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33화 (33/168)

033화. 마지막 질문

설청산이 뿜어내는 기운은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방어막 뒤에 서 있는 일반의 무사들마저 온몸이 저림을 느끼고 몸을 떨 정도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전서구.

새는 밤에 날지 않는다.

아무리 보름달이 밝아도, 전서구가 밤을 새워 날아왔다는 건 다급한 소식이 있다는 의미였다.

무림맹의 모든 지부와 천하 각파가 오대마문의 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

법허와 구양걸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뜻이 한 줄기로 연결되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을 박찼다.

“일권붕멸!”

“불광조천하!”

구양걸의 주먹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최강의 무공이 터져 나왔다.

법허 역시 소림사가 자랑하는 초식을 전개했다.

불광조천하는 천중팔불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공격의 일초였다.

두 가지 무공은 모두 정도 무림이 오랫동안 자랑해오던 절초 중의 절초였다.

그러나 설청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갈래의 공격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로, 천천히 오른손만 위로 들었다.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오대마공은, 본래 저마다 특유의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설청산의 손에서 뻗어 나가는 공력은 더 이상 색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마공이 궁극에 이르자, 놀랍게도 마치 신공이 완성 단계에 이른 듯 담단함 서광으로 변한 것이다.

투-웅!

설청산의 손이 구양걸과 법허를 밀어내는 소음은 미약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장난처럼 뒤로 밀려나, 십여 장 이상 날아간 후에야 겨우 바닥에 내려설 수가 있었다.

“크윽! 이럴 수가.”

“미, 믿을 수 …크헉!”

법허와 구양걸은 가까스로 멈춰선 후, 한바탕 피가래를 토해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조금 전 사도명이 어떤 괴물을 상대로 싸웠는지를 실감했다.

“수라강림은 오대마공의 합일을 의미한다. 또한 수라겁황이 되면 얻는 절대의 힘도 뜻하지.”

설청산은 하얗게 빛나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수라영겁수! 두 사람이 지금 겪은 것은 삼 성의 수준이다.”

“겨, 겨우 삼 할이 완성되었는데도 이 정도라고? 아미타불.”

법허는 입가에 흐르는 죽은 피를 닦아내며 신음했다.

설청산은 흰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왼손도 들어 보였다.

“기대해도 좋아. 수라영겁수는 지금도 완성되는 중이다. 수라쌍수는 오성을 의미하지.”

“겁황이시여.”

“수라겁황의 존체를 삼가 배알하나이다.”

소빙유의 뒤에 서 있던 원로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법허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배신자라 하나, 한때 무림맹의 원로였던 자들이 어찌 수라겁황에게 무릎을 꿇… 아!”

법허의 고함은, 그러나 무릎 꿇은 자들이 얼굴의 면구를 벗자 경악으로 변해 사그라지고 말았다.

마지막 배신자들의 정체.

그들은 처음부터 원로 본인들이 아니었다.

면구를 벗자, 그중에는 법허가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 많았다.

가장 앞에 서 있는 풍마 장척기의 모습에, 법허는 소리쳤다.

“설청산이 너를 죽였다고 할 때부터가 거짓이었구나.”

풍마 장척기가 히죽 웃었다.

“죽은 사람은 나, 풍마가 아니라 무림맹 장대덕이었지.”

“무림칠마! 너희가 이런 식으로 모조리 무림맹 안에 들어와 있었던 거라고?”

“나는 오랫동안 장대덕으로 두 분과 함께 지내왔어. 하하하. 오랫동안 원로로 대접받으며, 참으로 재미있는 매일매일이었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무림맹을 좀먹어 왔던 거냐, 설청산?”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 그 훨씬 이전부터. 내가 관여하기 훨씬 이전부터!”

설청산의 양손에서 뿜어지는 빛은 성스러워서 더욱 끔찍했다.

빛나는 두 손을 흔들면서 설청산이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아수라혈교의 뜻이 검성 설운경에 의해 좌절되던 첫 순간부터 모든 건 시작됐다.”

화아아아- 악!

빛이 태양처럼 달아올랐다.

그리고 돌연 사라졌다.

사람들이 눈부심에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봤을 때, 설청산의 두 손은 평범하게 돌아가 아무런 빛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귀, 귀진의 경지인 건가?”

구양걸이 신음했다.

모든 것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평범해진다.

설청산의 손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영겁수가 완성되었다는 의미였다.

설청산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려 풍마 장척기를 보았다.

“백옥유액의 덕분이다. 영겁수를 십이 성 체득한 진정한 수라겁황. 이 뜻이 무엇이냐 하면….”

설청산의 눈빛을 받은 풍마 장척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기에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함을 의미한다. 우리처럼 아수라혈교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설청산이 사도명을 보았다.

“왜 네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느냐? 너는 단지 눈앞의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이미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사도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풍마 장척기를 똑바로 보며 손짓했다.

“내 앞으로 와라, 풍마.”

장척기가 냉소했다.

“나와 싸우고 싶으냐? 그렇게 다친 몸으로? 하하하. 사실 널 죽일 사람을 따로 있다.”

장척기의 옆에 서 있던, 얼굴이 매우 길고 검은 늙은이가 뚜벅뚜벅 걸어 사도명의 앞에 섰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사도명은 그를 보지 않고 장척기만 보면서 다시 말했다.

“내 앞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신검산장의 장주 철담협 왕유의 일로 너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네가 오지 않는다면….”

사도명의 앞으로 왔던 얼굴이 긴 늙은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신주삼괴의 사부인 무령마 궁측이다. 네놈이 나의 제자들을 해친 일에 대해… 어?”

무령마는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고함을 지르다가 자신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피 안개를 보았고, 그것이 자신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것임 이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길, 무영섬.

파천삼로 중의 첫 번째 길을, 사도명이 창천사해 중의 출, 즉 마음의 검기로 펼쳐낸 결과였다.

“이, 이게 무슨…?”

무령마 궁측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쿠-웅!

무령마의 몸뚱이가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풍마 장척기는 자신의 바로 앞에 사도명이 나타났음을 느꼈다.

사도명의 검지가 장척기의 이마에 닿았다.

“도, 도대체 어느 틈에…?”

나타나는 동작과, 검지를 드는 동작! 장척기는 그 어느 하나도 감지해 낼 수가 없었다.

“내 말을 따라해라.”

사도명이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자를 잘못 둔 죄를 목숨으로 사죄드립니다.”

“무, 무슨 헛 소리냐?”

“저승으로 가면 왕유 장주가 아들과 함께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들을 만나서 네가 해야 하는 말이다. 어서 따라 해.”

“이, 이런 미친놈이 …”

장척기는 몸을 떨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려, 설청산을 보았다.

그는 무령마의 죽음을 보았다.

자신만의 힘으로는 사도명의 손을 따돌리지 못함을 알기에, 설청산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장척기의 제자도 무령마의 제자처럼 설청산의 명령을 받아 천라옥벽을 가지러 갔었다.

그 와중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겁황이시여. 제 능력으로는 피할 수가 없으니….]

설청산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장척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자랑인 흑마선을 꺼내 휘둘렀다.

하지만 흑마선의 바람은 헛되이 허공만 맴돌았고, 사도명의 검지에서 뻗은 힘은 장척기의 이마에 구멍을 뚫었다.

퍼-어!

장척기의 피와 뇌수가 허공에 튀었다. 그 와중에도 설청산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하하하. 힘을 아껴두었더냐?”

사도명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설청산을 보았다.

“진짜 수라겁황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기에.”

사도명은 소매에 묻은 장척기의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그럴 여유가 있었다고?”

“불안은 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야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있기도 했고.”

“물어본다? 무엇을?”

사도명이 오른손을 뻗었다.

은교교는 자신의 몸이 부드러운 기운에 감싸여 사도명의 옆으로 이동함을 느꼈다.

“아!”

“나는 아무래도 이 여자와 아주 오래 함께 지낼 것 같소.”

설청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딸과 오래 지낼 것이니, 너를 살려 달라?”

“그것 말고.”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은교교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당신도 나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픈 생각이 있소?”

“고백인가요?”

은교교가 곧바로 묻자, 사도명은 다시 한번 웃었다.

“그렇긴 한데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진 않지요?”

“어울리진 않지만 드긴 좋네요.”

사도명은 다시 고개를 설청산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

“이제 묻겠소. 내가 귀하의 딸과 사귀고 후손을 가지면….”

“!”

“그 후손이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오? 그들이 설청산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기 원하오?”

설청산은 미간을 찡그렸다.

“무림맹의 안에도, 천하 각파의 안에도, 오대마문의 사람이 없는 곳이 없다. 나는 이미 말했다. 천라대제가 살아와도 세상은 돌이킬 방법이 없다고.. 그런데 그 따위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사도명은 떨리는 은교교의 손을 잡아주면서, 소빙유를 보았다.

“같은 것을 묻겠습니다. 당신 제자의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 살기를 원합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후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소빙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서른두 명 중에서, 무령마와 풍마가 죽고 서른 명이 남았다.

무림칠마에 속하는 자들.

칠마의 제자, 혹은 동료들.

그들은 무림맹 원로들을 해치고 얼굴을 훔쳐 본래의 신분을 숨긴 채로 살았었다.

칠마가 해친 원로 중에는, 소빙유와 친한 이도 있었다.

‘후손들이 어떤 곳에서 살기 바라냐고? 나와 설청산이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냐고?’

화염왕 소빙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아 버렸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지 않는 것을 대답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 와중에 법허는 귓속에서 울리는 흑견의 전음을 들었다.

[진법을 완성시켰습니다. 부맹주님과 원로회주께서 시간을 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흑견의 전음은 딱딱했고 무겁기 그지 없었다.

[어둠의 그림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임무란 것은?]

[모두 물러나십시오. 장내는 위험해 질 것입니다.

[아, 아미타불. 전달하겠네. 하지만 나는 남을 생각이네.]

파천도제 호불군은 장막의 수호자들인 흑영을 무림맹에 남겼다.

그가 예상했던 최악은 무림맹의 내부 붕괴였었다.

<파멸의 새가 동시에 허공을 날면, 그건 아수라혈교가 완벽한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그때 흑영이 할 수 있는 일은….>

법허는 주변에 전음을 보냈다.

전음을 받은 이들이 다시 전음을 전달하면서, 밖으로 달아나라는 명령을 확산시켰다.

법허는 흑영이 실행하려는 마지막 수단이 무엇인지를 짐작안다.

무림맹주가 오대마문의 손에 넘어갔을 경우를 대비한 계획은, 끔찍한 희생을 볼모로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물러나면, 부맹주? 수라겁황이 된 설청산을 대체 누가 막아냅니까?]

구양걸이 전음으로 법허에게 물었다. 법허는 한숨보다 더 깊이 탄식하며 대답했다.

[어둠의 그림자. 그들의 마지막 임무일세. 동귀어진. 무림맹은 붕괴하지만, 아미타불. 무림은 살아남을 것이오.]

법허는 움직이지 않았다.

구양걸이 원로들과 함께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법허는 그가 무너진 무림맹을 재건해 주기를 바랐다.

부맹주인 자신은 장내에 남아야 했다. 그것이 흑견과 어둠의 그림자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였다.

흑견은 자신의 몸속에 숨겨진 폭약을 점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했다.

태어나보니 혼자였다.

무림맹이 거두어주지 않았더라면, 쓰레기통이나 뒤지다가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무림맹 안에서는 궂은 일만 하면서 살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신이 무림맹 최후의 지킴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피곤한 삶이었다. 하지만 최후는 그다지 나쁘지 않겠어.’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니고 가는 명예는 스스로 영광스러울 것이다.

[모두들 준비됐지?]

어둠의 그림자.

무림맹 장막의 수호자들 모두에게 전음을 전달하면서, 흑견은 마지막으로 수앵을 보았다.

동료로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여인!

눈이 마주치자 수앵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흑견도 따라서 웃어 주었다.

‘내가 남들처럼 편안한 삶을 살며 수앵을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이 여자에게 청혼을 했을 거야.’

몸속 화약은 흑견의 것이 가장 먼저 터진다.

뒤이어 수앵의 화약이 터질 것이며, 그것이 신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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