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32화 (32/168)

032화. 멸망의 새가 높이 날다

“아미타불. 견디기 힘든 사람들을 모두 내 뒤로 서라.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저러한 싸움은 보는 것만으로 깨닫는 바가 더 없이 큰 법이다.”

법허의 양손에 장엄한 금빛 서기가 어렸다.

불광도도의 공력이 넓게 퍼지면서 방어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공을 되찾으신 겁니까?”

구양걸이 다가오면서 묻자, 법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찾았소!”

“잘 됐습니다. 저도 힘을 보태어 돕겠습니다.”

구양결도 두 주먹의 권강을 넓게 펴서 권막을 만들었다.

밀려나오는 강기의 파편을 막아내면서, 그도 법허의 옆에 섰다.

“원로 분들도 도우시오. 한편으로 맹의 제자들을 보호하면서, 스스로도 보호하시오.”

주변에는 종심기가 이끌고 온 경비대가 있었다.

그들은 본래 총의전 주변을 경계하러 왔었는데,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원로들로부터 보호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무사들은 빠르게 법허와 구양걸의 뒤쪽으로 섰다.

초일류 고수의 싸움을 보는 일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한 부딪침에서 떨어져 나오는 작은 강기의 파편조차, 일반의 무공을 지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보아야 한다. 하늘 밖의 싸움을 지켜볼 기회를, 무사라면 놓쳐선 안 돼.”

무사가 되어 검을 드는 자는, 모두가 강해지는 것을 바란다.

하늘 밖의 무공을 보는 일은 목숨을 던질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무사들이 움직여서 비어버린 경계망의 빈틈을, 어디선가 나타는 이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이마에 검은 색의 띠를 둘렀다.

그 띠에 하얀 색으로 쓰인 두 개의 글자가 선명했다.

<黑影>

검은 그림자, 흑영!

2대 맹주인 파천도제 호불군이 무림맹의 위기를 대비해 안배해 놓았다는 비밀의 세력!

장막 뒤의 수호자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두 번째의 특별순찰인 흑견이었다.

“이건 정말 최악이네요.”

수앵이 흑견의 바로 옆에 서서 투덜거렸다.

“파천도제는 오대마문이 무림맹을 무너뜨리려 획책할 위험을 아흔아홉 가지로 분류하여 예측하셨어요. 그런데 오늘 벌어진 일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에요.”

“그래. 내부에서의 파괴.”

흑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불광도도의 공력으로 무사들을 보호하고 있는 법허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법허가 흑견을 한 차례 보며 전음으로 답했다.

[맹도들의 보호는 원로회가 맡겠네. 흑영의 전사들은 일반의 무사들을 대신해 포위망을 펼쳐 주시게. 화염왕의 뒤에 선 원로들은 맹의 배신자네. 절대 이곳을 벗어나게 두면 아니 되네.]

[그리 하지요.]

[아미타불. 어둠에 숨어 빛이 밝도록 만들어준 자네들! 내, 약속함세. 모든 상황이 끝나면, 절대로 어둠의 그림자가 쌓은 공로를 잊지 않을 것이네.]

콰콰- 콰콰쾅!

허공에서는 사도명과 설청산이 두 번째 격돌에 돌입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기원하라. 저 싸움에서 태자가 이겨내지 못한다면, 선대들께서 아무리 안배를 남기셨다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니.”

꽈르르- 르르릉!

폭음은 부딪침의 과정 안에서도 더욱 커져 나갔다.

하나로 들리지만 사실은 이어지는 수많은 폭발의 연속!

찰나의 순간에, 사도명과 설청산의 손은 수십, 아니 수백 개로 갈라져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제법 강하구나.”

설청산이 손을 휘저었다.

첫 번째 부딪칠 때 먼저 공격을 먼저 시작한 사람은 설청산이었다.

곤륜파 출신이면서도,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무공은 곤륜파의 것이 아니었다.

진녹색의 독!

독혈당의 앙천독강은 독을 강기로 만들 수 있는 무공이다.

설청산은 수천 개의 독강을 연달아 쏟아내며 싸움을 열었다.

그의 독강은 환(丸)의 형태로, 작지만 단단하고 매우 강했다.

사도명은 그 독환들을 와의 구결을 이용해 되돌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출로 쏟아낸 심검을 이용해서 모든 독환을 허공에서 폭발시켰다.

그대로 흩어지면 무고한 무사들이 중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첫 번째 부딪쳤던 폭발음에 숨겨진 내용이었다.

두 번의 공격과 방어는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벌어졌다.

사도명과 설청산의 움직임이 느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번의 공격과 방어가 일어나기 전에, 두 사람은 수백, 수천 차례의 공격과 방어를 마음속으로 펼쳐 냈고 있었다.

실제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은 그와 같은 마음속 공격에서 실낱같은 빈틈을 찾아냈을 때!

“이번에도 견뎌 내자 보자!”

두 번째의 공격도 설청산이 먼저 그 문을 열었다.

그는 혈운곡의 파멸혈강과 지옥마정의 마혼장을 한 번에 쏟아내어 사도명에게 퍼부었다.

“견뎌낼 필요가 있겠소? 나는 그저 돌려줄 뿐.”

사도명은 역을 이용해서 설청산의 공격을 반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역에 더하여 파천삼로 중의 첫 번째 길인 무영섬도 함께 전개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

꽈드드드드드드등!

다시 일 초에 수백 번의 부딪침.

그야말로 연환의 대격돌은 사람들이 눈을 깜빡일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두 번째 공방마저 동수를 이루자 설청산이 껄껄 웃었다.

“푸하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시작해 보라. 가진 재주를 모두 꺼내 놓아야 할 것이다.”

무황이라 불리는 무인이며 오대마문의 공동 후계자!

설청산 주변 다섯 갈래 기운은,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그에게는 오대마문의 다섯 마공이 모두 존재한다.

다섯 마공은 모두 하나의 문파, 즉 아수라혈교에서 유래되었다.

때문에 각각의 무공 사이에는 일종의 상보작용이 존재한다.

오행처럼 한 마공의 쓰임새가 다른 마공의 힘을 돋우는 도리!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보통의 경우는 둘이 되지만, 오대마공의 경우에는 넷의 힘이 발현한다.

거기에 다른 하나를 더하면 이번에는 여덟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공층층이란 것.”

설청산의 몸을 휘감으면서, 미증유의 거력이 일어났다.

다섯 마공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더욱 강해지는 원리.

설청산의 몸속 다섯 기운은 그렇게 하나로 합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혼자는 감당할 수 없소.”

법허가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물러나시오, 태자. 차후를 도모합시다.”

“걱정이 고맙긴 한데….”

사도명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청옥소검을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지금 물러나면, 영원히 물러날 수밖에 없을 듯해서…!”

사도명은 가슴께에 들고 있는 청옥소검에 자신의 모든 내공을 불어 넣었다.

우우- 우우우우웅!

청옥소검이 검명을 터뜨리며, 빛을 발했다.

“세상에서 하나의 일이 무조건 이득만 되는 법은 없잖습니까? 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지요.”

음이 있으면 양이 존재한다.

득(得)이 있으면 당연히 부(負)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서로 다른 것이 합하여지고 있다면, 빈틈은 경계에 존재할 터.”

사도명은 당연한 도리를 말하며, 청옥소검을 힘껏 휘둘렀다.

청옥소검은 자청쌍검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성검문의 주인이었던 검성 설운경의 손에 들려서, 수라겁황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신병!

“소멸하라. 천극멸!”

사도명의 몸을 휘감았던 기운이, 청옥소검으로 스며들어가더니 이윽고 폭발했다.

콰아아아아-!

파천삼로의 두 번째 길이 다시 한번 펼쳐지며 오대마공이 뭉치고 있는 틈새를 노렸다.

설청산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검공은… 분명….”

설청산의 양손이 가지런히 앞으로 모이며 날아오는 청옥소검을 두 손으로 막았다.

거대한 검의 환영과 거대한 손의 환영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터져나간 굉음과 충격파가 주변의 공간을 찢고, 사람들의 귀마저 찢어냈다.

거대한 검은 설청산의 양손을 조각조각으로 찢었다.

하지만 찢겨나간 손의 환영 뒤에는 보다 작은 손의 환영이 기다리더니, 검의 환영을 박살냈다.

검의 뒤에도 다른 검이 있었다.

손과 검은 상대를 계속 찢었고, 그렇게 찢을 때마자 작아졌다.

설청산은 계속 청옥소검을 막아내면서 소리쳤다.

“이 검공이 무엇인지 안다. 이것은 분명히 검성의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검공이니, 모습이 우연히 닮았을 뿐이겠지.”

우우- 우우웅!

마침내 검이 멈췄다.

청옥소검은 설청산의 가슴 바로 앞에서, 설청산의 양손에 붙잡힌 채로 가늘게 몸을 떨었다.

한 올의 차이였다.

청옥소검은 설청산의 몸 한 올 앞에서 멈추었다.

한 올만 더 전진했어도, 청옥소검이 오대마공의 방어막을 뚫어냈을 것이었다.

다섯 마공의 다섯 색깔 강기들은, 한 차례 약해지나 싶더니 이내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청옥소검의 울음은 천천히 잦아들더니 사라졌다.

“당해낼 수 없나? 합일하는 빈틈을 노렸건만, 그래도 소용없었나?”

사도명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세 번째의 길의 뒤, 그 길을 찾기 전에는 … 큭!”

왈칵.

사도명의 입술 사이를 뚫고 핏물이 흘러나왔다.

피는 검게 죽어 있어 내상이 심각함을 알려 주었다.

설청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설운경의 검공을 기억한다. 검성의 우주오검이 분명히 너의 검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청옥소검은 끝내 토해내던 푸른 빛마저 상실했다.

설청산은 아무런 특색조차 없는 작은 검으로 변한 청옥소검을 사도명의 발아래에 던졌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끝이다.”

설청산의 몸이 부풀었다.

오대마공의 강력한 힘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것이다.

법허가 신음했다.

“서, 설마 수라강림?”

오대마공이 하나로 합해지면, 아수라혈교의 절대자였던 수라겁황이 탄생한다.

설청산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수라겁황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인 것이다.

“아무도 돌이킬 수 없다.”

설청산의 눈이 하늘을 향했다.

멀리 보이는 하늘, 그곳에 무수한 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심기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와 법허의 귀에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고, 곤륜파가?”

가뜩이나 혈색이 사라졌던 법허의 얼굴은 이제 숫제 푸른빛으로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무림맹의 모든 지부가 오대마문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설청산이 뿜어내는 기운은 점점 강해졌다.

“파천도제가 예언을 남겼지. 멸망의 새가 하늘 높이 나는 날, 무림이 사라질 것이다.”

멸망의 새는 위기에 처한 무림 각파가 날리는 전서구를 뜻한다.

그리고 오늘, 무림맹은 내부로부터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설청산은 품에서 천라옥벽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옥벽의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천라대제가 살아서 돌아와도 지금의 대세를 돌이킬 수는 없다고.”

사도명은 이미 그와 같은 표현을 여러 번 들었다.

알고 보니, 모두 설청산으로부터 비롯된 말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절대란 없소.”

설청산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와 같은 상황이 되고도, 그와 같은 말을 하느냐?”

그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옥벽 바깥의 특정한 부분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린 그의 손에 반응해, 천라옥벽이 소리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옥벽의 여섯 면 모두에 작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하얀 액체가 모든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백옥유액!”

은교교가 신음처럼 그 액체의 이름을 외쳤다.

설청산은 웃었다.

“하하하. 딸아. 고맙게 마시마.”

사도명은 설청산과의 일전에서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설청산이라고 해서 무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도명이 전개한 천극멸은, 설청산이 검성의 우주오검이라 판단한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설청산 역시 어느 정도의 내상을 입는 것이 당연했다.

백옥유액은 천지의 정기를 품은 액체다.

설청산의 내상을 치료하기에 충분한 공력을 품고 있었다.

“마침내 완성이다.”

설청산의 온 몸을 휘감은 다섯 마공의 기운이 온전한 하나로 변화해 꿈틀거렸다.

“나는, 수라겁황이 된다.”

“아아!”

은교교는 털썩 주저앉았다.

무림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천라옥벽을 구해 왔다.

그 일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 천라옥벽에 들어 있던 백옥유액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 설청산은 완전한 겁황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은교교는 어머니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어머니는 사람을 잘못 보셨어요.’

세상의 멸망이 위대한 일이 될 수는 없다.

은교교는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아직도 흐르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설청산은 천라대제가 살아서 돌아와도 돌이킬 수 없다고 줄곧 말하오. 당신 생각은 어떻소?]

뜻밖의 질문에 은교교는 미간을 찌푸렸다.

[뭘… 묻는 거죠?]

[그의 말을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로 천라대제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이곳의 상황은 모조리 정리될 것이라는 의미로.]

[하지만…}

은교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천라대제는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은교교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사도명은 지금까지 쓸 데 없는 이야기를 은교교에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설마 당신은 천라대제를 살려서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건가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바로 그 말을 하고 있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