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흑귀의 금제
“저 녀석이 진짜라는 사실을 대체 누가 증명한단 말이냐?”
구양걸의 고함에,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저는 검몽으로서가 아니라 세 번째 특별순찰로 이곳에 있습니다. 백옥소검을 들었는데도 굳이 사도명임을 증명해야 합니까?”
구양걸이 다시 외쳤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면, 네가 오히려 동심결에 속하여 우릴 기만하고 있을 가능성을 어찌 배제할 수 있겠느냐?”
사도명이 법허를 보았다.
“권왕의 말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증명을 하려는데, 허락하시겠습니까?”
법허가 한숨을 쉬었다.
“허락받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결과가 무척 끔찍할 것이기에 미리 허락을 구했습니다.”
“아무리 끔찍해도 필요하다면 해야지. 하시게.”
사도명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당익호의 앞으로 가서 점혈했다.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멈췄다.
사도명은 당익호를 일으켜 바로 앉히면서 물었다.
“당신은 동심결에 충성을 바치겠노라 맹세를 했소?”
“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사도명이 원로들을 둘러보았다.
“흑귀는 이 정도의 거짓말을 허용합니다. 신분을 들키면 아니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도명이 다시 당익호를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 흑귀문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흐, 흑귀문은….”
“흑귀문이 악이며, 다섯 마문으로 인해 천하에 혼란이 생기고 있음을 인정하시오?”
“…….”
당익호가 입을 다물자, 사도명이 언성을 높여 다시 물었다.
“천외의 다섯 마문을 없애기 위해, 당신은 무림맹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시오?”
당익호는 사도명을 노려볼 뿐, 굳게 입을 다물었다.
“뭐야? 왜 대답을 못 하지?”
사도명이 웅성거리는 원로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동심결의 결주는 천외의 오대 마문에서 키워진 자입니다. 오대마문 중의 하나, 흑귀문에는 흑귀를 이용한 금제법이 존재합니다.”
구양걸이 으드득 소리 나게 주먹을 쥐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금제법이라는 게 대체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라.”
“흑귀문은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의 언령(言靈)에 흑귀를 심습니다.”
“언령이란 무엇이냐?”
“말이 가지는 힘. 말에 실리는 의지를 의미합니다. 흑귀는 잠복하고 있다가 피시전자의 특정한 말에 반응하여 발동하죠.”
사도명이 다시 시선을 당익호를 향해 돌렸다.
“이 사람이 어떤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지, 어떤 말을 따라하지 못하는지를 보면 흑귀의 금제에 당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도명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당익호! 그대는 수라겁황이 누구인지 알고 있소?”
“…아, 알고 있다.”
“겁황이야 말로 악의 근원이며, 수라겁황을 없애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낙수의 맹세를 실천할 생각이 있소?”
“나, 나는…….”
당익호는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몸만 떨었다.
수라겁황은 천외의 오대마문이 존재하게 만든 자였다.
아득한 태고의 날에 수라겁황이 존재했었고, 아래에 다섯 명의 수하를 두었다고 했다.
오대마문이 바로 그 후손!
다섯 수하가 각각 만들어 놓은 세력이라는 것이 전설이었다.
“오대 마문 모두는 세상이 끝날 때에 수라겁황이 다시 한번 헌신하여 새로운 천지를 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명은 원로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때문에 수라겁황을 부인하고 모욕하는 일은 오대마문 모두가 두려워하는 금기입니다.”
원로들이 또다시 웅성거렸다.
사도명은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살폈다.
누가 두려워하고, 누가 분노하는지를 놓치지 않았다.
“자아, 상황이 이러합니다. 이제 판단해 보세요. 여러분 중 동심결에 든 자를 가려내는 일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어렵겠습니까?”
법허가 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쉽겠군. 그저 앞으로 나와 수라겁황에 대한 욕을 하도록 만들면 끝나는 일일 테니. 종심기는 밖에 있느냐?”
법허가 계속 약해지는 기력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외쳤다.
대답은 이내 들려왔다.
“명하신 대로 대기 중입니다. 맹의 모든 기찰무사들을 동원했고, 일곱 경비단과 세 개 호위대 모두가 총의전을 포위했습니다.”
기찰령주 종심기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원로들은 오늘의 원로회의가 일종의 함정임을 깨달았다.
배신자를 잡기 위한 덫.
사도명이 말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강하며 능력이 뛰어납니다. 바깥의 포위망 정도라면 어려워도 벗어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
백옥소검이 울기 시작했다.
사도명의 손에 잡힌 채 검명을 토해내는 백옥소검의 모습은, 모든 이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단 일 초에 무릎을 꿇었던 당익호를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검도 함께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 한 명씩 앞으로 나오세요. 나오셔서 수라겁황을 욕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나부터 하지.”
구양걸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는 사도명을 지나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수라겁황은 악의 근원이다. 그런 똥강아지를 숭상하는 자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
원로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배신자이고 누가 배신자가 아닌지 아직 알 길이 없었다.
구양걸은 사도명을 지나쳐 당익호의 앞에 섰다.
그는 권제라는 별호답게 체격이 컸고, 손은 더더욱 컸다.
그 커다란 손으로 당익호의 머리를 잡으면서, 구양걸이 말했다.
“네 사부인 독제 당백룡과 나는, 서로 매우 친하다.”
“끄으. 아, 알고 있습니다.”
당익호는 자신의 머리를 누르는 커다란 구양걸의 손바닥이 만들어내는 고통에 신음했다.
“정말 무림맹을 배신하였느냐? 낙수의 맹세를 저버렸느냐?”
“저, 저는… 끄으….”
“내 말을 따라 해라. 수라겁황은 악의 근원이며 냄새나는 똥강아지에 불과하다.”
“으으. 저, 저는….”
“따라 해라. 아니면 내 손이 네 머리를 박살낸다. 수라겁황은 악의 근원이며 똥강아지다.”
“수, 수라겁황은… 으으으. 으아아아!”
당익호의 미간에서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검은 기운은 일단 나타나자, 먹이 물에서 번지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이윽고 당익호의 얼굴을 가득 덮었고, 다음 순간 흔들렸다.
“사, 살려 주십… 으아아!”
퍼-억!
당익호의 머리가 구양걸의 손아귀 속에서 터졌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아!”
원로들은 모두 무림의 백전노장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가 산 채로 터지는 광경은 워낙 끔찍해서, 더러 신음을 토하는 이도 있었다.
구양걸의 손이 일으킬 일이 결코 아니었다. 흑귀의 금제가 저절로 작동한 것이었다.
실로 끔찍했고, 모두가 몸을 떨도록 만드는 광경이었다.
“이런 모습에 만족하느냐?”
구양걸이 사도명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사도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왜 만족해야 합니까?”
“너를 원망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무림맹이 어떤 꼴이 되었을지도 짐작한다.”
구양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네가 나타나고 나서, 조카와 다름없던 당익호가 저렇게 죽었다. 이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갈지를 생각하니, 네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구나.”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작은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구양걸의 키가 워낙 커서, 그가 자신의 앞에 서자, 사도명은 고개를 높이 들고 구양걸을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아무도 상처 입지 않고, 오늘의 일을 끝낼 묘책이 권왕에게는 있으십니까?”
“없다! 그래서 화가 난다.”
“본래 스스로 대책을 세웠어야 할 일인데 제가 원망스럽습니까?”
“그 점도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이하게 지내 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더 화가 난다.”
구양걸은 법허를 보았다.
그는 포권한 채 법허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제가 어리석어 움직여야 할 때 앉아만 있었고, 애꿎은 사람만을 의심해 왔습니다.”
“어리석지 않소. 권제는 다만 충성을 다했을 뿐임을 아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맹 내부의 일을 수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구양걸이 사도명을 가리켰다.
“그러나 맹의 일은 내부에서 처리하여야 합니다, 부맹주.”
사도명이 미간을 찡그렸다.
법허는 한숨을 쉬었다.
“백옥소검을 가진 사람은 나의 제자를 대신하오. 백옥검주가 어찌 외부인일 수 있겠소?”
“하지만 태자의 호위일 뿐입니다. 백옥소검주에게는 맹 내부의 일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법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
“사도명이 원로 중의 배신자를 가려내게 만들면, 모두 당익호의 꼴이 될 것입니다. 외부인은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구양걸의 말에 법허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또한 그렇군. 그렇다면 말이오….”
법허가 원로들의 가장 뒤쪽을 보았다.
“저 사람이 이 모든 일의 처리를 주도하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겠소?”
구양걸이 시선을 돌렸다.
원로들 모두의 시선도 총의전 뒤쪽으로 향했다.
사도명은 모두 세 개의 바퀴 달린 의자를 만들었다.
그중, 마지막 세 번째의 의자가 후문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탁호천이 의자를 밀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바로 화운악이었다.
화운악은 설청산과는 달리 정신이 있어, 눈을 뜬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품에 청옥소검을 들었고, 그 소검은 그의 신분을 표시하는 신물이었다.
구양걸이 눈을 빛냈다.
“당연히 만족합니다. 무림 태자라면 감히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구양걸은 화운악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활짝 웃으면서, 구양걸은 화운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태자! 절대고독에 중독되었다 들었는데, 맹주와는 달리 무사하셨구려. 아아. 다행이오.”
구양걸이 화운악의 손을 잡으려 할 때, 무엇인가 차갑고 아주 빠른 기운이 뒤에서 날아왔다.
“정말로 다행이겠소?”
“감히!”
구양걸이 몸을 돌리며 주먹을 휘둘러 그 기운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차가운 기운은 살아 있는 생명체인 양 허공에서 몸을 꿈틀 옆으로 털었다.
그 바람에 구양걸의 주먹은 헛되이 허공만을 갈랐다.
“내 주먹을 피한다고?”
구양걸이 휘두른 일 초는 천지박이라 불리는 무공이었다.
손등을 단단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정면에서 맞으면 상대에게 무서운 충격을 주고, 심지어 방어에도 특화된 초식이었다.
구양걸은 차가운 기운이 자신의 주먹을 피했음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그 정체을 알자, 숫제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백옥소검? 무슨 짓이냐, 사도명? 누굴 헤치려 드는 거냐?”
사도명이 던진 백옥소검은 구양걸의 주먹을 피한 뒤에도 정확하게 본래의 궤도를 유지했다.
노리는 것은 화운악의 심장.
까-앙!
굉음과 불꽃이 함께 튀었다.
화운악이 청옥소검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백옥소검은 그대로 그의 심장을 관통했을지도 모른다.
청옥소검이 백옥소검을 허공에서 막았다.
장내가 경악에 휩싸였다.
구양걸이 날아오르며, 사도명을 향해 칠십이 풍로(風露) 연환권법을 정신없이 퍼부었다.
“제압한 후에 이 도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이놈!”
권법은 바람 같이 표홀하고, 이슬인 양 흔적이 없었다.
“나도 회주님과 더불어 책임을 물어보고자 하오.”
원로들 사이에서도 한 사람이 몸을 날렸다.
팔비풍운 석금보였다.
무림맹의 서열은 28위.
하지만 법의 집행을 위임받은 집법전의 전주답게, 석금보의 무공은 겉으로 이름 붙은 서열 순위를 뛰어넘고 있었다.
일단 그가 팔을 휘두르자, 어지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허공에 여러 개의 또 다른 팔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합공을 받고도, 사도명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화운악의 앞에 멈춰 있는 백옥소검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겼다.
날아오는 백오소검을 잡아 허공에 호선을 그리며, 구양걸의 주먹을 그 흐름 안에 휘감았다.
“그러나 화운악은 아직….”
백옥소검이 구양걸의 주먹을 감자, 변화가 벌어졌다.
바람처럼 표홀하던 권법이 제자리에서 맴돌며 소용돌이쳤고, 이슬같이 흔적이 없던 권법이 허공에 정지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아! 저런 일이!”
모두가 놀랐지만 은교교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제일해 와와 제삼해 역이 사도명의 반격에 응용되었음을, 은교교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역을 직접 보는 건 처음!’
그녀는 창천사해의 세 번째 역에 대해 분석하면서 눈을 빛냈다.
[눈빛이 무섭소. 내 모든 걸 단숨에 빼앗아 버릴 듯 싶소.]
전음으로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사도명은 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석금보를 공격했다.
석금보는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어, 더욱 빠르게 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무공이 전개되는 모습은 그의 별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도와 변화로 만들어낸 여덟 개 팔을 이용하여 석금보는 사도명의 온몸, 여덟 개의 급소를 동시에 노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사도명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굴 공격하는 거요?”
석금보는 사도명을 공격했다.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니, 자신의 팔비왕생 수법이 공격하는 대상이 구양걸이 아닌가?
자신의 팔 앞에는 구양걸이 보였고, 사도명은 어느새 왼쪽으로 돌아가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사술이냐?”
석금보는 놀라 팔을 거두고, 왼쪽의 사도명을 다시 공격했다.
“사술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수법을 사용해라, 사도명!”
구양걸은 사도명을 공격하던 석금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손을 거뒀다가 자신을 공격해오자 경악하고 말았다.
“정신 차리시오, 석 전주!”
사도명이 은교교에게 말했다.
[네 번째의 깨달음인 옮겨내기의 전(轉)으로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소.]
사도명은 친절하게 전음으로 설명하는 한편으로, 백옥소검도 거세게 휘둘렀다.
거대한 호선이 환영을 보고 구양걸일 공격하는 석금보와 놀라서 석금보의 공격을 방어하는 구양걸을 한 번에 휘어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