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48화 (48/168)

048화. 일로종횡

사도명은 숲 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넓어서 인가가 없고 깊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서문용맹을 기다렸다.

이윽고 서문용맹이 오자, 사도명은 양손을 좌우로 휘두르며 숲의 나무를 베었다.

순식간에 공터가 만들어졌다.

사도명은 베어낸 나무들을 공터 바깥 경계선 이곳저곳에 심기 시작했다.

“나는 진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에 관련된 책을 읽었던 적도, 또한 없었다.”

사도명이 나무를 다시 심는 방식은 묘했다.

어떤 것도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았으며, 그 거리가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심자, 황금빛의 아지랑이가 공터의 경계선을 타고 피어올랐다.

“그런데 내 머릿속엔 이것이 들어 있구나.”

서문용맹이 놀라 외쳤다.

“십천금쇄진?”

“알고 있느냐? 백도십천, 즉 구파와 일방이 힘을 합하여 만든 절진이다. 무림맹의 창건 시 헌납되었다는 진법이기도 하다.”

황금빛 아지랑이는 서기로 변해 사방을 모두 막았다.

그 기운은 하늘까지 막았다.

사도명과 서문용맹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자신들만의 공간에 서 있게 되었다.

“천부는 6대의 무림맹주시잖습니까? 무림맹주가 십천금쇄진을 아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것을 배운 적이 없다.”

사도명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한숨을 쉬었다.

“무림맹 지하 무덤에 삼 년 동안 묻혀 있었다. 그 사이 무엇인가가 내게 일어났어. 이 머릿속에는, 지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

“…혹시 이기전념(以氣傳念)과 같은, 그런 겁니까?”

“맞다. 지하 무덤에서 삼안신창 서문광이 남긴 상념이 기운과 함께 내 몸에 들어왔기에, 내가 삼극무령심공을 알고 삼안무류와 신창을 사용할 수 있다고밖에 설명을 하지 못 하겠다.”

“아아. 역시 천부님은 신창님의 후예이심이 틀림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도명의 단호한 말에 서문용맹의 눈이 커졌다.

“네?”

“이건 내 것이 아냐. 본래 서문세가의 것이어야만 한다.”

“하, 하지만….”

“그러니 돌려주어야지. 널 만났을 때부터, 네가 천중무극의 깨달음을 속히 얻어 조화인이 되도록 강요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서문용맹은 사도명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더니,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도명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천부께서 제게 삼극무령심공을 전수해 주신다면, 저는 천부를 영원히 사제의 인연으로….”

“필요 없다.”

사도명은 굽히려던 서문용맹의 허리를 펴게 만들며, 자신의 양손을 그의 명문혈에 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는데 사제의 인연 따위는 가당치도 않아.”

“하, 하지만….”

“너와 나의 나이 차가 크지 않다. 앞으로 잘 지내고 싶다면 대충 형님 동생쯤으로 하자.”

“아아.”

“정신을 집중해라. 흐르는 내공의 흐름을 한 가닥, 한 올까지 세세하게 느껴야 한다.”

서문용맹은 즉시 가부좌를 틀며 눈을 감았다.

내공 전수에 있어, 정신집중만큼 중요한 일은 달리 없다.

한순간의 실수로 내공을 전하는 이와 전해 받는 이가 모두 주화입마에 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명이 십천금쇄진을 주변에 펼친 이유였다.

“세 개의 단전을 모두 사용하니 오히려 집중이 어려울 것이다. 그때마다 명심하거라. 공격과 방어, 그리고 연계. 이 세 가지가 이어져서, 동시에 하나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콰아아아아아아-!

도도한 강물 같은 내공이 사도명의 손바닥에서 서문용맹의 몸속으로 흘러갔다.

“혼자 가지려 해선 아니 된다. 서문세가의 보다 많은 이들이 삼극무령의 깨달음을 얻을수록, 우리가 극락문과 싸워 이길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으으! 지, 집중하기가 힘이 듭니다. 온갖 잡념들이 저절로 일어나 집중을 방해합니다.”

“깨달음의 근저에 낀다는 마장이다. 천중무극을 활용해라.”

사도명이 쏟아 붓는 내공의 힘은 시간이 지나도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렬해졌다.

“천중무극심법은 모든 종류의 무공과 혼합될 수 있기에 조화라고 불린다. 사람이 본원의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또한 잡념을 해소하는 것과도 통한다.”

“으음!”

서문용맹의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리더니, 놀랍게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하 과연이구나. 예상대로 너는 천무성의 기를 이었다.”

사도명은 혼자 웃었다.

이제 어떤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도, 서문용맹은 더이상 듣지 못할 것이다.

“삼안신창의 모든 것을 건넸지만, 내 속엔 아직도 두 사람이 더 남아 있다. 네가 타고난 천무성에 대한 천기를 읽는 것도 그중의 한 사람이 했던 일이다.”

사도명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 것 같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건네주던 내공이 마침내 모두 소진되었다.

사도명은 서문용맹의 명문혈에서 손을 떼고 심호흡을 몇 번 길게 했다.

“휴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군. 홀가분하다.”

-- 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엔 많지 않다. 정말 놀랍구나, 아이야! 이로써 세 개의 큰 방 중에 하나가 비게 되었다.

“!”

사도명은 놀라서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기척은커녕 바람 소리조차 흐르지 않고 있었다.

“분명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 말했는데,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도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 후, 운기조식의 삼매경에 빠진 서문용맹을 다시 보았다.

“칠주야를 운기조식하면, 내가 전수한 삼안신창의 내공이 모두 너의 것이 된다. 십천금쇄진의 붕괴를 그 시각에 맞추마.”

사도명은 여러 곳으로 지풍을 튕겨, 심천금쇄진의 형태를 재조정했다.

서문용맹이 뿜는 기운이 극에 달하면, 진법의 기운이 저절로 소멸되게 만든 것이다.

“구대세가 중에서도 서문세가의 힘은 압도적이다. 그 힘을 되살린 다음에는 이곳으로 와라.”

사도명은 바닥에 지풍으로 <大少林>이라고 썼다.

소림사는 법허의 문파이며, 아수라혈교와의 싸움에서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곳이었다.

사도명은 운기조식의 삼매경에 빠진 서문용맹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다시 한번 보았다.

“여기에서 극락문의 음모를 모두 종결짓자. 그 전까지 나는, 이 세상을 극락문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 보마.”

사도명의 몸이 흔들렸다.

흔들린다 싶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창천사해 ‘출’을 내공의 흐름을 밀어내는 것으로 응용하자,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신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

주먹을 얻어맞고 뒤로 날려간 왕삼은 바닥을 몇 바퀴나 뒹굴고 난 뒤에야 겨우 다시 일어섰다.

“내, 내공이라니! 너는 어떻게 내공을 되찾은 거냐, 도언직?”

왕삼은 고함에 도언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고, 자신의 팔을 만졌다.

사실 그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그냥 생각했어. 내가 저지른 일이 참 잘못되었구나. 나와 같은 자들이 늘면, 내 가족도 언젠가 위험하겠구나!”

도언직은 왕삼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 행동이나 하고도 뉘우치지 않는 너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나는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워야만 하겠구나.”

쿠르르르르-!

사방의 땅이 흔들렸다.

- 옳다. 그런 마음이 바로 너희가 깨달아야 할 속죄이다.

지금은 주변에 없는, 사도명의 음성이 그렇게 흔들리는 땅의 곳곳에서 울렸다.

-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의 마음이 시키는 옳은 일을 행하려는 마음을 가져라. 그것이야말로, 너희 몸속에 심어 놓은 조화금제를 없앨 유일한 방법이다.

“어, 어기봉음(御氣封音)? 내공을 이용해 목소리를 봉해두는 수법이 정말 가능하다고?”

도언직은 흔들리는 땅의 곳곳에 나타나는 글자를 보았다.

<大少林>

수백 개의 ‘대소림’이 바닥의 곳곳에 나타나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 개개조화를 얻은 자는 오라.

공간에 미리 남겨 놓은 사도명의 음성은, 내공을 되찾은 도언직과 내공을 찾지 못한 왕삼의 귀 모두에게 또렷하게 울렸다.

- 오면, 조화의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게 될 것이다. 개개조화를 얻지 못한 자도 오라. 조화의 마음이 세상의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는지를 보고, 진실에 눈을 뜨게 되리라.

땅의 흔들림이 사라졌다.

사도명의 목소리는 더이상 울리지 않았다.

도언직이 왕삼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내공을 되찾고 싶다면, 자네는 소림사로 가야만 하겠군.”

“너, 너는?”

“나도 가야지.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도우러.”

왕삼은 나머지 열한 명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내공이 되돌아왔다고 기뻐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내공을 사용할 수 없음에 분노했다.

“오냐. 그렇다면 나는 무조건 소림으로 가 주마.”

왕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가면, 서왕모 존좌께서 조화무제라는 놈의 목을 따는 걸 볼 수 있겠지? 존좌는 우리에게 한 번 더, 신인이 될 수 있는 천상의 무공을 내려주실 것이다.”

**

훗날 제갈세가는 십자천하록을 보완하여, <무림천추록>을 발간한다.

무림천추록은 이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무당산의 하늘이 성스런 빛으로 물들었다. 무림맹의 첫 번째 반격이었다.>

<조화무제는 조화의 빛으로 열세 명의 마인들을 심판했다. 그리고 그들 중의 일부를 개개조화의 흐름 속에 편입시켰다.>

<무당 오자를 비롯하여, 훗날 무림을 다시 세운 영웅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선보인 날이기도 했다.>

<바로 이 날, 무적신창이 탄생하였다.>

<천무성을 타고난 무적신창은, 훗날 적마교의 혈강시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다.>

<무적신창은 말하였다. 자신이 조화무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심마문의 염라탈혼에 혼을 빼앗겨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염라마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

조화무제는 호북성 무당산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화무제의 첫 방문을 받은 문파는 같은 호북성에 위치한 제갈세가였다.

“천하를 종횡할 것이오.”

조화무제는 노환으로 병석에 누운,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 제갈평의 앞에서 복잡하고 긴 선 하나를 허공에 그었다.

“목적지는 숭산의 소림사.”

소림사가 위치한 하남성은 호북성에 면하여 있었다.

“하지만 호북에서 곧바로 하남성으로 넘어가진 않을 거요. 나의 행로는 천하를 크게 도는 것.”

그는 호남과 강서를 거쳐 안휘, 강소, 절강과 복건을 돌고 광동, 광서와 귀주, 중경과 섬서, 산서, 하북을 통과할 것이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산동성을 거쳐 하남으로 들어가면, 나는 일로종횡을 완성하는 셈이오. 그날이 바로 극락문의 위선과 거짓이 모두 벗겨지는 때가 될 거요.”

무림인들 중엔 극락문의 행동에 의혹을 느끼는 사람은 많았다.

제갈세가는 수재들의 집단답게 그러한 의혹을 매우 강하게 느끼고 있던 문파였다.

“제갈세가는 잠시 사라진다.”

조화무제가 방문한 후, 제갈세가가 무림을 향해 터뜨린 첫 번째의 선언은 봉문이었다.

이는 황금의 맹약을 깨뜨리는 것이었기에, 극락문은 즉각 조사관을 파견하여 제갈세가의 상황을 점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극락문의 조사관이 도착했을 때 이미 제갈세가는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문파처럼, 그들은 사라졌다.

현자들의 가문답게, 존재할 때는 도드라졌던 제갈세가가 막상 숨으려 들자 그 흔적을 찾을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강호의 소문은 발이 빠르다.

제6대 맹주인 조화무제가 나타나 지리멸렬한 무림맹을 재건하고, 제갈세가가 그 뜻을 잇는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얼마 안 가 서문세가도 봉문을 선언했다.

봉문하기 전, 서문세가는 천하에 깜짝 놀랄 이야기를 전한다.

<서문세가는 마침내 신창의 영광을 되찾았다. 조화무제께서 전수한 힘을, 우리는 무림의 불의를 걷고 정의를 실현하는 영광의 창으로 사용하리라.>

서문세가가 언급한 무림의 불의가 어떠한 곳을 말하는지, 많은 세상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극락문은 크게 분노하며 마침내 서왕모의 이름을 건, 네 번째의 포고를 내린다.

<제 사(四)호 포고.>

조화무제는 무림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이다. 이에 명패를 지닌 모든 무림인은 조화무제를 제거함에 최선을 다하라. 따르지 않는 자, 심판을 받으리라.

극락문을 추종하는 자와 그에 반발하여 조화무제를 믿는 자.

조화무제는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을 하나의 단어로 부르며,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일로종횡!

세상을 종횡하는 조화무제의 길은 그대로 폭풍이 되었다.

극락문을 따르는 이들이 일로종횡을 막았고, 조화무제와 뜻을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은 일로종횡을 함께 걸었다.

천하는 둘로 나뉘어 싸웠다.

그리고 모든 싸움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조화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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