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나의 검
사도명은 계속 수라겁황과 대치하고 있었다.
내공의 대결.
믿는 것은 창천일원의 구결!
사도명은 집중을 통해 하나로 열을 이기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싸움은 처음부터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수라겁황은 아수라전생을 통해 수백 년의 내공을 이었다.
하지만 사도명의 내공은 그 양이 비교가 되지 않게 적다.
그럼에도 초식의 대결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수라겁황은 우주홍몽을 알고, 사도명은 마혼영겁수를 모른다.
사도명은 모르는 싸움을 버리고, 불리한 싸움을 선택했다.
내공으로 싸우면서도, 사도명은 장내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은교교의 노래가 왜 갑자기 멈추었는지도 알았다.
설청산의 죽음!
영웅의 마지막 헌신!
사도명은 이런 결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설청산이 마왕의 옷을 벗고 영웅의 옷을 입기를 바랐지만, 오대노사와 함께 동귀어진하기를 바랐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오만했다. 아수라혈교의 부활을 예상하면서도 수라겁황의 탄생은 예측하지 못하다니.’
아수라혈교가 바랐던 수라겁황이 설청산이라 판단했기에, 백옥유액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파천도제 호불군이 수라겁황이 될 가능성은,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힘을 느끼고나서야 비로소 떠올렸을 뿐이다.
“크카캇. 너는 설청산이 오대노사를 없애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지? 이제 어떡하느냐? 설청산은 이미 죽고 없다.”
수라겁황이 두 줄기의 마혼룡을 몸에 휘감은 채 웃었다.
“도움을 기다리는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설청산 맹주의 도움은 결코 아니었소.”
“그럼 누구의 도움이냐? 저 여자의 도움을 기대 했느냐?”
소빙유가 땅을 차고 날아왔다.
설청산의 죽음을 보자, 자신도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사도명. 나를 이용해라. 죽음으로 내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나를 이용해서 수라겁황을 이겨라.]
소빙유의 전음이, 사도명의 귓속에 또렷하게 울렸다.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소빙유는 은교교의 사부.
아버지를 잃고 사부마저 잃으면, 소빙유는 얼마나 더 오래 슬픈 노래를 불러야만 할 것인가?
사도명과 수라겁황의 사이에서 흐르는 내공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이 사지였다.
그 속에 들어오면, 누구라도 피모래로 변해 흩어지고 만다.
소빙유는 그 사실을 알면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이용해 사도명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사도명은 내공 대결을 풀었다.
넓게 펼쳐졌던 우주홍몽의 기운이 좁지만 더욱 깊게 뭉치며, 천지의 기운을 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
“크하하! 마침내 포기했느냐? 내공이 아닌 진짜 싸움을, 드디어 시작해 볼 참이냐?”
수라겁황이 만든 두 마리의 마혼룡이 서로의 꼬리와 꼬리를 물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주홍몽.
우주오검의 마지막 초식으로, 검성이 남긴 최강의 검공!
그리고 그 우주홍몽에 대항하기 위해 수라겁황의 아수라혈마공이 만들어 낸 마공, 마혼영겁수!
‘승부는 일 초에 난다.’
소빙유는 사도명이 초식을 바꾸자, 밀어내는 힘이 강하게 일어나며 자신의 몸을 땅 아래로 떨어뜨림을 느꼈다.
“이, 이게 무슨?”
[설청산 맹주의 죽음은 막을 방법이 없었어. 그건 그분께 가장 어울리는, 영웅의 선택!]
은교교의 머릿속에 갑자기 사도명의 전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건 나의 선택. 내가 보여주는 나의 검.]
소빙유는 바닥에 내려섰다.
은교교가 달려와 그녀를 잡았다.
“사부!”
은교교는 소빙유를 안은 채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도명!”
[이름을 불러주니 좋군. 나도 앞으론 이름을 부를게, 교교.]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우주홍몽의 구멍 속으로 두 마리의 흑룡이 달려갔다.
[이렇게 하자.]
빛과 어둠이 하나로 엮이며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하늘은 때때로 미래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른바 천기라는 징조!
그 천기마저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세상을 덮었다.
쿠오오오오-!
[우주홍몽은 세상의 끝! 모든 것을 삼키는 궁극의 검! 그러나 아수라전생을 통해 부활한 수라겁황은 그 궁극으로부터 달아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이 마혼의 부활을 이용하는 마혼영겁수.]
사도명의 음성은 그렇게 뒤엉킨 하늘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노래를, 나는 나의 검을.]
“그, 그러지 마.”
은교교가 소리쳤다.
사도명의 담담한 목소리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불길한 기운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 마, 제발.”
[검성의 검이 아닌, 나만의 검이다. 내가 오래 생각하고 상상했던, 너의 노래와 나의 검이야.]
“하지 말라고 하잖아.”
[도명. 운명을 이끈다는 나의 이름. 늘 생각했지. 나는 도대체 어떤 운명을 이끌어 햘까? 그 날 너의 노래를 듣고 답을 알았어.]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변화.
우주홍몽의 거대한 구멍 속에서 무엇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슬픔의 노래. 그리고 희망. 듣는 이의 눈물을 씻어주는 노래.]
우주홍몽 속으로 사라졌던 두 마리의 마혼룡이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뱉으며 다시 나타났다.
“무, 무엇이냐, 이것은? 파멸과 혼돈, 두 마리의 마혼룡으로 우주홍몽의 벽을 부수었건만!.”
수라겁황이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우주홍몽이 아니다. 무엇이냐? 대체 무엇이냐?”
[검! 모든 것을 되돌리는, 운명을 이끄는 나만의 검!]
사도명이 전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로 외쳤다.
“하늘과 땅은 이어지고, 나는 그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나의 운명을 이끈다. 일컬어 천지일명.”
빛이 일어났다. 어쩌면 어둠이 사라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 속에서 수라겁황의 갈라진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크으으. 또 다른 검이냐? 검성이 또 다른 검을 남겨두었더냐?”
“검이 아니야. 이것은 그저….”
사도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수라겁황은 왜 사도명이 말을 더 이상 잇지 않는지, 그 순간에 분명하게 느꼈다.
천지일명은 사도명의 말처럼 검이 아닌 운명이었다.
음과 양은 서로를 당긴다.
같은 음과 음은, 또한 같은 양과 양은 서로를 배척한다.
천지일명은 운명을 이끌어 동화시키고, 또한 배척하는 것이었다.
“네, 네 자신을 나와 동조시키는 거냐? 하나로 만들어, 동시에 사라지려는 것이냐?”
수라겁황이 울부짖었느나, 사도명은 차분했다.
“모두에게 동일한 운명. 승리와 패배, 무엇도 구하지 않는 방법.”
“크으. 이 미친 놈이!”
은교교가 울부짖었다.
“하지 마! 제발 그만해!.”
번쩌-어어어어억!
빛이 일어났다.
사도명의 마지막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한결같이 또렷했다.
“수라겁황을 데려간다. 이것으로 저의 운명은… 완성입니다.”
“안 돼애-!”
“너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교교.”
휘황한 빛.
사도명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마지막 검을, 최후의 순간에 깨달았던 것이다
천지일명.
“아아악!”
소빙유는 빛 속으로 달려가려는 은교교를 끌어안았다.
빛이 사라졌다.
폐허로 변해버린 무림맹 원로전의 중앙에서, 더 이상 사도명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소빙유가 비명을 지르는 은교교의 혼혈을 짚었다.
그리고 사도명의 사라진, 무림맹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호불군이 홀로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이 호불군을 향해 검을 뽑았다.
법허가 고개를 저었다.
“아미타불. 멈춰라. 그분은 이미 수라겁황이 아니다.”
법허의 판단은 사실이었다.
아수라의 마기는 사도명과 함께 이미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법허가 호불군을 향해 물었다.
“파천도제십니까?”
호불군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법허인가? 나는… 이미 죽었는데, 여기에 다시 있는 건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천도제가 맞으시군요.”
법허가 대답했다.
“칠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조화인으로 각성한 후, 나는 수라겁황의 운명을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금강왕의 손에 죽었지. 그리고 아수라전생의 대법에 의해 줄곧 지하에서….”
호불군의 시선이 곳곳이 갈라진 무림맹의 바닥을 향했다.
“…조화인으로 살 때는 행복했었다. 내게 고맙다 말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고,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어 기뻤다.”
“…도제!”
“세상의 대한 위협은… 끝이 아니다. 겁황은 막았으나, 아수라혈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호불군은 무림맹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수라혈교는 천하 무림 자체를 없애려 한다.”
“아미타불. 이제 수라겁황이 아닌 파천도제시니, 우리들이 해야 할 바를 알려 주십시오.”
“개개조화.”
호불군이 말했다.
“기댈 곳은 없다. 오로지 각자가 조화인이 되어야 한다. 모두의 마음 속, 그 깊은 마음을 따라 모두가 조화인이 되어야만, 이 깊고 어두운 수렁을 건널 수 있다.”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적!
연이은 충격을 견디지 못한 무림맹이 이곳저곳에서 갈라졌다.
호불군의 몸도 조금씩 풍화되면서 먼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맹이 무너진다.”
호불군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기억하지 마라.”
“…도제.”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영웅이 출현할 터. 남은 자들이여, 무림을 지켜라.”
호불군의 몸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가루로 흩어졌다.
“아수라혈교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라. 개개조화의 방법은… 내가 이미… 세상에 남겨 놓았다.”
호불군의 몸은 마침내 완전히 가루로 변해 버렸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자, 가루는 사방으로 흩어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법허는 호불군의 죽음을 애도해야 할지, 혹은 기뻐해야 할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호불군은 수라겁황이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운명은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택했던 첫 번째의 운명은 조화인으로서의 삶이었다.
호불군과 설청산은 같았다.
금강왕이 호불군의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더욱 오래 조화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쩌적! 쩌저저저-적!
바닥은 더욱 빠르게 갈라졌다.
“붕괴한다. 모두 멀리 떨어지거라. 원로들도 움직이시오.”
법허가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무사들은 빠르게 움직여 무너지기 시작하는 무림맹을 벗어났다.
쿠르르르르르르!
균열은 계속 늘어났다.
무림맹의 중앙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함몰은 확산되었다.
소빙유는 무너지는 중앙에 가장 오래 남아 있었다. 그녀는 두 명의 남자를 생각했다.
“설청산. 사도명. 당신들은 실로 영웅답게 죽었어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어요.”
소빙유는 자꾸만 흐르려는 눈물을 막으려 계속 눈을 깜빡였다.
“무너진 무림맹은 당신들을 위한 무덤입니다. 당신들이 사랑한 교교는 내가 잘 돌볼게요.”
동쪽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무림의 역사상 가장 길고 흉험했던 밤이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