방과 구대세가는 대체 언제 우리와 하나로 모이는 겁… 아!”
답답한 마음에 질문하던 왕삼도 사도명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 묻던 입을 멈추었다.
사도명은 미소를 지으며 삼문협의 거친 물결을 보고 있었다.
“바로 저곳에 있잖소?”
모두의 눈이 커졌다.
사도명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수십 척의 배가 달려오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배의 갑판에 푸른색 옷의 미녀가 눈에 띄었다.
사도명은 전서구가 가져온 전신의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것이 ‘때’라고 판단됩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으며, 삼대 재액은 두렵지 않음을 보여줄 때!>
은교교가 배의 갑판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청미!”
은교교는 단숨에 백여 장의 거리를 건너, 뒤에서 오는 배의 머리에 내려섰다.
제갈청미가 기다리고 있다가 은교교의 손을 잡았다.
“늦지 않았지? 여럿이 모여서 오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어.”
<청미가 사람들을 이끌고 갈 겁니다. 물론 청미가 이끌 위치의 사람들은 아니니, 그저 가장 앞에서 안내하는 역할이지만.>
“호호. 그래도 맹주님이 삼문협을 선택해주시는 덕분에 배를 이용해서 올 수는 있었고.”
제갈청미가 자신의 배 뒤를 따라오는 일곱 척의 배를 보았다.
그 배들에 타고 있는 사람 중에는 은교교가 아는 사람도 많았다.
두 번째 배에 타고 있는 구양걸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살아계실 줄 몰랐습니다. 돌아가신 것이 믿기지 않긴 했지만, 정말로 살아계실 줄은, 하하,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사도명이 연자강에게 물었다.
“저 말! 앞뒤 논리가 맞아?”
세 번째 배의 앞머리에는 준수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천부! 아니, 사부님이라 해야 하나요? 아무튼 어르신들을 설득해 힘을 합치러 왔습니다.”
잘생긴 청년이었다.
삼단전을 모두 사용하는 삼극무령신공의 기운이, 그의 몸 주변에 은은한 세 갈래 빛무리를 쉬지 않고 뿌려대고 있었다.
삼극취정의 경지였다.
“하하. 제법 강해졌구나, 용맹.”
청년은 서문용맹이었다.
자신이 가르친 자의 성취를 보자, 사도명은 진심으로 웃었다.
네 번째 배에는 사천 당씨세가의 당백룡이 보였다.
다섯 번째 배에 타고 있는 것은 강철의 가문이라고도 불리는 철혈세가였다.
여섯 번째 배는 황보세가의 사람들의 몫이었다.
일곱 번째 배에는 하북에서 온 팽가의 사람들이 있었다.
여덟 번째 배에서는 모용세가의 무사들이 눈을 빛냈다.
이미 연합군에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합류해 있으니, 천하 구대 세가가 모두 삼문협 한곳에 모이게 된 셈이었다.
“지옥문은 이걸 예상했을까? 연합군을 치러 왔다가, 구대세가 연합을 보게 될 줄 상상했을까?”
“당연히 못 했겠지! 하지만 그보단, 저쪽의 사람들을 보게 될 줄은 더더욱 짐작 못 했을 거고.”
사도명이 다른 쪽의, 또 다른 협곡 방향을 가리켰다.
연자강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 오고 있는 배.
사도명이 활짝 웃었다.
“너는 아마도 구대세가의 사람보다는 저쪽에서 오시는 분이 훨씬 더 보고 싶었겠지?”
가장 앞선 배에 사도명이 알고, 연자강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앉아 있지 않았지만,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다리가 아래에서 잘려나가 선 키가 매우 낮았다.
“…사부!”
연자강은 탄식처럼, 목 안으로만 아득하게 법허를 불렀다.
**
연자강은 법허의 제자였다.
속가제자였고, 무림맹 비밀순찰의 직위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연자강은 자신이 부여받은 의무가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연자강은 자신의 의무를 버리려 했고, 법허는 연자강을 파문함으로써 그의 짐을 덜어 주었다.
천라대제의 기연을 얻어 무릉촌에 정착하고 나서도, 연자강은 사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곽소혜와 혼례를 치를 때, 연자강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사부인 법허의 부재였다.
“당신을 보며 행복해하는 내 표정이 보이오? 이 표정을, 정말로 보여드리고픈 분이 있소.”
연자강은 곽소혜에게 사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전했었다.
천리도화의 봉인이 풀리고 곽소혜에게 무릉신녀가 빙의했다.
은교교와 법허 선사가 찾아왔을 때, 연자강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일의 원흉인 태명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연자강은 법허의 두 다리를 베었다.
베지 않았더라면, 두 다리에 이미 침습한 적마교의 적혼혈기가 법허의 심장까지 닿아, 그를 중독시켰을 것이다.
**
연자강도 배를 박차고 날았다.
법허의 바로 앞으로 내려서서, 사부가 앉은 모습을 바라보았다.
앉은 것이 아니건만, 사부가 자신의 허리 아래에 있었다.
연자강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사부!”
“네가 지금 나를 사부라 부를 입장이라 생각하느냐?”
법허는 자신보다 머리를 더 아래로 낮춘 연자강을 보며 물었다.
“너는 맹주와 같이 검성의 신공을 이은 후예고, 무림의 안위를 책임진 무릉촌의 수호인이며, 현재는 조화결사대의 대장이다. 한때 극락문주였으나, 이제 회개했다.”
“사부!”
“그러니까 맹세해라!”
법허가 소리 높여 외쳤다.
“맹주를 도와 세상에 닥친 재액을 없애라. 그 일이 완성된 후에, 제자여! 네가 날 위해 어쩔 수 없이 날 베고 속으로 울었을 그 날의 일을 말하자꾸나.”
법허의 배 뒤로도, 여러 척의 배가 따라오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따라오는 배에는 무당파의 청수진인이 있었다.
“무량수불. 우리 무당이 아수라혈교와 손잡고 소림을 해쳤다는 거짓된, 악의에 찬 소문!”
청수진인이 사도명을 보았다.
“일로종횡 하면서 맹주는 그 억울한 거짓도 풀어주셨소. 무당은 그 모든 도움에 감사하오.”
세 번째 배에는 화산파의 고수들이 타고 있었다.
네 번째 배에는 점창파, 다섯 번째 배에는 청성파, 여섯 번째 배에는 아미파, 일곱 번째 배에는 종남파가 있었다.
여덟 번째 배에는 공동파와 곤륜파 고수들이 같이 타고 있었다.
아홉 번째 배와 열 번째 배에 타고 있는 개방의 고수들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도명이 후르르 몸을 날렸다.
무게가 없는 듯 가볍게 날아간 사도명은, 가장 먼저 나타났던 열세 척의 배 앞에 내렸다.
출렁거리는 황하의 누런 물 위에 사도명의 몸이 섰다.
배의 앞머리에 흑풍회의 회주인 좌곡평이 검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채 사도명을 내려다보았다.
“어렵지 않다 생각했을 거요, 흑풍회주! 처음에 지옥문의 명령을 받았을 때, 몇 명 안 되는 무림연합군 따위야 숫자로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
“지옥문의 전력에 비해, 일로종횡의 도중 공격해 온 염라마인과 마두들은 약했습니다.”
사도명은 품에서 전서구의 전신을 꺼내 남은 부분을 읽었다.
“방심시키고, 힘을 모아 일격에 부수겠다는 의도! 일 년의 유예 동안 지옥문은 맹주의 저력을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흑풍회주 좌곡평은 사도명의 말을 끊으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무림맹주에게 심하게 무례한 자를 바라보는 중. 그리고….”
사도명은 고개를 다시 내려 서찰을 보았다.
“제갈평 가주의 서찰을 읽던 중이었는데, 이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냥 내가 직접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콰아아아아아아!
사도명 주변의 강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는 점점 커졌고, 주변을 휘감아 열세 척의 배 모두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제일해는 와! 거기에 집중의 궁극, 금강의 깨달음을 넣기!”
고오오오오오-오오!
“보아라. 판단해라. 흑풍회! 오독방! 파천궁! 흑요각! 광살막! 거기에 흑사련까지! 지옥문에 충성 바치는 너희들 모두에게 경고한다.”
사도명은 하늘 높이 일어난 강물의 소용돌이 위에서 외쳤다.
“선택해라. 무릎 꿇고 칼을 내릴지! 칼을 들고, 거기에서 그대로 휩쓸려 사라질지를!”
일어난 소용돌이가 열세 갈래로 갈라져 앞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검날 같은 물살이 열세 척의 배를 동시에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