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50화 (50/168)

050화. 행운령주 구지락

중년인은 분명히 웃었다.

눈과 코와 입술과 귀가 모두 함께 웃으며 환한 미소를 얼굴 전체에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기묘했다.

분명 웃는데도, 제갈청미는 그가 웃는다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도명을 보며 물었다.

“왜 나는 구지락이 웃지 않고 화를 낸다는 느낌일까요?”

“구지락… 이란 것이 저 남자의 이름이요?”

“극락문에는 세 명의 령주가 있어요. 저 남자는 그중의 한 명인 행운령주예요. 천향령주 소수마녀는 이미 만나 보셨죠?”

제갈청미는 웃는 얼굴의 중년인을 가리켰다.

“최고의 즐거움을 구한다는 뜻의 구지락(求至樂)은 그의 별호예요. 하지만 동시에 이름이기도 하죠. 지옥삼절소를 가졌어요.”

“제갈 소저는 지금 구지락의 웃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고 있는 거요. 구지락은 화가 났군.”

사도명이 주변의, 웃고 싶지 않음에도 웃고 있는 관람객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것이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이유요.”

초엽이 계속 웃으면서, 행운령주 구지락에게 물었다.

“저 자들이 하는 말이, 하하하 사실입니까? 지금 화가 나신 겁니까, 행운령주? 하하하.”

구지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하하하. 그렇다면 저와 광서곤 부보주가 하하, 어떤 죄를 저질러 령주님을 화나게 만들었는지를, 하하하. 알려 주십시오.”

“너는 임무를 받았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임무를 받고 형산으로 향하고 있었고, 하하하. 그 길에 잠시 일이 잘 되기를 빌고자 하하 여기 들렀습니다.”

“네 소망을 비는 일과 존좌의 명령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냐?”

“하, 하지만 하하하, 저는 극락문의 번영을 빌고자, 하하하.”

“어느 쪽이 중한지 물었다.”

“그래도 저는 하하, 여기에서 제갈청미를 발견하여 즉각 보고를… 하하하. 하하하하.”

구지락은 더 묻지 않았다.

초엽도 더이상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웃기만 했다.

구지락의 웃는 얼굴이 분노임을 느끼자, 초엽의 웃는 얼굴은 그대로 절망과 좌절로 바뀌었다.

“하하하. 어쩐지….”

초엽은 바닥의 광서곤을 보고, 고개를 돌려 사도명을 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제갈청미를 보았다.

“하하. 너무 운이 좋더라는 생각을… 하하하. 차핫!”

초엽은 땅을 박차고 뛰어, 낭치검을 구지락에게 깊이 찔렀다.

검은 두부를 찌르는 듯, 단숨에 구지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하하. 당신을 죽여야 이 빌어먹을 웃음이 멈추겠지? 당신이 날 죽이려 들면, 하하하, 내가 먼저 당신을 죽일 거란 생각을 어이해 하지 못하는….”

“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구지락의 두 손이, 낭치검의 검신을 움켜쥐었다.

“포고 제2호. 서왕모 존좌의 명령을 어기는 자는 이유 불문하고 단죄한다. 죄를 묻는 수준을, 어찌해야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던 것일 뿐. 이제 결정을 내렸다.”

화르르르-!

구지락의 두 손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불길은 서문청미의 청강화염수와 똑같이 뜨거웠지만, 색이 완전하게 달랐다.

검고 붉은 구지락의 화염이, 만년한철로 만든 낭치검의 검신을 단숨에 녹이기 시작했다.

초엽은 자신의 검이 구지락의 몸속으로 부드럽게 들어간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검은 몸을 찌르고 들어갔던 것이 아니었다.

열기에 녹아내린 것 뿐이었다.

“흐, 흑염수? 하하하.”

“알아보는 거냐?”

“내가 아까 말했던 하하, 사백 년 전에 실전된 무공. 어찌하여 이곳에 축융의 무공 두 가지가 동시에, 하하… 크아악!”

웃는 와중이건만 고통은 더없이 선명했다.

초엽은 낭치검을 녹인 불길이 자신의 몸으로 옮겨와 계속 타오름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손을 떼고 물러나려고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이한 흡입력이 그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고 있었다.

구지락이 내공을 이용해 만들어 낸, 단단한 속박이었다.

“하하하. 크아악. 크으 하하하. 크아악… 흡!”

그의 비명과 웃음은 모두 고통이었다. 두 가지 목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구지락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앞으로 쓰러지고 있는 초엽의 뒷머리를 보았다.

그곳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검기가 흘렀다.”

구지락이 제갈청미를 보며 고개를 흔들더니, 시선을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사도명에게로 돌렸다.

“네가 조화무제구나. 검도 없이 검기를 구사한다고 들었다.”

사도명은 대꾸하지 않고 자신의 옆, 제갈청미를 보았다.

“오늘 이곳에 청강화염수와 흑염수가 동시에 나타났소.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겠지?”

제갈청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 정보가 맞았어요. 축융의 반지가 나타났어요. 축융의 기운이 축융의 무공을 이은 후예들을 부르고 있어요.”

구지락이 미간을 좁혔다.

“과연 제갈세가라는 건가? 축융지환에 대한 정보는 특급으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데.”

축융지환은 환우구대기보 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따르면, 불의 신인 축융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몸속 불의 정화가 담긴 반지를 만들어 남긴 것이라고 했다.

“조화무제! 너도 축융지환을 욕심내어 여기에 온 것이냐?”

“우선은 그 웃음부터 정리를 하자, 구지락.”

사도명이 오른손을 들어 구지락의 웃는 얼굴을 가리켰다.

구지락의 미간이 다시 한번 꿈틀 움직였다.

“나는 최고의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웃음이란 그 수단이지.”

사도명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하하.”

“으하하하하.”

사람들은 계속 웃으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남악진군사에 복을 빌러 왔던 관람객들이, 이유조차 모른 채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지락이 익힌 무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흑염수라 불리는 극양 계통의 수공이 하나.

그리고 웃음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음공, 지옥삼절소가 둘!

지옥삼절소 중의 첫 번째 초식인 음혼소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 피시전자의 무의식을 좀먹는다.

음혼소에 당한 자는 웃을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자신의 내공을 소진하는 것이다.

내공이 강한 자가 오히려 더 빠르게 탈진하며,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음혼소였다.

“일반의 사람들은 내공이 없기에 초엽보다 오히려 오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억지로 웃는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사도명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갈청미가 구한 소녀도 보았다.

사도명의 눈이 빛을 발했다.

“지금부터 셋을 센다.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건 음혼소를 풀지 않는다면, 약속하지! 최고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하나!”

“협박에 넘어갈 것 같으냐? 음혼소는 귀에 들리는 소리를 넘어 작동하기에, 피할 길이 없는데 어찌해 너는 웃지 않느냐?”

“둘!”

“하하하. 네가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를 보자, 하하하.”

구지락의 웃음이 거대한 종소리처럼 폭발했다.

웃음 하나하나에 실린 강력한 기운은 소리의 강기였다.

음강은 허공을 날아 사도명의 얼굴과 가슴을 동시에 노렸다.

지옥삼절소 중의 두 번째 초식인 폭혼소였다.

구지락은 폭혼소를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양손으로 흑염수의 강력한 열기도 함께 뿜었다.

“불타올라라-!”

콰아아-!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두 갈래 강기를 보며, 사도명은 결국 마지막 숫자를 나직이 세었다.

“셋. 휴우.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니! 자, 되돌려 주마.”

창천사해 중의 제일해 와가 일어나 구지락의 힘을 되돌렸다.

하나하나의 흐름 속에 깃든 정반대의 흐름을 이끌어내면서, 사도명은 제삼해 역을 이용해 흑염수의 기운도 뒤바꾸었다.

“헉!”

구지락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정신없이 물러났다.

마치 자신의 앞에 거대한 거울이 있어, 모든 것을 되돌려 보내는 느낌이었다.

구지락은 자신의 공격이 오히려 자신을 노리는 것을 보며, 양손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사술을 부릴 생각밖엔 없는 거냐?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콰콰콰콰쾅!

구지락은 다른 흑염수를 끌어올려 되돌아온 흑염수를 중화했다.

동시에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제법 강하구나. 하지만 과연 이것도 버틸 수 있겠느냐? 와하하하하.”

지옥삼절소 중의 마지막 초식인 절혼소가 울려 퍼졌다.

절혼소는 사람의 혼과 몸에 동시에 작용한다.

웃음소리를 듣는 사람은 혼이 흩어지는 경험과 더불어, 온몸의 경맥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와하하하하-.”

“나는 하는 수 없이….”

사도명의 낮은 음성은, 주변 공간을 쩌렁하게 울리는 절혼소 사이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그 음성이 울리자, 음혼소와 절혼소로 인해 고통 받던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

귀와 가슴을 찢던 고통이 갑자기 사라졌다.

쉴 새가 없이 터지던 웃음이 놀랍게도 가라앉았다.

“하는 수 없이 널 끌어들이려던 애초의 목표는 포기! 너의 죄를 먼저 묻기로 하마!”

번쩍!

빛이 일어났다.

“바, 방금… 무슨?”

구지락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진 빛.

구지락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상처는 없었지만, 분명히 무엇인가가 그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놀랍도록 빠른 그 흐름은, 구지락의 심맥을 끊어 놓았다.

“파천삼로 중의 두 번째. 가장 빠른 길 무영섬.”

끊긴 것은 심맥만이 아니었다.

구지락은 얼굴 전체가 시원해졌음을 느끼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평생 지어왔던 웃음이, 그 얼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 나의 웃음이….”

“적암마계는 우내 삼대 마문 중에서도 그 마공이 사람의 마음에 끼치는 해악이 가장 크다. 너는 적암마계 출신이냐?”

구지락은 계속 얼굴을 더듬다가, 절망에 싸여 무릎을 꿇었다.

“아아. 내공이! 평생을 수련한 나의 내공이….”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휴우.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잃고도 오직 하찮은 웃음만을 걱정하다니.”

“내가 무엇을 잃었단 거냐?”

“마음.”

사도명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간직해야 하는 마음. 마음을 잃은 대가를, 구지락, 너는 이제부터 제대로 치르게 될 것이다.”

“으으. 나, 나는….”

구지락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단전이 갑자기 흔들리며, 검은색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르-!

몸속에 들어 있던 흑염수의 기운이 저절로 일어나 그의 온몸을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악! 살려줘. 나, 나를 좀 살려 줘.”

“그것이 흑암수가 금단의 마공으로 지정되었던 이유다. 몸이 기력을 잃으면, 흑염수는 오히려 주인을 삼키는 괴물로 변한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유감이지만 도울 방법은 없구나. 잘못된 길로 들어간 너의 생명이 스스로를 삼키는 셈이니.”

검은 불은 빠르게 타올랐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구지락은 몸은 이내 검은 재로 변해, 바람에 흩어져 날아갔다.

제갈청미가 고개를 저었다.

“이젠 어쩌죠? 우리는 축융의 반지를 찾으러 왔잖아요. 축융지환의 행방을 정확히 모르기에, 행운령주 구지락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인데 그가 죽었으니 어떡해요?”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소.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하고 있었으니까.”

구지락은 동료인 광서곤에 이어 초엽마저 죽였다.

동료를 쉽게 죽인 자는 다른 사람은 더욱 손쉽게 죽일 것이다.

“알아요. 하지만….”

제갈청미의 이어지는 한숨에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축융지환을 찾을 방법이 사라졌다고 불평하고 싶소?”

“…솔직히 말하자면요.”

“조금 기다려주시오.”

“아! 다른 방법이 있나요?”

사도명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지금까지의 위험으로 충분했지 않습니까? 혹시 더 큰 위험을 겪어보고 싶어 기다리십니까?”

사도명의 경고에 놀란 사람들이 분분히 움직였다.

“그, 그럴 리가요!”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을 빌러 온 관람객들은 앞다투어 인사를 하며 사라졌고, 남악진군사 경내는 적막에 싸였다.

모두가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

사도명은 가지 않고 남아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은 왜 가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소?”

남은 두 명은 광서곤의 철봉에 맞을 뻔했던, 지약이란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였다.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고자 남았습니다. 제 딸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하다면, 우릴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시겠군.”

중년 여인이 눈을 깜빡거렸다.

“안내? 어디를 안내하라는 말씀이신지?”

“이를테면, 광서곤의 단단한 철봉에 머리를 맞고도, 벌써 멀쩡해질 외공을 익힌 장소?”

“!”

“혹은 음혼소에 당하고도 흔들리지 않을 내공을 익힌 문파?”

사도명은 소녀의 앞에 섰다.

양손을 자신의 무릎을 올린 채, 허리를 약간 굽혀 소녀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뭐 보다 명확하게 말하라면, 형산파로 안내해 달라는 겁니다.”

중년 여인이 소리쳤다.

“귀하는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죠? 지약을 괴롭히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은 내게 하세요.”

“내 신분을 말하자면….”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억지로 짓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이와 같은 웃음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사도명은 미소를 떠올린 채로, 소녀를 보며 말했다.

“제6대의 무림맹주, 조화무제! 그러니 반노환동을 이루신 분과 직접 대화를 나눌 자격은 충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노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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