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70화 (70/168)

070화. 그리고 일 년(3)

공격자는 독공을 사용했다.

주변 대기를 녹여 버릴 듯 역한 악취를 풍기는 독공은 분명히 앙천독강이었다.

제갈세가의 전갈은 착각이 아닌, 사실이었던 것이다.

- 서안에서 나타났던 괴인은 얼굴 형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평의 말을 전달하면서, 당백호는 그렇게 뒤를 덧붙였었다.

‘저 자도 마찬가지구나. 얼굴을 온통 칼로 그어,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길이 없다.’

사도명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독인을 상대했다.

앙천독강의 독무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연합군 전원이 당문으로부터 피독환을 얻어 소지 중이었고, 사도명은 모든 독에 상극인 축융지환을 갖고 있었다.

“누가 널 보냈느냐?”

축융지환을 독인을 향해 던지면서, 사도명이 물었다.

독인은 불덩어리로 변한 축융지환을 막으려 했지만, 애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독과 마기에 극성인 축융지환은 독혈당의 앙천독강을 익힌 괴인에게는 천적이었던 것이다.

“캬아앗!”

축융지환의 불이 자신의 오른팔과 어깨에 옮겨붙자, 독인이 괴성을 질렀다.

“정체를 말해라.”

독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사도명은 장심에서 천중만근의 압력을 일으키는 공력을 뿜어내어, 독인의 몸을 억눌렀다.

“말하지 않으면, 이대로 눌려 죽거나 불에 타 죽을 것이다.”

독인이 갑자기 껄껄 웃었다.

“푸하하. 누가 보냈을지 정말 짐작하지 못한단 말이냐?”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짐작하고 있던 낯익은 목소리에, 사도명은 오히려 놀랐다.

“태명?”

태명은 지옥문의 문주로 등장한 후, 태황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피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계속 염라마인과 지옥문 마두들을 보내, 사도명의 무림연합군과 끊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기도 했다.

태명은 어기전혼으로, 원하는 자의 몸에 자신의 마음을 보낼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사도명은 그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사도명의 생각대로, 독인은 태명이 보낸 빙의체였다.

“일로종횡? 그 길의 마지막이 네 뜻대로 될 것 같지?”

“아닐 거 같으냐?”

오른손에서 시작한 불길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데도, 독인의 입은 빙그레 웃었다.

“미래를 말해 줄까? 네가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만 잔뜩 벌어질 것이다.”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화르르르르-!

독인의 몸은 이제 모든 부분이 불에 타고 있었다.

하지만 태명에게 조종당하는 독인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지금 독인의 몸을 조종하는 것은 태명이기 때문이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태명에 의해 조종당하는 적암의 마녀였을 때, 육신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소?”

“감각은 있어요. 다만 육신의 지배력을 빼앗겨 반응을 하지 못할 뿐으로… 아, 이런!”

은교교가 안색이 변해, 오른손을 뻗어 독인을 공격했다.

하지만 사도명이 더 빨랐다.

파천삼로의 첫 번째 길이자 우주오검의 제 일초이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 무영섬이 사도명의 손에서 펼쳐졌다.

무영섬은 은교교의 손이 닿기 전에 이미 독인의 가슴을 뚫었다.

강력한 힘이 독인의 심장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독인이 눈을 부릅뜨고 사도명을 보았다.

독인의 입은, 그러나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 정이 많구나?”

“나도 똑같이 말해주마.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든, 앞으로는 바로 그게 가장 끔찍한 모습으로 너에게 일어날 거다, 태명.”

독인의 입이 빙그레 웃었다.

“너는 제법 재미가 있다. 이 녀석을 굳이… 너에게 보낸 보람이… 있…구…나!”

독인의 온몸이 불에 탔다.

사도명은 심장이 부서진 채 빠르게 재로 변해가는 독인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에게도 삶이 있었을 것이다.

본래의 얼굴도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사정으로 독인이 되었는지, 칼로 뭉개지기 전의 본래 그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사도명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도명은 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사도명은 심장을 뚫음으로써 그가 의미 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당신에게 이런 말이 무슨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도명은 독인의 광기가 사라지고, 인간으로서 본래 가졌던 빛이 잠시 돌아오는 독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조금 전까지 당신을 조종한 놈! 나는 그놈에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고통과 잔혹한 죽음을 선사할 거요. 편히 쉬시오.”

독인은 완전히 재로 변했다.

마지막 순간, 잠시 빛을 되찾는 독인의 시선이 사도명에게 전한 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건 고마움이었다.

꽈드득!

사도명은 으스러져라 두 주먹을 쥐었다.

“일로종횡은 계속 됩니다.”

바람이 불자, 독인의 재는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축융의 불에 탔기에 앙천독강의 독기는 재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헛되이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태명의 죽음으로 위로받을 겁니다.”

**

천하는 넓다.

그 넓은 천하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호북에서 처음 시작된 사도명과 무림연합군의 일로종횡은 마침내 산서성에 이르러, 마지막 여정을 한 단계 앞두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계절은 빠르게 흐르고 흘렀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난 것이다.

조화결사대원의 숫자는 무려 오백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싸울 때마다 연합군은 더러 염라마인을 제거했고, 더러는 조화심을 전해 개심시켰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백칠십사 회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하남성으로 건너가기 위해 삼문협을 향해 가면서, 왕삼이 사도명의 옆으로 오더니 말했다.

“싸움의 경험은 모두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지요.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화결사대원들을 비롯, 연합군 모두의 눈빛은 형형했다.

또한 강력한 결의와 자심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무제의 덕분입니다.”

연합군들 중에서도, 유독 조화결사대원들은 사도명을 무림맹주가 아닌, 무제라고 불렀다.

“무제께서 저희에게 천중무극신공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저희 모두가 조화인이라는 자긍심도 지닐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공로요. 정작 노력하고, 목숨을 다해 싸운 건 여러분들이니까.”

“돌이켜 보면 그때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청성산 아래에서의 일을 말하는 겁니다.”

사도명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도, 본래의 얼굴도 모르는, 청성산 아래에서의 독인!

아마도 태명에 의해 얼굴이 짓이겨졌을 한 사람을 생각하면, 사도명은 아직도 마음이 아렸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전에, 그 후로도 계속 싸워왔던 염라마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는 모골이 송연합니다.”

왕삼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무제 덕분에 개과천선하지 못했다면 저희도 그런 독인이 되거나, 이성조차 상실한 마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다녔겠죠?”

왕삼의 눈에 떠오른 빛과 똑같은 것이 도언직의 눈에 떠올랐다.

다른 조화결사대원들의 눈빛도 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조화의 마음은 강요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나면, 저절로 퍼져나가는 것이 조화심이었다.

사도명이 말했다.

“그때 태명은, 겨우 한 명의 독인이 나를 위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거요.”

은교교가 방긋 웃었다.

“그는 착각을 했어요. 그런 위협을 계기로 조화결사대와 무림연합군이 오히려 더 강고히 뭉칠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는 또한 자신의 정보를 누설하고 말았소. 지옥문에는 우내삼대 마문만이 아니라, 아수라혈교의 잔당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걸 그만 들키게 되었지.”

연자강이 미간을 찡그렸다.

“지옥문이라면 아수라혈교의 포섭에서만 멈추진 않을 거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태명은 이미 무릉촌에서 천리도화의 안배를 열어, 검성의 힘을 훔쳐가기도 한 것이다.

“설마 수라겁황의 부활…까지를 말하는 건가요?”

곽소혜가 묻자, 연자강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라혈교는 반복하여 수라겁황의 부활을 시도했었죠. 지옥문이 아수라혈교까지 병합하였다면, 당연히 또 다른 수라겁황의 탄생을 시도할 겁니다.”

곽소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어떻게 하죠? 지옥문을 상대하면서, 다시 부활한 수라겁황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적이 모이는 거죠.”

사도명은 연자강, 은교교, 남궁태보와 남궁세가 고수, 조화결사대를 차례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곽소혜를 보았다.

“삼대재액 중의 두 개를 한군데 모아 놓고 싸울 수 있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매우 많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사도명의 웃음에는 사람을 안심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삼대재액은 간단한 재앙이 아니었다.

맞서기 손쉬운 재앙이라면, 그토록 오래전부터 예언되어 올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명이 웃자, 사람들의 마음에서 불안이 모두 씻겨 나갔다.

“약속합니다.”

자신감에 찬 사람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는 일로종횡의 끝에서, 정해진 재액의 운명을 되돌릴 겁니다. 여러분들이라면 가능합니다.”

**

일로종횡의 마지막 장소는 하남성 소림사로 예정되어 있었다.

섬서성에서 하남성으로 넘어가기 위해, 연합군은 삼문협을 이용하기로 했다.

삼문협에는 산동 육국으로 통하는 함곡관이 있다.

무림연합군 일행이 삼문협에 도착했을 때는 일로종횡을 시작한 지의 만 일 년을, 정확하게 열흘 앞둔 날이었다.

**

삼문협에는 황하가 흐른다.

아득한 옛날 우왕이 도끼로 산을 깨뜨려, 세 개의 협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우왕은 황하에 사는 물의 신을 다스려, 백성에게 막심한 피해를 주는 홍수를 막았다고 한다.

사도명과 무림연합군은 커다란 배 네 척과 작은 배 세 척을 구해, 장강을 타고 삼문협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우리와 협력을 약속한 문파는 도합 사십여 군데!”

가장 앞에 서 있는 배에서, 사도명은 모든 배에 들리도록 내공을 실어 말했다.

“마지막 목적지인 숭산의 소림사! 삼문협을 지나면 숭산이 있는 하남성. 협력을 약속한 분들은 곧장 소림사로 올 겁니다.”

[일로종횡의 목적이 지옥문에 스스로를 노출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임은 압니다, 맹주!]

남궁태보가 배의 뒤쪽에서 전음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모두 불안해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무제.”

조화결사대의 부대장 왕삼이 갈고리가 끼어진 왼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힘을 합하기로 약속한 구파일방과 남궁 세가를 제외한 구대세가는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그간의 싸움에 지친 거요, 왕삼? 불안해하며 도움을 기다리다니 부대장답지 않군.”

“삼문협은 황하와 세 개의 강이 모두 흐릅니다. 적이 공격해 오기에 너무 간단해 불안합니다.”

구언직도 옆에서 거들었다.

“다른 경로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삼문협을 택했습니까?”

멀리서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린 전서통에는 제갈세가 특유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사도명은 전신통을 열어 그 내용을 확인하고,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들의 우려가 맞았습니다. 지옥문이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흑도방파에 일제 동원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무림연합군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 힘을 합해 싸워왔다.

모두가 사도명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제께선 지옥문의 그런 움직임에 대비하여 놓으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명은 웃었다.

웃으며 배의 앞쪽, 먼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공교롭게도, 지옥문의 준비는 이미 나타났군요.”

멀리, 도도한 장강의 물살을 가르며 십여 척이 넘는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마기와 독기와, 살기가 배의 갑판 위에 줄줄이 흩어졌다.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전 하나도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놀라는 무사들을 향해, 사도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진짜 준비는 저분들의 몫이었지요, 지금까지 줄곧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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