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곤륜의 하늘
검은 구름이 다가오면서 점점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처음부터 나눠져 있었건만, 혼합된 마기로 인해 하나로 보였던 것뿐이었다.
갈라진 검은 구름은 모두 아홉 줄기였다.
아홉개의 붉은 색 흐름이 각각의 구름에서 뻗어 나왔다.
“지옥혈시(地獄血矢)?!”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본 운진자가 소리쳤다.
삼백여 장 밖에서도 목표물을 명중시킨다는 화살이었다.
운진자는 양손 가득히 공력을 끌어올리면서 몸을 띄웠다.
“내가 막으마.”
붉은 색의 정체는 이었다.
생명 있는 존재를 피고름으로 녹아내리도록 만드는 혈섬독!
혈섬초에서 추출된 독은, 호흡에 따라 독성이 주변으로 퍼지기에 방비하기가 어려웠다.
칠백 년 전, 성검문이 수라겁황을 없애려 아수라혈교를 공격했을 때, 본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백이십 명의 제자를 잃은 것이 바로 이 지옥혈시 때문이었다.
허공으로 몸을 띄운 운진자의 양손에서 운룡대구식 중의 일초인 신룡광휘가 솟았다.
장심에서 솟아난 두 줄기 빛.
신룡광휘는 공격과 방어를 하나의 초식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운진자의 빛이 지옥혈시를 사방으로 흩어 놓았다.
흩어진 지옥혈시가 폭발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붉은 연기가 솟아 오르자, 운진자가 소리쳤다.
“칠백 년은 긴 시간! 중원 무림이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당문의 피독환을 복용하라.”
사천의 당가가 만든 피독환은 오대마문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약이다.
당문은 2대 무림맹주였던 호불군의 지시에 따라 연구에 들어가, 피독환을 20년 만에 완성시켰다.
곤륜파의 제자들은 서둘러 피독환을 꺼내 삼키기 시작했다.
운송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곤륜파 제자들을 보다가, 아직 운진자가 약을 먹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사형은 왜 해독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소?”
운진자는 신룡광휘를 방패의 형태로 만들어 퍼져나가는 혈섬독의 안개를 흩어놓으면서 외쳤다.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서 먹을 수가 없군.”
“무엇이 마음에 걸리오?”
“자네가 너무 오래 곤륜에 숨어 있었으니까.”
혈섬독의 안개가 마침내 곤륜파 제자들을 덮쳤다.
“크으! 이럴 리가.”
“해, 해독약을 복용했는데!”
곤륜파 무사들이 하나둘씩 목을 잡고 쓰러졌다.
“아아!”
운진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길한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참담했다.
“피독환에마저 손을 댔구나.”
“화내지 마시오, 운진 사형.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
운송자는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아홉 명의 마인을 보았다.
“구대마령의 손에 죽을 바에는, 혈섬독에 당해 죽는 편이 제자들에게도 편안할 겁니다.”
“이 배신자야-!”
운진자가 고함을 지르며 운송자를 향해 노룡표호를 내쏘았다.
운송자 역시 똑같은 노룡표호를 펼쳐내면서 웃었다.
“하하하. 해독약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 번 봅시다.”
콰- 콰쾅!
똑같은 운룡대구식이 충돌했다.
강기의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운송자는 세 걸음 물러났고, 운진자는 미간을 찡그린 채 한 걸음만을 물러났다.
우열은 명확했다.
하지만 혈섬독의 붉은 안개는 계속 운진자의 몸을 침범하려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보자.”
운진자가 둥실 떠올랐다.
그의 양손에서 회룡연환의 초식이 연달아 쏟아지면서, 운송자의 온몸을 다시 노렸다.
꾸워-엉!
연이어 쏟아지는 장력에서 들려오는 용의 울음소리!
그것은 운진자의 운룡대구식이 이미 십성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음을 의미했다.
운송자는 노룡표호를 연달아 세 번이나 펼치는 것으로 회룡연환에 대항했다.
퍼퍼퍼-퍼퍼펑!
“강하군. 사형답소.”
운송자는 연달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운진자도 결코 유리한 위치는 아니었다.
싸우는 한편으로 호신강기를 펼쳐 독을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와 싸울 수 있을까? 호신강기를 유지하면서도 계속 이처럼 싸울 수 있을까?”
“어떠한 경우라도 최선을 다하란 것이 사부의 가르침.”
운진자는 전혀 물러날 기색 없이 운송자를 몰아붙였다.
“자네가 혈섬독에 중독되지 않은 것은 품속에 해독약이 있다는 의미. 최선을 다해 그것을 구한다면, 제자들도 구할 수 있을 터.”
“하하하. 영리하시구려.”
운송자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사형이 불리한 것은 혈섬독뿐만이 아니지.”
운송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운진자의 측면을 노리며 섬뜩한 기운이 날아왔다.
마혼장이었다.
“무량수불!”
운진자는 즉시 운송자를 향하던 힘을 거둬, 옆쪽으로 돌렸다.
“물러나라.”
운룡대구식의 여덟 번째 초식인 군룡나무가 극성까지 펼치면서, 날아드는 힘에 맞섰다.
콰콰콰- 콰쾅!
“캬캿. 제법이구나!”
가슴에 아홉 구(九)자를 새기고 있는 검은 그림자.
그는 운진자가 자신의 마혼장을 막아내자, 괴상한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운룡대구식은 이미 분석이 끝난 지가 오래!”
그가 양손으로 원을 그렸다.
커다란 검은 색의 원이 허공에 나타나, 운진자가 내쏜 군룡난무의 힘을 받아 삼켰다.
후우-우웅!
요란한 폭음은 울리지 않았다.
운진자는 자신의 힘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침음했다.
“흐, 흡정북명이냐? 큭!”
괴인의 힘은 운진자의 호신강기마저 흩어놓았다.
운진자는 호신강기의 벽이 깨진 틈 사이로 스며들어온 혈섬독이 온몸을 빠르게 침습함을 느끼고 신음했다.
운송자가 가슴에 구(九) 자를 새긴 마인을 향해 포권했다.
“마정의 제자가 삼가, 구호마령께 문후 여쭙니다.”
“곤륜을 제압하라.”
“존명.”
다른 여덟 명의 마령들도 장내에 속속 내려섰다.
모두가 강하고 무서운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중독되어 쓰러진 곤륜의 제자들이 그들을 당해낼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운송자가 운진자를 보았다.
“곤륜이 이길 방법은 없소, 운진사형. 게다가 사형마저 중독이 되어버렸지 않소?”
운송자의 오른손이 운벽자의 머리를 겨누었다.
“항복하시오. 아니면 내 손에 머리가 터져 죽게 될 거요.”
“무량수부-울!”
하늘과 땅을 모두 뒤흔드는 불호성이 장내를 휘감으며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꾸워- 어어엉!
용이 크게 울었다.
거대한 용 아홉 마리가, 하늘이 떠나가도록 울면서 곤륜의 담장을 넘어서 날아왔다.
운송자는 날아오는 용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구, 구룡강림!”
운룡대구식의 마지막 초식!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과 땅을 모두 허문다는 절초!
구룡강림은 익히기가 매우 까다로워, 유구한 전통의 곤륜파에서조차 익혀낸 이가 별로 없었다.
그것이 강호의 사람들 대부분이 운룡대구식을 운룡대팔식이라 착각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운송자는 누가 나타났는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장문 사형! 설마 폐관을 깨고 출관하신 게요?”
아홉 마리의 용이 날았다.
그들은 각각 구대마령의 몸을 정면에서 노렸다.
구대마령에게서 가공할 마기가 일어나 울어대는 용에 맞섰다.
쿠쿠쿠쿠콰콰콰쾅!
곤륜산 허공에 한 사람이 둥실 떠오른 채 나타났다.
“무량수불. 운송 사제. 그대는 사부와 윗대의 선열들을 어찌 보려고 이와 같이 하시는고?”
곤륜의 당대 장문인 운학자!
그가 떠오르고 나자, 곤륜파의 높은 담장에 달린 문들이 여기저기서 열렸다.
그 문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무량수불!”
“곤륜의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물들게 두지 않는다.”
“일신의 청정이 깨어지더라도, 무량수불! 곤륜의 푸른 하늘이 영원하도록 지키리라.”
열린 문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몸에서는 한결같이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기고 있었다.
운송자는 속속 출현하는 고수들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조사동을 여신 게요?”
은퇴한 곤륜파의 노고수들.
그들이 수련의 맹서를 깨고, 강호로 돌아온 것이었다.
“조화인의 전갈이 있었네.”
운학자는 자신의 구룡강림을 모두 막아낸 아홉 명의 마령(魔靈)들을 각각 둘러보았다.
“구대마정이 열릴 거라더군.”
운송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조화인(造化人)은 백도의 오랜 전설이었다.
어딘가에 숨어 천하 백도를 살피다가, 백도가 멸망의 위험에 처하면 모습을 드러낸다 했었다.
“조화인의 전설이 거짓이 아니었단 말이오?”
“아수라혈교의 전설이 거짓이 아닌데, 조화인의 전설은 어찌하여 거짓이라 생각하는가?”
운송자는 운학자를 보고, 시선을 돌려 구대마령들을 보았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포기하시오.”
운송자의 오른손이 여전히 운진자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혈섬독에 완전히 중독된 운진자에게는 운송자의 공격을 피할 힘이 없었다.
“되돌릴 방법은 없소. 조사동을 열었다 해도, 구대마령님들을 당해낼 수는 없소.”
구대마정의 아홉 마령들이 조사동에서 나온 곤륜파 전대 고수들과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누가 보아도 마령들의 우세가 역력했다.
운학자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무량수불. 곤륜이 구대마정에게 질 것이라 보는가?”
“구대마정만이 아니니까!”
운송자는 왠지 모르게 화난 얼굴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오대마문이 모두 열렸소. 아수라혈교은 재현되고, 수라겁황이 다시 재림하실 것이오.”
“무량수불. 대겁난이 다시 한번 시작된다는 뜻인가?”
“대세는 정해졌소. 돌이킬 방법은 없소. 장문 사형이 저항을 계속했기에, 이제 운진 사형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외다.”
운송자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가 내려쳤다.
그의 손아래에서 운진자가 눈을 부릅 떴다.
**
번쩍!
탁호천이 마침내 운기조식으로부터 벗어나 눈을 떴다.
계속 옆을 지키면서 서 있던 철대평이 반색했다.
“괜찮은가?”
탁호천은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철대평은 그의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그는 무림맹을 배신했다.
탁호천은 철대평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철대평이 탁호천을 지켜준 행동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흑귀의 금제 때문이다.
죽음을 개의치 않는 우정.
탁호천이 한숨처럼 말했다.
“형님이 돌아가셨네.”
“아!”
“제5 동심결주의 짓이네.”
탁호천은 허공에 떠 있는 허공에 떠 있는 사도명과 설청산을 함께 보았다.
“설청산은 내 형님을 두 번이나 죽인 셈일세.”
한 번은 배신으로! 다른 한 번의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설청산이 떠 있는 허공 아래에, 소빙유가 서 있었다.
탁호강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많인 그녀를 사랑했었다.
“형님은 왜 자신의 목숨마저 바쳐 저 여자를 구했을까? 그럴 가치가 있었단 말인가?”
탁호강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소빙유는 끝내 설청산을 택했다.
철대평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제 더 이상 화염왕을 사랑하지 않는 겐가?”
탁호천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스러울 뿐일세.”
“아!”
“나 또한 흑귀의 금제에 걸려 있네. 태자가 설청산을 이기지 못 하면 우린 한 줌 피고름이 되겠지?”
철대평이 빙그레 웃었다.
“지옥까지 함께 가겠군. 저 세상에서의 자네 배필은, 하하 내가 제대로된 사람으로 골라주겠네.”
탁호천도 따라 웃엇다.
“돌이켜보니 많은 실수를 범하면서 살았군. 하지만 자네를 만난 것만은 행운이었어.”
그 순간, 마침내 하늘에서 사도명과 설청산이 서로 부딪쳤다.
콰드드드드드드-!
하늘이 뒤집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폭음!
찢겨 나온 강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