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화. 그리고 일 년(2)
여덟 배 강도의 천극멸!
그건 사람이 막을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서 버린 힘이었다.
그리고 사도명이 기댈 수 있는 것은 한 번도 시전해보지 않았던 무공, 금강일양지!
‘나는 오직 한 점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만 한다.’
좁게! 더욱 좁게!
금강일양지는 천극멸의 한 점을 뚫고 날아가 낙루석을 뚫었다.
콰아-아아앙!
여덟 배의 천극멸이 사도명의 바로 코앞에서 흩어졌다.
한 푼만 더 밀고 들어왔어도, 사도명의 얼굴은 피모래로 산산이 흩어졌을 것이다.
‘그럼 나는 자신의 무공에 몸이 분해된, 무림 최초의 바보가 되었을지도!’
천극멸이 흩어지는 힘조차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연자강은 단벽을 보호하기 위해 검막을 증폭시켜야 했다.
무림연합군 소속의 무인들은 저마다 방호의 막을 만들어 대리국 무사들을 보호했다.
그들을 돌아보며 사도명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달아나라고, 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아무도 달아나지 않고 사도명의 뒤를 지켰다.
덕분에 누구도 죽지 않고, 크게 다치지도 않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죠?”
은교교가 보호하고 있던 곽소혜의 안위를 확인한 후, 사도명을 향해 날아왔다.
달려오자마자 은교교가 사도명의 손을 잡고서 물었다.
“저게 일수유라도 늦었다면?”
사도명은 낙루석 중앙에 뚫린 구멍을 보았다.
요란한 폭음에 어울리지 않는, 작디작은 구멍이었다.
그 구멍에서 균열이 시작되어 낙루석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암벽은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럼 저렇게 무너지는 건 암벽이 아니라 나였겠지?”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요.”
은교교가 자신의 소매를 들어, 사도명의 얼굴을 닦았다.
여덟 배의 천극멸은 사도명에게 닿지 않고 흩어졌지만, 그 여력은 사도명의 얼굴을 강타했었다.
사도명의 코피를 닦아낸 은교교의 소매가 피로 물들었다.
쿠르르르-르릉!
낙루석은 완전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암벽의 안에 사람이 있었다.
심장의 박동도, 호흡도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분명했다.
하지만 단정하게 가부좌한 그의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듯 불그레한 혈기마저 보이고 있었다.
“내공 때문이다. 죽었음에도 내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도명의 판단이 옳았다.
암벽 속 시신의 단전에는 아직도 소용돌이치고 있는 내공이 기척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가 누구인지를, 단벽이 알아보고 소리쳤다.
“개, 개국조(開國祖)님!”
대리국을 연 개국왕!
시신은 단벽에게는 아주 먼 조상인 단사평이었다.
[단사평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비밀에 쌓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리국 왕실의 사람들조차 그가 남모르는 곳에 숨어 우화등선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너진 낙루석 안에서….]
남궁태보가 전음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했다.
사도명은 드디어 낙루석에 존재하는 비밀을 알아냈다.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단사평의 잔혼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단번에 알게 되었다.
“가능할까? 목숨이 끊어졌음에도, 단전만이 여전히 활동하면서 내공을 간직하는 것이.”
단사평의 앞으로 걸어가면서, 사도명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해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단벽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후손 단벽이 삼사 개국조님의 존체를 뵙습니다.”
흑호저도 무릎을 꿇었다.
병사들이 일제히 절했다.
“개국조님을 뵙습니다.”
사도명은 단사평의 앞에 섰다.
그 역시도 천천히 무릎을 꿇은 후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다.
연자강이 걸어오며 말했다.
“이거야 원! 분위기가 어쩐지 나도 절을 해야 할 것 같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나라의 왕에게 절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하겠단 말이야.”
“참회석이라 불렀다더군.”
사도명은 고개를 들면서, 자신이 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세상엔 잘못을 참회하는 이가 많지 않아. 그것이 설령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해도.”
단 씨 가문의 북명신공이 지옥마정에 누출된 것은 단사평의 시대에 벌어졌던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리국을 연 이후, 단사평은 북명신공이 누출된 후 흡정북명대법으로 변해 세상에 끼치게 된 해악을 생각했다.
그는 금강일양지를 만들기 위해 불패지왕으로서 강호를 떠돌았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참회석 속에 자신의 몸을 남겼다.
죽어도 죽지 않은 그의 단전이 낙루석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영광만 가지려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애써 책임을 나눠 가지려는 사람은 적지. 하물며 자신의 것이 아닌 잘못이라면!”
사도명은 단사평이 남긴 잔혼을 통해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연자강에게 설명했다.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래도 충분하게 많기도 하구나! 나름의 방법으로 세상을 위했던 사람들은!”
“사실은 당신들 또한,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남궁태보가 갑자기 말했다.
그는 옆에서 사도명이 연자강에게 하는 말을 같이 들었다.
“때문에 일로종횡의 끝은 무조건 우리의 승리로 장식될 겁니다. 맹주! 결사대장. 은령신녀!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
무림연합군은 운남성에서 사천성으로 넘어갔다.
대리국은 사도명이 요청하면 언제든 군사를 보내, 무림연합군을 도와주겠노라 약속했다.
“참 이상하지?”
양자강 지류를 타고 목리를 지나면서, 사도명이 문득 말했다.
“험하고 힘겨운 일을 당하면 반드시 새로운 인연이 닿아.”
사도명은 운남성에서 대리국의 군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고, 금강일양지를 얻었다.
그는 금강의 깨달음을 일양지가 아닌 다른 무공에도 적용할 방법이 없는지를 계속 연구했다.
사천성에는 널리 알려진 명문대파가 많았다.
구대문파에 속하는 문파로는 아미파와 청성파가 있었다.
그리고 구대세가에 속하는 당씨의 가문, 즉 당문이 있다.
그들은 이미 싸우고 있었다.
극락문이 가면을 벗고 지옥문이란 정체를 드러낸 이후, 천하의 정파가 분연히 일어났던 것이다.
<일로종횡!>
지옥문 무리들과 싸움을 벌일 때, 그 네 글자가 새겨진 깃발을 드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사도명이 시작한 일로종횡은 빠르게 세상으로 번지고 있었다.
당문에 도착하자, 당백룡이 그들을 맞았다.
당백호는 사천당문의 현 가주로 무림사제(四帝) 중의 한 명이었다.
또한 당익호의 사부기도 했다.
당익호는 무림맹의 약왕당주였지만, 무림맹을 배신했었다.
“당문은 당익호의 죄를 무겁게 생각합니다, 맹주.”
사도명을 만나자마자, 당백호는 제자의 잘못부터 사죄했다.
“그 마음의 빚만큼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수라겁황은 우리의 손으로 단죄하지 못했으나, 지옥문이 무너질 때는 반드시 우리 당문이 그 옆에 있을 겁니다.”
당문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피독환이었다.
파천도제 호불군이 당문에 부탁하여 만들었던 피독환은, 대부분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명약이었다.
“그리고 맹주께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갈세가로부터 부탁받은 전갈입니다.”
당백룡은 사도명이 당문을 떠나기 전, 따로 불러서 말했다.
“섬서성 서안(西安)에 있었던 싸움에서, 앙천독강을 사용하는 괴인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앙천독강은 아수라혈교 산하의 오대마문 중, 독혈당에서 비롯된 독공이었다.
독혈당은 무림맹에 나타났던 절대독고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아수라혈교의 수라겁황은 내 손에 죽었소. 문주님의 그 말씀은 설마 아수라혈교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기에 맹주님께만 따로 전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능성은 생각하고 계시라는, 제갈 가주의 첨언입니다.”
**
연합군은 당문을 떠나 아미파로 향하면서, 세 번이나 지옥문의 마졸들과 부딪쳤다.
아미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닫고 세상과의 교류를 끊는 것을 봉문이라 하는데, 아미파의 상황은 봉문 정도가 아니었다.
문파의 제자들이 숫제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명은 아미파 입구의 잡초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를 살폈다.
“깨어난 후 무당파에 갔을 때도 꼭 이와 같은 모습이었지.”
아미파에서 청성파로 향하면서도, 연합군은 지옥문의 염라마인들과 다섯 번이나 더 전투를 벌였다.
청성산, 청성파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남궁태보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같군요. 구대문파는 모두다 숨어버린 걸까요?”
사도명은 장백산에서 오랫동안 나무꾼으로 살았다.
그는 계절에 따라 풀이 자라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미파가 떠난 건 석 달 전이오. 그리고 숨은 것은 아니요.”
“우리가 사천성에서 도합 여덟 번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도움을 준 곳은 당문뿐이었습니다. 청성과 아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지 않습니까?”
“내가 도움이나 협력을 요청하러 여기에 온 것 같소?”
“아닙니까?”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구파일방의 통합을 맡으신 분은 부맹주 법허선사요. 그분은 이미 움직이고 계시오.”
“그럼 청성파와 아미파가 거처에 없고 사라진 것은…?”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법허 선사께서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아무도 없을 것을 짐작했다면, 왜 굳이 들르신 겁니까?”
“일로종횡이란 본래 우리가 걷는 길을 우리 편과 적에게 동시에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남궁태보는 사도명의 말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미간을 찡그렸다.
“같은 편이 행로를 아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적이 안다면 위험할 뿐이지 않습니까?”
“적과 싸우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의 의지를 세상에 선명하게 알릴 수 있을까요?”
사도명은 한 번 더 물었다.
“또한 적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적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남궁태보는 비로소 사도명의 진의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일로종횡이란 적에게 무제의 행방을 알려 계속 싸워나가기 위한 여행입니까?”
“우리가 싸울 때, 법허 선사는 구파일방을 모으고, 제갈세가는 구대세가를 모으겠지요? 그래서 적은 알게 될 겁니다.”
사도명이 눈을 빛냈다.
“무림연합군이 강하다 생각하면, 적도 힘을 모아야만 한다고 판단하겠죠? 그럼 우리는 적을 하나로 모아 칠 수도 있고요.”
제갈세가는 이미 구양걸과 연락을 취해 구양세가와 손을 잡았다.
두 세가가 함께 부탁할 때 거절할 문파는 구대세가 중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법허 선사는 소림 출신이다.
무당파의 장문인 천수진인이 새롭게 탄생한 무당오자와 함께 법허 선사를 돕고 있었다.
구파일방 중에는 두 문파의 청을 거절할 문파가 없을 것이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일로종횡이란 무제가 법허 선사와 제갈세가를 믿고 진행하는 것이군요.”
“일로종횡의 종착지를 소림사로 잡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도명이 지하에 잠들어 있는 사이, 극락문, 아니 지옥문은 가짜 소문을 강호에 퍼뜨렸다.
맹주 설청산이 수라겁황이 되어 각파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
무당파와 곤륜파가 아수라혈교과 손을 잡고 변절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아수라혈과가 이끄는 변절자의 세력이 무림 저항군의 최후 보루였던 소림사를 완전하게 멸망시켰다는 이야기.
거짓 소문은 악의적으로 지어져 퍼뜨려졌고, 중원 무림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사도명은 일로종횡을 통해, 강호에 널리 퍼진 거짓 소문들도 하나둘씩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소림사에서 천하의 명운을 회천(回天)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삼대재액의 발생은 오래 전부터 예언되었다.
천하인들은 그 예언을 알게 되어,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
“사건이 필요하신 거군요? 무림은 오래 준비했기에, 재액을 극복할 힘을 충분하게 가졌노라 세상에 선언할 수 있는, 큰 사건이!”
“그렇게 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용기를 내게 될 겁니다. 자신감을 갖게 될 거고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일로종횡의 완벽한 완성입니다.”
**
무림연합군은 섬서로 향했다.
종남파와 화산파도 예상했던 대로, 봉문한 채 비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것은 종남산 아래에서였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올랐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의 온몸에서 역한 악취가 풍긴다 생각하는 순간에, 그는 이미 사도명의 바로 앞까지 날아들고 있었다.
공격자는 독인이었다.
온몸이 독으로 물든 그의 얼굴은, 칼로 뭉개져 있어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