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무릉 괴사
산은 높고 계곡은 험했다.
어디를 보아도 기암이었고, 괴석들이었다.
“여기가 금편곡이군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곡이라죠? 금편암을 지나 흐르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어요.”
길이 험했다. 사도명은 험한 길을 달리듯이 걸었다.
제갈청미는 그를 따라가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녀는 무림삼미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다고 소문 나있었다.
무공 역시 다른 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의 시황께서 산을 옮길 때 썼던 것이 금편이라죠? 금편이 변해서 바위가 된 것이 금편암이고! 직접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갈청미가 계속 말을 이었지만, 사도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사도명의 안색이 딱딱해졌다.
제갈청미가 한숨을 쉬었다.
“두려우세요?”
사도명이 대꾸하지 않자, 제갈청미는 다시 물었다.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게 두렵나요?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가요?”
“저 앞에 문이 있소.”
사도명이 앞쪽을 가리켰다.
사도명이 가리키는 곳에는 커다란 한 쌍의 바위가 보였다.
“바위 말이에요?”
“단순한 바위가 아니오.”
사도명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큰 바위를 향해 달려갔다.
“위험해요!”
사도명이 곧장 바위에 부딪쳤지만, 폭음은 나지 않았다.
그는 부딪친다 싶던 다음 순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제갈청미는 한 쌍의 바위 사이 아래쪽을 보았다.
쉽사리 알아채기 힘든 작은 빈틈이 그곳에 있었다.
“아! 틈이…?”
사도명이 작은 구멍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극락문이라 불린다오.”
“극락의 문? 이름이 공교롭네요. 그런데 지금 맹주의 몸이….”
사도명의 얼굴과 몸이 평소보다 매우 작았다.
“축골공인가요?”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십왕과 판관들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재판한다더군. 그러니 극락문은 좁은 게 당연하지 않겠소?”
사도명이 축골공을 풀자, 제갈청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요. 죄 짓기는 쉬운데 짓지 않기는 참 어려워요.”
사도명이 작은 구멍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축골공을 알고 있소?”
“네. 약간은!”
통로는 좁고 길었다.
정말로 극락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면, 아무리 좁고 멀어도 걸을 가치가 있다 생각하면서 제갈청미는 부지런히 걸었다.
잠시 후 앞에 빛이 보였다.
“아! 마침내 도착인가요?”
제갈청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도착한 곳은 지하였다.
그런데도 기이하게 밝았다.
“생명이란 실로 놀랍소. 어떤 곳에서건 살아갈 방법을 발견하지.”
사도명이 위를 가리켰다.
천장이 있어야 할 곳이 희미한 푸름으로 빛나고 있었다.
“설마, 하늘은 아니지요?”
“광명태라는 이끼요.”
사도명이 웃었다.
“바위틈과 물, 혹은 바위 사이에 박힌 수정을 타고 지상의 빛과 연결되어 있소. 모든 곳이 광명태로 덮여 있기에 보다시피….”
사도명의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엔 지상의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하임에도 지상과 같소.”
“아늑하네요.”
제갈청미는 도저히 감탄을 그칠 수가 없었다.
“도연명이 말했던 무릉도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거예요.”
“그렇소? 나는 다른 곳일 것 같은데.”
“네? 아! 물론 그거야….”
“검성은 산을 타고 흐르는 기운을 분석해 여길 찾아냈다오.”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천하의 대겁난을 대비한 장소. 무릉촌이라 불리는 곳.”
“그렇군요. 과연 고금구천강이라 불리실 만한 분이세요.”
“그리고 삼대 재액이란 그러한 검성조차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미증유의 대겁난.”
사도명의 표정은 어두웠다.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
그 사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채의 집이 보였다.
“맹주의 친구가 말했어요. 무릉촌이 이미 변했다고!”
“그렇게 말했지.”
“자신은 극락문을 이끈다고! 무릉촌에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정말 없다고 생각하오?”
“네?”
사도명의 안색은 딱딱했다.
“분명 호흡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소. 하지만 난 느끼고 있소. 남겨져 있는 감정. 아직도 여길 흐르고 있는 또렷한 감정들!”
사도명이 갑자기 달렸다.
딸랑 딸랑!
그의 허리에 매달린 은교교의 방울이 맑은 소리로 울었다.
평소 사도명은 방울이 울지 않도록 내공으로 붙잡아 둔다.
지금 방울을 울리도록 두는 이유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다급하다는 뜻이었다.
제갈청미는 사도명을 쫓았다.
마을 중앙에 특이한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창도 문도, 아무 것도 없이 지어진, 벽돌의 집이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밟은 곳만 정확히 밟아야 하오.”
사도명이 갈지자로 달리면서, 지풍을 쏘았다.
퍼퍼-펑!
창문도 없이 지어진 벽돌집의 한쪽 벽에 사도명의 지풍이 명중하자, 어디선가 기계음이 울렸다.
그그-그그긍!
벽돌집의 한쪽 벽면이 열렸다.
“기관인가요?”
제갈청미가 사도명이 밟은 곳이 아닌 것을 눌렀다면, 기관이 발동해 위험했을 것이다.
열린 벽의 큰 구멍으로 사도명이 뛰어들었다.
“들어갑시다.”
제갈청미도 그 뒤를 따랐다.
벽돌집 안은 암흑이었다.
그리고 아래가 비어 있었다.
“헉!”
제갈청미는 들어가자마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추락했다.
놀란 제갈청미의 귀에 사도명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래까지 백여 장. 어둠에 놀라지 말고 거리를 잡으시오.]
제갈청미는 언제 바닥에 닿을지의 계산을 빠르게 마치고, 착지의 충격에 대비했다.
[나는 닿았소. 지금이오!]
[아! 고맙습니다.]
사도명의 전음 덕분에 제갈청미는 착지할 높이를 알 수 있었다.
내부는 칠흑이었다.
하지만, 제갈청미에게는 어둠을 뚫어볼 수 있는 내공이 있었다.
사도명은 한쪽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방향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어두웠다.
[통로? 대체 어디로 통하는 길이죠?]
[검성은 무림의 붕괴를 예언했고, 무릉촌은 그때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곳이오.]
사도명이 앞으로 걸어갔다.
[여긴 무림의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최후의 정기를 보존할 목적으로 만든 극비 장소. 본래 이렇게 어두운 길은 아니었소.]
[아!]
어둡지 않아야 했던 길이 어두워진 것은 변고였다.
사도명이 길의 끝에 도착했다.
막힌 곳에 문이 있어, 사도명은 그 문을 밀어 열었다.
[새로운 무림의 씨앗이 보존될 장소요. 검성이 이곳에 붙인 이름을, 짐작해 보시겠소?]
제갈청미의 눈앞에 넓게 트인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 말도 안 돼!”
제갈청미는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감탄했다.
지하에 존재하는 무릉촌.
거기서 다시 내려온 지하임에도, 제갈청미가 보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늘은 더욱 하늘같았고, 땅은 더욱 지상의 땅처럼 보였다.
제갈청미는 검성이 이 장소에 붙인 이름이 무엇인지, 듣지 않고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릉도원! 여기가 바로 진짜 무릉도원이군요.”
곳곳에 복숭아나무 꽃이 피어 있었다.
풍성한 과실을 매달고 향기를 풍겨내는 나무도 있었다.
“전설이 아니었네요. 무릉도원은 존재하고 있었어요.”
“검성의 전설도 전설이 아니고, 삼대재액 또한 마찬가진데, 무릉도원만 전설일 리 있겠소?”
사도명의 표정은 딱딱했다.
경탄에서 벗어난 제갈청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사람의 기척.
무릉도원에 들어오자, 낮고 느리지만 분명한 사람의 호흡이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 사람이 있어요.”
“무릉촌 주민은 모두 검성을 따랐던 사람들의 후예요.”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벗어날 리가 없지.”
“저쪽 방향 같은데요.”
제갈청미가 가리키는 방향 쪽 멀리 지평선 가까운 곳에, 크다는 말로는 부족한 나무가 보였다.
“저렇게 크다니! 가지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하늘이 아닌 천장! 위쪽 땅바닥이기도 하고.”
사도명이 제갈청미의 말을 바로잡으며 몸을 날렸다.
“제갈 가주가 집필한 십자천하록에 등장하는 무림 이비.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 아오?”
“모를 리 있나요? 무림 이비는 존재한다고 구전되지만, 강호의 사람들이 본 적 없는 두 가지 존재를 의미해요. 그중의 하나는 이번에 나타났죠.”
제갈청미가 전력을 다해 사도명을 따라 잡으며 웃었다.
“조화인. 저는 조화인이 한 명이 아니라 같은 뜻을 공유하는 집단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이비 중의 나머지 하나도 비슷하오. 개인이 아니니까.”
놀란 제갈청미가 사도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물었다.
“나머지 이비 중의 하나에 대해서 알고 계신 건가요?”
“천리도화(千里桃花)! 드높은 향기가 천 리 멀리까지 풍기는 아름다운 복숭아 꽃.”
두 사람은 가지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복숭아나무 아래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개천도화목! 천리도화는 여기서 열리는 꽃이며, 검성이 안배한 최후의 안배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오.”
제갈청미는 손을 뻗어 거대한 나무의 몸통을 만져 보았다.
“무림이비 중의 천리도화. 그 유래가 바로 이곳, 무릉도원이란 말씀인가요?”
“무릉촌은 두 갈래 조직으로 이루어지오. 검성의 피를 이은 촌장이 지휘하는 전통적의 무릉촌.”
사도명은 거대한 도화목의 뿌리를 계속 살폈다.
“그리고 언젠가 천리도화를 꽃피울 한 쌍의 수호인들.”
제갈청미도 안력을 돋아 사도명이 보는 곳을 같이 본 다음,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저거 설마 염라마기인가요?”
“무릉촌이 무림을 지키지 못하면, 두 번째 계획이 실행되오.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이곳 무릉촌으로 피신시키는 거지.”
사도명이 지풍을 쏘아 도화목 뿌리에 흐르는 기운을 끊었다.
“피신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한 쌍의 수호인이 개천도화목의 도움을 받아서 천리도화로 깨어나는 것이오.”
끼이이-이이!
어디선가 귀에 거슬리는 섬뜩한 괴성이 들려왔다.
사도명이 건드린 붉은 기운에 연결된 어떤 존재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개천도화목마저 마기에 침습을 당했다고? 심마문의 손길이 여기까지 미쳤다고?”
“좌우 모두에서 와요!”
제갈청미가 소리쳤다.
사도명은 거대한 개천도화목의 몸통을 돌아, 두 명의 괴인이 좌우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눈은 온통 붉었다.
“염라마인? 제가 막을게요.”
제갈청미가 두 손을 들었다.
청강화염수의 푸른 불길이 좌우로 날아갔다.
불길은 두 명 괴인의 몸을 단숨에 휘감았다.
“여기 출입문이 극락문이라 불리는 건 과연 우연이 아니었네요. 이미 극락문의 손길이… 헛?”
제갈청미가 깜짝 놀라서 헛바람을 삼켰다.
당연히 불길에 휩싸여 쓰러지리라 생각한 두 명의 괴인!
그들이 제갈청미의 손길을 뚫고 다시 앞으로 날아왔다.
“말도 안 돼! 염라마인따위가 내 청강화염수를?”
“염라마인이 아닌 거지.”
사도명이 한 자 몸을 띄우며 양손을 교차시켰다.
창천사해 중의 제삼해 역이 일어나 제갈청미와 사도명의 위치를 뒤바꾸었다.
뒤어어 다시 와가 일어나 두 노인의 공격을 뒤로 되돌렸다.
콰-아앙!
무서운 폭발이 일어나자 붉은 눈빛의 두 괴인은 뒤로 물러났다.
제갈청미는 그제야 두 괴인이 뿜어내는 강기가 자신의 청강화염수로는 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놈들이 염라마인이 아니라면, 대체 뭔가요?”
“염라마인은, 적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지.”
“아! 그, 그러고 보니….”
누구의 몸에서도 심장의 박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호흡도 당연히 없었다.
멀쩡한 자도 있었으나, 이미 몸이 부패가 시작된 자도 보였다.
제갈청미가 놀라서 소리쳤다.
“설마 강시인가요?”
사도명은 두 명의 괴인이 서 있는 좌우를 번갈아 보았다.
“맞소. 강시!”
“강시는 죽은 자이기에 불을 두려워해요. 헌데 저 둘은 제 청강화염수를 뚫고 들어왔어요. 보통의 강시가 아니군요.”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소. 혈강시요.”
그의 말은 제갈청미의 얼굴에서 핏기를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마, 말도 안 돼요. 혈강시가 어떻게 이곳에 두 구나….”
“두 구 정도면 좋겠지만!”
사도명이 쓰게 웃었다.
먼저 나타난 두 구의 혈강시.
그들의 뒤로 또 다른 혈강시들이 꾸역꾸역 나타나고 있었다.
“아까 개천도화목에서 내가 건드린 것은 염라마기가 아니라 적마교의 적혼혈기였던 모양이군.”
사도명의 온몸을 타고, 비할 데 없이 강력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천삼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괴의 힘, 천극멸이었다.
“무릉도원이 혈강시 천지가 되다니! 연자강, 친구여. 대체 네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