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65화 (65/168)

065화. 눈물 흘리는 바위

“좋은 소문을 나쁘게. 나쁜 소문은 더 나쁘게 바꾸는 재주를 지닌 자들이 지옥문에 있나 봐요.”

사도명은 밤에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은교교는 그런 사도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재우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말아요. 우리 쪽에도 청미가 있으니까.”

제갈청미는 제갈세가로 돌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은교교는 제갈청미를 믿었고, 사도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도명은 웃으려고 노력했다.

“알아.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지. 세상엔 좋은 소문보단 나쁜 소문을 믿는 사람이 더 많더군.”

삼대마문은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다음에 나타났다.

오래된 준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이쪽도 그만큼의 치밀한 대책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운남성은 기후와 날씨의 변화가 둘 다 심했다.

한 산에 네 개의 계절이 모두 존재하고, 십 리만 걸어도 날씨가 변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날씨의 변화조차 연합군이 대리국에서 겪은 일에 비하면 전혀 놀랍지 않았다.

**

대리국은 단사평이 세운 나라로, 국가이면서도 때로 무림의 방파로도 활동한다.

“대리국엔 특산품이 많으나, 특히 희고 고운 돌이 유명합니다. 대리국에서 많이 나기에 대리석이라 불리는 돌 말입니다.”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태보가 사도명과 연자강 등의 무림연합군들에게 설명했다.

“특히 대리국 단 씨 가문 비전의 육맥신검과 일양지는 무림의 절기 중의 절기죠.”

무림연합군이 창산을 넘을 때는 하늘이 잔뜩 흐렸다.

하지만 대리에 거의 도착하여 삼탑사를 지날 때는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대리국의 특산품인 대리석을 파내어 옮기던 인부들이, 사도명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 낙루석(落淚石)이다.”

“낙루석이 걷는다. 으으! 변고가 일어날 것이다. 으아악!”

인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옮기던 돌조차 두고 달아났다.

그들을 앞을 막아 이유를 물어보려는 왕삼을, 사도명이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우리가 알 만한 이유라면, 원치 않아도 곧 알게 되겠죠? 놀란 사람들이니 그냥 둡시다.”

사도명의 예측이 옳았다.

대리국 궁궐의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무림연합군은 인부들이 놀랐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궁궐 입구에 커다란 암반이 벽처럼 서 있었다.

그 벽의 일부분에 더러 패이고, 더러 도드라져서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은교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모습, 마치 그림처럼 보이지 않아요?”

자연적인 것이 분명함에도, 음영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의 얼굴 부분이 사도명의 얼굴과 판에 박은 듯 같았다.

“아까의 사람들은, 저 그림이 나라고 생각해서 놀랐던 건가?”

사도명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전설이 있었습죠.”

사도명과 무림연합군 전원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화려한 비단옷으로 차려입은 삼십대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특이했다.

양 미간의 윗부분 일부 머리카락이 유난히 고운 은빛이었다.

은빛의 머리카락은 다른 부분의 검은 빛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사도명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자, 긴 얼굴의 삼십대 사내는 그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웃었다.

“하하. 이건 저희 단 씨 핏줄에만 전해오는 특색이지요.”

사도명이 포권했다.

“단 씨 왕가의 분이시군요.”

“단홍입니다. 들어오시죠. 안내하겠습니다.”

무림연합군은 운남성에 들어오기 전, 도언직을 먼저 보내 대리국 왕실에 방문을 알렸다.

일로종횡의 의미와 지옥문에 대한 정보를 사전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리 왕실은 사도명과 연자강만 입궐을 허락했다. 조화결사대를 비롯한 무림연합군은 모두 궁궐 밖에 남았다.

곽소혜도 그들과 함께 남았고, 은교교는 그런 곽소혜를 보호하겠노라고 말하면서 남았다.

대리국 궁궐 안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특산물이 많아 널리 수출하는 나라답게, 모든 것이 윤택했다.

“바깥 암벽은 때로 눈물을 흘리기에 낙루석이라 불리지요. 낙루석의 문양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단홍의 설명에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한 일이 많군요.”

“단순히 신비한, 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림은 계속 변하거든요. 오늘처럼 조화무제의 얼굴로 변한 것은 대략 삼 년 전의 일입니다.”

단홍이 궁궐 내문(內門)을 열면서 말했다.

“그 전까지는 다른 모습이었죠. 누구의 얼굴이었을지, 혹시 짐작하십니까?”

“삼 년 전?”

사도명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무황 설청산.”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자, 사도명은 오히려 당황스러워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정말로 저절로 나타난다?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낙루석의 존재는 우리 대리국의 큰 비밀이지요. 아까 보셨던 인부들은 궁궐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낙루석을 봤던 겁니다.”

“!”

단홍이 두 번째의 내문을 밀어서 다시 열었다.

“전설이 있습니다. 낙루석의 사람이 직접 나와서 걸어 다니면….”

열린 두 번째의 내문 안을 보는 사도명과 연자강의 눈이 커졌다.

단홍이 빙그레 웃었다.

“대리국의 멸망하고 단 씨 가문의 대가 끊어진다는 전설.”

수십 구의 시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시체 가득한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시체들이 만들어진 이유와 관련 있는 사람 외엔 없을 것이다.

사도명과 연자강은 열린, 두 번째 내문 안으로 들어갔다.

시체는 정확히 열일곱 구였고, 오직 한 명의 살아 있는 사람이 그 시체들의 끝부분에 서서 덜덜 떨고 있었다.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썼다.

“저분이 뉘신지, 소개해주겠습니까, 단홍?”

사도명은 시선을 소년에게 둔 채로, 말만 단홍에게 던졌다.

단홍은 다시 웃었다.

“하하. 옷차림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왕입니다.”

단홍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대리국왕 단벽! 나의 조카로, 바로 오늘 정확하게 열네 살의 생일을 맞았답니다.”

단홍의 말이 끝나자, 연자강이 아무런 말도 없이 땅을 박찼다.

세상 무엇보다도 빠른 검로인 무영섬이 펼쳐지면서, 푸른 검광이 단홍의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목이 아니라 어깨입니까? 하하. 죽일 수 있을 텐데도 굳이 살려서 사연을 물어보고 싶나요?”

단홍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손가락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이 일어나,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온 무영섬을 막았다.

콰콰-콰쾅!

폭발이 단홍의 오른쪽 어깨 바로 앞에서 일어났다.

“육맥신검?”

연자강이 단홍이 전개한 무공의 이름을 읊으며, 힘에 밀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단홍 역시 한 걸음 물러나서, 다시 한번 웃었다.

“하하하. 이런! 육맥신검을 전개하고도 내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경험은 처음이지 뭡니까?”

육맥신검은 막대한 내공을 필요로하는 무공이었다.

손가락 각각에서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다섯 갈래의 검기!

육맥심건은 강하고 신출귀몰하며 기이했다.

“육맥신검이 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고 해도….”

연자강의 손에서 검이 푸른빛 광채를 뿌리며 맴돌았다.

고쳐 잡은 검을 다시 앞으로 쏘아가면서, 연자강은 말했다.

“귀하기 펼치는 검법이 우주오검에 감히 필적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않는다! 천극멸.”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소멸시키는 강력한 힘!

치치치치치치칭!

가늘지만 날카로운 검명이 쉬지 않고 울렸다.

단홍이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이용하여, 빠르고 현란한 검법으로 천극멸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치 두 자루의 검이 단홍의 오른손에 심겨져 있다가, 동시에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검성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언제까지나 무적일 순 없지. 하하하! 육맥신검이 수백 년간 얼마나 발전했는지 자세히 보여드리고 싶으니 계속 싸워봅시다.”

두 사람이 싸우는 사이, 사도명은 단벽의 앞으로 갔다.

어린 왕은 금관을 쓴 채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네 신분은 왕이지만 나는 대리국의 국민이 아니니 말을 편히 하겠다. 바닥의 시신들은 모두 대리국의 왕족. 맞니?”

사도명은 시신들 모두의 이마에 은빛의 머리카락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단벽의 이마에도 똑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어, 어마마마와 아바마마다.”

단벽이 덜덜 떨면서 손에 든 비수를 앞으로 겨누었다.

“다, 다가오지 말거라. 다가오면 가만두지 아, 않겠다.”

“겁먹을 것 없다. 네 부모를 해친 너의 숙부는 내 친구가 잡아두고 있잖느냐?”

“그, 그것이 아니라….”

단벽이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

단벽은 비수로 곧장 사도명의 가슴을 찔렀다.

피가 튀었다.

가슴이 아니라, 비수를 다급히 잡은 사도명의 손에서 튄 피였다.

“미, 미안하다. 짐의 의지가 아니다. 짐의 의지가 아니었다.”

사도명이 왼손을 들어, 자신이 쥐고 있는 비수를 튕겼다.

꽈드-등!

손톱으로 단순히 튕겼을 뿐이건만, 뇌성이 일어나며 사방을 휘감았다.

“아악!”

단벽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도명은 남궁세가주 남궁태보로부터 뇌정타명을 배웠다.

뇌성의 굉음이 단벽의 몸속에 어기전혼으로 깃든 마혼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무공이었다.

“우리가 오면서 만났던 인부들과의 일을, 단홍의 눈이 천리안이 아닌 이상 알고 있을 리 없다.”

사도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접 보고 와서, 보고한 자가 있겠지? 또한 낙루석이란 전설을 이용해 설청산 맹주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그려 넣은 자도 여기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더러 세상엔 신기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생겨난 얼굴이 사람의 진짜 얼굴과 똑같아지는 기적은 발생할 수 없다.

사도명은 아무렇게나 던진 돌이 하늘과 땅을 가두는 진법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도명의 말이 끝나는 순간, 대리국 궁궐 내전을 둘러싼 높이 일장에 달하는 담장에서 여러 개의 문이 돌연 열렸다.

사람들이 한 명, 혹은 두 명씩 걸어 나왔다.

“아!”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사도명은 단홍이 획책한 음모가 어떤 것인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앞머리에도 선이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두의 이마에는 선명한 은빛 머리카락이 한 군데에 모여 있었다.

단사평의 후손이 지니는 특징.

“당신들도 모두 왕족인가? 그러면서 또한 왕을 배신한 건가?”

**

연자강은 계속 단홍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검이 무영섬과 천극멸에 이어 개벽의를 펼쳐냈다.

단홍은 오른손 다섯 개의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개벽의를 막아냈다.

하지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의 양은 갈수록 늘어났다.

“육맥신검의 창시자는 본래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지? 당신은 머리카락의 특성은 물려받았으나, 육손의 특성은 물려받지 못한 모양.”

우주오검 중의 개벽의가 단홍의 몸 곳곳에 상처를 만들었다.

단홍은 그럼에도 웃었다.

“하늘의 안배란 실로 교묘하군. 오래 계획했는데. 가족과 형제들을 대체할 후예까지 키웠는데.”

통쾌해하거나 즐거워하는 웃음은 결코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한순간의 실수로 무너지는 것을 볼 때 짓게 되는 허탈한 웃음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희들이 하필 이 공교로운 때에 찾아오겠노라 연락하기 전만 해도.”

단홍의 상처는 계속 늘어갔다.

궁극을 보는 검, 개벽의는 완벽한 빠름과 현란한 변화, 그리고 강한 파괴력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너희는 왜? 왜 하필 이러한 때에 나타나느냐?”

“말했잖소. 하늘의 안배란 실로 교묘하다고.”

“왜 나에게 이, 이러한 선택을 강요하느냐? 대답은 필요 없다.”

단홍의 오른손이 활짝 펼쳐진 채로 공간을 휘저었다.

서로 다른 특색의 다섯 가지 검기가 하나의 손에서 일어났다.

육맥심검 상의 오령조극이었다.

하지만 개벽의가 만드는 촘촘한 검망을 뚫지는 못했다.

애초 육손을 타고 난 단사평이 창안한 검공이었기에, 다섯 손가락은 육맥을 펼치기에 부적합했다.

“차라리 기쁘다. 모든 것이 드러난 지금은, 조카이기에 망설였던 마지막 선택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지 않느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단홍의 왼손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연자강의 눈은 커졌다.

단홍은 왼손으로 여섯 번째의 손가락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는 다섯 손가락과 하나를 더해, 육맥신검 최후의 무공인 육합파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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