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46화 (46/168)

046화. 신창(神槍) 현현(顯現)

쇠와 쇠가 부딪치는 폭음은 사방으로 퍼졌다.

무당산의 폐허 위에서 한 차례 부딪친 고대창과 법허의 몸은, 튕겨나듯이 서로 멀어졌다.

“이럴 수가!”

고대창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고 경악했다.

깊은 도상이 여러 줄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 당신에겐 칼이 없다. 없는데도 어떻게?”

칼을 꺼내 휘두른 사람은 분명히 고대창이었다.

하지만 막상 칼의 공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도 또한 고대창인 것이다.

사도명이 서문용맹을 보았다.

시선을 의도를 깨달은 서문용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불기(不器), 시기(是氣)!”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설명해라.”

“칼은 날카롭지만 호신강기를 뚫지 못합니다. 내가고수의 강기가 바위도 자르는 건 도구가 아닌 기운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문용맹이 고대창과 법허를 다시 보며 말했다.

“그러니 장력과 칼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차피 거기에 실린 기세는 같은 것이니까요.”

고대창은 법허를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법허의 잘린 다리와 자신의 상처를 번갈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날렸다.

“사술이다. 속임수라고!”

법허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았다.

“커헉!”

고대창은 칼을 끝까지 휘두르지 못하고, 법허의 바로 앞에서 손을 멈추고 피를 토했다.

법허가 비로소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던 고대창의 장력을 날려 그를 공격했다.

“물러가라!”

콰-앙!

고대창은 자신의 칼에 몸이 베이고, 자신의 장력에 얻어맞은 채 후르르 멀리 날아갔다.

텅-터엉!

땅바닥에 몇 차례 몸이 튕긴 후, 고대창은 부르르 몸을 떨다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장력과 칼의 기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창은 어떨까?”

사도명이 서문용맹에게 물었다.

“아!”

서문용맹은 사도명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겉모양은 다르나 그 본질은 모두가 하나군요.”

“이와 같은 통찰이 삼안무령신공의 근간이다. 내공으로 신창을 만들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서문용맹은 즉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사도명이 짧은 순간을 이용해 자신에게 삼극무령신공을 전수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감사드립니다, 천부.”

“감사는 부맹주에게. 네게 직접 보여주시고자, 나와 너를 같이 부른 것이다.”

“거짓을 벗겨주시고 가르침도 주셨습니다. 선사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서문용맹이 법허에게 포권하자, 법허는 오히려 사도명을 보았다.

“오히려 내가 태자께 감사드려야 하오. 좌불등천의 시작은 태자의 천지일명이라 할 수 있소.”

“그렇습니까?”

“내가 흉내를 낸 거요.”

법허의 몸이 바닥에 내렸다.

그의 말처럼 저절로 가부좌가 되는 것을 보고, 사도명은 법허 몰래 한숨을 삼켰다.

모든 비극은 슬프지만, 그런 비극을 넘는 인간의 의지는 모든 사람을 감동시킨다.

“태자가 자신을 적과 동화시켜 동귀어진하는 것을 흉내 내어, 다리가 없는 나도 상대의 내공을 이용해 싸우는 방법을 찾아냈소.”

“사람은 아마 흉내를 냄으로써 발전하고, 발전하면서 다시 흉내를 내는 존재 같습니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어떤 상황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성과를 얻는다. 그 점을 말하고 싶으셨던 것 맞죠?”

“콜록 콜록. 크헉.”

법허가 갑자기 피 기침을 한 후에 입가의 피를 닦았다.

“알아주어 고맙소. 부디 은교교를 구하시오. 그리고….”

법허는 먼 산과 가까운 능선을 번갈아 보았다.

“뒤의 일은 태자이기에 안심하고 맡기리다.”

법허의 시선이 향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다.

모두 열세 명!

옷차림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며, 성별이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같았다.

모두의 눈에 일렁거리는 혈기.

심마문의 염라탈혼이 만들어내는 마기가 나타난 자들의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흐흐.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나, 법허?”

고대창이 입과 몸에서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극락문의 진짜 신인들이 납시었다. 극락문과 존좌께 무례한 자들은 죽어 마땅… 큭!”

고대창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그의 가슴을 뚫고 작은 손 하나가 불쑥 솟았다.

핏물을 머금은 그 손은 작고 희었으며, 또한 더없이 고왔다.

사도명은 그 손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 심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그 손의 정체를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소수공?”

사도명의 중얼거림처럼, 손의 주인은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하지만 고대창은 그녀가 결코 어리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고대창은 가까스로 힘을 내어 자신을 뒤에서 찌른 한 명의 소녀를 돌아보았다.

“처, 천녀시여! 지금 어이해 저의 목숨을…? 컥.”

소녀가 고대창의 심장을 뚫었던, 자신의 손을 뒤로 뺐다.

고대창의 눈에서 빠른 속도로 빛이 사라졌다.

대답을 들을 사람이 죽었건만, 소녀는 굳이 대답했다.

“신인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존좌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그것 또한 지극한 무례니까.”

고대청의 몸이 햇살 아래 말리는 감처럼 빠르게 수분을 잃었다.

“슬퍼하지 마, 고대창. 널 해친 사람들도 곧 같이 보내줄 테니까.”

강시처럼 말라버린 고대창의 시체가 땅에 쓰러졌다.

소녀는 분홍빛으로 혈색이 올라오는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면서, 시선을 법허에게로 돌렸다.

“호호호. 죽어 마땅한 몸으로, 질기게도 생명을 이어왔네요?”

서문용맹은 소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극락문의 소수천녀?”

소녀가 고대창을 죽이는 사이, 열두 명의 괴인이 모두 나타나 주변을 에워쌌다.

“소수천녀는 극락문에서 신인들을 이끄는 세 명의 령주들 중 천향령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서문용맹이 사도명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했다.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별호는 소수마녀로 본명은 경요미다. 적마교 소속으로 90년 전에 이미 일백을 넘겼다.”

“호호호. 젊은 오라버니!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소수마녀의 눈이 빛났다.

사도명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대체로 아름다운 여인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호호호. 저는 충분히 아름다울 텐데, 그렇지 않나요?”

소수마녀가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며 웃었다.

“아!”

서문용맹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독을 가진 뱀은 화려하지. 화려함으로 유혹해야, 먹잇감의 목에 독니를 박을 수 있으니까.”

사도명이 차갑게 말했다.

“소수흡혈마공은 마도에서 흡혈북명대법과 쌍벽을 이룬다. 저절로 일어나는 미염공에 저항 못하면 생명마저 위험하다, 용맹.”

사도명의 목소리에는 내공이 실려, 소수마녀의 웃음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

소수마녀가 웃음기를 잃어버린 얼굴로 사도명을 노려보았다.

“너는 누구냐? 너처럼 어린 나이에 대체 어떻게 나를 알지?”

웃음을 그친 소수마녀는 말투마저 바꾸었다.

사도명은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보며 되물었다.

“데리고 온 것은 여기의 열두 명이 전부인가?”

소수마녀 경요미의 미간에 꿈틀 힘줄이 솟았다.

“너의 피는 유난히 달콤할 것 같구나. 네 피를 빨면서 물어보면, 너는 제대로 대답할까?”

사도명이 서문용맹을 보았다.

“모두가 염라탈혼에 중독된 자들이다. 신인(神人)이 아니라 마인들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럴 수가!”

“이들 중 한 명과 싸우면 얼마나 버틸 자신이 있느냐?”

서문용맹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보이게 열두 명의 마인들은 모두 고대창보다 강해 보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오십 초! 소수마녀라면, 아무래도 십 초 정도가 한계 같습니다.”

“제대로 봤다. 그게 지금의 네 수준이다. 백일 이내에, 지금보다 백 배 강해지도록 한다.”

“그, 그건 불가능한….”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무조건 따르도록.”

사도명은 다시 법허를 보았다.

“부맹주님은 제가 이 자들을 모두 처리해주기 바라십니까?”

“아미타불. 대피는 거의 끝났소. 조금만 시간을 끌어준다면 마무리도 완벽하오.”

상황을 지켜보던 소수마녀 경요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말로 죽여 놓고 물어야 제대로 대답할 생각이냐?”

사도명이 드디어 경요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 열두 명은 모두 천향령의 소속인가?”

소수마녀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열두 명의 수하들을 바라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모두 죽여라. 저 방자한 놈의 마지막 숨은 남겨서 내가 직접 끊을 수 있도록 하라.”

“두 번 말하지 않으니 집중하고 들어라, 용맹.”

사도명의 음성이 뒤를 이어 서문용맹의 귓속에서 울렸다.

[신창은 기(器)과 기(氣)를 구분하지 않음에서 출발한다고 이미 말했지? 어기성강, 즉 기로 강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강기는 결코 부러지지 않되….]

사도명은 자신과 법허, 그리고 서문용맹을 향해 달려드는 열두 명의 마인들을 보며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세 갈래의 빛이 휘황하게 빛나더니 사도명의 손바닥에 모였고, 이내 한 자루의 창으로 변화했다.

[…세 갈래 마음을 타고 한없이 강해진다.]

나타난 창이 달려드는 열두 명의 마인들을 덮쳤다.

창의 주변을 타고 세 방향에서, 놀랍게도 세 개의 눈이 나타났다.

눈은 강기의 회오리였다.

소수마녀가 경악하여 소리쳤다.

“사, 삼안신창? 너는 서문광과 어떤 사이냐?”

콰콰-쾅!

열두 명의 마인들!

극락문에서 신인이라 부르는 자들 열두 명이, 단 일초를 견뎌내지 못하고 답답한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제 일초인 삼안현현. 세 개의 눈은 삼극무령심공이 일으킨 세 개 단전의 기운이다. 이로써 신창이 자유자재 움직일 통로가 허공에 만들어지는 셈이다.]

사도명이 허공에서 신창을 고쳐 잡았다.

사도명이 잡은 창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빠르게 계속 분화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의 환영이 아니라 실제로 강기의 창이 나뉘고 있는 것이다.

나눠진 수백 개의 창이 주변 반경 백여 장의 허공을 빽빡하게 메우며 떠올랐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창은 사도명의 머리 위, 무당산의 하늘의 둥글게 덮었다.

“시, 신창만천?”

경요미가 외쳤다.

“말도 안 돼! 과거 삼안신창 서문광마저 이 정도의 숫자는 불가능했었다.”

“하하하. 그땐 아마도 조화인으로서의 각성 이전인 모양이군.”

사도명은 웃음과 동시에 전음도 이어갔다.

[신창만천은 확장을 의미한다. 마음에 따라 창이 늘어나 주변 백여 장 이내를 사정거리 안에 두니, 피할 방법은 전무하다.]

창은 허공에서, 모두 날카로운 끝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간단히 막을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소수마녀의 비명 같은 고함이 폐허로 변한 무당파를 울렸다.

그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들은 땅을 향해 직격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말 그대로 창의 폭우였다.

[삼안신창의 모든 초식은 삼위일체가 특징이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전환이 하나로 연결되지.]

흐름은 맹렬했지만 서문용맹의 귓속에서 울리는 사도명의 전음은 차분했다.

[삼단전을 모두 사용하여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아아!”

서문용맹은 크게 뜬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열두 명의 마인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지만, 제대로 창을 막아낸 자는 없었다.

창에 한쪽 팔을 잃은 자!

관통 당하여 피 흘리는 자!

“아미타불. 태자는 한번에 열두 명을 상대하시는가? 부처시여. 실로 자애하십니다. 이로써 천하는 구원 받겠군요.”

소수마녀 경요미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경요미의 양손 주변이 어둡게 변했다. 희미한 회색 속에서 그녀의 두 손은 더욱 희게 물들면서 요사스런 빛을 발했다.

소수가 사도명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노렸다.

사도명은 왼손 하나만을 천천히 들었다.

그의 왼손에서 미미한, 그러나 성스럽기 그지없는 빛이 솟아 경요미의 소수를 맞아나갔다.

꽈드드-드드드등!

“이렇게 하자. 나는 조화무제로 세상의 조화를 다시 이루려는 사람이다!”

그는 본래 자신의 신분을 알리려 했으나, 당분간은 스스로를 숨길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극락문으로 돌아가거든, 모두에게 전해라. 조화무제가 찾아갈 거라고. 그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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