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49화 (49/168)

049화. 웃는 얼굴

호북성 형산!

중원 오악 중의 하나라, 남악이라고도 불린다.

남악진군사는 형산 아래의 남악진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천곽왕묘(司天霍王廟)라고 불렸으나, 당나라 현종(玄宗) 때 남악진군사(南岳眞君祠)로 이름을 바꾸었다.

남악진군사는 형산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장소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했다.

“부모님이 아프십니다. 부디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병마를 거둬가 주십시오.”

“저희 부부가 백년해로 할 수 있도록 복을 내려주세요.”

복을 비는 일에는 믿고 있는 신앙의 구분조차 없었다.

기도하는 사람 중에는 승복을 걸친 승려와 도복을 걸친 도사가 하나로 섞여 있었다.

“모두 비켜라.”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누군가 쇠몽둥이를 좌우로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고한 후에 흔드는 철봉이다. 뻔히 보고도 피하지 못해서 다친다면, 그건 너희의 잘못이니 난 책임지지 않는다. 크하하.

철봉을 휘두르는 사내는 덩치가 매우 컸다.

벼락에 맞은 듯, 붉은색 머리가 사방으로 뻗친 모습이었다.

광서곤은 낭아검보의 부보주로, 노적발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살기가 강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매우 유명했다.

“보주님 행차시다. 푸하하.”

낭아보는 호남성 일대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방파였다.

극락문에 황금의 서약을 맹세한 문파들 중의 하나였고, 인근에서는 경쟁할 문파가 많지 않았다.

보주는 낭치검 초엽!

그는 늑대의 이빨처럼 톱니가 있는 칼을 사용한다.

“보주님이 기도를 하고자 친히 들렀으니, 푸하하. 영광으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낭치검 초엽은 극락문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러 형산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 도중에 형산의 신에게 제사라도 올리려고 남악진군사에 잠시 들른 것이다.

“아악, 지약아!”

사람들 틈에서 중년 여자 한 명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광서곤이 철봉을 휘둘러 길을 열고 있는 앞쪽에, 여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당고를 먹느라 광서곤의 철봉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크하하. 비키라는데 비키지 않았으니, 모두 네 잘못이다.”

광서곤이 고함을 지를 때, 중년 여자는 정신없이 딸을 향해서 달려갔다.

“지약아. 어서 피해.”

뻐-억!

쇠몽둥이가 사람의 머리를 치며 허공에 피를 뿌렸다.

“악!”

“저, 저런!”

놀란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를 때, 가까스로 딸을 감싸 안은 중년 여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엄마?”

당고를 든 여자아이는 머리 한쪽이 깨어져 쓰러지는 엄마를 보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다, 다치지는 않았니?”

쓰러진 중년 여인이 딸을 향해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엄마 머리에서 피가 나. 많이 나.”

“어, 엄마는 괜찮다. 어서 피하거라. 여기 있으면… 다쳐.”

“푸하하. 이미 다쳤는데 뭘.”

광서곤이 피 묻은 철봉을 다시 한번 높이 들었다.

또다시 내려치면 이미 크게 다친 중년 여인은 반드시 죽고, 놀라 울음을 터뜨린 여자아이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노적발 광서곤은 아래로 힘껏 내려치려던 자신의 오른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놀라서 보니, 자신의 손이 팔뚝부터 잘려나가고 없었다.

여전히 철봉을 움켜쥔 광서곤의 오른팔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이게 어떻게… 응?”

고통은 의문의 뒤에, 한걸음 늦게 밀려왔다.

“크아악! 내 팔!”

광서곤은 팔꿈치 아래로 잘린 자신의 팔을 잡고 나뒹굴었다.

기묘하게도 피는 나지 않았다.

잘려나간 그의 팔 단면이 불에 덴 듯 녹아 붙어 있었다.

중년 여인은 딸을 안은 채, 언젠가부터 자신의 앞을 막고 서 있는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저, 저희 모녀를 구해주셔서 감사… 아!”

중년 여자는 나타난 여인의 모습 때문에 크게 놀랐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은 형산의 위에 걸린 하늘처럼 푸르른 옷을 걸쳤다.

피부는 구름처럼 희고, 입술은 노을보다 오히려 붉었다.

아름다운 여인은 존재 자체로 축복이다.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시선을 떼기가 힘들다.

“저, 정말 사람일까?”

“방금 흔적도 없이 광서곤의 오른팔을 잘라낸 것 봤지?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어.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움.

나타난 여인이 중년 여자와 그 딸을 향해 손을 저었다.

“당고를 먹을 때도 주변을 둘러보면 좋단다, 아이야! 어머니는 제사를 드릴 때도 딸의 손을 잡는 편이 좋겠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년 여자는 얼른 딸을 안고, 미녀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팔을 자를 수 있는 도구는 많다. 검이 있고, 칼이 있지.”

톱이 나무를 썰어내는 듯 거친 음성이 어디선가 들려 왔다.

잘린 팔을 잡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광서곤의 뒤쪽이었다.

그곳에 네 명의 무사가 있었다.

네 명은 힘을 합해 가마 하나를 들고 있었다.

가마 위는 눈매가 거칠어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보였는데, 그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무엇보다 간편한 것은 손에 강기를 싣는 수공!”

설명을 이어가는 사내는 낭아보의 보주인, 낭치검 초엽이었다.

초엽은 가마에서 내려 바닥에 혼자 섰다.

“수공에도 종류가 많으나, 잘라낸 단면에 불로 지진 흔적을 남겨 지혈할 수 있는 극양 성질의 수공은 오직 두 가지뿐.”

여자가 웃었다.

“아는 것이 제법 많군요.”

“그중 사백 년 전 실전된 하나를 제외하고,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화염계의 수공은 오직 하나, 청강화염수뿐이야.”

“호호. 그럼 내가 누군지도 안다는 얘긴가요?”

초엽은 미녀를 잠시 보더니, 이윽고 몸을 돌려 사당을 향했다.

“나는 기원할 것이 있어서 여기에 왔소.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기를, 제갈청미.”

“호호. 나를 아는군요.”

초엽은 사당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기원이 끝난 후, 초엽은 가지고 온 지전을 태우고 향을 올렸다.

이윽고 다시 몸을 미녀를 향해 돌리며, 초엽이 물었다.

“내가 무슨 기원을 했는지, 혹시 짐작하시겠소?”

“대충 두 가지 정도?”

“하하. 그중의 한 가지라도 맞추면, 이 낭치검 초엽이 매우 큰 상을 드리리다.”

“하나는 아마 낭아보가 호남제일의 문파가 되게 해달라는 것.”

“비슷하게 맞췄소. 나는 호남제일을 넘어 천하제일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소이다.”

초엽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래도 맞췄으니 상은 드려야겠군.”

“두 번째는 나에 관한 거겠지? 극락문의 원군이 오기 전까지 나를 잡아 두겠다는 소원.”

“그것도 절반만 맞았소. 나는 당신을 발견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만 했다오.”

초엽이 웃음을 멈추었다.

“이 낭치검 초엽이 붙잡고자 하면, 붙잡지 못할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오.”

제갈청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날 알아봤죠?”

“오직 제갈세가의 사람들만이 삼두초(三頭草)를 사용하지.”

초엽은 제갈청미가 입고 있는 푸른색의 옷을 가리켰다.

옷에 표면에 세 갈래로 갈라지는 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더구나 소저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세상에 셋뿐이고. 하하하.”

세상의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색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무림의 아름다움은 오직 세 가지의 색으로만 표현된다.

붉고 푸르고, 검은 빛!

붉은 빛은 은교교를 의미한다.

그녀가 언제나 붉은 옷만을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푸른빛은 제갈청미다.

그녀는 은령선자와 대비되게 언제나 푸른색 옷만을 입는다.

“날 알아봐서 자랑스러운가?”

“미인을 보는 일은 자랑스럽기보단 영광스럽지. 하하하.”

초엽은 계속 웃었다.

“약속대로 상을 드리리다. 앞으론 나 외의 그 누구도 소저의 아름다운 몸을 희롱하지 못하게 해 드리겠소. 하하하.”

“네게는 본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 한 마디로 네 운명이 결정 됐구나.”

“하하, 소저는 이 초엽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구려.”

“임기응변이 제법 괜찮긴 하다. 너는 제사를 드리는 척 시간을 끌면서 그 사이에 광서곤에게 전음을 보냈지? 훌륭했어.”

바닥에는 더이상 광서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광서곤은 초엽의 전음을 받고, 극락문에 보고를 위해서 몰래 달려간 것이다.

초엽의 얼굴에서 다시 한번 웃음기가 사라졌다.

“알면서도 태연하다고?”

“왜 태연할 수 없지, 멍청이?”

초엽이 미간을 찡그렸다.

“감히! 네년은 계속 함부로 말할 작정이냐?”

“곧 목숨을 끊어놓을 자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에게 함부로 말하겠어?”

제갈청미의 태연한 대꾸에 초엽은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초엽은 자신이 알아차린 제갈청미의 특징이 너무 쉽게 눈에 띄는 것들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함정이냐?”

“호호. 우리 제갈세가는 이미 천하에 봉문을 선언했지. 그런데 세가의 소가주인 내가 형산 아래에 눈에 띄는 삼두초 문양의 옷까지 입고 나타난 거야.”

초엽은 마침내 확신했다.

“함정이 맞구나. 날 끌어들이려는 함정이야.”

제갈청미가 깔깔 웃었다.

“낭치검 초엽. 귀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군. 우리가 겨우 당신 정도를 끌어들이려고 이곳까지 왔다 생각해?”

‘우리?’

초엽은 제갈청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옆에 남자 한 명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키가 훤칠했고 몸이 탄탄했으며, 무엇보다 눈이 맑았다.

분명히 계속 제갈청미의 옆에 서 있었건만, 초엽은 지금에서야 그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제갈청미가 남자에게 물었다.

“낭치검 초엽은 죽기 전에 우선 스스로의 주제를 알 필요가 있다 싶어요. 제가 할까요?”

초엽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년의 목을 베어라!”

가마를 들고 있던 네 명의 무사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들은 낭아사수라 불리는 자들로, 초엽이 총애하는 낭아보의 제자들이었다.

하지만 검을 빼서 제대로 휘둘러보기도 전에, 그들은 푸른빛 화염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렀다.

“크악!”

“뜨, 뜨겁습니다, 보주님!”

푸른빛 화염은 제갈청미의 오른손에서 일어났다.

초엽이 신음을 삼켰다.

“분명히 청강화염수! 하, 하지만 내가 아는 청강화염수는 결코 이 정도로 위력이 크지 못하다.”

네 무사의 몸을 덮은 화염은, 그들이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꺼졌다.

“이분으로부터 배웠어.”

제갈청미가 다시 한번 옆의 남자를 보며 웃었다.

“넓게 퍼지는 것을 하나에 집중하는 도리를 배우자마자, 나의 청강화염수는 예전보다 그 위력이 열 배는 더 강해졌지. 호호호.”

제갈청미가 웃자, 멀리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일제히 그녀를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와하하. 일 초의 적수도 안 되는군. 하하.”

“푸하. 낭아사수는 낭아보가 자랑하는 제자인데, 하하하, 저렇다는 건가? 낭치검 초엽 보주도 얼마 견디지 못한단 거잖아. 하하.”

“모, 모두 닥쳐라!”

초엽이 고함을 질렀지만,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 하하하하.”

“우하하하하.”

심지어 온몸에 화상을 입은 낭아사수마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보주님.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하하하.”

“저희가 웃으려는 게 아님에도, 하하하. 죄송합니다. 하하.”

상황이 이상했다.

초엽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뭐지, 이건?”

“하하. 저도 웃고 있습니다. 웃지 않으려는데 자꾸, 하하하.”

멀리에서 오른쪽 팔이 팔꿈치 아래로 잘려나가고 없는 사람이 크게 웃으면서 걸어왔다.

“부보주!”

광서곤이었다.

“하하. 보주님. 저는 극락문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만, 하하하, 도중에….”

웃음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웃을 수 없을 때 웃는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광서곤의 표정이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오래, 그처럼 웃고 있는 거냐, 광서곤?”

초엽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광서곤은 웃음과 피눈물을 한꺼번에 흘리며 애원했다.

“하하하. 보주님. 아까 달려간 이후에 계속…. 하하하. 너무 고통스러운… 제발, 제발 제가 그만 웃을 수 있도록… 큭!”

초엽의 낭치검이 광서곤의 가슴에 깊이 꽂혔다.

광서곤은 웃는 얼굴 그대로 쓰러졌다.

“가, 감사… 하하… 으!”

그는 이제 더는 웃지 않았지만, 얼굴의 일그러진 미소는 죽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초엽은 웃는 채로 죽은 광서곤을 보며, 으드득 이를 갈았다.

“말해주시오. 광 부보주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소살(笑殺)의 벌을 받아야만 했는지… 하하… 응?”

초엽은 자신의 입 끝도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서, 설마 나도? 하하하.”

“광서곤은 너와 똑같은 죄를 지었다, 초엽!”

사람들 사이에서, 오 척 단구의 중년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웃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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