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41화 (41/168)

041화. 달라진 세상

딸랑! 딸랑딸랑!

“이 소리였다. 정신을 잃고 있던 나를 깨웠던 소리.”

방울은 깨끗하지 않았다.

표면에 이끼마저 잔뜩 낀 채, 낡아서 지저분했다.

사도명은 방울을 닦았다.

딸랑 딸랑 딸랑.

닦이면서 흔들리는 소리는 은교교의 노래처럼 맑았다.

“왜 여기에 떨어져 있지? 설마 교교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녹이 슬지 않는 은이 대체 왜 이 정도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뚫려 있는 통로부터 지상의 빛이 내려왔다.

“호불군이 만든 통로다. 무너지는 와중에도 무사했구나.”

통로는 곧장 위로 뚫려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고도 남음이 충분한 넓이였다.

“하지만 저길 올라가려면, 허공으로 곧장 몸을 띄울 수 있는 신법이 필요하다. 내게는 안타깝지만 그런 종류의 신법이 없어.”

머릿속에서 갑자기 하나의 무공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내공을 세 갈래로 나누는 신법.

세 갈래 내공을 각각 회오리치게 만들면, 그 밀어내는 힘이 사람을 떠오르도록 만든다.

서로 밀치는 힘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내공 운용법을 사용하면 어기충소. 곧장 허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사도명의 몸 주변 세 군데에서 회오리가 일어났다.

사도명은 그 힘을 타고, 천장의 통로를 향해 곧장 날아올랐다.

쿠오오-!

“이상하군.”

무서운 속도로 떠오르면서도, 사도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내가 알던 무공이 아니다. 창천사해의 두 번째 출을 응용하여 속도를 높이고는 있지만….”

떠오르던 힘이 약해지자, 사도명은 세 갈래 회오리를 다시 한번 회전시켰다.

느려지던 그의 몸이 다시 빨라지며 날아올랐다.

“도대체 이런 무공이 내 머릿속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구나.”

사도명은 마침내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왔다.

맑은 공기가 들어오자, 코와 폐가 모두 상쾌했다.

솟구쳐 오르던 힘은 지상까지 나오고도 여력이 남았다.

사도명은 십여 장 높이로 떠올랐던 몸을 소용돌이에 실어 천천히 지상으로 내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돌리더니, 주변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면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의 몸을 감았던 소용돌이가 세 갈래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소용돌이는 사라지면서 바닥에 세 방향의 원을 남겼다.

“게다나 내 머릿속에는 이 무공의 이름까지도 남아 있다. 삼안무류(三眼舞流)! 세 개의 원이 세 개의 눈과 닮아 붙은 이름.”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생전 처음 보는 무공을 자신이 시전하고 그 이름을 아는 것도 이상했지만, 주변의 풍경 또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무림맹의 폐허.

곳곳이 웃자란 잡초로 온통 덮여 있었다.

“이건 뭐지? 고작 며칠 방치됐는데, 잡초 투성이라고?”

사도명은 변해버린 무림맹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충 봐도 몇 년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지독한 상처와 완전한 회복.

“내가… 혼절해 있던 것이 며칠 정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어쩌면 매우 큰 공복감은 그로 인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도명은 내공을 끌어올려 주변에 있는 사람을 검색했다.

삼백여 장 내를 훑었으나 사람의 기척은 일체 없었다.

“무림맹에 사람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수라혈교의 침입에 맞서 모두 싸우러 나간 게 틀림없었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어디로 가야 교교를 만날 수 있을까?”

사도명은 대충 방향을 가늠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숭무전.

정확히 표현하자면 잡초로 뒤덮인, 과거 숭무전이 존재했던 장소였다.

“건물은 낡았지만 그대로다. 당연히 기둥도 여전하고.”

사도명은 숭무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둥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살폈다.

“찾았다.”

냉심무적 장무정은 무당파의 속가 장문인이었다.

그는 태극칠해의 마지막 깨달음을 얻고자, 아수라혈교에게 협조를 했었다.

그 대가로 흑귀를 몸에 담았고, 몸이 폭발하여 죽고 말았다.

사도명은 태극칠해가 남겨진 기둥을 찾아 그곳에 남겨진 구결과 흔적을 모두 외웠다.

“태극칠해의 마지막 깨달음. 그리고 태극양의심공. 장무정은 이 두 가지가 무당파에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사도명이 외운 것을 전달하면 무당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당파에서 양심신공과 태극칠해를 완전하게 깨우친 고수가 여러 명 출현하면, 아수라혈교와의 싸움도 유리해질 것이다.

“일단 무당으로 간다. 그곳에서부터 교교를 수소문하자.”

사도명의 몸이 서서히 땅으로부터 떠올랐다. 다시 삼안무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배가 계속 고프다. 무당산까지는 이틀. 그 전에는 건량과 육포로 버티자. 그리고….”

파-앙!

사도명의 몸이 폭발하듯 앞으로 움직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큼이나 강력한 회오리가 뒤에 남겨졌다.

“무당산 아래에는 도빈루가 있다. 덩치가 큰 그곳 장궤의 음식은 맛있고 양도 푸짐하지. 그러니 제대로 된 식사는….”

도빈루는 사도명이 나무꾼으로 여러 산을 떠돌 때, 몇 번 들러보았던 장소였다.

“거기서 하는 것으로.”

사도명은 무척 빨랐다.

덕분에 정확하게 이틀 후에 도빈루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사도명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현실을 알게 된다.

*“몇 접시 째냐?”

“여덟입니다.”

장궤의 물음에, 도빈루의 점소이 아복은 즉시 대답했다.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우리 식당 요리의 양은 넉넉한 편인데도 여덟 접시라뇨.”

“몇 명분이지?”

“대충 마흔 명은 충분히 먹을 정도. 저건 걸신입니다.”

장궤와 점소이의 시선이 모두 식당 구석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앉자마자 아귀처럼 요리 접시를 비우고 있는 청년 한 명이 보였다.

“대체 얼마를 굶은 걸까요?”

“많이 굶었겠지.”

“그래도 마흔 명 분은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장궤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무림인 같다.”

“정말요?”

“무림인의 신체 구조는 일반인과 다르다. 물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숨을 참고,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운기조식만으로 견디기도 한다더구나.”

아복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신고해야지 않습니까?”

“해야지.”

장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청년의 눈치를 살피며, 아복을 향해 뒷문을 가리켰다.

“조심해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아복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뒷문으로 객잔을 빠져 나갔다.

여덟 접시 째의 요리를 마침내 모두 비운 청년이 장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장궤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에 식당 안으로 걸어갔다.

“헤헷!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손님?”

“방금 먹은 가지와 고기 튀김을 한 접시를 더 갖다 주시오.”

청년은 탁자 위에 은자를 내려놓았다.

장궤는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 많이 드시는군요.”

“오는 길에 계속 건육만 먹었소. 맛있는 음식은 아마도… 아주 오랜만인 모양이오.”

“아마도… 라굽쇼?”

“은자는 가짜가 아니오. 걱정할 것 없으니 받으시오.”

“아! 제, 제가 걱정을 해서 집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빈루가 변했구려.”

장궤가 깜짝 놀랐다.

“벼, 변하다니요?”

“일 년 전, 이곳을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소.”

“일 년 전, 입니까? 하핫. 저어기 혹시 아복이 나간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요리 재료가 떨어져서 급히 나간 것으로….”

“예전에는 무림인이 많았소.”

“예?”

장궤의 눈이 커졌다.

“무림인이 많았다고요? 대체 언제 오셨던 것인지?”

“일 년이라 말했잖소.”

장궤가 뒷머리를 긁었다.

“헤헷. 그럴 리가요.”

“그때도 나는 이 자리에 앉아 두 접시의 요리를 먹었소. 이틀을 굶어 무척 배가 고팠지.”

“저는 기억이 잘….”

“무림인 대부분은 도교성지인 무당산에 올라 삼봉진인에게 참배하려던 사람이지만 무당파는 방문객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지.”

“왜 걸러내지요?”

“알다시피 방문객 중엔 무당파에 도전해 이름을 떨쳐 보려는, 할 일 없는 낭인들이 많으니까.”

“왜 알다시피 입니까?”

사도명이 눈을 빛냈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묻겠소. 당신은 대체 왜 무당파의 무사가 아닌 것이오?”

“제가 왜 무당파의 무사여야 한단 말입니까?”

“이곳 도빈루란 그런 일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까.”

“그런 일… 이라굽쇼?”

“도빈. 말 그대로 손님을 이끄는 장소.”

도빈루는 무당파가 손님을 가려내기 위해 직접 세운 객점이었다.

사도명은 여전히 떨고 있는 장궤의 손을 보았다.

장궤는 손만 떨 뿐, 아직도 은자를 쥐지 못하고 있었다.

“일 년 전, 내가 봤던 장궤는 무당파 속가 제자로 덩치가 무척 컸소. 그는 어디로 갔소?”

“소, 손님! 뭔가 착각을 하신 듯합니다. 제가 이곳을 맡고 이미 삼 년이 되어갑니다.”

“삼 년?”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거짓이 아닙니다. 삼 년 전, 무림맹이 아수라혈교와 손잡고 천하를 멸망시키려 했을 때… 헉!”

장궤의 눈이 커졌다.

그는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지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다.

사도명은 사라졌다 싶은 순간에 장궤의 바로 옆에 나타났다.

장궤의 멱살을 쥐는 사도명의 눈은 무서운 빛을 뿜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지금 무림맹이 아수라혈교와 손을 잡았다고 했소? 게다가 삼년 전?”

“네에. 그때 무, 무림맹이 대폭발을 일으켜 완전히 무너지고, 설청산 맹주가 수라겁황이 되어서….”

장궤는 덜덜 떨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모, 모두 죽었습니다. 부맹주, 원로회주 등등 모두 죽어서….”

사도명은 자신이 듣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삼 년 전이라니?

“천하가 완전히 멸망할 순간에, 서왕모 존좌께서 나타나시어 천하를 구원하시고….”

- 거기까지. 그 뒤의 일은 그냥 내가 설명하지.

뒤에서 차갑기 그지없는 음성이 울렸다.

동시에 음성보다 더욱 차가운 흐름이 장궤를 쥐고 있는 사도명의 손을 노리며 날아왔다.

암기였다.

매우 빠르면서도 강했다.

‘왼손으로 튕겨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장궤가 애꿎게 다칠 수도 있으니….’

사도명은 장궤를 붙잡았던 손을 놓고, 그를 뒤로 밀었다.

쐐액-!

콰앙!

암기는 사도명과 장궤 사이를 스치며 날아가 벽에 박혔다.

박혀서 흔들리는 암기는 쇠로 만든 것이었고, 아름다운 나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철호접?”

사도명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암기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나는 왜 이 암기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심지어 이 철호접을 사용하는 문파의 이름마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사도명은 암기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 젊은 무사가 보였다.

“서문 세가의 인물이냐?”

십구 성좌에는 아홉 개의 가문이 존재한다.

서문세가는 구대세가 중 구양세가와 수위를 다투는 곳.

“철호접을 알아보고, 나의 출신을 알아본다는 건, 하하하, 네가 무림인이 맞다는 증거다.”

푸른색 무복을 걸친 청년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점소이 아복과 함께 나타났으며, 무복의 가슴에도 한 마리의 나비가 새겨져 있었다.

청년은 오른손을 벽에 박힌 나비를 향해 뻗었다.

“그렇다면 등록된 명패를 보여라. 보이지 못한다면, 너는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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