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62화 (62/168)

062화. 적암의 마녀62

은교교는 사도명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법허 선사와 함께 무릉촌을 찾았을 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소망밖에 없었다.

“그분이 자신을 버려서 지킨 세상입니다. 지켜 주세요.”

그분이란 사도명이며, 연자강은 사도명의 친구였다.

그리고 법허의 제자였다.

하지만 연자강은 변했다.

무릉신녀는 법허를 죽이려 했으나, 연자강은 곽소혜의 몸을 가진 그녀를 거역하지 못했다.

결국 은교교는 자신의 몸을 던져, 무릉신녀가 법허를 쏟아낸 강기를 대신 막았다.

연자강의 선택은 한 가지 외엔 없었다.

자신의 사부가 자신의 아내에게 죽게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나서면, 법허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 생각했다.

‘사부! 죄는 나중에 갚겠습니다.’

법허는 가까스로 탈출했고, 은교교는 빙벽 아래에 남겨졌다.

은교교는 목숨마저 위험했다.

연자강은 그런 은교교를 가사 상태로 만든 후, 얼음관 속에 넣어 목숨을 보전했다.

심마교는 무릉신녀를 이용해 적암의 마녀를 키웠다.

육백 년 동안 적암마계의 모든 마기를 그녀의 몸에 양생했다.

그런 적암마녀의 힘이, 무릉신녀의 내공을 통해 은교교의 몸 구석구석을 침습하고 있었다.

“근골이 좋다. 호호. 이 여자가 아니라 저 애가 좋겠구나.”

무릉신녀가 곽소혜의 몸속 적암의 마녀를 은교교에게 옮기고자 했을 때, 연자강은 찬성했다.

그건 목숨마저 위험한 은교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릉신녀는 적암 마녀로서의 모든 힘을 은교교에게 넘겼다.

마기를 상실하자 육백 년 이어온 혼을 보호할 방법이 사라졌다.

무릉신녀는 빙벽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무릉신녀는 빙벽 속에 있으면서도, 나날이 적암의 마녀로 변해가는 은교교를 보며 기뻐했다.

“그 멍청이가 그토록 사랑한 세상, 무림! 없앨 것이다. 반드시 사라지게 만들 거야.”

존좌란 적암마계 제자들이 자신의 주인을 일컫는 단어다.

무릉신녀는 존좌가 됨으로써, 마문이 원하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도명이 나타났다.

결국 무릉신녀는 청옥소검에 새겨진 이름을 보았다.

그녀의 혼은 아픈 후회와 더불어 사라졌다.

무릉신녀는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적암의 마녀는 남았다.

은교교의 몸속에!

**

“사람을 조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뭔 줄 아나, 조화무제?”

은교교의 입이 물었다.

사도명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 어려 있는 그림자를 느꼈다.

“글쎄. 귀하처럼 비열해지면 되지 않을까?”

은교교의 입이 웃었다.

“약한 부분을 알아채는 것. 무릉신녀는 검성을 사랑했다. 그녀의 약점이었지. 너는 어떨까?”

사도명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공격을 당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공격을 거두다 생긴 상처였다.

“사람이란 모두 마찬가지야. 애정에 취약하지. 은교교가 너의 약점이다. 맞지?”

사도명은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설인후가 말했던 자!

태명이란 이름을 사용하며, 무릉촌을 무너뜨린 자!

그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숨어서 은교교의 몸을 조종하고 있을까?

사도명은 마음을 나누어 주변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마음. 그래,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은교교의 입이 껄껄 웃었다.

“너는 솔직하구나. 이 여자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다.”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내 여자의 마음이다. 함부로 엿보지 마.”

[혼을 전달해서 육체를 조종하는 어기전혼의 술법은, 거리가 너무 멀면 먹히지 않아.]

연자강의 전음이 사도명의 귀에 울렸다.

[놈은 가까운 곳에 있다. 시간을 끌어. 내가 찾겠다.]

“그러지 마, 자강.”

사도명은 연자강의 전음에 육성으로 답했다.

놀란 연자강이 할 말을 잃고 사도명을 보았다.

“너 지금 왜…?”

“도움은 필요 없단 소릴세. 도와줄 사람을 이미 찾았거든.”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교교의 입이 웃었다.

“도와줄 사람? 누구?”

그녀의 양손이 위로 들렸다.

적암마계의 화빙강 중 지옥염화가 일어나 앞으로 뻗었다.

화르르-!

사도명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온몸이 불꽃에 뒤덮였다.

“무제!”

멀리 물러나 서 있던 제갈청미마저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호신강기조차 끌어올리지 않은 사도명의 모습에, 연자강이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뭐 하는 거야!? 멈춰!”

연자강은 천중구불 중의 서천여래로 은교교의 왼쪽을 공격했다.

때로 공격은 최선의 방어.

자신의 공격을 은교교가 막는다면, 사도명을 향한 공격이 풀릴 것이라고 연자강은 판단했다.

하지만 은교교는 연자강의 서천여래를 막지 않았다.

불길에 휩싸여 있던 사도명이 고함을 지르며 천극멸을 쏘았다.

“그러지 말라니까.”

콰-까가가강!

포음이 미친 듯이 일어나며, 연자강은 뒤로 십여 장 물러났다.

그의 몸 곳곳에 천극멸이 남긴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도대체 왜?”

사도명의 표정은 엄중했다.

지옥염화는 모든 것을 태운다.

호신강기 없이 지옥염화에 노출된 사도명의 몸은, 아직도 곳곳이 노린내를 풍기며 불타고 있었다.

“내게 화가 난 거냐? 그래서 돕지 못하게 하는 거냐, 도명?”

“그녀는 내 약점이랬잖아.”

“!”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태명은 은교교를 방어하지 않을 거야. 너의 검이 은교교를 찌르면, 내가 더 아플 것을 저 녀석은 이미 알고 있거든.”

연자강의 눈이 커졌다.

은교교의 입은 활짝 웃었다.

“확실히 나는 그럴 생각이었지. 하하하.”

연자강은 검을 뒤로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도울 방법은 없단 겐가? 정말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어?]

사도명은 은교교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옥염화는 꺼졌지만, 사도명의 온몸은 이미 지독한 화상으로 참혹했다.

[있네, 확실하게.]

태명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세외의 오대마문과 우내의 삼대마문의 움직임 모두!

심지어 그는 사도명에 대한 것을 알았고, 심지어 은교교와의 관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모든 일의 배후냐? 수라겁황과 극락문! 모두의 뒤에 네가 있는 거냐, 태명? 너는 누구냐?”

은교교의 손이 들렸다.

입이 움직였다.

“나로 말하자면, 네가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존재. 그리고….”

콰아아-!

“지금 너를 죽일 자.”

은교교의 손에서 뻗은 한기가 주변 모든 것을 얼렸다.

불에 탄 사도명의 상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먼지로 바스러져 흩어졌다.

“아아!”

제갈청미는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연자강은 으스러져라 주먹을 힘껏 쥐었다.

은교교의 입이 웃었다.

“도울 사람이 있다? 허세 부리지 마라, 무제여. 주변엔 모두 나의 수하들이다. 널 도울 자는 없어.”

“아니, 분명히 있지.”

흐르던 핏물마저 얼어붙은 얼굴로 사도명은 웃었다.

“아직은 잠들어 있지만, 곧 깨어날 거야!”

딸랑딸랑.

사도명의 허리에서 방울이 맑게 울었다.

은교교의 입과 코와 눈이 모두 굳었고, 손끝은 크게 떨렸다.

연자강은 그제야 사도명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제갈청미가 신음처럼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교교!”

은교교의 손끝이 파르르 다시 한 번 떨렸다.

“거기에 있는 거 알아.”

사도명이 소리쳤다.

“무저의 지하에서도 들렸다. 당신의 방울 소리! 그리고 나의 검. 내겐 아직도 당신의 노래가 들린다, 교교.”

그는 쉬지 않고 걸었다.

얼어붙은 두 발을 계속 움직여, 조금씩 은교교에게로 다가갔다.

은교교의 입이 일그러졌다.

“네, 네놈이 지금….”

은교교의 두 손에서 뻗어 나오던 한기가, 어느새 무지막지한 강기로 변했다.

“죽엇-!”

거대한 강기의 해일이 사도명을 향해 날아갔다.

“안 돼요!”

놀란 제갈청미가 몸을 날리려 했지만, 연자강이 그녀를 막았다.

“믿읍시다. 내 친구는 자신의 여자를 믿고 있잖소.”

콰아-아아아아앙!

적마강의 기운이 폭발했고, 흙먼지가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사도명은 계속 걸었다.

적마강은 그의 주변 땅을 완전히 뒤집었으나, 정작 사도명의 몸은 한 올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

은교교의 눈이 은교교의 손을 보았다.

“은교교! 사라지지 않았느냐? 살아 있었느냐?”

사도명이 기다리던 조력자가 마침내 나타났다.

사도명 주변의 땅이 무너졌다.

그는 내공을 돋아 허공을 걸으며 계속 은교교에게 다가갔다.

“생각을 해 봤소, 교교.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죽고, 무릉촌은 심마교에 점령당했을 때, 어땠을까?”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져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은교교의 손이 움직이기만 해도, 사도명의 가슴을 후려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은교교는 손을 떨기만 할 뿐, 뻗지는 못했다.

손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은 은교교의 눈과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바, 방해하지 마.”

“결론은 하나더군. 모든 걸 던져서! 설령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당신은 나와 설청산 맹주의 뜻을 이어가려고 했을 거요.”

딸랑딸랑.

방울이 다시 흔들렸다.

은교교의 눈빛도 흔들렸다.

“나는….”

처음으로 은교교의 입에서 은교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갈청미가 소리쳤다.

“교교야!”

“당신의 뜻… 아버지의 의지… 곧 다시 만나게 될 날에….”

은교교의 몸이 덜덜 떨렸다.

“당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아아. 으아아!”

발작처럼 고함을 지르며 은교교의 손이 다시 적마강을 쏟아냈다.

퍼퍼-퍼퍼펑!

그러나 수십 갈래의 강기는 하나도 사도명의 몸에 닿지 못했다.

모두가 옆을 스치고 뒤로 흘러, 애꿎은 땅만 뒤집었을 뿐이었다.

사도명은 계속 걸어가서 마침내 은교교의 앞에 섰다.

“늘 믿고 있었지.”

딸랑 딸랑 딸랑-

방울이 낭랑하게 울었다.

“저, 저항…하지 마라. 내 명령을… 들으란 말이다.”

탁한 목소리가 은교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도명은 은교교를 힘껏 안았다.

“그때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소. 당신은 강해. 충분히 강하다.”

콰아아아아아아-!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 그리고 모든 것을 부수는 화, 빙, 강의 기운이 동시에 솟구쳤다.

사도명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은교교를 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은교교의 얼굴 역시 사도명 만큼이나 지독한 고통으로 물들었다.

제갈청미가 고함을 질렀다.

“힘을 내! 심마문의 공격은 강한 의지만이 이겨낼 수 있어.”

콰콰콰콰콰콰콰콰-!

은교교와 사도명의 몸을 희고 붉고 검은 기운이 휘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은 어두워졌다.

이윽고 연자강이 신음보다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해낸 거냐?”

소용돌이치던 세 가지 색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사도명은 은교교를 안은 채로 미소 지었다.

“좋군. 모든 것이 좋다.”

양쪽으로 맞닿은 절벽 사이로 달빛이 어느새 떠올랐다.

보름이었다.

“달빛 교교하고, 우린 마침내 다시 만났군.”

“…꿈이… 아닌 거죠?”

은교교는 그 말만 묻고서, 정신을 잃었다.

“그거야 당연히!”

사도명도 미소를 지은 채로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놀란 제갈청미가 탄성을 뱉을 때, 연자강은 즉시 달려가 두 사람을 동시에 부축했다.

은교교와 사도명은 거의 반나절 동안 심마문의 심령제어와 싸웟따.

그리고 이겨낸 것이다.

“그래. 잠들어라. 충분히 쉬어. 이젠 내가 나의 일을 하마.”

주변의 기운이 변했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제갈청미가 곽소혜를 안고 연자강의 옆으로 왔다.

“저 사람들은 누구죠?”

연자강이 대답했다.

“극락문의 신인들.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처음부터….”

연자강의 몸에서 검성의 우주오검이 무서운 기세로 솟았다.

“모아두고서,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했던 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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