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태극혜검
호북성 무당산.
모두 7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무당산에는 도교의 성지 무당파가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자리 잡고 있었다.
사도명이 무당의 상청궁 앞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것은 무너지고 불타버린 돌기둥뿐이었다.
그 주변을 무성한 잡초가 덮고 있었다.
“진무대제를 모시며 무당 제일의 화려함을 자랑했던 상청궁이었다. 이렇게 변했다고? 소림도 마찬가지인가?”
“소림은 더욱 끔찍합니다.”
사도명의 혼잣말에 서문용맹이 대꾸했다.
“아수라혈교에 대한 저항을 최후까지 이끌었던 무림맹 부맹주 법허 대선사를 배출한 곳이라, 아수라혈교와 무당파의 연합 세력은 소림사를 완전하게 멸망시켰죠.”
“완전하게라고?”
“제가 할 수 있는 설명은 이제 끝났습니다. 저는 신분을 밝혔고, 귀하는 아직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존좌의 포고에 의해, 무림인이 자신의 신분을 등록하지 않는 일은 중죄입니다.”
“서왕모라는 여자를 존좌라고 부르는 이유는?”
“절대 무례를 범하지 마십시오! 신인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한 차례 고함을 지른 후 주변을 둘러보는 서문용맹의 눈에 떠오르는 감정은 분명히 공포였다.
서문용맹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서 말했다.
“존좌를 향해 극도의 경의를 표하는 일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황금의 맹약 이후 발표된 존좌의 포고 제 1호이기도 합니다.”
“포고를 어기면 숨어 있는 신인이 붙잡으러 오기라도 하나? 신인(神人)이라는 건 또 무엇이냐?”
“극락문이 전하는 천계의 무공을 익힌 분들을 뜻합니다.”
서문용맹의 눈이 흥분으로 잔뜩 달아올랐다.
“너도 그걸 익혔느냐?”
사도명은 잡초만 길게 자라있는 무당 상청관의 폐허를 보았다.
“눈에서 보이는 혈기. 익힌 거겠지? 그래서 그 후엔 어찌 되나? 신인이 되면 서왕모라는 여자의 밑에서, 평생을 살아가나?”
“가, 감히 존좌께 그런 말투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바로 그 따위 세상이!”
사도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수라혈교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극락문이라고? 내가 막았던 수라겁황이 세상에 출현하였고, 그들이 그걸 막아냈다고?”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라겁황을 막아냈었다니요?”
“아직도 혈도를 풀지 못한 거냐? 천중무극 깨달음이 여전히 마음에 닿지 않고 있느냐?”
“다시 묻습니다. 귀하는 누굽니까? 사조 님과 어떤 관계죠?”
“네가 말하는 사조가 무림맹의 4대 맹주인 삼안신창 서문광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도명은 서문용맹의 앞, 상청관의 넓은 폐허에 우뚝 섰다.
“아마도 너는 이것이 보고 싶을 것이다.”
사도명의 몸 세 곳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흔히 백회를 상단전이라 하고, 혈해를 중단전이라 하며, 기해를 하단전이라고 칭한다.
이른바 삼단전.
하지만 삼태극을 원리의 근간으로 삼는 삼극무령심공은 백회를 상단전으로, 기해를 중단전으로, 용천혈을 하단전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 군데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기운을 돌려 온몸을 감싸는 것이 삼극무령심공의 요체이며 시작이었다.
“아아. 틀림없군요. 사조님 이후 세가에서는 실전된, 삼극무령심공이 틀림없습니다.”
서문용맹이 몸을 떨었다.
아수라혈교가 창궐했을 때, 서문 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서문광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삼극무령의 심법이 실전되지만 않았더라면, 서문세가가 멸망의 위기까지 몰리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사도명의 몸에서 세 줄기의 빛이 솟았다. 솟아난 빛은 허공 높이 올라갔다.
허공에서 빛은 하나로 뭉쳤고, 사도명은 그 빛의 중앙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빛이 모이면, 신의 창이 세상에 태어난다.”
빛이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마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콰아아-!
빛은 사도명의 오른손에서 기다란 창의 형상으로 뭉쳤다.
서문용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안신창! 아아, 내 눈으로 직접 신창을 보다니.”
“4대 맹주 삼인신창의 무공이 왜 내 몸속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기억들도 모두 또렷해진다. 이건 아마도 어기전생. 내공을 통해 전하는 기억.”
사도명의 손에 들린 신창이 천천히 움직였다.
주변을 훑어가는 신창의 압력 앞에, 땅에 솟았던 잡초와 쓰레기들이 깨끗이 녹아 내렸다.
“이로써 죽은 이의 기억이 후예에게 전해질 수 있다.”
번쩌-어억!
창이 하늘을 향했다.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퍼질 때, 서문용맹은 분명하게 보았다.
“아아!”
하늘이 창에 의해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서문용맹은 즉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신창을 지니신 분은 세가의 천부(天父)이십니다. 사조님의 후예가 분명하시군요. 삼가 서문 세가의 후손 서문용맹이 천부님의 헌신을 배알합니다.”
“천중무극을 깨달아라.”
사도명이 외쳤다.
“네가 조화인이 된다면 나는 삼극무령의 구결 모두를 너에게 넘길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삼안신창은 그런 결과를 바라고 자신의 기억과 무공을 내게 넘긴 것이겠지. 개개조화.”
사도명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단어를 외쳤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저마다 조화인이 되어야, 비로소 아수라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진다.”
“아수라혈교라고요?”
서문용맹이 미간을 찡그렸다.
“설마 아수라혈교가 아직 세상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수라혈교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쉽게 사라질 수 없는 걸 쉽게 없앴으니, 극락교와 서왕모에 대해 물어본 것이 많다.”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문용맹이 고함을 질렀다.
“존좌로 인해 세상은 평화를 얻었습니다.”
“어떤 평화 말이냐?”
“존좌께서 제3호의 포고를 내리신 후, 무림인 사이의 분쟁과 다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분쟁이 존재한다. 강요된 평화는 절대로 평화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손에 죽지 않습니다. 타인을 해친 자는 극락문에서 보낸 신인들에 의해 제재를 받습니다.”
“무당이 사라졌고, 제자들이 죽었다. 소림도 멸망했다면서 어찌 죽은 사람이 없다 하느냐?”
“무당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수라혈교와 내통해 중원 무림을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정말로 그랬는지, 어디 한 번 확인을 해보자꾸나.”
사도명의 주변 공기가 휘돌며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무, 무엇을 하려 합니까?”
“나는 무당의 속가장문인 냉심무적 장무정을 만났었다.”
한 방향으로만 돌던 사도명 주변의 공기 일부가 다른 방향으로도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방향의 흐름과 역방향의 흐름이 부딪치자, 사도명을 둘러싼 공기는 거대한 문양 하나를 허공에 만들어 냈다.
“태극입니까?”
“무당에는 지혜의 검이 있다.”
사도명이 두 손과 두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검은 일곱 단계로 이루어지며, 마지막 검은 당대의 누구도 얻지 못했었다. 장무정은 마지막 단계를 얻고자 목숨을 버렸지.”
“혹시 지금 보여주는 것이?”
“장무정은 양의심공과 태극혜검의 일곱 번째 오의를 세상에 남겼다. 나는 태극혜검의 앞쪽 여섯 가지를 모르니 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도명의 손과 발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이윽고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변했다.
“하지만 양심신공은 달라.”
창천사해 중에도 분심의 묘용이 존재한다.
사도명은 지금 양의심공으로 마음을 나누고, 그중 하나의 마음으로 태극혜검의 마지막 변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천부의 손을 따라 흐릿한 환영이 보입니다. 태극입니다.”
서문용맹은 사도명의 손에 검이 잡혀 있다고 상상했다.
상상 속의 검이 움직이는 변화는 한편으로는 매우 복잡했고 또한 더 없이 기묘했다.
순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순리에 철저하게 거스르고 있었다.
“으음. 태극혜검은 지혜의 검이라 들었습니다. 순리와 역리가 함께 움직이니, 제가 이해하려고 들 때마다 몸속의 내공이 오히려 역행하는 느낌입니다.”
“앞쪽 여섯 단계의 태극혜검을 모르는 자가 일곱 번째를 욕심낸다면 그것이 당연한 결과.”
사도명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결과였다.
“태극혜검은 무당의 것이고 내게는 그것을 무당에 돌려줄 의무가 있다.”
태극칠검을 시전하는 사도명의 속에, 주변 삼백여 장 안에 존재하는 인기척을 훑고 있는 또 다른 사도명이 있었다.
“본래의 주인도 자신의 것을 돌려받고 싶겠지? 그러니 태극혜검을 보면 동요할 것이다.”
서문용맹은 사도명의 의도를 비로소 깨달았다.
“무당파의 후예들이 주변 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면, 이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화아아아-아아아!
사도명 주변에서 일어났던 태극의 흐름이 여러 개로 분화하더니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사도명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지막에 진정으로 모순된 변화가 있다. 모이는데 흩어진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무당의 제자라면 알 것이다.”
사도명은 자신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단지 흐름만을 재현했건만, 심력이 크게 소모 되었다.
서문용맹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중간 이후부터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이 자꾸만 흩어지려해서 계속 보다간 주화입마에 들 것 같았습니다.”
“만약 태극혜검의 마지막 오의가 흩어뜨림이라면….”
사도명은 생각했다.
“지옥마정의 흡정북명 대법을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수단이 될 것이다.”
-잘 보셨소. 태극 제7검의 오의는 귀원(歸元)! 태원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의미하오.
서문용맹이 놀라 옆을 보았다.
갑작스런 목소리는 폐허의 옆쪽, 뿌리만 남은 기둥으로부터 들려왔다.
사도명은 처음부터 그곳에서 목소리가 들릴 것을 알았던 사람처럼 태연히 기둥을 보았다.
“그렇다면 냉심무적 장무정은 처음부터 그 점을 알고 스스로의 목숨까지 바친 것이었소?”
드드드드드-!
기둥이 흔들렸다.
사도명이 다시 물었다.
“흡정북명대법을 상대할 무공을 얻어내기 위해서 말이오.”
단단하다 싶던 기둥의 한쪽 벽이 사라지고, 문이 나타났다.
“처, 처음부터 기둥에 문이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까?”
서문용맹이 놀라 물을 때, 사도명은 사방을 가리켰다.
“땅 위에 없고 하늘에 없다면, 당연히 땅 아래에 있지 않겠나?”
기둥에 붙은 문이 열렸다.
걸어 나오는 사람을 보고, 서문용맹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는 푸른색의 도관을 머리에 쓴 도사였다.
“청수 장문인?”
“그를 아느냐?”
서문용맹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아, 알다 뿐입니까? 무당의 청수 장문인입니다.”
“…좋군.”
“뭐가 좋단 말씀입니까? 청수 장문인은 법허 대선사를 죽인 무림의 배신자입니다. 이미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진짜 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다. 유령이라면 너보단 훨씬 더 강호의 진짜 상황을 알 테니까.”
“천부!”
“수고했다. 이제 해고하마.”
“대체 무슨 말씀을… 헉!”
사도명이 지풍을 튕겨 서문용맹의 마혈과 아혈을 같이 짚었다.
“!”
“이것으로 너는 내공을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사도명이 굳어버린 서문용맹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밤이 되면 늑대 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전에 천중무극을 깨달아라. 그럼 혈도가 풀린다.”
“무량수불.”
청수 장문인은 사도명의 바로 앞에 서면서 도호를 읊었다.
그는 물끄러미 사도명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주는 왜 놀라지 않소?”
“불렀던 손님이 나타났다고 해서, 놀랄 주인은 세상에 없지 않겠습니까?”
“손님? 주인?”
청수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주는 지금, 시주가 오히려 나를 불러낸 거라 말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