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27화 (27/168)

027화. 동심결주 등장

두 사람이 죽었다.

당익호의 죽음은 단지 참혹했을 뿐이었지만, 장무정의 죽음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참혹했지만, 더 없이 슬펐고 또한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법허의 절대독고를 자신이 빼앗았다.

그리고 일부러 흑귀의 금제를 발동시켜 스스로의 생을 마쳤다.

장무정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졌다.

그의 시체에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벌레들이 수없이 쏟아졌다.

벌레는 공기에 노출되자 이내 녹아서 사라졌다.

독혈당의 절대독고!

모든 독을 지닌 고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벌레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절대라는 이름을 갖게 된 마물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람의 몸을 벗어나 빛에 노출되자,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종류의 사악함이 저런 것인지 모르겠네요.”

소빙유 옆으로 돌아온 은교교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부가 무림맹을 배신한 이유도, 저렇게 드러나면 녹아 없어지는 종류가 아닐까요?”

소빙유는 여전히 설청산만 보고 있었다.

깊은 사랑의 갈증은 아무리 덜어내도 목이 마른 법이다.

“그런 걸까? 정말로 그런가?”

은교교는 소빙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가슴이 답답해서 사도명을 보아야만 풀릴 것 같았다.

사도명은 여전히 화운악의 앞에 있었다.

화운악의 오른쪽 어깨 상처는 매우 깊었으나, 치료하지 않고 단지 지혈만을 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의 오른 어깨는 영원히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도명의 요청을 받은 법허와 구양걸이 사도명의 옆으로 왔다.

“아미타불.”

법허의 불호에는 이제 조금씩 내공의 기운이 실리고 있었다.

“정말로 동심결주가 누군지를 아시는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니, 저는 확신합니다.”

“대체 누구인가?”

사도명은 법허와 구양걸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두 가지를 약속해 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가지 아니라 스무 가지라도 약속하겠네.”

“놀라시면 안 됩니다.”

“결코 놀라지 않겠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하며, 듣고 다른 이에게 표가 나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해주시겠다, 약속하면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그리 하겠네.”

법허와 구양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명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전음은 법허와 구양걸, 두 사람의 귓속에서만 울렸다.

법허와 구양걸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마, 말도 안 되는….”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사도명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냉정했다.

“아무리 믿기지 않더라도, 제 말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휴우. 사도명은 이미 알아버린 모양이구나.”

소빙유가 갑자기 입을 열자, 은교교는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

소빙유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지금까지 설청산을 바라보던 눈을 감아 버렸다.

은교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 무슨 뜻이세요?”

“들은 그대로다. 아무래도 사도명은 동심결주가 누군지를 정말 아는 모양이야.”

소빙유의 말은 은교교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그럼 사부도 알고 계셨다는 뜻이에요?”

“사도명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했다. 그러자 그제야….”

소빙유가 뒷말을 흐렸다.

“교교야. 나는 무림맹을 배신했으나, 너를 배신하진 않았다.”

“…알아요. 절 보호하시려고 천라옥벽을 찾으라며 무림에 내보내신 것도 알아요.”

“돌아오지 못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천라옥벽을 찾느라 무림맹을 떠나 있었으면, 위험이 없고 사도명도 저기에 없을 터인데.”

“돌아와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사도명과 함께 돌아왔기에, 새로운 무림태자가 탄생했어요. 맹 내의 동심결이 하나둘씩 모두 뿌리 뽑히고 있어요.”

“하지만 교교야….”

소빙유의 낯빛은 창백했고, 석고처럼 딱딱했다.

“진실의 무게는 무겁다. 사람이 쓰러지는 건 거짓보다는 대부분 진실 때문이란다.”

“사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저는 지금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그러니 어쩌겠니? 참담한 진실이 그 끔찍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면, 그때도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니?”

은교교는 미간을 찡그렸다.

소빙유는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은교교는 결국 양 주먹을 힘껏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사부. 아무리 무서운 진실이 세상에 존재해도,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겁니다.”

은교교는 진심으로 말했다.

**

법허와 구양걸의 표정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사도명은 청옥소검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환우 구대 기보에 대해서, 모두 아실 겁니다.”

그는 법허와 구양걸을 번갈아 보았다.

“천라옥벽과 청옥소검도 구대 기보에 속하죠. 환우 구대 기보의 유래를, 혹시 아십니까?”

법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역사상 가장 강했던 9인을 통틀어 고금구천강이라 칭하지. 환우 구대 기보는 그들 아홉 명이 남긴 보물일세.”

“청옥소검을 남긴 사람은 검성 설운경입니다. 그분은 칠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으로 성검문을 이끌고 계셨지요.”

사도명은 청옥소검의 푸른빛 검신을 검지 끝으로 쓸어내렸다.

구양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는 청옥소검에 대해 나보다도 잘 알고 있구먼.”

“무림맹을 세우신 제1대의 무림맹주 천무제 좌능후 님은 진상품 속에서 청옥소검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고 즉시 무림태자의 신표로 삼죠. 그 이유를 혹시 알고 계십니까?”

“청옥소검의 재료가 되는 청옥에 사마의 기운을 극제하는 효험이 있기 때문 아닌가?”

구양걸이 원로회의 회주답게, 무림맹의 과거 사연들을 끄집어내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면, 사마의 무리가 무림의 태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게지.”

“두 분은 혹시 검성 설운경 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법허도 구양결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검성이 이끌던 성검문은 당대의 무림에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문파였다.

“자네는 안단 말인가?”

사도명은 법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질문했다.

“수라겁황은 아수라혈교의 교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갑자기 아수라혈교가 멸망하고, 수라겁황의 대가 끊어진 이유를, 혹시 알고 계십니까?”

법허와 구양걸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도명의 연이은 질문에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되물었다.

“아! 그 일이 검성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겐가?”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칠백여 년 전에, 검성은 천기를 읽고, 놀라 성검문의 정예를 이끌고 아수라혈교를 공격하죠.”

“아!”

“천기의 내용은 세상의 멸망! 아수라혈교의 수라겁황으로부터 비롯되는, 무림과 세상 전체의 끔찍한 최후였습니다.”

사도명은 청옥소검의 검신을 다시 쓸어 내려며 말을 이었다.

“검성은 칠주야의 싸움 끝에, 수라겁황의 가슴에 두 자루의 검을 꽂아 넣죠.”

법허와 구양걸은 사도명의 말에 숨은 의미를 단숨에 짐작했다.

“호, 혹시 그 두 자루의 검이라고 하는 것이…?”

“자청쌍검! 자색과 청색의, 두 자루가 한 쌍인 검. 네, 짐작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중의 청검이 바로 이 청옥소검입니다.”

“아아. 그랬었군. 알고 보니 우리 무림맹 태자의 신표는 바로 수라겁황의 심장을 관통했던 영검이었던 것이군.”

“하지만 검성도 그 싸움에서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도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라겁황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을 극복 못하고, 검성도 결국 일 년 후에 숨을 거둡니다.”

구양걸이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의 아무도 모르는 숨은 이야기를 자네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

“숨을 거두기 전, 검성은 자신이 본 천기를 제자들에게 일러줍니다. 그리고 멸망의 날에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마을을 하나 만들라고 유언하죠.”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그 마을에, 저의 가장 친한 친구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을이 어떤 곳인지, 친구가 누구인지, 은교교는 알고 있었다.

세상의 누구도 모르는 사도명의 주변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자, 은교교는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져서 미소를 지었다.

법허가 물었다.

“그렇게 검성에 의해 아수라혈교가 멸망한 후, 살아남은 자들이 오대 마문을 세웠던 것인가?”

“그렇습니다.”

법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긴 얘기를 잘 들었네만, 그러나 나는 자네가 왜 하필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구먼.”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명이 청옥소검을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고 화운악을 보자, 화운악이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뻔하지. 사실은 나의 다섯 사부가 누군지를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해 놓았으니 말이 막혀서가 아니겠소?”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너에게도 알려줄까?”

사도명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전음으로 화운악의 귓속에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화운악이 눈을 부릅떴다.

“거짓말!”

사도명이 되물었다.

“왜 거짓말이라 생각하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 것 아니냐? 어떻게 그가 동심결주일 수 있단 말이냐?”

“그 얘기는 그만. 이것으로 그는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야.”

“알아들었다? 대체 누가?”

사도명은 청옥소검에 내공을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당연히 동심결주지.”

“대체 뭘 알아들었단 거냐?”

“청옥소검의 정체는 수라겁황의 천마불사지체를 뚫었던 신병! 그러니 동심결주도 죽일 수 있지!”

화운악이 미간을 찡그렸다.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우우우우웅!

청옥소검이 울기 시작했다.

화운악의 손에 잡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웅장하면서도 기게 넘치는 울음이었다.

사도명이 검에 내공을 주입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검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동심결주!”

사도명이 호흡을 크게 마셨다.

“이미 경고했다. 피하지 못하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꾸워우-우웅!

청옥소검은 용처럼 울면서 허공에 저 혼자 몸을 띄웠다.

느릿하게!

그러더니 조금씩 흔들렸다.

마침내 청옥소검은 폭발하는 굉음을 울리며 허공의 한 점을 향해 내달렸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청옥소검이 노리는 선의 끝에 동심결주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자가 폭발했다.

청옥소검은 의자를 부수고도 곧장 날아가 건너편 벽에 박혔다.

둘로 잘린 백옥소검 사이에서 청옥소검이 흔들렷다.

파공음은 들리지 않았다.

콰-아앙!

뒤늦게 들린 것은 의자가 부서지는 폭발음뿐이었다.

흐름에 순응하거나 혹은 거스르는 창천사해 중의 출!

청옥소검에 실린 내공은 막강했으나, 소음을 만들지는 않았다.

청옥소검은 빨랐지만, 목표했던 사람을 관통하지 못하였다.

그 사람은 본래 움직일 수 없어서, 무조건 검에 격중당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되자,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은 움직였다.

검은 빈 의자만 갈랐다.

모든 원로들의 시선이, 오직 그 한 사람을 향했다.

법허와 구양걸은 숫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서, 설마 했는데… 으으.”

화운악마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빙유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자신이 줄곧 바라보던 의자가 반으로 부서졌건만, 그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아아!”

은교교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생각해보니 증거는 많았다.

그는 모든 일의 중심에 있었다.

풍마 장척기는 설청산이 무림태자일 때 추살했다는 마두였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다.

대체 누가 나서야 무림맹 원로회의 원로 절반을 포섭할까?

은교교는 마침내 전후의 사정으로 깨닫고 소빙유를 보았다.

“이제 알겠네요. 사부가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소빙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몰랐다. 차츰 알게 됐지만, 모른 체 할 수밖에 없었지.”

연무실에서, 소빙유는 동심결주의 손을 오래 잡고 있었다.

“아아. 나는 정말 바보군요.”

은교교가 힘없이 말했다.

“왜 바보란 말이냐?”

“아무리 복수를 위해서라 해도, 사부는 외간 남자의 손을 오래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 손을 잡고, 그 순간에 확신했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나는 언제든 알아볼 수 있다.”

“증거가 정말 많았는데도, 몰라봤어요. 무림맹주 설청산이 동심결주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돌이켜 보니 너무나 많았다고요.”

달빛이 교교했다.

사도명은 은교교에게 한 가지의 약속을 했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에서, 동심결의 모든 것을 뿌리 뽑겠노라고!

하지만 지금 은교교는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은교교의 부모는 달빛 아래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은교교를 낳았다.

달빛 교교하던 그 밤, 남녀는 사랑과 눈물로 서로를 보았었다.

그들 중의 남자가 지금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며 떠 있는 것이다.

은교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그의 호칭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나직이 외웠다.

‘아버지!’

불러보지 못한 호칭이었다.

그리고 또한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