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24화 (24/168)

024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백옥소검이 구양걸과 석금보를 동시에 휘어 감았다.

“크윽!”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아!”

원로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긴장과 두려움이 이미 모두의 마음을 점령했다.

모두가 사도명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았다.

무림사제 중의 한 명인 구양걸과 청성파의 장로 석금보!

사도명은 단지 세 번의 부딪침만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동심결에 포섭당한 자들은 자신의 배신을 들킬까 봐 두려워했다.

포섭당하지 않은 원로들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미, 믿을 수 없다. 대체 누구기에 저런 능력을…?”

무림맹의 서열 13위.

수호성의 성주인 매희구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사도명은 대꾸하지 않았고, 휘두르던 검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는 백옥소검의 회전을 직선으로 변화시켜 허공으로 날렸다.

그리고 조금 전 하다가 멈추었던 말을 다시 외쳤다.

“그러나 화운악은 아직 해야만 하는 증명을 마치지 않았잖소?”

백옥소검은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르게, 더욱 날카롭게 날아갔다.

목표는 화운악.

바닥에 쓰러진 구양걸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피하시오, 태자!”

화운악은 앉은 자세 그대로 자신의 이미 정중앙을 노리며 날아오는 백옥소검을 보았다.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번쩍!

한 줄기 푸른빛이 화운악의 바로 앞에서 일어나 날아온 백옥소검의 허리를 잘랐다.

백옥소검은 절반으로 갈린 채 계속 날아갔다.

퍼-퍽!

그 기세 그대로, 뒤편의 돌벽 두 군데에 깊이 박혔다.

화운악이 청옥소검을 손에 쥔 채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아! 무, 무공을….”

“절대독고에 중독당했던 것이 아니었던 게요, 태자?”

혼자서 일어난 화운악을 보며 경악한 원로들이 중얼거렸다.

화운악의 의자를 밀며 나타났던 탁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맹주께서 무림태자의 절대독고를 치료해주셨소. 자신의 몸으로 독을 건네받으셨소.”

화운악은 청옥소검을 자신의 머리 위로 던졌다.

내공의 조종을 받는 청옥소검이 화운악의 머리 위에 둥실 떴고, 그 자세 그대로 화운악은 법허를 향해 포권했다.

“부맹주님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화운악과 법허의 사이를, 사도명이 막아섰다.

“우선 필요한 건 검증이지.”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자아! 따라해 보시오. 수라겁황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화운악은 미간을 찡그리며 여전히 법허만을 보았다.

“저를 치료해주시고도, 굳이 자격조차 없는 백옥소검의 주인을 데려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내가 무림맹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 생각했소.”

법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더구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화운악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무엇이 아니란 말입니까, 부맹주?”

법허는 대답하지 않고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이 대신 대답했다.

“의심해 본 분들이 없습니까? 주방에서 요리하는 자가 절대독고를 다룰 수 있었을까? 맹주와 태자, 두 사람이 동시에 중독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금까지 말없이 앉아 있던 소빙유가 사도명을 향해 소리쳤다.

“가장 간단한 추론이라는 게 그것이었느냐? 너는 숫제 처음부터 화운악을 의심했던 것이냐?”

장내가 우려와 공포가 뒤섞인 무서운 침묵으로 휩싸였다.

사도명의 말은 무서운 가능성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청옥소검을 든 화운악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직 수라겁황이 악의 근원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하하하. 이렇게 되면, 난 그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요?”

화운악은 웃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했다.

계속 웃던 화운악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좋습니다. 수라겁황은….”

화운악이 돌연 사도명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파-앙!

“그 분은 하늘을 열어 다섯 성스런 문파를 열었는데, 어찌 악의 근원이라 하겠느냐?”

사도명은 직선으로 날아오는 화운악의 매화장을, 오른손으로 여러 개의 원을 만들며 흩어버렸다.

허공에서 매화장의 기운이 흩어질 때, 원로들 얼굴의 핏기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미, 믿지 못하겠다.”

매희구가 비틀거렸다.

그는 화운악이 무림태자가 되기 전에, 사부였던 사람이었다.

“내가 화운악을 아오. 정의감이 강한 아이요. 오대 마문을 그토록 증오하던 아이요.”

사도명이 매희구를 보았다.

매희구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리고서 크게 외쳤다.

“수, 수라겁황은 모든 만악의 근원이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때로 변합니다. 좋게 변하는 사람이 있고, 나쁘게 변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화운악은 이미 오대 마문을 성스러운 문파라고 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매희구가 화운악을 보았다.

“운악아! 죄를 지으면 안 된다. 정말로 죄를 지었다면 속히 그 죄에서 벗어나라.”

“하하하, 사부. 사부는 치욕을 당해본 일이 있습니까?”

화운악이 다시 웃었다.

매희구는 그의 예전 사부였다.

화산파 출신이었던 화운악은 무림태자가 된 후에 자신의 사문을 바꾸었던 것이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치욕적인 패배. 저는 치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오래 쳤습니다.”

매희구가 미간을 찡그리며 화운악과 사도명을 번갈아 보았다.

“천하비무를 말하는 게냐?”

“천하가 좁다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저 놈에게….”

화운악이 청옥소검을 들어 사도명을 가리켰다.

“패배의 굴육감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때에 동심결주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사부 말입니다.”

“아아!”

“이, 이럴 수가.”

원로들이 앞을 다투어 탄식을 뱉어냈다.

법허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동심결주의 제자인가? 아미타불. 그대는 내가 그대를 구하고자 나를 희생할 것까지도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거였나?”

화운악은 법허를 향해 다시 한번 포권하며 웃었다.

“제 예상대로 움직여 주셨으니 어찌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다섯 동심결주님의 공동 제자로서, 부맹주께 감사드립니다.”

놀람의 끝은 침묵이다.

이제 원로들 중의 누구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못했다.

은교교가 소빙유에게 물었다.

“알고 계셨나요?”

소빙유가 고개를 저었다.

“동심결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동심결주뿐이다.”

“제자라 믿던 자에 의해 중독이 되었으니, 맹주가 피하지 못하고 당했던 거군요.”

“그랬던 모양이다.”

은교교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자는 자신을 중독시켰고, 사랑한다고 말했던 여인은 자신을 해쳤어요. 맹주의 인생은 참으로… 참으로….”

소빙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설청산을 보려고 했지만 마혈이 짚혀 있기에 고개가 돌려지지 않았다.

“나, 나를 돌려서 설청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겠느냐?”

소빙유의 부탁을 들은 은교교의 얼굴은 얼음장 같았다.

“맹주는 눈을 뜨지 못했고,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계셔요.”

“나, 나는 그를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맹주는 어떨까요? 맹주도 사부를 보고 싶어 할까요?”

소빙유는 한참을 입술만 달싹거린 후에,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은교교는 결국 소빙유가 앉은 의자의 방향을 돌려주었다.

설청산을 보는 소빙유의 눈빛은 수많은 감정으로 흔들렸다.

은교교는 소빙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 한마디의 위로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위로를 받고 싶었다.

단 한 사람, 사도명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시선을 돌렸다.

사도명은 화운악의 앞에 있었으며 무척 태연했다.

화운악이 물었다.

“백옥소검의 주인은 청옥소검을 가진 사람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알고 있느냐?”

“알고 있지. 무림의 태자. 그의 미래를 위한 충성.”

“그렇다면 너는 왜 내게 무릎을 꿇지 않느냐?”

“백옥소검은 이미 부러졌잖아! 공교롭게도 네가 부쉈고.”

“백옥소검이 부서져서 세 번째 특별순찰로서의 자격이 사라졌다면, 너는 왜 당장 떠나지 않고 계속 여기에 있느냐?”

“약속을 했거든.”

사도명은 고개를 돌려 계속 자신을 보고 있는 은교교와 시선을 맞추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에서, 동심결을 없애주겠노라 약속했었지.”

“푸하하. 정말로 동심맹이 먼저 사라질 것 같으냐?”

화운악이 크게 웃으며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동심결주의 공동 제자로서 명한다. 달빛이 내 발끝에 닿으면, 왼쪽 손의 소매를 떼라. 그리고 주변에 왼쪽 소매가 있는 자들을 모조리 베라!”

“화운악!”

구양걸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참지 못하고 화운악을 향해 몸을 날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눈을 갖고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너를 태자로 인정한 내 잘못이 정말 크구나!”

구양걸의 주먹은 솥뚜껑만큼이나 크고 단단했다.

하지만 화운악은 태연했다.

날아드는 구양걸의 주먹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막았다.

까-앙!

주먹과 손바닥이 충돌했음에도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모두 손에 끌어올린 강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음 순간에, 푸른빛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청옥소검이었다.

“허엇!”

놀란 구양걸이 다급하게 몸을 뒤로 뺐으나, 이미 청옥소검의 그의 왼쪽 뺨을 그은 후였다.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청옥소검에 왼쪽 뺨을 베인 구양걸은,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채 탄식했다.

“아아! 어찌하면 좋소, 맹주? 나서셔야만 할 때건만 그렇게 독에 당해 앉아계시면, 대체 무림맹은 어쩐단 말이오?”

“어떻게 하긴? 규율대로 하면 되지 않겠소?”

화운악이 빙그레 웃었다.

“맹주가 유고이시니 태자인 내가 맹주의 대신이다. 맹주 대행으로서, 원로회에 명한다. 창에서 들어오는 달빛이 내 발끝에 닿으면, 즉시 무릎을 꿇으라. 왼쪽 소매를 뗀 자들이 목을 베어 오면 저항해서는 아니 된다.”

스스로 죽으라는 명령이었다.

원로들은 웅성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누가 배신자이고 누가 아닐까?

누가 베어 죽일 사람이며, 누가 베이어 죽임을 당할 사람일까?

무조건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죽으라는 명령에 순순히 따를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달빛이 화운악의 발에 닿는 때에, 원로회는 동심결과 무림맹으로 갈라져서 싸울 것이다.

십자대성의 총의전의 나무 바닥이 피에 잠길 것이다.

구양걸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사도명을 보았다.

“미, 미안하다. 너를 믿어야 했는데 의심했다. 내가 어리석어 이 지경까지 왔다.”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법허 대선사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지요. 권제는 낙수의 맹세를 지키려 노력하셨습니다.”

“도, 동심결주의 제자가 청옥소검을 지니고 있다. 아아. 무림맹의 몰락은 막을 방법이 없다.”

“방법은 언제나 있습니다. 아무리 깊은 나락도 벗어날 구멍은 존재하지요.”

“바, 방법이 있다 한들 절반이 배신하지 않았느냐? 어떠한 결론이건, 절반은 죽어야 끝날 것이 아니냐. 어쩌면 모두 죽어야 끝이 난다.”

사도명이 법허를 보았다.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만 할까요?”

“아미타불. 피하고 싶다 해서 정말 피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드물지. 숫제 없소.”

법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니, 꼭 하시게나!”

뒤이어, 법허는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원로들 한 명 한 명을 둘러보았다.

“걱정할 것 없소.”

“무슨 걱정 말입니까?”

무림맹 서열 22위의 광무당주 철대평이 일어서면서 물었다.

그는 구대세가 중 외공이 가장 강하다는 철씨세가 출신이었다.

법허가 대답했다.

“흑귀의 금제에 대한 걱정을 말하고 있소.”

“금제를 깨뜨릴, 발동 않게 해 줄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법허는 염주를 굴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미타불 철대평! 그대마저 배신을 한 것인가? 대체 동심결주가 무엇을 약속하였소?”

“구양세가와 서문세가는 늘 구대세가의 수위를 다툽니다.”

철대평이 입술을 깨물었다.

“몇 백 년이 지나도, 구대세가의 서열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동심결주가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충성을 맹세만 한다면!”

“동심결의 배후가 오대 마문임을 몰랐다는 뜻이오?”

철대평이 고개를 돌려 화운악을 보았다.

“제가 충성을 맹세하고, 흑귀의 금제가 심어진 후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아는 즉시 후회했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었습니다.”

“하하하. 왜 미리 말하겠소? 흑귀를 심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야지. 하하하.”

화운악이 껄껄 웃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동심결의 포섭에 넘어간 이들조차, 대부분 원해서 무림맹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은교교가 다시 한번 소빙유를 향해서 물었다.

“무림맹은 변했습니다. 마음에 드세요, 사부? 변해버린 무림맹이, 정녕 마음에 드십니까?”

소빙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아버릴 뿐이었다.

철대평이 법허를 다시 보았다.

“금제를 풀 방법이 있다면,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흑귀는 시전자가 사라지면 저절로 없어지오. 금제를 시전한 자를 찾아 없애면, 흑귀의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소.”

“저에게 금제를 시전한 사람은 동심결주 중의 한 명입니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는 모릅니다.”

“나도 동심결주는 모르오.”

법허가 사도명을 보았다.

“그런데 저 시주는 동심결주가 누군지, 이미 알아냈다는군.”

법허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원로들의 시선이 온통 사도명의 얼굴로 모였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부맹주의 말이 옳습니다. 동심결주가 무림맹 안에서 위장한 신분이 무엇인지를, 오래 고민했습니다. 결국 알아냈죠.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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