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60화 (60/168)

060화. 사랑과 증오

쿠르르르르-!

빙벽이 열렸다.

사도명은 열린 빙벽 너머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한 채의 관을 볼 수 있었다.

[무릉신녀는 검성을 사랑했어. 검성도 그녀를 사랑하는 듯했고.]

연자강이 빙벽 너머로 들어갔다.

사도명은 그를 따라가며, 관 안에 누군가 누워 있음을 보았다.

서리가 어려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연자강이 관 너머, 또 다른 빙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삼가 존좌를 뵙습니다.”

빙벽 안에는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은 또렷해, 사도명은 그녀가 누군지를 알아차렸다.

‘곽소혜.’

그러나 단순히 곽소혜라면 연자강이 무릎을 꿇을 리 없을 것이다.

사도명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제갈청미가 무릎 꿇고 있는 연자강을 보았다.

그녀는 빙벽 속 여자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극락문의 존좌인가요?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군요.”

“무릎을 꿇어라.”

빙벽으로부터 차가운 기운 한 줄기가 날아왔다.

한기를 품은 지풍은 놀랍도록 빨라, 제갈청미는 피하지 못했다.

“아!”

퍼-어!

그러나 지풍은 제갈청미의 바로 앞에서 사라졌다.

사도명이 제갈청미의 앞에 나타나 빙벽 속 여자의 지풍을 옆으로 흩어 버렸다.

창천사해 중의 전!

“오라고 했으니 손님에 대한 예의는 지키기를, 무릉신녀?”

빙벽 속 여자, 곽소혜의 몸을 가진 무릉신녀가 웃었다.

“호호호. 너의 무공은 분명 검성의 것이구나.”

연자강이 사도명을 힐끗 본 후에, 다시 무릉신녀를 보았다.

“그는 검성이 세상 밖에 남긴 무공 두 갈래 모두와 인연이 닿아 있습니다, 존좌.”

“그렇다면….”

무릉신녀가 빙그레 웃었다.

“놈과 싸워라, 연자강.”

“존명.”

연자강은 곧장 꿇었던 무릎을 펴며 허리의 검을 뽑았다.

검이 사도명을 덮쳤다.

사도명은 즉시 양손을 이용해 연자강의 검을 막았다.

까가-가가가강!

검과 손이 부딪치는데, 쉬지 않고 쇳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의 무공이?”

제갈청미는 크게 놀랐다.

검으로 쏟아내는 연자강의 공격은 손을 이용하는 사도명의 방어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검성은 무릉촌에 하나의 검을 남겼고, 세상엔 두 개의 검을 흘려보냈지.”

빙벽 속, 무릉신녀가 말했다.

“자신의 행동이 무조건 옳은 거라고 믿으면서.”

“제갈세가의 청미라 합니다.”

제갈청미는 무릉신녀를 향해 포권했다.

“검성께서 자신의 힘과 신녀의 힘까지 함께 남겨서 세상을 구원코자 하셨음을 압니다.”

“그래, 그랬었다. 그래서 세상은 구해졌느냐?”

“예언된 삼대재액이 하나씩 강호에 등장합니다. 저희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미 구해졌는지를 물었다.”

“무, 물론 아직은….”

무릉신녀가 다시 웃었다.

“다행이구나.”

“!”

“그렇게 쉽게 구해지면 아니되지 않느냐?”

제갈청미는 무릉신녀가 검성을 도와 수라겁황과도 싸웠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무릉신녀의 혼은, 어쩐지 기록과는 달랐다.

“신녀의 혼과 힘이 그 몸에 깃든 것이 아닙니까?”

“맞다.”

“그런데 어찌 신녀는…?”

제갈청미는 물으려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곽소혜에게 깃든 무릉신녀가 검성과 생각이 같았다면, 극락문의 존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녀가 정말로 원하시는 건 대체 무엇이죠?”

빙벽 속에 들어 있던 무릉신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갈청미는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극한의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검성 설운경.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무릉신녀가 연자강과 사도명을 보았다.

두 사람은 각각 검과 손으로 싸우면서도, 전개하는 초식이 거의 비슷하였다.

“저 둘은 모두 그와 닮았군. 저렇게 보니 두 명의 설운경이 서로 싸우는 느낌이구나.”

제갈청미는 무릉신녀가 뿜는 한기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한기!”

“한기가 왜?”

“그렇게 뿜어내시면….”

제갈청미는 망설이다가 자신이 느낀 바를 말했다.

“빠르게 진원진기가 고갈되실 겁니다. 빙벽 속에 계셨던 이유가 한기를 보충하려느 게 아니었나요?”

“나는 이미 죽었다. 몸에 지녔던 힘과 함께 봉신의 술로 혼까지 남겼지만, 천빙지기를 계속 공급하지 않으면 곧 흩어질 것이다.”

“아! 역시!”

“설운경.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제갈청미가 옆을 보았다.

사도명과 연자강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열은 드러날 기미가 없었다.

“저 두 사람을 언제까지 싸우게 하실 건가요?”

“제갈 세가의 후예라 했지? 넌 다른 걸 물어야 하지 않느냐?”

제갈청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대로 묻죠. 검성은 세상을 구하고자 했는데, 신녀는 왜 세상을 망칩니까? 삼대마문은 극락문과 어떤 관계입니까?”

“세상을 구하고자?”

무릉신녀의 표정이 쓸쓸해졌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진다. 혼도, 힘도, 이미 죽은 사람의 것을 남길 수 있을까?”

제갈청미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한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고, 그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것이었다.

“서, 설마 그랬을 리는?”

“난 설운경을 사랑했다. 그도 날 사랑한다 믿었지. 무릉도원에서 함께 지내며 행복했다. 그가 날 그곳에 데려갔던 진짜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갈청미는 핏기를 잃었다.

사도명과 연자강의 싸움은 더욱 흉험해지고 격렬해지고 있었다.

사도명은 자강의 전음을 들었다.

[검성은 무림을 위해 자신과 신녀의 힘을 남기고자,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어.]

콰쾅! 쩌어-어엉!

두 사람 사이에서 울리는 폭음보다, 사도명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충격이 더욱 컸다.

[오직 생명이 남은 사람의 힘만이, 남겨질 수 있기 때문에!]

“뭣 하느냐, 자강? 죽여라! 그 자식을 죽여-!”

무릉신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연자강은 그녀의 고함을 듣자마자 초식을 바꾸었다.

계속 무릉촌에 남겨진 검성의 검공만 시전했던 그의 두 손에, 장엄한 서기가 어렸다.

“천중구불?”

사도명이 그 무공을 알아보고 신음했다.

소림의 것이면서도 더 없이 패도적인 무공!

아홉 부처가 악마를 힘으로 멸하는 신공이었다.

[조심해라, 도명. 이제부턴 네가 모르는 공격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검성의 검법으로 싸워왔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기에, 싸움은 흉험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위험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무릉신녀의 고함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연이어 내쏘는 연자강의 양손 바닥에 분노한 부처의 상이 환영처럼 어렸다.

사도명의 기운도 달라졌다.

그는 맨손을 도처럼 세웠다.

사도명의 온몸이 찬란한 금빛으로 휘황해졌다.

금강도객의 진천금강도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긴 세월! 개천도화목 아래에 잠들어 있으면서, 무릉신녀는 검성에 대한 배신감에 노했다.]

꽈아-아아아아앙!

노한 부처의 형상이 금빛 도기에 부서졌고, 그렇게 쏘아오는 도의 그림자를 다시 부수며 새로운 부처들이 내달렸다.

[육백 년이란 사랑이 증오로 바뀌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지.]

“크윽!”

“우웃!”

연자강과 사도명이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릉신녀가 제갈청미를 보았다.

“이름이 사도명이 맞나? 저 사내는 너에게 잘 대해주느냐?”

제갈청미의 얼굴이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 저의 남자가 아니에요. 저 남자는 저의 친구와 사랑하는 사이인 걸요.”

“설운경도 그랬다. 본래 내 친구와 서로 마음을 통했으나….”

무릉신녀가 눈을 감았다.

“내가 빼앗았어. 그 후로 오래 즐거웠지.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날 사랑하는 줄 알았으니까.”

콰콰콰-콰콰쾅!

사도명과 연자강의 싸움으로 주변 빙벽들이 금세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제갈청미가 말했다.

“몸에서 뿜어지는 한기가 급격히 약해지고 계세요. 빙벽 안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나요?”

“세상이 내 이름을 아느냐?”

“네?”

“무릉신녀라는 별호 말고, 내 진짜 이름을 아는지를 물었다.”

“아! 그건 아무도….”

“진소하! 그것이 내 이름.”

무릉신녀의 눈이 빛을 뿜었다.

“연자강이 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왜 나의 이름조차 세상에 알려주지 않았을까?”

제갈청미는 대꾸하지 못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부분은 남자와 다르다.

같은 여자인 제갈청미는 무릉신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랑이라면 부끄러워했을까?”

쩌어-어어엉!

사도명과 연자강이 다시 한번 부딪쳤고, 마침내 처음으로 우열이 정해졌다.

단지 두 걸음 물러났을 뿐인 사도명에 비해, 연자강은 무릉신녀가 서 있는 곳까지 열 걸음 가까이 물러났다.

“미래의 무림을 위해 수명이 남은 날 죽인 것은, 오히려 용서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무릉신녀가 손을 뻗어 왼손으로 연자강의 어깨를 잡고 오른쪽 손바닥을 그의 등에 댔다.

“하지만 날 사랑하지 않았다니! 나는 그토록 사랑했는데 그는 아니었다니!”

강력한 힘이 무릉신녀의 손에서 연자강에게로 전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설운경! 그 남자가 그토록 아꼈던 무림! 그걸 내 손으로 없애겠다고.”

콰아아아아-!

연자강의 두 눈에서 무릉신녀의 것과 같은 색채의 빛이 솟았다.

무릉신녀는 연자강의 등을 앞으로 밀며 외쳤다.

“가라. 검성의 후예를 죽여.”

“존명!”

연자강이 크게 소리치며 또다시 사도명을 공격했다.

사도명은 연자강의 공격을 막는 한편으로, 전음으로 외쳤다.

[무림을 없애고 검성의 후예를 죽인다고? 무릉신녀는 결국 너 또한 죽일 것이다.]

[알고 있어.]

[그럼에도 곽소혜이기에 해치지 못하나? 무릉신녀가 계속 곽 소저를 장악하도록 둘 셈이냐?]

[소혜를 해치지 않고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꽈드드-드드등!

연자강은 다시 검성의 검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주오검의 강력한 힘이, 그가 든 검을 타고 주변을 휘감았다.

무릉신녀의 내공을 일부 건네받은 연자강의 검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력을 발휘했다.

“치잇!”

사도명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품에서 청옥소검을 꺼냈다.

그의 내공을 주입받은 청옥소검이 자색과 청색을 동시에 뿜어내며 크게 울었다.

후우-우우웅!

“자청검!”

무릉신녀는 사도명의 검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나의 검에 두 개의 마음! 설운경. 당신은 잊었나요? 나와 당신의 운명이 같기를 그 검에 빌어 놓고도, 무림을 위한다며 어찌 나를 해칠 수 있었나요?”

무릉신녀의 고함에는 한과 노여움이 같이 섞여 있었다.

바로 옆에서 내공이 실린 고함을 들은 제갈청미는 가슴이 진탕되어 한바탕 피를 토했다.

“커헉!”

피가 바닥에 놓은 얼음의 관에 튀었다.

드드드드드!

그 관이 크게 흔들렸다.

무릉신녀는 다시 외쳤다.

“당신이 사랑하지 않았던 내가, 당신이 사랑한 무림을 없앱니다. 여기 누가 있는지 아나요?”

무릉신녀가 진동하고 있는 관을 가리키며 웃었다.

“적암의 마녀! 호호호, 적암마계가 화, 빙, 강! 모든 것을 불어넣은 마녀! 호호호.”

[널 검성과 혼동하고 있다. 때로는 나를 혼동하기도 했었어.]

연자강의 전음이 이어졌다.

[무리도 아니지. 육백 년이 넘는 세월을 봉인되어 있었으니.}

[제 정신이 아닌 건가? 그녀를 구해. 정신을 차리게 해.]

[불가능이다. 무엇보다….]

콰-아앙!

진동하던 얼음의 관이 터졌다.

그 속에서 한 명의 여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온몸에서 끔찍한 마기를 뿜어내는 여자였다.

[무엇보다 나는!]

사도명은 굳어 버렸다.

연자강도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고, 폭발한 관으로부터 일어선 여자를 보았다.

한숨과 섞인 연자강의 전음이 다시 한번 사도명의 귀에 울렸다.

[무엇보다 나는, 저 여자를 보호해야 했으니까.]

사도명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사랑한 여자를, 도명.]

눈앞에 은교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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