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25화 (25/168)

025화. 두 번째의 비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도명의 말은 단호했다.

놀란 매희구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혹시 이 자리에 있소? 우리들 사이에 있냔 말이오?”

“그렇습니다.”

화운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짓말! 나조차 다섯 사부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데 네가 어찌 안단 말이냐?”

“사실은 매우 쉬운 문제야.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할 뿐이지.”

“헛소리 치워.”

화운악이 소리쳤다.

“맹주 대행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명한다. 곧 달빛이 내 발끝에 닿을 게다. 무릎을 꿇어라. 동심결주의 제자로서 명한다. 죽여라.”

“사도명을 공격하는 자는 당연히 배신자일 터.”

법허도 놀라서 소리쳤다.

“낙수의 맹세를 지키는 이들은 먼저 움직이는 자의 목을 베라.”

부맹주의 명령과 청옥소검의 명령이 부딪쳤다.

화운악이 다시 한번 외쳤다.

“부맹주가 청옥소검의 권위에 불복하고 있다. 부맹주를 체포하여, 규율을 세우라.”

구양걸이 식은땀을 닦으며 법허를 보았다.

“자, 잘못된 규정도 규정이요. 계속 청옥소검의 명령이 이어지면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하. 하하하.”

갑자기 구양걸이 껄껄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니까.”

화운악이 사도명을 보았다.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냐? 흥. 돌아갈 길은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 동심결주의 제자로서 명한다. 내 명을 받드는 자들은 모두 사도명을….”

“그 얘기가 아냐, 멍청이!”

사도명이 한 차례 인상을 쓴 후에, 법허를 보았다.

“무림태자 임명에 대한 규율을 한 번 말해 주시겠습니까?”

“천하 비무에서 우승한 검몽은 무림태자가 된다. 우승자가 태자가 되기를 고사하면, 차점자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

법허가 자신을 보자, 화운악은 미간을 찡그렸다.

사도명이 물었다.

“그 뒤의 규율도요!”

“단, 본래의 검몽이 돌아올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를 위하여 한 차례의 재 비무를 허용한다.”

“재 비무?”

구양걸이 놀라 외쳤다.

“그런 규정이 있었소?”

원로들 모두의 시선이 사도명과 화운악 사이를 오갔다.

법허의 말은 이어졌다.

“떠났던 검몽은 돌아오고자 할 때, 반드시 재 비무를 요청하여 능력을 다시 인정받아야 한다. 우승이 아니라 준우승으로 자리를 이어받은 무림태자는 이 정당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우우우우웅!

화운악의 손에 잡힌 청옥소검이 저 혼자 울었다.

화운악은 오른손을 들어, 저 혼자 검명을 토하고 있는 청옥소검을 모두에게 보였다.

“…이건 내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 넌 천하비무에서 우승한 적이 없잖아? 우승한 내가 돌아왔다. 그러니 넌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증명해야지.”

“…….”

매희구가 걸어 나왔다.

그는 화운악의 앞으로 가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리 다오. 정식 주인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내가 보관하마.”

“…사부.”

“네 눈에 아직도 내가 사부로 보인다면, 거절이다. 화산은 오대 마문을 따르면서 낙수의 맹세를 배신한 자를 제자로 인정 않는다.”

화운악은 주변 원로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향하는 모두의 시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청옥소검을 들어 매희구의 앞으로 내밀었다.

“두렵지 않습니까? 지금 사부를 찌를 수도 있습니다.”

“찌른다면 당할 생각이다. 제자를 잘못 길러 무림을 배신하게 만든 죗값은 치러야지.”

“휴우.”

화운악은 검을 돌려, 손잡이부터 매희구에게 건넸다.

청옥소검을 받은 후, 매희구가 사도명을 보았다.

“재 비무는 이곳에서 당장 시작하는 편이 좋을 듯하오.”

“그렇게 하지요. 화운악이 동의한다면.”

화운악의 온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동의해 주마.”

처음에는 아지랑이처럼 흐릿했으나, 점점 시간이 흐르자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변했다.

그 색채 또한 아름다워 마치 자색의 안개가 화운악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하강기!”

매희구가 신음처럼 말했다.

자신의 문파인 화산파의 자랑, 자하강기가 화운악의 몸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자하강기는 화산파 3대 절기 중의 하나였다.

매화영롱검법.

칠절산수.

그리고 자하강기.

자하강기는 익히기가 무척 까다로워, 12성 대성한 사람이 백 년 내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한데 바로 지금, 화운악은 완성된 자하강기를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하늘이 너에게 재주를 주고도 그 재주를 감당할 심성은 주지 않았구나. 아아! 네가 배신하지 않았다면, 이 순간에 나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꼬?”

매희구가 몸을 떨었다.

화운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자하강기만으로는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시선과 뿜어내는 기세가 모두 사도명에게 고정되었다.

하나로 합해져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결승비무에서 화산파 무공의 모든 것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저 녀석을 당해내지 못하고 졌으니까요.”

자하강기 사이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구양걸이 신음했다.

“흑귀문의 암흑진기?”

“알아보십니까, 원로회주? 그럼 이것도 알아보시나요?”

검은 기운 틈새에서 또 다른 색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구양걸은 창백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혈운곡의 파멸혈강!”

오대 마문 중 2개 문파의 무공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두 기운은 자하강기를 좀먹고 억누르면서, 화운악의 몸 주변을 장악했다.

그 상태로, 화운악은 매희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화산을 버리고 나서야 저는 진정으로 강해졌습니다, 사부.”

매희구는 몸을 계속 떨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청옥소검을 한 차례 본 후에, 원로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화운악은 여섯 살 때, 화산의 문하로 들어왔습니다. 산골에서 태어났으나 무척 총명했고, 성정이 밝은 아이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법허에게 고정시킨 채 한숨을 쉬었다.

“휴우. 모두 제 잘못입니다. 잘못 가르쳤습니다.”

“문주의 잘못이 분명 있소.”

법허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연꽃은 자신이 몸을 담구는 흙탕물을 탓하지 않소. 결국은 스스로가 책임질 일이오.”

매희구는 한 차례 고개를 숙인 후, 화운악을 다시 보았다.

흑귀문과 혈운곡의 무공에 휩싸인 화운악의 몸이 조금씩 바닥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강해지라고 가르쳤습니다. 천하 비무에서 우승하라고.”

매희구가 청옥소검을 휘둘렀다.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제가 가르쳤지요.”

피가 튀었다.

빠르게 검을 휘둘러 스스로의 두 눈을 갈라버린 매희구는, 철철 피를 쏟아내면서 소리쳤다.

“저의 잘못을 겨우 두 눈으로 갈음코자 합니다. 동도들은 화산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피로 물든 청옥소검이 매희구의 손에서 떨어졌다.

검은 바닥에 깊이 박혔다.

“문주!”

석금보가 놀라서 달려왔다.

그는 옷을 찢어 매희구의 눈을 감쌌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매희구를 부축하여, 총의전 밖으로 데려 나갔다.

화운악은 그를 보지 않았다.

한때 자신의 사부였던 매희구가 두 눈을 잃고 피 흘리며 밖으로 나가는데도, 화운악의 시선은 오직 사도명만을 향했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결과를 보니 어떤가? 만족스러운가?”

화운악의 몸에서, 이번에는 짙은 녹색의 기운이 일어났다.

독혈당의 앙천녹강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이미 검고 붉은 기운으로 덮여 있는 화운악의 온몸을 한 번 더 감싸며 회전했다.

“그때는 졌으나 오늘은 이긴다. 저것을 정말로 내 것으로 만들어 무림맹을, 세상을 내 것으로 하겠다.”

화운악은 바닥에 홀로 꽂힌 청옥소검을 가리켰다.

사도명은 그 검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은교교가 보고 싶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은교교가 보였다.

그녀가 잡고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소빙유도 함께 보았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세상을 살아간다.

소빙유에게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었다.

비록 뒤틀린 것이었지만 소빙유는 오로지 한 길을 걸었다.

자신의 사랑을 관철하는 길!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주변이 아무리 피해를 보아도, 오직 승리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화운악!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느냐? 삶에는 승리보다 더 큰 보석들이 많지 않더냐?”

“조심해요-!”

은교교가 고함을 질렀다.

화운악이 사도명이 시선을 돌린 빈틈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다.

공간을 벌겋게 물들이며, 파멸혈강이 날아왔다.

암흑진기는 사도명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했다.

앙천녹강은 당장 움직이지 않고,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그 뒤에서 대기했다.

사도명이 움직일 때 드러날 허점을 기다리는 것이다.

파멸혈강을 피한다면, 암흑진기가 기다릴 것이다.

피하지 않고 마주쳐 반격하려 들면, 앙천녹강이 날아들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도명은 얼핏 웃었다.

은교교은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도명의 전음을 들었다.

사도명은 피하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대응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처럼, 파멸혈강의 파도 속에 맥없이 휘말렸다.

“아!”

구양걸을 비롯한 원로들 몇 명이 탄식했으나, 은교교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창천사해를 안다.

제일해 와는 하나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휘말리는 방법이었다.

또한 그 흐름을 이용해 정반대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구결이었다.

‘그러니 파멸혈강에 휩쓸렸어도 이미 반격의 기틀을 마련해 놓고 있을 거야.’

은교교는 사도명을 믿었고,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와, 출, 역, 그리고 전. 창천사해는, 다시 말하지만 무구한 세월의 흐름에 때로 맞서고 때론 순응하는 법도를 일컫소.]

아니나 다를까 사도명의 전음이, 은교교의 귀에서 다시 울렸다.

[창천문에서 내려오는 이 수법으로 나는 천하비무에서 우승했지만, 그 후로도 줄곧 궁금했소.]

“아!”

은교교가 눈을 크게 떴다.

파멸혈강에 휘말린 사도명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 광채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질문해 보았지. 순응하거나 혹은 맞서거나, 그 외의 선택은 없는가? 집중과 근원에 대한 깨달음의 심법인 창천일원은, 그렇다면 왜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처음에는 작은 점이었다.

하지만 황금빛 기운은, 나타났다 싶은 바로 다음 순간에 사도명의 온몸을 덮었다.

[나는 세 개의 답을 얻었소. 지금 그 첫 번째를 보여드리리다.]

파멸혈강의 흐름에 따라 낙엽처럼 흔들리며 움직이던 사도명이 돌연 허공에서 정지했다.

부유하던 나뭇잎이, 갑자기 단단한 뿌리를 바닥에 내린 아름드리가 된 느낌이었다.

화운악은 황금빛 서광으로 온몸이 덮인 사도명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꼈다.

“그게 무슨?”

미간을 깊이 찡그리며, 화운악은 다음 공격을 위해 예비해 두었던 힘까지 모두 끌어올렸다.

“반드시 내가 이긴다. 죽어라!”

파멸혈강, 암흑진기, 앙천녹강을 모두 동원한 힘이사도명의 온몸을 노렸다.

미증유라고 표현해야 할 거력!

그럼에도 사도명은 여전히 단단하게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

“하늘의 뜻이 세 개의 길을 여니, 이것이 파천삼로의 첫 번째! 가장 빠른 길, 무영섬!”

번쩍!

사도명의 온몸을 덮고 있던 황금빛 광채가,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 장심으로 모였다.

그러더니 폭발하듯 터지면서 직진했다.

콰우우-!

힘은 빠르게 뻗어나가면서 단숨에 화운악의 어깨를 뚫었다.

화운악의 몸을 덮고 있던 세 가지의 기운!

붉고, 검고, 진록색이던 기운들이 순간적으로 흩어졌다.

허공에 떠 있던 화운악의 몸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운악은 구멍이 뚫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보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낙수의 맹세까지 버리면서 강해졌는데도, 일초만에? 이 정도까지 차이 날 리가 없다. 절대 없어.”

“차이는 없다. 바늘 끝과 태산의 끝은 다르지 않아. 모두 하나의 점일 뿐이다.”

사도명도 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모든 것을 한 줄기에 담았고, 너는 세 갈래에 각각 나눠 담았다. 그러니 합하여진 것이 나뉜 것을 뚫은 승부였을 뿐.”

사도명은 화운악을 지나쳐 걸으며, 청옥소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화운악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밀고 온 탁호천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의 내공을 제압하고 있는 혈도를 풀어 주었다.

“아, 알고 있었소?”

화운악이 짚어두었던 혈도가 풀리자 탁호천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으면서 물었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화운악을 지키고자 남는다고 할 때, 이미 화운악의 정체를 눈치 챘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때는 때가 되지 않아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탁호천은 사도명이 들고 있는 청옥소검을 보았다.

“이것으로 지금부터는 귀하가 무림태자가 된 것인가?”

“하고 싶지 않아서 떠났던 곳입니다. 인연이 겹치고 운명이 강요하지 않았다면, 굳이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탁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욕심이 넘치는 사람과 욕심이 없는 사람이 있지. 하늘은 고집이 세지. 욕심 넘치는 사람은 쳐내고, 욕심 없는 사람을 굳이 운명 속에 넣거든.”

탁호천은 앉은 자세 그대로 가부좌하고 운기조식을 준비했다.

“다시 일을 보시게. 흑귀의 금제를 풀어, 불필요한 희생을 막는다는 약속. 부디 잊지 말기를.”

철대평이 앞으로 나와 탁호천에게로 왔다.

사도명이 자신을 보자, 철대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비록 배신자지만 의리는 있소. 탁호천 호법과는 오랜 친우이니, 운기조식동안 옆을 지키려 하오.”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른쪽 어깨가 뚫린 채 망연자실하여 서 있는 화운악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저 사람은 흑귀의 금제가 발동하면 머리가 터져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동료를 향한 우의를 잊지 않아. 강해지고 싶었다고? 저런 사람들을 속이며 강해져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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