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66화 (66/168)

066화. 왕이 선택하는 길

멀리서 지켜보던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애초, 그는 연자강이 손쉽게 단홍을 이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었다.

싸움의 전개양상도 사도명이 짐작하던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상황이 갑자기 변했다.

단홍이 왼손을 움직이자, 오른손 다섯 개의 손가락에 왼손이 더해져 육맥신검의 진수인 육합파극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육합이란 양이 음을 찾고 음은 양을 찾는 순리를 뜻한다.

여섯 가지 서로 다른 검기가 순리에 따라 움직이면, 막을 방도가 없고 뚫을 수단도 없다.

사도명은 공세 일변도였던 연자강이 순식간에 수세로 전환되는 광경을 보았다.

놀랍게도 개벽의의 오의가 육합파극의 압력에 억눌리고 있었다.

사도명은 깜짝 놀라서 전음으로 연자강에게 외쳤다.

[하늘과 땅은 유구히 이어지고, 나는 그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하나의 운명을 이끈다.]

육합파극은 순리대로 움직인다.

연자강으로서는 개벽의만 가지고는 뚫어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육합파극에서의 순리란 단홍의 순리였다.

연자강의 순리는 아니기에, 한번 연자강이 휩쓸리면 유리함은 없고 불리함만 존재할 것이다.

[뭐냐, 이게?]

연자강이 물어오자, 사도명은 즉시 대답해 주었다.

[일컬어 천지일명. 이끌리는 대로 흐르는 흐름! 상대의 순리가 나의 순리가 아닐 때, 오히려 나를 상대에게 순응시켜, 이끌림을 당함으로써 이끄는 도리!]

천지일명은 사도명이 수라겁황을 상대하면서 깨달았던, 우주검의 여섯 번째 초식이었다.

검성조차 알지 못했던 우주검의 꽃이었던 것이다.

그 속에 깃든 뜻은 깊고 아득해서, 말로 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연자강은 사도명과 마찬가지로 우주오검을 익히고 있었기에, 사도명이 전하는 큰 뜻을 단숨에 깨달아냈다.

연자강이 눈을 감았다.

육합파극의 힘은, 대응을 포기 듯한 연자강의 온몸을 마음껏 휘감았다.

**

“지금… 감히 뭘 하는 게냐?”

정신을 잃었던 단벽이 이윽고 눈을 떴다.

단벽은 연자강과 단홍의 싸움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혹시 싸우는 게냐? 단홍 숙부는 왕실 최고의 기재다. 짐이 왕위를 잇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숙부가 왕이 되었을 것이다.”

“어깨에 짐만 잔뜩일 뿐인 왕 따위의 자리가 뭐 그리 좋다고?”

사도명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한때 무림의 세자라 불리는 검몽의 자리를 버리고 떠났던 사람이었다.

“걱정하지 마. 너의 숙부는 더 이상 널 해치지 못할 테니까.”

연자강은 이제 더 이상 육합파극의 회오리에 저항하지 않았다.

똑같은 순응하는, 그럼에도 더욱 정밀하고 단단한 느낌의 기운이 연자강의 몸에서 일어났다.

“천지일명이다. 과연 나의 친구! 자강은 이긴다.”

“숙부는 왕위에 욕심이 많았지. 하지만 나를 아끼셨어.”

뜻밖의 말에, 연자강은 단벽을 보았다.

“응?”

“나를 아끼셨기에 왕위가 욕심났지만 참으셨지. 그랬는데….”

단벽이 부들부들 떨었다.

“나 때문이다. 모두 나 때문이야. 숙부가 두려워서, 날 사랑함을 알면서도 두려워해서 내가 강해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사도명이 단벽을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질렀다.

“제대로 말해 봐. 단벽이 심마문의 어기전혼을 네게 시전한 것이 아니었단 거냐?”

“짐이 그들을 불렀다. 날 강해지게 만들어 준다 했기에! 아아, 결국 짐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죽게 한 것이다. 내가 죽였다.”

처음에 사도명은 단홍이 왕위를 욕심내어 역모를 꾸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역모의 과정에, 지옥문이 끼어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한데 그것이 아니었다.

지옥문을 대리국에 끌어들인 사람은 단홍이 아니라 왕인 단벽이었던 것이다.

그는 단홍이 자신보다 강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강해지기 위해서 지옥문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악마와의 거래란 결코 이익이 되는 법이 없다.

단벽은 심마문의 빙의체가 되었고, 자신의 부모를 해쳤다.

악은 퍼져나간다.

심마문은 단벽에게서 시작하여 대리국 왕실의 모든 이들을 한 명씩 포섭해 나갔다.

**

순응함으로써, 오히려 상대를 이끌게 된다.

수동이 됨으로써 능동이 될 수 있는 깨달음의 궁극, 천지일명!

고오오오오-!

육합파극이 완전히 연자강을 휘감았다 싶었던 순간에, 단홍은 천지간을 꿰뚫는 굉음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단홍은 자신이 뿜어냈던 모든 힘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것이….”

꽈아-아앙!

단홍의 몸 여섯 군데가 동시에 터져 나갔다.

육합파극의 힘을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단홍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에 뒤로 튕겨나갔다.

그런데도 그는 웃었다.

“하하하. 그래 이것이 검성의 힘! 세상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영웅의 무공이구나.”

단홍은 수십여 장을 날아간 뒤,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땅으로 떨어졌다.

그의 온몸은 여섯 군데의 구멍이 뚫려, 어느 한 곳도 성한 부분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친구의 무공이다. 검성의 무공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갔지.”

연자강이 단홍을 향해 걸었다.

“지옥문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말하라. 너의 뒤에 있는 것은 태명, 스스로를 태황이라 칭한다는 그 녀석이냐?”

연자강은 쓰러진 단홍의 목에 검을 겨눴다.

치-잉!

그 검을 옆으로 쳐내며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사도명이었다.

“뭐하는 거냐, 도명?”

“아무래도 우리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사도명이 고개를 돌려 단홍을 보았다.

단홍은 빙그레 다시 웃었다.

“강한데다가 현명하단 건가? 과연 낙루석이 예언한 영웅들.”

“이 사람이 지옥문을 끌어들인 게 아냐. 왕이 지옥문을 끌어들였고, 지옥문은 왕 외의 왕족들을 저만큼이나 포섭했다.”

사도명이 보는 시선을 따라, 연자강도 고개를 돌렸다.

주변의 담장의 문을 열고 나타난 왕족들의 몸에서, 지옥문의 마기가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사도명은 바닥에 쓰러져 죽은 다른 왕족들을 보았다.

“왕의 이상함을 눈치 채고, 이 사람들을 이끌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던 거요, 단홍?”

단홍이 다시 웃었다.

“어쨌거나 반역은 반역이지. 반역은 실패했고, 날 도왔던 왕의 형님 부부마저, 왕의 부모마저 모두가 죽임을 당했소.”

연자강이 단홍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와의 싸움은, 그렇다면 스스로 죽으려는 시도였던 거요?”

“하늘은 배려가 깊어, 힘이 부친 날 위해 영웅을 보내주셨지.”

단홍의 눈에서 천천히 빛이 꺼져갔다.

육합파극은 치명적인 공격이었고, 연자강은 천지일명을 이용해 그 공격을 되돌려주었다.

단혼은 자신의 공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았기에, 스스로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빛이 꺼져가는 눈으로 단벽을 보았다.

구멍이 뚫려 힘없는 팔로 손짓하자, 단벽이 주춤주춤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승상!”

“신하가 아니라 숙부로서 말하겠습니다. 백성을 다스리고자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보호하고자 힘을 갖는 겁니다.”

“숙부! 저는….”

“힘을 갖추어 조카님을 지켜드리고자 했을 뿐, 힘을 갖추어 위협코자 한 적은 없습니다.”

단벽의 뺨을 타고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압니다. 저 옆의 분의 검이 뇌성을 치며 절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는 왜 착각했을까요?”

“마문이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방법이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영웅을 낳는 거죠. 저는 저의 죄를 이고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지만….”

단홍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낙루석의 영웅이 왕에게 찾아왔으니… 안심합니다.”

단홍의 호흡이 멈추었다.

단벽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으아! 으아아아아!”

그는 오늘 심마문에 조종당해 부모를 죽였다.

미망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숙부마저 목숨을 버린 것이다.

담장으로부터 나타났던 대리 왕가의 사람들이 주변에 모였다.

그들은 이미 죽은 여러 사람들의 친족이었다.

지금 막 죽은 단홍과 피를 나눈 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의 눈에도 애통해하는 빛은 떠오르지 않았다.

“소용없을 듯싶지만….”

사도명은 청옥소검을 꺼냈다.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검지 손톱으로 검신을 튕겼다.

꽈드-등!

뇌성이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에 모인 대리 왕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강하게 흔들었다.

“웃!”

“크읏!”

더러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눈빛이 달라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 더러운 눈빛이 심마문에 감염된 것이 아니었단 거냐?”

연자강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자들을 오히려 역모죄로 몰아 죽였다. 단홍은 스스로 죽으며 우리에게 부탁한 거군. 자신의 혈족인 이 사람들을, 처리해 달라고 말야.”

사도명의 몸이 진기를 뿜으며 저절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공력은 연자강의 것과 정확하게 같아서, 한 쌍의 짝을 이뤘다.

“왕이 된 자가 어리석었던 후과는 언제가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우선 선택을 하라.”

사도명은 연자강의 우주오검과 자신의 우주오검을 동조시키면서, 단벽을 보았다.

“너의 나라가 어떤 길로 가기를 원하느냐, 단벽? 이 주변의 자들과 함께 가고자 하느냐? 선택을 하면 우리는 움직인다. 싸우거나, 혹은 물러나거나.”

단씨 왕가의 사람들을 하나 같이 고수였다.

백족의 핏줄을 이은 그들의 무공 성취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주변에 모인 왕실 인물들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모두가 육맥신검을 익혔고, 일양지를 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왕이여. 대리 왕실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길 생각이오?”

“제대로 판단하시오. 잘못된 판단을 하면, 우리 원로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단벽은 눈을 감았다.

그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단홍의 손을 잡았다.

“숙부! 짐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짐은 앞으로 마땅히 스스로 지은 이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을 택해야만 하겠지요?”

사도명과 연자강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연자강이 먼저 웃었다.

“뻔한 결론이네, 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쏘아갔다.

중앙에서 만나 교차하면서, 그 회전력을 이용해 더욱 빠른 속도로 주변의 대리국 왕실 고수들을 향해 덮쳐갔다.

“너희의 국왕은 잘못을 고치는 길을 선택했다. 스스로 무릎 꿇고 항복하지 않는 자는, 그 목을 단홍의 영전 앞에 바친다.”

**

“아무래도….”

은교교가 궁궐 안쪽, 멀리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커다란 싸움이 벌어진 것 같네요. 그래도 안심하세요. 흉험하지만 조화무제와 결사대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니까.”

적암의 마녀가 지녔던 힘을 고스란히 넘겨받은 은교교와는 달리, 곽소혜는 무릉신녀에게 받았던 힘 일체를 잃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은교교의 말에 곽소혜가 웃었다.

“위협할 정도라 해도 전 안심해요.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다면 지옥이라도 안심할 수 있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엔 무제와 결사대장이 없구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태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언젠가부터 사방을 에워싸며, 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들고 있는 군기로부터 그들이 대리국의 병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전 안심할 겁니다.”

곽소혜가 다시 한번 웃었다.

“무제와 대장이 없지만 적암의 마녀가 있고, 대연검호 남궁 가주님이 계시잖아요?”

곽소혜의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남궁태보가 곽소혜의 미소를 따라 웃으며, 다가오는 병사들의 앞을 막았다.

“남궁세가의 남궁태보다. 귀국의 왕실에 이미 통고하고 왔으니, 군사들은 행군을 멈추라.”

군사들 사이에서 말을 타고 투구를 쓴 자가 앞으로 나섰다.

“진무장군 흑호저요. 귀하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요.”

그러고 보니 병사들의 시선은 모두 무림연합군의 뒤, 낙루석이라 불리는 암벽을 보고 있었다.

무림연합군도 대리국 병사들의 시선을 따라 낙루석을 보았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암벽에 나타난 그림 같은 문양.

사도명의 얼굴을 꼭 닮은 그 문양의 옆에, 새로운 얼굴 하나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무림연합군 모두가 익히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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