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조화무제와 조화금제
십자(十字) 천하록은 열 개의 숫자로 천하의 세력 판도를 정리해 놓고 있다.
1황, 2비, 3성, 4제, 5은, 6객, 7마, 그리고 8왕!
앞서 있는 여덟 개의 숫자는 사람에 붙어 있는 명칭이다.
그리고 뒤의 두 숫자는 문파와 가문 등 세력을 뜻한다.
9대 세가라 불리는 9가!
구파와 일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인 10천.
십자천하록을 남긴 사람은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인 제갈평이었다.
그는 마도 무림의 무공에 대해서도 설명을 남겨 놓았다.
<정도 무림에 구대 세가와 백도십천이 존재한다면, 마도 무림에는 세외팔천이 있다. 나는 천외 오대마문과 우내 삼대마문의 무공에 대하여 순위를 정했고, 그것들 중의 상위 108가지를 백팔마공이라 칭하겠다.>
덧붙여서 제갈평은 소수마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소수마공에 백팔마공 중 서열 72번째의 자리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소수마공의 위력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만약 천성적인 순음지기를 타고난 여인이 처녀성을 상실하지 않고 소수마공을 익힌다면, 진(眞) 소수마공이 출현할 것이니, 그 위력은 가히 마도의 오대혈천공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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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너는….”
사도명의 목소리는 힘과 힘이 부딪쳐 발생하는 폭음 속에서도 더없이 또렷했다.
“순음지기를 타고나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사내를 오래 전에 알아버렸던 모양이다.”
꽈드드드드드드드등!
경요미는 자신이 내친 소수겁파천의 공격을 간단하게 헤집으며 다가오는 사도명의 손을 보았다.
“마, 말도 안 돼. 크윽!”
그녀는 사도명의 왼손 왼쪽 어깨를 얻어맞았다.
뒤로 후르르 날아가 십여 장을 뒤로 밀리다가,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웠다.
“내, 내가 일 초를 당해낼 수 없다고? 이걸 믿으라고?”
“진 소수마공을 갖지 못했다면, 너는 나와 일 초 이상을 붙을 자격이 없다, 소수마녀.”
“너는 어떤 자이기에, 그토록 광오하게 말하느냐?”
“제6대의 무림맹주.”
사도명의 선언은 단호했다.
“1년! 그 안에 극락문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로잡을 사람.”
경요미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서문용맹마저도 놀라서 사도명을 돌아보며 전음을 보냈다.
[처, 천부께서 무림맹의 맹주셨다고요?]
법허 역시 전음을 보냈으나,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미타불. 순리구려. 태자가 살아 있으니, 맹주가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오.]
“선택을 해라.”
경요미는 먼 거리에 있던 사도명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이, 이형환위의 신법?”
“첫 번째는 여기에서 죽는 것. 두 번째는 속히 극락문으로 돌아가 나의 말을 전달하는 것.”
경요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데려왔던 열두 명의 수하들은 이미 크게 다쳐, 더는 전력이 될 수 없었다.
“조화무제. 네,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주마.”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첫 번째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 그건….”
경요미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뺀 다음 달아났다.
서문용맹이 다가오며 말했다.
“왜 그냥 보내셨습니까? 천부님의 능력이라면 간단히 사로잡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이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될 거다.”
사도명이 쓰러져 있는 열두 명의 ‘신인’들을 가리켰다.
극락문의 조종을 받는 마인!
“심마문의 염라탈혼을 오래 익히면, 사람은 혼이 녹아내려 본래의 신지를 잃게 된다.”
“아!”
“눈에 흐르는 혈기가 그것. 염라탈혼에 탈혼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이유다. 혼을 잃은 자들은 염라마로 바뀌어, 죽을 때까지 주인의 명령만을 듣게 된다.”
서문용맹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신인을 동경했고, 극락문에 들어가려 노력했었다.
만약 사도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인들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미래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럼…?”
“걱정마라. 죽게 두진 않는다. 경요미를 쫓아 보낸 이유가 그것. 내가 제압하려 들면 소수마녀는 이 열두 명을 끝까지 움직여, 내게 저항했을 것이다.”
“아!”
서문용맹은 사도명의 모든 행동에, 다양한 고려가 숨어 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하지만 경요미가 돌아가 극락문에 상황을 알릴 겁니다.”
“바라던 바다. 조화무제가 출현하여 극락문을 위협하고 있다 알리면 그들은 긴장하겠지. 긴장하면 실수가 일어난다.”
사도명이 법허를 보았다.
“미래의 일보다 급한 건 이 열두 명의 생명. 부맹주님, 도와주실 거지요?”
법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공을 보며 말했다.
“청수 장문인! 부탁합니다.”
“무량수불.”
허공에서 도호가 울리더니, 청수진인이 뒤에 다섯 명의 제자를 이끌고 홀연 나타났다.
서문용맹은 그 다섯 명 중의 한 명을 알고 있었다.
“보현 진인… 아!”
서문용맹이 눈을 빛내며 사도명을 보았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 머릿속의 혈기를 몰아내었던 그 방법! 무당과 소림이 힘을 합하여 이 마인들의 마음에서 탈혼염라의 혈기를 지워주시려 하는군요.”
청수진인이 다섯 명의 제자를 이끌고 열두 마인의 주위, 칠성의 방위 중 여섯 군데를 점했다.
“다섯 제자는 새로운 무당오자. 모두 천중무극을 익혀 조화진기를 얻은 제자들이외다.”
청수진인이 사도명을 보았다.
“제자들이 도피하도록 시간을 끌어주셨음에 감사드리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제6대 맹주를 알현하게 된 것도 기쁩니다.”
법허가 칠성의 방위 중 남은 한 자리를 점했다.
일곱 사람의 몸에서 일제히 똑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서문용맹은 이제는 자신의 몸에도 흐르기 시작한 조화진기의 빛을 보자, 마음이 푸근하게 가라앉음을 느끼고 웃었다.
“의미 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사도명이 일곱 명이 몸에서 빛을 뿜어내어, 열두 명의 혈기를 씻어내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그것이 내가 예전에 아수라혈교와 싸웠던 이유이고, 지금 극락문과 싸우려 하는 이유이다.”
빛이 가라앉았다.
혈기가 제거되자, 본래의 정신을 되찾은 열두 명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여, 여긴 어디지?”
“극락문에서 하, 하늘의 무예를 전수받은 것까진 기억이 난다. 하, 하지만 어째서 내가 여기에…?”
사도명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열두 사람 모두를, 극락문에게 이용만 당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파아아-아앗!
사도명의 오른손에서 눈부신 빛이 솟았다.
빛은 탈혼염라의 저주에서 깨어난 열두 명의 몸을 모조리 한 차례씩 휘감은 후에 사라졌다.
“이, 이게 뭐지?”
“온몸이 나른하다. 어이, 이 봐, 지금 뭔 짓을 한 거야?”
깨어난 열두 마인들 중,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중년인 하나가 사도명의 앞으로 걸어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덩치는 극락문에서 혼을 잃기 전, 호북 무림의 유명한 흑도 방파인 폭풍보의 보주였었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이름이 뭔가?”
“폭풍보의 보주, 질풍권 왕삼의 명성을 들어는 봤느냐?”
왕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의 내공이 사라졌다. 독이라도 쓴 거냐, 애송아?”
“탈혼염라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걸! 하하. 그럼 이렇게 기억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을 텐데.”
“뭘 구시렁대느냐?”
사도명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서문용맹쪽을 보았다.
“이런 걸 염려해서 조화금제를 모두에게 뿌린 거야. 아까, 너의 내공을 막아놓은 수법 말이다.”
“아!”
“조화금제는 마음에 걸리는 금제다. 마음이 스스로의 양심을 회복하면 저절로 풀리고, 양심을 찾지 못하면 더욱 강해지지.”
왕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시선을 자꾸 피하면 정말로 그 모가지를… 아!”
왕삼이 입을 벌린 채 그대로 말을 멈추었다. 사도명이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아아. 나, 나는….”
사도명은 아무 행동도, 심지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고개를 되돌려 바라보기만 했는데, 왕삼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호랑이가 토끼를 만났을 때,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단지 호랑이와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토끼는 절망하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것이다.
“무당의 청수장문인과 무당오자. 그리고 법허 부장문인.”
사도명의 부름에 사람들이 일제히 포권했다.
“하명하소서, 맹주.”
“천하를 돌며 탈혼염라에 당한 자들을 풀어주어라. 만일을 대비하여 조화금제를 베풀어 스스로 개개조화를 이루도록 만들라.”
말을 하는 사도명의 입술이 부지런히 떨렸다.
마음을 둘로 나눈 후에, 전음입밀의 방법까지 함께 사용하여, 모든 이들의 귀에 조화금제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오.”
보현을 비롯한 무당 오자(五子)가 사도명을 향해 포권했다.
청수 진인도 한 차례 고개를 숙인 후, 무당오자를 이끌고 분분히 날아갔다.
법허 역시 내공으로 몸을 허공에 띄우며 사도명을 보았다.
“아미타불. 말씀하신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겠소, 맹주.”
법허는 소림 특유의 반장을 한 다음, 멀리 사라졌다.
서문용맹이 사도명을 보았다.
“저도 움직입니까?”
“아직은 뭘 해야 하는지, 내가 일러주지 않았잖아.”
“뭐든 명령해 주십시오.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천부.”
사도명의 몸이 소리도 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도명은 열두 명 ‘전직 마인’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사람은 저마다의 천명을 받고 태어난다. 하늘이 사람을 낳은 뜻은, 오직 한 가지.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것이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허공에 뜬 사도명만 바라보았다.
왕삼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 뿐이었다.
“스스로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낸다면, 조화금제가 저절로 풀릴 것이다. 용맹. 따라 오너라.”
파-아앙!
사도명의 몸은 허공에서 그대로 남쪽으로 날아갔다.
놀란 서문용맹이 자신의 최고신법을 끌어올려 그의 뒤를 따랐다.
“잠깐만요, 천부님. 속도를 늦춰주셔야만….”
두 사람의 몸은 남쪽 하늘로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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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왕삼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사도명이 사라지자 정신적인 압박감으로부터 풀려났던 것이다.
왕삼은 굳었던 몸을 풀며 인상을 썼다.
“도대체 어떻게 됐던 거야?”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사도명과 눈을 마주치자 시작되었던 극강의 공포심이, 막상 사도명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내가 잠시 미쳤던 건가? 아니면 그 자식이 사술을 쓴 건가?”
왕삼은 주변의 열두 명을 둘러보았다.
더러 아는 무인이 있었고, 더러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신들은 어떤가?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아까 그놈에게 화가 나지 않냔 말이다.”
“우리에게는 화를 낼 자격이 없는 것 같군.”
왕삼이 말을 한 사람을 찾았다.
“도언직! 무슨 헛소리냐?”
도언직은 왕삼과 마찬가지로 호북성에서 흑사방이란 흑도방파를 이끌던 자였다.
“왕삼. 자네는 우리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저질렀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네.”
왕삼이 미간을 찡그렸다.
“기억은 한다. 그래서 뭐?”
“뭐, 라니? 우리가 비록 흑도의 방파를 일컬었지만, 애꿎은 사람까지 죽이면서 살진 않았다. 한데 극락문의 신인으로 살면서…, 아무래도 나는 어린아이까지 죽인 것 같다. 그런 기억이 나.”
“그래서 뭐?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 그때가 차라리 나았어. 모두가 우릴 두려워했고, 존경했다. 그런데 지금은….”
왕삼이 소리를 지르며 도언직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내공조차 금제된 병신들일 뿐이잖아, 자식아.”
뻐-억!
둔탁한 소음과 함께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날려간 사람은 도언직이 아니라 왕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