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조화결사
상여경의 팔이 하늘로 날았다.
그 손에 잡힌 검에 반사되는 빛이 비명과 더불어 흩어졌다.
“아악.”
“사고(師姑)님!”
형산파의 당대 장문인 습근탁이 놀라서 소리쳤다.
제갈청미는 즉시 몸을 날렸다.
그 사이, 사도명의 몸이 빛과 더불어 날아와 연자강의 검강에 그대로 부딪쳤다.
까-아앙!
단순히 빛과 빛의 부딪침이건만, 굉음은 그야말로 천둥이었다.
마치 푸른빛 하늘이 둘로 갈라져 힘을 겨루는 상황.
“내공의 대결입니다.”
제갈청미가 상여경을 부축해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 질렀다.
“위험하니까 모두 물러나세요.”
팽팽하게 맞붙은 두 갈래 검강의 격돌점!
그곳으로부터 크고 작은 강기의 파편들이 튕겨 나와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간의 한계를 넘고 있어요. 스치는 것만으로도 뼈가 잘립니다.”
제갈청미의 고함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크아악!”
축융지환에 격중 당해 마기를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염라마인.
그중 두 사람의 몸이 단지 파편일 뿐인 힘에 닿아 잘려나갔다.
제갈청미가 상여경을 습근탁에게 건네며 말했다.
“염라마인들의 죄는 죽어 마땅해요. 하지만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알겠소, 제갈 소저.”
장문인의 명령을 받은 형산파의 제자들이 분분히 움직였다.
그들은 검을 뽑아들고 방어진을 형성하여, 혼이 사라진 채 서 있는 염라마인들의 앞을 막아갔다.
제갈청미는 사도명을 보았다.
“제대로 싸우고 반드시 이겨요, 무제! 주변은 걱정 마시고.”
**
사도명과 연자강의 힘은 팽팽하게 서로에게 부딪치고 있었다.
“걱정 마시라? 제갈청미의 말이 내겐 다르게 들리는군.”
연자강이 빙그레 웃었다.
“주의하시라.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연자강이 뿜어내는 자신의 검강을 흔들었다.
사도명의 검강도 그에 따라서 크게 흔들렸다.
주변으로 흩어지는 강기의 파편이 더욱 늘어났다.
“크윽!”
“이, 이건 막을 수가….”
검강의 파편을 미처 막아내지 못한 형산파 제자들이 신음했다.
“방어막을 더 넓게! 더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제갈청미가 고함을 질렀다.
습근탁 장문인이 부상당한 제자의 빈틈을 메우며 소리쳤다.
“힘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소. 너무 넓히면 염라마인들을 보호해 줄 방법이 없소.”
사도명은 본래 양심신공으로 마음을 분리시켜 놓고 있었다.
그중 다른 하나의 마음을 이용해 방어막을 만들면서 외쳤다.
“자강-! 제발 그만두게!”
“하하. 서로 무공을 겨루어 보는 것은 오랜만이지? 서로 죽이려 드는 것은 처음이고.”
연자강은 크게 웃었지만, 사도명은 웃지 못했다.
웃고 있는 연자강의 눈빛 깊은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한 줄기의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네. 지금 혹시…?”
“막아 봐라, 도명! 막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않나?”
그 순간 먼 곳으로부터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익!
연자강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사도명을 똑바로 보며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명심해라. 나는 존야. 극락문의 문주이며 서왕모 존좌를 지근에서 모시는 자다.”
삐이이-이이익!
다시 한번 휘파람이 울었다.
이번에는 길고도 높았다.
연자강은 힘껏 사도명을 뒤로 밀어내면서 외쳤다.
“다시 만날 때는 너를 죽인다. 친구인 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 널 죽여준단 말이냐? 하하하.”
사도명은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나고서야 몸을 세웠다.
연자강을 쫓아가려고 할 때, 제갈청미가 고함을 질렀다.
“맹주님, 주변을 살피세요.”
연자강은 몸을 날리기 전 사방으로 네 갈래의 검강을 쏘았었다.
“이런!”
사도명은 연자강을 쫓으려던 몸을 돌려 일곱 검강 중의 여섯 개를 허공에서 동시에 쪼갰다.
“나머지는 제갈 소저가!”
“물론이에요.”
제갈청미가 청강화염수로 남은 한 개의 개벽검강을 막았다.
콰아-앙!
제갈청미는 답답한 신음을 삼키며 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치잇. 겨, 겨우 일곱 개 중의 하나인데도….”
연자강은 점으로 변했다가 완전하게 사라졌다.
마침내 싸움이 끝이 났다.
상여경이 사도명에게로 왔다.
“그는 누굽니까?”
사도명은 상여경의 잘린 팔목에서 스며 나오는 피를 지혈하면서 대답했다.
“극락문의 문주입니다.”
“제가 묻는 것은, 어이해 지존께서 그를 아시느냔 겁니다.”
“나의 친구요. 본래 무릉촌에서 살았던….”
“소문이 사실이었나요?”
제갈청미가 옆에서 물었다.
“삼대재액을 막기 위해 마련된 무릉촌의 변질. 맞아요?”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청미의 말에,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한 가지를 의심하오.”
“의심? 무엇을요?”
“연자강은 지금 자신의 뜻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
“!”
“제갈 소저도 그의 말을 들었지 않소?”
“연자강의 말?”
제갈청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곰곰 생각하다가, 제갈청미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
- 친구인 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 널 죽여준단 말이냐?
연자강은 분명히 그렇게 사도명에게 소리쳤었다.
“거꾸로? 스스로를 죽여 달라는 말을 그리 말한 건가요?”
“그걸 확인해 볼 생각이오.”
사도명은 연자강이 멀어진 방향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려면 다시 만나야겠지?”
**
밤이 깊었다.
형산파 제자들은 형산 축융봉을 찾아온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곳곳에 화톳불을 피웠다.
사도명과 제갈청미는 습근탁 장문인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형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음식을 먹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서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극락문의 신인!
축융지환의 불길이 그들의 염라탈혼을 깨뜨렸다.
그들은 내공을 잃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이성을 찾았기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를 깨달았다.
그들 중에는 악인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도 많았다.
힘을 얻기 위해 극락문에 들었던 악인과 달리, 순진한 자들은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극락문에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들은 모두 염라탈혼에 장악당한 염라마인으로 살았었다.
그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음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극락문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세상에 대한 죄책감.
“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지존?”
저녁을 마친 습근탁이 사도명에게 물었다.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모두 죽일까요?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제갈청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에 없는 말 그만 두세요. 모두 죽일 거라면, 일로종횡을 왜 시작하신 거죠?”
“그럼 어쩌면 좋겠소? 제갈 소저의 말에 따르리다.”
“맹주님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을 거잖아요. 저는 그 생각대로 하자고, 주장할게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으며 상여겸과 습근탁을 보았다.
“제가 우문을 했더니 제갈 소저가 현답을 주었습니다. 두 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당연히 지존의 생각대로.”
그들에게 사도명은 무림맹주 이전에 축융지존이었다.
사도명의 시선이 화톳불이 닿지 않는, 축융봉 수풀의 아주 어두운 곳을 향했다.
“들었다면 이제 나오시오.”
사도명이 보는 방향에는 어둠뿐,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사도명이 말을 하자마자 여러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어, 어떻게…?”
제갈청미를 비롯, 상여경과 습근탁이 놀라서 외쳤다.
그들의 이목으로 감지 못할 사람들이 어둠속에 숨어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도명이 웃었다.
“천중무극신공은 내부를 다듬는 무공이오. 익힐수록 은밀해지고, 키울수록 조용해지오.”
여덟 명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도언직이었다.
도언직이 사도명을 향해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제를 뵙습니다.”
[누구예요?]
제갈청미가 전음으로 물었다.
“염라마인들. 무당에서 나와 싸웠었지.”
“적인가요?”
놀란 제갈청미가 양손에 다시 청강화염수를 끌어올렸다.
도언직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도언직은 이제 더 이상 마인이 아닙니다.”
“도언직? 호북성 흑사방의 방주인 바로 그 도언직?”
“제가 맞습니다.”
제갈청미가 도언직의 뒤에 서 있는 덩치를 보았다.
“그럼 뒤쪽의 사람은 폭풍보의 보주, 질풍권 왕삼? 호북성 염라마인들이 모두 온 건가?”
왕삼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왕삼이 맞지만 이제 염라마인은 아닙니다. 무제께서 천중무극신공을 알려주셨지요.”
사도명이 왕삼을 보며 웃었다.
“왕삼. 그대가 조화진기를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왕삼이 뒷머리를 긁었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들지 뭡니까?”
“어떤 생각?”
“무제께서는 그 날 절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주셨습니다. 생각했죠. 왜 그러셨을까?”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오.”
왕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저도 압니다.”
사도명은 어둠 속에서 나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열세 명 중의 여덟. 그럼 나머지 다섯 명은…?”
“극락문으로 갔습니다.”
도언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꼴일지, 파멸령주의 최후를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도언직이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기회를 주셨듯 여기의 염라마인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저희가 이 자들을 맡겠습니다.”
왕삼과 나머지 여섯 명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제.”
사도명이 제갈청미를 보았다.
제갈청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잖아요. 맹주께서 생각하시는 바대로 하라고.”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염라마인이 조화심을 깨달으면, 지나간 죄과를 씻기 위해 가장 열심히 싸울 거요.”
“일로종횡의 진짜 목적이 바로 그거군요. 극락문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적을 만드는 것.”
“악에 물든 자들보다 선한 의지를 지녔으되 속아서 극락문의 주구가 된 사람이 훨씬 많소.”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던 염라마인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도명의 말은 사실이었다.
염라마인들은 애초 무림의 평화를 원했던 이가 대부분이었다.
사도명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도언직을 비롯한 여덟 명을 보았다.
“하실 수 있겠소?”
“천중무극을 알려 주겠습니다. 조화심이 일어난 자를 이끌고 무제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이제부터 말을 편히 하마. 앞으로 너희는 조화결사대라 불린다.”
사도명의 음성은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염라마인으로 지었던 죄를 씻어내라. 너희는 그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볼 자격을 얻을 것이다.”
여덟 명의 조화결사대원이 일제히 포권했다.
“조화결사대가 삼가 무제의 가르침을 받듭니다.”
**
쿠오오오오-!
한기가 쉬지 않고 치솟았다.
깊은 땅!
가파르게 갈라진 빙벽 사이로, 손톱보다 작은 달은 검은 하늘에 맥없이 걸려 있었다.
연자강은 앞을 보고 있었다.
몸은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반 자 정도 띄운 상태였다.
주변의 벽과 바닥을 채우고 있는 만년빙강의 기운!
몸을 허공에 띄우지 않으면, 입화의 경지에 이른 연자강의 몸조차 얼음으로 변할 것이다.
<왜 죽이지 못했느냐?>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연자강은 앞쪽의 벽에 붙어 있는 하나의 관을 보았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관!
그 속에 여인 한 명이 보였다.
“능력이 모자랐습니다, 존좌! 지금의 사도명은… 제가 알았던 사도명보다 강합니다.”
얼음속의 여인은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닫힌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가 빠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 또한 강해졌다. 나는 이미 화와 빙과 강을 모두 너에게 전했으니… 아!>
쿠르르르르-!
갑자기 땅과 빙벽이 흔들리고 하늘에 뜬 달조차 움직였다.
격동에 찬 음성이 흔들리는 주변을 채우면서 흘렀다.
<마, 마침내 깨어나는가? 적암의 마녀가 드디어 탄생하는가?>
얼음관 속, 여인의 몸 주변으로 열기가 피어올랐다.
열기는 서리를 걷어나갔다.
서리가 옅어갈수록 연자강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굳게 다문 그의 입 끝에서 붉은 핏물 한 줄기가 아래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