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63화 (63/168)

063화. 무림연합군 출정

달이 높이 올라갔다.

은교교는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손을 느끼며 눈을 떴다.

사도명이 달을 등지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이… 아니군요!”

은교교를 바로 앉히며,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무너진 지하에서 당신의 방울 소리를 들었을 때, 똑같은 생각을 했었지. 아! 이거 꿈이 아니구나.”

주변에선 싸움이 한창이었다.

연자강이 극락문 염라마인들을 맞이해 싸우고 있었다.

극락문의 무공은 대부분 삼대마문의 것이었다.

때문에 극락문의 신인들은 매우 강했지만, 검성의 우주오검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연자강은 우주오검과 천중구불을 번갈아 사용하며, 염라마인들을 쉬지 않고 공격했다.

검과 손이 움직일 때마다 마인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당신 친구는 강하네요. 그러나 상대가 너무 많아요.”

은교교가 한숨을 쉬었다.

사도명은 은방울을 은교교의 허리춤에 달아주면서 웃었다.

“몸은 어떻소?”

“마녀의 힘을 받아들일 때 솔직히 걱정했어요. 마기에 잡아먹히면, 나 어떻게 하지?”

“당신은 결국 이겨냈소.”

“아버지와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은교교가 일어섰다.

“덕분에 마음의 작은 조각은 잃지 않고 버텼어요. 마녀의 힘을 내 것으로 하겠단 의지! 그런데 문득 당신 목소리가 들렸죠.”

그녀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각각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일어났다.

사도명은 다시 웃었다.

“고스란히 빼앗아 온 건가? 강하군. 경험해 봐서 알아.”

사도명의 몸은 더러 타고, 더러 얼어서 보기에 참담했다.

“미안해요.”

은교교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자,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한 일이 아닌 걸 알아. 태명. 그놈의 짓이지?”

“태명은 지금… 저들 중의 한 명에게 있을 겁니다.”

은교교는 연자강과 싸우고 있는 수백 명의 신인들을 보았다.

어기전혼은 마음을 보내 타인의 몸을 조종하는 사술!

그것은 심마문의 무공 중에서 근본이 된다.

심마문의 어기전혼에 의해 조종당하는 몸은 빙의체라 불린다.

“태명의 빙의체를 찾는 일이라면, 연자강보단 제가 훨씬 더 유능할 거예요. 경험해 봤으니까.”

“도우려는 거요?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는데.”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연자강은 제가 다쳤을 때 살 수 있도록 돕고, 법허 선사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어요. 왜 돕지 말라는 거죠?”

은교교는 마음을 되찾아 빙의체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적암의 마녀가 소유했던 힘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빙강을 소유한 은교교는 분명 연자강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강은 마음고생을 아주 오래, 많이 했소.”

“알아요. 빙의된 곽소혜가 세상을 무너뜨리는 걸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연자강은 염라마인을 쓰러뜨리느라, 그 자신도 지쳐서 곧 쓰러질 듯이 보였다.

“그래서 하는 소리요. 자강은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무슨 뜻이죠?”

“그는 씻어내고 있소.”

사도명이 설명했다.

“노여움! 죄스러움! 그런 것들이 깊이 쌓이면, 한꺼번에 모두 풀어줘야 하지 않겠소?”

“아!”

은교교는 비로소 깨달았다.

연자강의 표정이 지칠수록 편안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극락문 문주로서의 모든 것이 죄책감이었겠군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연자강은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소.”

그는 무림의 분쟁을 막았다.

헛되이 죽는 이가 없게 만들면서, 한편으로 신인이라는 명목으로 욕심 많고, 탐욕스런 자들을 분류시켰다.

염라마인!

언젠가 본심을 밝혀도 좋을 때가 오면, 연자강은 염라마인들을 제거하리라 결심하고 있었다.

‘무림을 정화하기 위해, 그 정도만이라도 노력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겨우 그 일을 한다.’

휘두르는 검에 지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연자강의 마음은 튀는 선혈에 오히려 씻겨 나갔다.

스컥!

지친 탓일까?

연자강은 검 하나가 자신의 왼쪽 어깨를 베고 지나감을 느꼈다.

몸을 뒤로 돌려 염라마인을 베어내면서 연자강은 소리쳤다.

“아직은 아냐. 오지 마!”

사도명을 향한 고함이었다.

베어져, 피를 튀기며 쓰러지는 염라마인의 뒤에서, 사도명은 웃고 있었다.

“도울 생각은 없네.”

사도명은 자신이 나서지 않았고, 은교교도 막아 주었다.

세상에 사람이 많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츠카칵!

연자강의 허리와 허벅지에 다시 상처가 생겨났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연자강은 활짝 웃었다.

[네가 깨어났으니, 나는 이제 더 이상 소혜의 안전도, 네 여자의 안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

[그렇기는 해. 한데, 내가 아무리 돕지 않으려 해도….]

사도명의 전음이 연자강의 귀에 울렸다.

[저 사람들까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말이야.]

츠카칵!

연자강은 자신의 앞을 덮쳐오던 염라마인 세 명의 허리가 동시에 베이는 모습을 보았다.

조각나 쓰러지는 염라마인의 뒤에 커다란 주먹을 가진 우락부락한 덩치가 서 있었다.

“질풍권 왕삼입니다. 내 이름, 기억하시오, 문주?”

연자강은 더 이상 문주가 아니었지만, 왕삼은 굳이 그를 문주라는 칭호로 불렀다.

왕삼의 옆에 도언직도 보였다.

“오랜만이오, 문주. 다른 입장에서 다른 마음으로 보니 다른 의미로 반갑구려.”

[소개하지, 조화결사대야.]

사방에서 조화심결을 익혀 염라탈혼의 통제를 벗어난 사람들이 눈을 빛내면서 나타났다.

[모두 극락문에 속했던, 하마터면 염라마인이 될 뻔했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네.]

“이놈들은 모두 완전한 마인이 되어버린 거요? 구해 낼 방법이 정말로 없소?”

왕삼이 미간을 잔뜩 찡그리면서 물었다.

“유감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란 돌이킬 방법이 없는 거라서.”

도언직이 소리쳤다.

“지금 보니 문주도, 서왕모도 마문의 편이 아니었군. 극락문의 진짜 존좌는 대체 누구요?”

콰-앙!

연자강은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마지막 염라마인을 장력을 이용해 뒤로 날렸다.

날아간 염라마인은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연자강은 몸을 왼쪽으로 돌려, 중앙에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서 있는 한 명의 여인을 보았다.

“아무래도 저기에 서 있는 것 같군, 진짜 존좌는!”

여자는 소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나이는 이미 90여년 전에 일백 살을 넘겼다.

적녀문 출신의 소수마녀 경요미는 극락문 천향령주이기도 했다.

사도명이 연자강에게 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요미라는 빙의체 속에 들어 있는 그놈이 존좌라는 얘기인 거지?”

경요미의 입이 방긋 웃었다.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겠단 건가, 연자강? 세상의 희생이 늘 텐데 두렵지 않아?”

본래 경요미의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애교가 넘쳤었다.

하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거칠고 낮았으며, 또한 굵었다.

사도명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태명?”

“말했잖느냐? 네가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아니라고.”

“숨어 있지 말고 나선다면, 함부로 부르지 않고 상대해 줄 텐데.”

“하하하. 내가 굳이 극락문을 만들었던 의도는….”

경요미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을 아끼기 때문이었다.”

사도명이 제갈청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아!”

제갈청미가 장검 한 자루를 사도명에게 건넸다.

사도명은 곧장 걸어가면서 검을 뽑았다.

뽑은 검으로 경요미의 목 오른쪽을 곧바로 겨누었다.

“세상을 아낀다? 아끼기에 없애고 싶었단 건가, 태명?”

경요미의 입이 방긋 웃었다.

“다시 한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그 입을 귀까지 찢고, 두 눈을알 뽑아서 죽여준다.”

연자강도 검을 고쳐 쥐었다.

그 역시 경요미의 앞으로 가서, 그녀의 왼쪽 목에 검을 겨눴다.

“내 친구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 태명!”

경요미의 눈이 사도명과 연자강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극락문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맞아. 그런데 극락문이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전쟁이 벌어졌을 거란 거냐?”

“맞아. 무림은 헛되이 저항하다가, 수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렸겠지?”

경요미가 연자강을 보았다.

“네 여자가 다스리고, 너는 그 여자를 지키는 세상! 나쁜 선택이 아니었을 텐데, 연자강!”

“본체는 어디냐, 태명?”

연자강의 검이 경요미의 몸에 조금 더 깊이 닿았다.

검 끝이 목을 찔러 피가 흘렀지만, 경요미는 조금도 고통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하하하. 빙의체의 고통이 내게 전해질 리 없지 않느냐?”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고통이 무서워서 뒤에 숨어 있는 거냐, 태명?”

“다시 말하지만!”

경요미가 고함을 질렀다.

“너희 따위가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내 이름은!”

“겁먹은 쥐새끼의 고함은, 하하 듣기에 무척 시끄럽군!”

사도명과 연자강을 번갈아 보는 경요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너희에게 과연 있을까?”

사도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은교교가 천천히 걸어와서 사도명의 뒤에 섰다.

곽소혜도 연자강의 뒤로 왔다.

제갈청미가 마지막으로 걸어오더니, 경요미를 보며 말했다.

“제갈세가의 제갈청미다. 너희가 감춘 진실을 세상에 알릴 거야. 구대세가와 구파일방이 모두 힘을 합할 생각이다.”

사도명이 물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보이나? 걱정하지 마. 모든 무림의 연합군이 너흴 상대할 거니까.”

경요미가 한숨을 쉬었다.

“이미 결정을 굳혔단 거냐? 좋아. 어느 쪽부터 해 줄까?”

“어느 쪽?”

연자강이 되묻자, 경요미가 빙그레 웃었다.

“너부터로 하자, 연자강. 자, 이건 그 약속의 증표!”

경요미는 갑자기 움직였다.

연자강이 놀라서 손을 뺐다.

하지만 즈금 늦어 경요미의 목은 검에 깊이 찔린 후였다.

“잘 봐둬라, 연자강. 곧 이 것이 너의 모습이 될 테니까.”

경요미가 고개를 떨궜다.

연자강은 허탈한 표정으로 사도명을 보았다.

“뼈져나가지 못할 것을 알고 일부러 죽었다. 아니, 죽였다.”

목이 꿰뚫린 경요미의 시체는 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적마교 출신의 천향령주!

낮은 신분이 아님에도, 태명은 간단하게 그녀를 버린 것이다.

“비밀 누설을 염려했겠지? 휴우. 이런 놈과 싸운다는 건, 대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할까?”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에도 희생을 피할 방법은 우리에게 전혀 없군.”

은교교가 사도명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진짜 용기란 희생이 두려우면서도 실행하는 것이라죠?”

그녀 허리의 방울이 흔들렸다.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따뜻해서 사도명은 눈을 감았다.

도언직이 포권하며 말했다.

“조화심을 깨닫지 못하고 극락문으로 돌아갔던 자들의 마지막을 오늘 또다시 확인했습니다.”

왕삼도 소리쳤다.

“조화의 마음은 우리에게 퍼졌으니 세상에도 퍼질 겁니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강. 조화결사대의 대장을 맡아주게.”

연자강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기꺼이! 그러나 이런 나에게 과연 자격이 있을까?”

극락문의 문주로 산 죄책감은 영원히 연자강의 몫이었다.

조화결사대원들이 일제히 연자강을 향해 포권했다.

“대장님껜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개심했으니까요.”

왕삼이 빙그레 웃었다.

“똑같은 처지이니, 그야말로 최고로 적합하지요.”

사도명이 제갈청미를 보았다.

제갈청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버지와 함께 구대세가 모두를 설득할게요.”

“법허 선사가 소림, 무당의 힘을 합하고 있소. 구파일방은 그분이 모으실 거요.”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께 사죄드리러, 반드시 갈 생각이네.”

사도명은 가장 마지막으로 은교교를 보았다.

“일로종횡은 길고 험한 길이 될 거요. 함께 걸을 수 있겠지?”

은교교가 웃었다.

“적암의 마녀가 무림맹주와 함께인 거네요! 괜찮겠어요?”

“검성과 천라대제, 그리고 항산신녀! 선대의 영웅들이 수백 년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를 희생하며 준비했던 길.”

사도명은 모두를 둘러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이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싸움이 결코 아니요. 그래도 함께 하시겠소?”

모두가 양손을 모아 사도명에게 포권했다.

“맹주님과 함께!”

“그럼 선언하겠습니다. 무림연합군이 출정합니다. 우리는….”

사도명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반드시 이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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