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서왕모 포고 3호
청년은 나비를 향해서 오른손을 뻗었다.
푸득! 푸드드득!
내공을 받더니, 벽에 박힌 철호접이 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유령호접무 중의 호접유성은 빠를 뿐이기에, 피하기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전혀 다를 거야.”
청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철호접이 살아 있는 나비인 양 청년의 뻗은 손을 향해 돌아갔다.
청년이 나비를 허공에서 붙잡으며 말했다.
“당장 명패를 꺼내 신분을 증명해라, 무림인.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인다. 나는 최근 오랫동안 피 맛을 보지 못했어.”
“명패? 피 맛?”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철호접은 청년의 손바닥 위에서 계속 날개를 흔들며 나풀거리고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고 싶어서 강호에 든다. 스스로 강호를 살아갈 뿐인데 무슨 신분을 증명하란 거지?”
“푸하하. 등록되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피가 그리웠는데.”
청년이 외쳤다.
“서왕모 존좌의 3호 포고! 모든 무림인은 신분을 등록하며, 명패를 발행한다. 명패는 항상 지녀야 하며, 요구했을 때 명패를 보이지 않는 무림인은 그 자리에서 주살해도 살인의 죄를 묻지 않는다.”
사도명은 더 이상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지하에서 보냈던 모양이다. 그 사이에 세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고.”
청년의 손바닥에서 나풀거리던 철호접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청년의 주위를 맴도는 나비를 보며, 사도명이 말했다.
“이렇게 하자. 한 가지만 대답해. 그럼 내게 철호접을 던진 죄는 묻지 않겠다.”
“무슨 헛소리를?”
“세가에서 너의 신분은?”
“푸하하하.”
청년이 껄껄 웃었다.
“대답은 네 죽은 시체에게 돌려주지, 푸하하.”
하늘을 날던 나비가 열두 개로 늘어났다.
열두 마리의 나비가 허공 사방의 방위를 모두 점하며 사도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 팔 다리의 근육을 뜯어서 무릎을 꿇리마. 살점을 한 꺼풀씩 베어나가면서 너의 신분을, 푸하하, 먼저 물어 보겠다.”
청년의 눈빛이 붉었다.
사도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청년의 눈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열두 마리 나비에게로 돌렸다.
어떤 나비는 빠르고, 어떤 나비는 느렸다.
강한 힘을 실었는가 싶으면 약하지만 매우 현란한 변화를 보여주는 나비도 있었다.
앞으로 나는가 싶으면 옆에서 나타났고, 위로 올라갔다 싶으면 어느새 뒤로 돌아왔다.
“유성호접무는 속도와 변화를 모두 포함하는 암기술이지.”
사도명은 기억을 더듬었다.
누군가가 심어 놓은 머릿속의 기억이, 모든 것들을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또한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펼쳐지기에, 간단히 익힐 수 있는 무공은 절대 아니다.”
청년이 놀라서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그걸 아느냐?”
사도명은 나비가 자신의 주변까지 오기를 기다려 지풍을 튕겼다.
“유성호접무는 서문 세가의 직계 가족에게만 전승된다. 너는 열두 마리의 철접군무까지 익혔으며, 제법 강하고 빠르다.”
까가가-강!
오른손에서 날아간 다섯 줄기의 지풍이 각각 두 마리씩, 도합 열 마리의 나비를 뒤로 쳐냈다.
“하지만 빠르고 강하다하여 철접군무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
청년이 두 손을 뒤집어 아래위를 교차시키며 외쳤다.
“그런 말은 철호접을 모두 막아낸 뒤에 해야 하지 않을까?”
남은 두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던 궤적을 크게 바꾸었다.
“열 마리는 눈속임일 뿐. 본래의 공격은 이것이었다.”
두 마리 나비는 뒤로 튕겨난 열 마리의 나비가 갖고 있던 힘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쾌접쌍두라 불리는 두 마리는 서너 배 속도를 늘리더니, 사도명의 양쪽 어깨를 동시에 노렸다.
쐐액액!
사도명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팔을 내렸다.
지풍을 피해 날던 두 마리의 나비가 사도명의 양쪽 어깨를 그대로 찔렀다.
“푸하하. 맛이 어떠냐? 철호접의 꼬리는 아주 날카롭거든!”
철호접의 몸통은 날카로운 철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청년의 웃음이 높아질 때, 사도명의 눈빛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이름을 말해. 서문 세가에서의 신분은 무엇이냐?”
“푸하하. 저승사자가 묻거든, 서문세가의 큰아들 서문용맹이 보내어 왔다고 대답해라.”
“좋아. 서문용맹. 채용하마.”
“뭐?”
사도명이 몸을 흔들었다.
그의 양쪽 어깨에 붙어 있던 두 마리의 호접이 맥없이 떨어졌다.
투둑!
서문용맹의 눈이 커졌다.
철호접의 침은 날카롭기 그지없는데다가 역린까지 돋아 있다.
한 번 사람의 피부를 뚫으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구조였다.
“지, 지금 어떻게…? 처음부터 찔리지 않았던 거냐?”
바닥을 뒹구는 철호접에는 혈흔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채용의 목적은 설명이다. 우선은 서왕모에 대한 얘기부터.”
사도명이 그 중의 하나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서왕모란 무엇이냐? 사람이냐? 이름으로 보면 여자인가?”
서문용맹의 안색이 변했다.
장궤와 점소이도 벼락을 맞은 듯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존좌.”
“저희는 존좌께 무례한, 저런 말을 절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사도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서왕모라는 게, 두려움과 공포인 건가?”
서문용맹이 고함을 지르며 사도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존좌께 불경스런 말투를 사용하다니, 죽어라!”
서문용맹의 손에서 장력이 솟구쳐 사도명의 머리를 노렸다.
그의 눈에 또다시 핏빛 기운이 어른거리는 것을, 사도명은 놓치지 않았다.
사도명은 방금 집어 올린 철호접을 허공으로 살짝 띄웠다.
“유령호접무의 유(幽)란 그윽함을 뜻한다.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고 부드럽게 순응하는 것.”
나비가 서문용맹이 내쏜 장력에 올라타면서 유영했다.
서문용맹은 강력한 자신의 장력이 나비의 부드러운 날갯짓에 소멸됨을 느끼고 경악했다.
“이, 이게 도대체! 네가 어떻게 유령호접무를 아느냐?”
“순응하여 흐름을 타면, 작은 힘도 크게 쓸 수 있다. 령(靈)이란 스며든 힘을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의지를 뜻한다.”
“마, 말도 안 돼!”
서문용맹의 자신의 장력이 나비의 날갯짓을 타고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사술인 거냐?
다시 한번 장력을 쳐내 자신의 장력을 막아 내면서, 서문용맹은 소리를 질렀다.
콰콰-쾅!
나비는 폭음과 함께 돌아가더니, 사도명의 손바닥 위에 부드럽게 앉았다.
“강해야 하기에 철로 만드나, 부드러워야 하기에 호접이다. 부드러우니 위태하지 않고, 강하니 어떤 적도 무릎 꿇린다.”
사도명은 나비를 다시 날려 자신의 주변을 돌게 했다.
서문용맹의 눈이 커졌다.
세 개의 커다란 눈 모양 소용돌이가 사도명의 주변 허공에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 삼안 무류?”
“알아보느냐? 알아본다면, 이 무공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겠구나.”
삼안무류는 서문세가 비전의 삼극무령의 심공으로부터 비롯된다.
태극이 아니라 삼태극을 근간으로 삼는 삼극무령심공은 특이하게도 삼단전을 모두 이용한다.
상단전과 중단전, 그리고 하단전까지 사용하는 것이다.
세 단전의 기가 만들어내는 이질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변화와 이동이 한없이 자유롭다.
“귀, 귀하는 누구요? 신창 님과 어떤 관계요?”
무림맹 제 4대의 맹주였던 삼안신창 서문광은 서문세가에서 삼안무류의 신법을 익혔던 마지막 사람이었다.
세 개의 단전을 모두 개발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너의 내공부터 막아 놓아야겠다.”
사도명이 다시 철호접을 던졌다.
날아간 철호접은 서문용맹의 혈도 세 곳을 단숨에 짚었다.
내공이 금제된 서문용맹이 놀라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크윽!”
“묻겠다. 본래 살기가 강했느냐? 아니면 최근 들어 피를 보는 것이 좋아졌느냐?”
“그, 그런 것을 내가 왜 당신에게 대답해야 하지?”
“이것을 보고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냐?”
철호접이 허공을 돌아 사도명의 손으로 돌아갔다.
서문용맹은 사도명의 손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철호접을 보며 신음했다.
“으으. 완벽한 호접무?”
“너의 내공에 혈기가 서려 있다. 사악한 마공이 심성을 침범하기에 내공을 막았다. 그러니 설명을 듣는 것에서부터 원인을 찾아보자. 서왕모에 대해 설명해!”
“그, 그런 무엄한 말투를 사용함이 대죄임을 모르십니까?”
뒤에서 고함을 지른 사람은 장궤였다.
아복도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용서하십시오, 존좌시여. 저희는 저 무엄한 말을 듣고자 하여 들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장궤와 아복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이마를 땅에 찧었다.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내 판단을 확신하게 됐다. 서왕모는… 어쨌거나 공포란 거군.”
서문용맹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정말 모르시는구려. 포고에 대한 것과 존좌에 대한 것까지!”
“무림맹의 붕괴는 삼년 전. 그 후에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사도명의 몸에서 뻗은 세 갈래 기운이 서문용맹을 휘감았다.
“가면서 설명을 듣겠다.”
“어, 어디로 간단 거요?”
“무당으로.”
사도명은 서문용맹을 진기로 감아 올린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서, 사도명은 은자 몇 개를 장궤의 앞에 남겼다.
“말했듯이 가짜가 아니오.”
“아!”
장궤는 사도명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복은 계속 몸을 떨었다.
“어떡합니까요? 극락문의 분이 납치를 당하다니.”
“은자는 진짜가 맞다.”
“네?”
장궤가 사도명이 던진 은자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웃었다.
“삼 년 이전 이곳 도빈루가 무당파로 올라가려는 손님들로 가득했다는 말 또한 사실일 것이다.”
점소이 아복은 장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뒷머리만 긁었다.
“다시 한번 극락문에 신고를 할깝쇼, 주인님?”
“필요 없다. 신고는 한 번 했고 우리의 의무는 끝났다. 이걸로 음식 재료나 더 사오너라.”
장궤가 사도명으로부터 받은 은자를 아복에게 건넸다.
“예?”
“손님은 서문공자를 데리고 무당파로 간다 했다. 무척 강했어. 극락문의 신인들께서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기회다.”
“기회? 어떤 기회요?”
“그 손님이 극락문과 싸우는 걸 보러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도빈루가 다시 살아난다.”
장궤가 싱글벙글 웃었다.
“재료를 사와라. 닥쳐올 손님에 대비하자, 아복. 이번 기회에 돈 한 번 신나게 벌어보자꾸나.”
**
사도명은 빨랐다.
그는 허공을 날다시피 하면서 무당산을 올랐다.
심지어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진기를 이용해 서문용맹의 몸을 든 채로, 사도명은 바람처럼 달려 무당산을 오르는 것이다.
서문용맹은 부딪쳐 오는 바람에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귀에 사도명이 일러주는 구결이 쉬지 않고 들렸다.
[일컬어 천중무극신공이라 하는 것이다. 집중해라.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라. 깨달음을 얻고 나면, 내가 짚어 놓은 내공의 금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무당파를 향해 올라가면서, 사도명은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서문용맹으로부터 들은 현 천하의 정세는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기괴했다.
-설청산이 수라겁황이 되었다는 소식에, 천하인들 중 경악하지 않는 이는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라겁황은 사도명이 막았다.
설청산은 오대 노사들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죽었다.
-소림에서 부맹주인 법허 노선사가 수라겁황을 막다가 죽고, 원로들도 태반도 죽어 나갔지요. 무당파는 변절했습니다. 설청산을 기른 곤륜파도요.
-변절?
마찬가지로 불가능했다.
사도명은 무당파 속가제자인 장무정의 죽음을 직접 보았다.
하나를 보면 둘을 짐작한다.
무당이 무림을 배신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면, 장무정이 태극혜검을 남기고 스스로 자신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수라혈교와 맞서 싸우던 십구 성좌 대부분은 멸망의 위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수라겁황이 나타난 지 불과 세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죠.
사도명은 은교교의 행방을 묻고 싶었으나, 서문용맹의 말이 이어지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때 극락문이 열렸습니다. 서왕모 존좌께서 이끄시는 극락문은 모두가 신인이라 불리는 무인의 집단이었습니다.
-극락문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문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극락문은 나타나자마자 단숨에 아수라혈교의 마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생 문파가 아수라혈교를 이겼다는 거냐?
-덕분에 흑도와 백도는 멸망의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극락문이 세상을 구원한 겁니다.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시작과 그 진행이 극적이면서도 너무 뻔했다.
-위기. 극도의 공포. 그리고 구원자로서의 등장! 이것 너무 인위적인 전개 아니냐?
-우리 서문세가와 구양세가가 주축이 되어,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는 황금의 맹약을 극락문에 바친 것은, 극락문이 수라겁황을 없애고 아수라혈교를 지운, 열흘 후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