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화. 재회
우내의 삼대마문!
적마교와 심마문, 그리고 적암마계.
적암마계는 가장 어둡고 끔찍한 세 가지 세상을 뜻한다.
화(火), 빙(氷), 강(罡)!
그들은 천외의 오대마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숨어서 수라겁황이 검성에게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후, 우내 삼대마문 전체의 수장 격인 적암마계는 한 가지를 결심한다.
“화빙강의 세 가지 내공. 심마문의 심공. 그리고 적마교의 적마강신대법 모두를 하나의 몸에 담는 병기를 만든다.”
계획은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치밀했고, 은밀했기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무도 예측 못 할 곳에서, 검성조차 알지 못할 곳에서 우리의 칼날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적암마계의 결심 후 육백년 이상의 시간을 격하여, 마침내 적암의 마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내부의 붕괴. 내부의 칼. 그건 무림맹에 한정된 것이 결코 아니었어.]
연자강의 전음이 다시 울렸다.
사도명은 듣지 못했다.
들을 수가 없었다.
은교교.
“어,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이, 이런 곳에서?”
설인후의 말을 떠올렸다.
태명이라는 자.
그는 무릉신녀가 연자강을 안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고 했었다.
[무릉신녀가 소혜의 몸을 장악하고 극락문을 만들 때 떠날 수가 없었네. 기회를 노려 아내를 구해야 했으니까.]
연자강은 극락문을 도왔다.
막을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극락문은 싸움을 금지했고, 제대로 된 무인과 욕심만을 지닌 자들을 구분했다.
[그러다가 사부와 은 소저가 찾아왔지.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사부는 무릉신녀의 손에 죽었을 거야. 그녀는 무림의 사람들을 정말로 증오하거든.]
“교교는? 은교교는 왜?”
사도명은 전음을 하는 것조차 잊고, 연자강에게 소리쳤다.
[달아나라 했는데 은소저는 그러지 않았네.]
연자강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은 소저는 마치, 스스로 죽고자 무릉신녀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어.]
사도명은 삼 년 전의 은교교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했다.
아버지가 죽었고, 사랑하는 남자 또한 사라졌다.
어쩌면 그녀는 그대로 죽고 싶었던 것일까?
[신녀에게 당했던 상처가 깊었네. 은 소저가 계속 살아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휴우, 이것이었네.]
은교교의 몸을 타고 끔찍한 마기가 흘렀다.
그녀는 사도명의 앞에 있었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무릉신녀가 웃었다.
“호호호. 적암마계가 검성을 막으려고 준비한 병기. 적암의 마녀가 마침내 탄생했다.”
사도명이 그녀를 보았다.
“당신은 즐겁습니까?”
“검성은 날 사랑하지 않았다. 난 그가 사랑한 무림을 모두 망가뜨리기로 결심했지.”
무릉신녀의 눈이 계속 떨렸다.
“봉신의 봉인 속에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 속삭이더구나.”
사도명이 신음처러 말했다.
“심마문?”
“심마문이 제안을 했고, 나는 받아들였지. 적암의 마녀! 당황할 검성의 모습을 생각하자 즐거웠다. 한 쌍의 수호인. 호호호. 그중 한 명이 적암의 마녀가 되는 거야.”
사도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잘못된 생각이 모든 것을 뒤바꾼다.
무릉신녀는 봉인 속에서 심마문의 공격을 받고, 그들의 유혹을 받아 들였다.
그녀는 설운경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보답 받지 못했기에 적암의 마녀가 되려 했었다.
하지만 곽소혜의 몸은 적암의 마녀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적이 없기에 혈맥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중 은교교가 나타났다.
무릉신녀는 그녀를 적암의 마녀로 만들리라 결심했다.
[막을 방법이 없었어.]
연자강은 강했다.
하지만 무릉신녀만큼 강하지는 못했었다.
[그 후로 계속 은 소저를 구할 방법을 찾았다. 찾지 못했을 때 네가 나타났고, 그래서 이리로 너를 불렀어. 미안하다, 도명. 화가 난다면 내게 내라. 소혜가 아니라 내게. 날 죽일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그건 너다, 사도명.]
사도명은 은교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뿜어내는 마기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적마교의 혈강시가 지니고 있는 강함!
마음에 작용하여 심마를 일으키는 심마문의 사술!
그리고적암마계의 화빙강이 모두 결합되어 있는, 마문의 병기!
“어리석게!”
사도명이 청옥소검을 무릉신녀를 향해 던졌다.
무릉신녀는 날아오는 청옥소검을 검지와 중지를 세워 받았다.
“이런 정도의 공격으로 날 해칠 순 없다.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강한 … 아?”
신녀의 눈이 커졌다.
청옥소검의 검신 한 곳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이 있었다.
두 글자로 이뤄진 글.
그녀는 소검의 검신에 새겨진 두 글자를 덜덜 떨면서 읽었다.
“소(素)… 하(霞)?”
진소하는 그녀의 이름이었다.
사도명이 외쳤다.
“하나의 검에 두 개의 마음! 그 마음을 잊었냐고, 당신은 물었습니까? 서로의 운명이 같기를 바랐다고 검성에게 말했습니까?”
무릉신녀 진소하는 덜덜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도명이 다시 물었다.
“검에 새겨진 글이 이상했습니다. 이름인 줄은 몰랐네요.”
“내 이름을… 아아! 내 이름이 이런 곳에….”
무인에게 검이란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이다.
그 생명에 새긴 이름의 주인이라면, 그녀는 무인에게 평생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십시오.”
사도명이 말했다.
“정말로 검성이 당신을 해쳤습니까? 생명이 남았음에도, 무림을 위한다며 당신을 죽였습니까?”
“으으. 으으으.”
신녀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나는 수라겁황과의 싸움에서 그를 도와 싸웠다. 그가 수라겁황의 심장을 갈랐을 때, 나는 바깥에서 아수라혈교의 사제들과 싸웠다.”
“다시 묻습니다. 정말 검성이 당신을 죽였습니까?”
“나, 나는….”
신녀가 머리를 흔들었다.
“마지막에 그가 뭐라고 말했는데. 분명히 뭔가 말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으으으!”
“청옥소검을 다시 보세요. 검성은 당신의 이름을 평생 자신의 검에 새기고 다녔습니다.”
“서, 서로의 운명이 같기를. 으으. 당신이… 혼자 멀리 가도록 두지는 아, 않겠어.”
신녀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놀란 연자강이 소리쳤다.
“소혜!”
“나는… 나는 그때에….”
신녀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싸움에서 상처를 입었고, 마기가 침습한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서, 아아. 그 내상이 끝내 도져서 나는 그 때에….”
“죽어가는 연인! 검성이 당신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다면?”
“아악!”
신녀가 머리를 잡았다.
“내가 왜 이걸 잊었지? 운경의 말을 내가 대체 왜?”
그녀는 쓰러졌다.
“소혜!”
놀란 연자강이 달려가서 무릉신녀를 안았다.
“운경! 사랑하는 운경.”
무릉신녀의 눈에, 연자강의 모습이 검신 설운경으로 보였다.
“그러지 말아요. 내가 죽는다고 당신이 따라 죽다니. 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
연자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릉신녀의 눈에는 대답하고 있는 설운경의 모습이 똑똑하게 보였다.
- 끝이 아니야. 같이 잠들고 같이 깨어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러면 너무 미안해서….”
- 언제나 같은 운명으로! 사랑하니까!
눈물이 흘렀다.
무릉신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던 한기는 이제 스러지고 없었다.
“그렇게 되면 혼도 같이 스러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제갈청미가 묻자, 무릉신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를 지었다. 심마문이 내 상처를 타고 침습해 왔었어.”
“신녀.”
“너희들 모두에게! 무림에! 그리고 무엇보다 운경의 사랑에, 아아 죄를 짓고 말았구나.”
무릉신녀는 청옥소검을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사랑을 믿지 못했다. 심마문의 유혹에 넘어갔다. 육백 년을 적암의 마녀를 빚는 그릇으로 살았다. 믿었어야 했는데.”
그녀의 눈에서 빠르게 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시오, 소혜.”
연자강이 신녀를 안았다.
“이제 운경을 만나러 간다. 적암의 마녀의 힘을 모두 넘길 때부터 이미 결심했던 바다. 네 아내의 몸이지? 돌려주마.”
그녀는 사도명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네 여자는 돌려주지 못하는구나. 큰 죄를 지었다.”
사도명은 긴 한숨을 쉬었다.
“씻을 수 없는 죄. 어쩌면 나는 죽어서도 운경을… 만나지… 못 하겠구나.”
신녀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사도명은 느꼈다.
곽소혜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감았던 눈을 이내 다시 뜨면서, 곽소혜는 연자강을 보았다.
“여보! 어, 어떻게 된 거죠? 여긴 어디에요?”
“나중에 설명하겠소. 지금은 잠시 피해 있읍시다.”
연자강이 곽소혜를 안아 일으킨 다음, 제갈청미에게 건넸다.
“부탁드리오.”
제갈청미는 연자강이 자신까지 함께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연자강이 고개를 저었다.
“몰랐소 하지만 한 가지는 해야지. 소혜가 무사히 돌아왔소. 이젠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차례요.”
곽소혜는 완전히 지쳐 혼자 힘으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제갈청미가 그녀를 안고 먼 곳으로 물러났다.
연자강이 사도명의 옆으로 가서 섰다.
사도명은 줄곧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은교교만 바라보고 있었다.
“돕겠다.”
“필요 없으니까 물러나.”
사도명이 말했다.
“화나서 하는 소리가 아냐. 물러나서 곽 소저와 제갈 소저를 지켜. 내 여자다. 내가 한다.”
은교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이 계집은 좋은 남자를 만났구나, 하하하.”
“너! 누구야?”
사도명이 물었다.
은교교의 웃음이 짙어졌다.
“느껴지나, 내가?”
은교교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웃음도 은교교의 것과 달랐다.
“오가는 이야기는 재미있게 들었다. 육백 년을 마공을 키우며 적암의 마녀 탄생에 가장 크게 공헌한 무릉신녀! 하하.”
누군가 은교교의 몸을 빌어 웃고 말하고 있었다.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 줄, 하하. 나조차 몰랐지 뭐냐?”
사도명은 문득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태명. 맞느냐?”
“하하하.”
은교교가, 아니 은교교의 몸이 껄껄 웃었다.
“사도명, 조화무제. 네가 사랑하는 여자냐? 이 여자의 눈을 통해 널 처음 보게 될 줄, 하하하 그것도 몰랐구나.”
적암의 마녀에게는 심마문의 심공이 존재한다.
먼 곳에서 생각을 보낼 수 있고 마음을 조종할 수 있기에, 심마문은 무릉신녀를 유인하여 설운경을 배신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여자에게서 나가!”
“나가기 전에….”
은교교가 오른손을 들었다.
“네가 이 손에 죽어줘야지!”
콰아아아아!
그 손에서 불이 솟았다.
적암마계의 세 가지 세상 중 화에 해당하는 지옥염마의 불이었지만, 이미 사도명에게는 축융지환이 존재했다.
화르르르르!
불이 불을 맞서며 사방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연자강은 내공을 끌어올려 곽소혜와 제갈청미를 보호했다.
물러나라 했던 사도명의 의중을, 연자강은 비로소 깨달았다.
‘아까는 온 힘을 쓰지 않았던 거냐? 너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졌구나, 도명.’
“불론 안 된단 건가?”
은교교가 웃으며 이번엔 왼손을 내밀자, 맹렬한 한기가 일어나며 사도명의 오른쪽 팔을 공격했다.
사도명은 당황하지 않고 창천사해 제삼해 역을 일으켜, 축융지환의 열기로 한기에 저항했다.
“화도 빙도 안 된다면, 하하, 마지막 강은 어떠냐?”
콰우오오-오!
은교교의 온몸에서 작은 반지 같은 강기가 솟았다.
혈련강은 흑암마계가 자랑하는 강기 무공의 최고봉이었다.
사도명은 제사해 전으로 강기를 막으며, 한편으로는 천극멸을 펼쳐 은교교를 공격했다.
“그걸 기다렸지.”
은교교가, 아니 은교교를 조종하는 태명이 갑자기 온몸의 호신강기를 거두었다.
사도명이 그대로 공격한다면 천극멸의 강력한 힘이 은교교의 온몸을 뚫을 것이다.
“안 돼!”
사도명은 뻗어 나가던 공력을 되돌렸다.
억지로 회수한 힘이 내부로 역류했다.
“크윽!”
사도명은 목을 통해 올라오는 비릿한 핏물을 억지로 되삼켰다.
역류한 힘이 그의 몸속을 산산조각 부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