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금강일양지
사도명의 몸이 떠올랐다.
그는 엎드린 흑호저의 병사들을 날아서 넘더니, 곧장 낙루석을 향해서 쏘아갔다.
“하지 마!”
사도명의 의도를 깨달은 연자강이 뒤에서 소리 질렀다.
사도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 장심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강기의 덩어리가, 이제는 사도명과 연자강의 모습만이 남은 암벽을 향해 날아갔다.
천극멸이었다.
꽈아-아아앙!
암벽이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사도명은 자신이 내쏘았던 공력보다 더욱 강력한 반탄력이 암벽에서 튀어나옴을 느끼고 크게 놀라서 외쳤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모두 피해요!”
은교교가 고함을 질렀다.
남궁태보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넣은 힘보다 더욱 강한 반탄력. 흡사 두 명의 조화무제가 우릴 공격하는 것과 같다. 막을 생각은 하지 마라. 무조건 피해!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낙루석을 부수려 했던 사도명이었다.
그는 낙루석이 자신이 쏟아낸 천극멸을 두 배의 힘으로 반사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피하면?’
무림연합군의 무사들은 강했다.
은교교와 남궁태보의 빠른 대응 덕분으로 그들은 낙루석이 반사하는 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연자강은 검막을 펼쳐 단벽의 앞을 보호하고 있었다.
은교교가 곽소혜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대리국의 병사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크게 다칠 터였다.
‘하는 수 없지.’
사도명은 결국 두 배의 힘을 더 끌어올려서, 낙루석이 쏟아낸 반탄력에 맞서갔다.
꽈아아-아아앙!
낙석루의 반탄력과 사도명의 천극멸이 부딪치는 모습은, 흡사 두 명의 사도명이 스스로 싸우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두 배의 반탄력!
그것을 대항하려 두 배의 힘을 쏟아내자, 이번엔 네 배의 반탄력이 낙루석에서 되돌아왔다.
‘이 원리! 낯설지 않다.’
사도명은 낙루석이 자신의 힘을 반사하는 형태를, 분명히 어디선가 겨험했었다.
“단씨 왕가의 북명신공. 낙루석은 지금 분명히 북명대법의 이치를 구현하고 있다.”
네 배의 힘을 막아내려면, 네 배의 힘을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네 배의 힘마저 낙루석이 반사한다면?
‘그 후엔 여덟 배로 쏘아야 하나? 그것마저 반사한다면?’
사도명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상황은 흡사 한 번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개미지옥이었다.
사도명은 알면서도 불구덩이 속으로 발을 집어넣는 심정으로,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
“왕실에서만 전해오는 이야기. 짐은 그걸 알고 있다.”
단벽이 자신의 앞을 보호해주는 연자강을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 낙루석을 무너뜨리려 한 이가 어찌 없었겠는가?”
“말을 더 빠르게 하는 편이 좋겠다. 내 친구가 더 위험해지면, 나는 귀하의 보호를 포기하고 저쪽으로 갈지도 모르니까.”
“고얀. 아무튼 그때마다 실패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본 왕가에서 전해오는 북명신공. 개국왕께서는 그 놀라운 무공을 낙루석 안에 구현해 놓으셨던 것이다.”
“자랑할 건 아니지.”
연자강이 고개를 흔들었다.
“북명신공은 지옥마정으로 퍼져나가 흡정북명대법으로 변했지 않았었나? 단사평이 나라를 세우기도 훨씬 더 전에 말야.”
북명신공은 모든 종류의 내공을 흡수할 수 있고, 그렇게 흡수한 힘을 증폭시켜 내쏠 수도 있다.
지옥마정은 북명신공을 훔쳐 흑정북명대법을 만들었다.
흡정북명대법은 내공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이나, 기력까지 빼앗을 수 있다.
흡정북명대법은 비록 원조인 북명신공만큼 정순하진 못했으나 사람을 해치는 방법에서는 치명적이기 그지 없는 마공이었다.
“개국왕도 생각하시었다.”
단벽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옥마정이 훔쳐간 북명대법! 그것을 깨뜨릴 방법을 찾고자 하는 염원이 아니라면, 어찌 저러한 암벽을 만드셨겠느냐?”
연자강은 비로소 낙루석이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이해했다.
세밀한 원리는 몰랐지만, 그 근본에 북명신공이 있음은 분명했다.
북명신공이 허공에 전해오는 기의 흐름을 느껴, 가장 강력한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다.
[부딪치지 마라.]
연자강은 즉시 사도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막으려 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그 정도 크기의 암벽 속에 북명신공이 깃들었다면, 시간을 끌수록 병사들이 입을 피해는 커진다.]
되돌아온 사도명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가만있어 봐.]
[뭐?]
[자네 외에도 말 거는 사람이 또 있네! 그러니까 잠시만 가만있어 보란 말일세.]
**
꽈드드드드드등!
이제는 귀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박살 낼 듯한 굉음이었다.
사도명은 자신과 낙루석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자신의 생명조차 위협할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물러날 방법이 없었다.
목소리 하나가 머릿속에서 울린 것은 네 배의 힘을 내쏜 후, 여덟 배의 힘을 준비할 때였다.
- 이름을 알 수 있겠느냐?
사도명은 목소리의 출처를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돌이 북명신공에다가 이젠 말까지 한다고?’
- 북명신공으로 내 혼의 일부를 봉인하고, 일정 이상의 힘이 오가면 풀리도록 했다.
- 나는 이 참회석을 만든 사람으로 이름은 단사평이다.
‘참회석? 낙루석이 아니라?’
- 지금은 그리 불리느냐?
‘단사평이라면, 대리국의 개국조인 그 단사평이 맞소?’
- 그러한 것이 맞다.
목소리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려왔다.
- 하지만 강호를 떠돌 때는 다른 이름을 가졌었지. 나는 오직 지풍 한 가지로만 싸웠고,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단사평의 잔혼이 말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강호에는 한 명 존재했었다.
오로지 지풍 한 가지만 무공만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람.
그는 불패지왕이라 불렸으며 고금구천강 중의 한 명이었다.
‘불패지왕이 귀하였다고? 별호만이 아니라 정말로 왕이었다고?’
- 단씨 가문은 천하에 죄를 지었다. 나라를 개국하고 나서도 그점이 마음에 걸렸지. 나는 지옥마정이 훔쳐간 흡정북명대법을 막을 방법을 찾고자 했다.
중간에 연자강의 전음이 들려왔기에, 사도명은 얼른 그 말을 끊고 단사평의 말에 집중했다.
‘계속 말하시오.’
- 북명신공을 유래된 마공을 막을 방법! 나는 일양지를 주목했다. 일양지는 힘의 응축. 그 집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 때, 네 배의 힘으로 반사된 천극멸이 되돌아왔다.
사도명은 그 힘을 막아 내느라 온 몸의 힘을 끌어올려야 했다.
꽈드드드드-드드드등!
‘나에게 말하기 전에, 이 어리석은 반사와 재반격의 순환을 끊어줄 수는 없소?’
- 내 의지가 아니다. 참회석의 안배는 애초 마련된 절차대로 움직이는 것이며, 내가 지금 전달하는 말 또한 마찬가지다.
‘천극멸 역시 검강을 응축시켜 내쏘는 무공이오.’
사도명은 목 안에서 올라오려는 비릿한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북명신공은 그런 천극멸조차 북명신공이 흡수하고 반사하는데, 일양지가 어떻게 흡정북명대법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단 말이오?’
- 응축보다 더욱 강한 응축. 파괴력보다 더욱 강한 파괴력. 그것을 갖추려고 강호를 떠돌았다. 불패(不敗)의 지왕(指王)이라 불렸던 건 그 과정에서의 덤이었다.
사도명은 자신이 네 배의 힘으로 쏟아낸 파멸극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말을 더 빨리 해 줄 생각은 없소? 이러다 죽으면, 당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남지 않는데!’
- 결국 나는 찾아냈다. 가장 단단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금강. 궁극의 강함이며 그 응축. 나는 마침내 만들어 낸 지풍을 금강일양지라 부르기로 했다.
여덟 배의 힘이 돌아왔다.
사도명은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으나 결국 힘에 부치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쩌어어어-어어엉!
“커헉!”
사도명이 피를 토하며 허공에서 밀려났다.
“도명!”
“사도명!”
“무제!”
은교교와 연자강, 무림연합군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사도명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허공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내 이름 부를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멀리 달아나시오. 반사되어 오는 천극멸에 휩쓸리지 않도록 옆으로 달아나는 게 좋겠지?”
사도명은 그들 모두의 고함을 합한 것보다 더 크게 외쳤다.
“이젠 무려 여덟 배라고! 이건 정말로 막아낼 자신이 없어.”
- 깨닫고 보니 간단했다. 아무리 튼튼한 보자기도 뾰족한 송곳을 막지 못한다. 북명대법이 내공을 흡수한다면, 흡수하지 못하도록 더 뾰족해지면 되는 거였다.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사도명이 다시 반사되고 있는 여덟 배의 천극멸을 보고 절망에 빠지는 시점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어떡하면 되는데?’
사도명이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 금강일양지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하면 익히냔 말이오?’
- 수련관을 만들었다.
‘그 수련관이란 게 뭐냐고?’
- 참회석을 후대에게 남기는 뜻은 부디 금강일양지를 익혀 지옥마정의 흡정북명대법을 회수하라는 의미다.
“아, 아니! 지금 내 말은….”
- 참회석을 깨뜨려라. 오직 금강일양지를 얻은 자만이….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 나, 불패지왕이 남긴 인연을 잇게 될 것이니!
목소리는 마침내 사라졋다.
사도명은 더 할 수 없이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단사평의 잔혼이 전달한 말은 단순했다.
고오오오오-오오!
낙루석이 진동하면서, 마침내 여덟 배의 천극멸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저걸 막아내려면 금강일양지를 익혀야 하고, 금강일양지를 익히면 저걸 막아낼 수 있다는 얘기였던 거지?”
터무니없이 당연한 말에 사도명은 숫제 웃고 말았다.
[내가 도우러 간다.]
[제가 도울게요. 혼자선 막을 수 없어요.]
연자강과 은교교의 말에 사도명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단사평이 고금구천강 중의 불패지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아무도 몰랐을 거요. 그렇지?”
사도명은 낙루석을 보았다.
“이건 그가 만들어 놓은 시험처요! 나 혼자 통과해야 해.”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반사되어 오는 여덟 배 강도의 천극멸이 전하는 위압은 끔찍했다.
‘좋군.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랑 싸웠던 자들은 모두 이런 압박감을 경험했었다는 거잖아!’
날카로워져야 했다.
더 깊이, 더할 나위 없이 응축되어야만 했다.
‘뾰족하게. 너무나 뾰족해서 아무리 튼튼한 주머니라도 감히 감싸 안을 수 없도록! 하지만 나는 지풍에 대해 모르는데.’
일양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낙루석이 빛을 발했다.
사도명은 낙루석에 그려진 자신의 몸 곳곳에 붉은 빛이 명멸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붉은 빛은 기의 흐름이었다.
‘그래도 억지만 쓰신 것은 아니었구려, 노선배. 때맞추어 일양지의 구결을 전해주시는 걸 보니.’
사도명은 눈을 감았다.
빛의 명멸을 기억하며 운기하니,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한 줄기 솟아 양손 검지로 향했다.
‘이게 일양지인가?’
진기는 불길을 머금은 듯 뜨겁기 그지없었다.
그 뜨거운 기운에 손가락에 낀 축융지환이 호응하며 불길을 토해냈다.
후우-우우웅!
‘마기를 태우는 힘을 지닌 축융지환이 울고 있다. 이건 일양지에도 마기를 부수는 힘이 있다는 증거. 단사평은 허투로 일양지를 남긴 것이 결코 아니다.’
마침내 낙루석이 머금었던 힘을 완전하게 토해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사도명은 손가락을 뻗었다.
큐-와앙!
뻗어 나간 뜨거운 지풍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갈수록 좁게, 더욱 좁게 응축되면서 오히려 강도를 높여갔다.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더 날카롭게! 그리고 무엇이건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뾰족해지고 좁아진 지풍이, 놀랍게도 휘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흡사 한 줄기의 금강석이 허공을 가라는 듯했다.
“설마 금강일양지라고?”
단벽이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사도명은 되쏘아오는 여덟 배의 천극멸을 막지 않았다.
막을 힘이 없었다.
방어를 위한, 최선의 공격!
가공할 힘이 사도명의 얼굴 바로 앞에 닿는 순간, 천극멸을 찢으며 날아간 금강일양지는 낙루석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꽈아-아아아앙!
무너지는 암벽 뒤에서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