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22화 (22/168)

022화. 원로회가 열리다

새로운 날이 밝았고, 다시 그 새로운 날이 거의 저물었다.

서쪽 산자락과 하늘이 붉은 노을에 휩싸여 있는 시각에, 사도명은 바퀴가 달린 의자를 밀고 무림맹 총의전(總意殿)으로 향했다.

“어이해 그토록 자신하느냐?”

의자에 앉은 소빙유가 사도명에게 물었다.

그녀는 마혈이 짚여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말은 가능했다.

“나는 여러 가지에 자신감을 가집니다. 그중 무엇에 대한 자신을 말하시는 겁니까?”

소빙유가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밤. 동심결을 모두 없앨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원로회의 절반 이상이 동심결에 협조한다고 말하셨지요?”

“그랬다. 그건 사실이니까.”

“오늘 밤 열릴 원로회의 앞에서, 협조자의 신분을 밝혀 주실 생각은 없는 거지요?”

“당연히! 설령 신분을 밝힐 생각이 있다 한들, 나조차도 모른다. 그들을 포섭한 것은 동심결주이지 내가 아니니까.”

“나는 이미 동심결주가 누구인지를 대충 파악했습니다.”

“헛소리!”

소빙유가 소리쳤다.

“불과 어제 맹에 들어온 네가 알아냈다고?”

“송곳은 아무리 주머니에 감춰도 튀어나오기 마련이죠. 동심결주 정도라면 아무리 신분을 숨겨도 그 능력이 겉으로 드러납니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누구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네놈의 말은, 내가 그토록 어리석다는 뜻이냐?”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짐작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큰 파도는 멀리 있으면 잘 보이나, 휩쓸려 있으면 느낄 수 없습니다.”

사도명이 미는 바퀴 달린 의자가 마침내 총의전 앞에 도착했다.

원로회는 술시 초에 총의전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도명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구름이 없군요. 오늘은 달이 밝겠습니다. 회의의 끝 무렵, 동심결이 뿌리 뽑힐 때는 보름달이 정말 교교할 것입니다.”

**

원로회는 말 그대로 무림맹의 원로로 구성되는 회의다.

한때라도 무림맹의 서열 30위 안에 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아직 살아 있는 무인들로 구성된다.

무림맹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회의!

낙수의 맹세를 이어받는 것을 자랑삼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었다.

부맹주 법허가 소집한 원로회에 참가한 사람은 도합 247명이었다.

대부분이 무림맹주 설청산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열 명 가량은 이미 일백 세를 넘긴 법호보다도 무림의 배분이 높았다.

원로회의 회주는 배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맡되, 맹주와 부맹주를 제외한 사람 중에서 배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관례였다.

현재의 무림맹 원로회의 회주는 권제 구양걸.

그는 무림 사제(四帝) 중의 한 명이며, 구양세가의 현 가주였다.

구파일방 중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소림사가 영구히 무림의 부맹주 직을 맡고, 원로회의 회주는 구대 세가의 사람이 맡는다.

앞쪽에 마련된 단 위에는 두 개의 특별석이 있었다.

맹주와 부맹주를 위한 자리.

법허는 원로들이 모이는 초기부터 초췌한 얼굴로 부맹주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설청산이 앉아야 하는 맹주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원로들이 웅성거렸다.

설청산의 진짜 상태는 무림맹 내부에서 특급으로 분류되어, 철저하게 보호되는 비밀이었다.

몇몇 사람들만이 설청산이 중독되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아는 사람조차 설청산의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랐다.

총의전에 마련된 모든 자리가 가득 찼다.

권제 구양걸이 몸을 일으키더니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이제 원로회의 시작을 선언합니다.”

권제 구양걸은 부맹주 법허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맹주께서는 원로회의 개최를 요구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동심결을 뿌리 뽑고자 원로회를 수집했소.”

“동심결이란 무엇입니까?”

“무림맹의 내부에 암약하여 세력을 키운 자들로 천외 오대 마문의 협조자요. 무림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소.”

웅성거림이 원로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구양걸이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천외 오대마문의 간세가 맹의 내부에 있다는 겁니까?”

법허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원로회주는 어이해 맹주에 대하여 묻지 않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이미 아는 것이라,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오?”

구양걸이 미간을 찌푸렸다.

“맹주께서 모종의 독에 중독이 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모종의 독이 아니라 절대독고! 독혈당의 치명적인 고(蠱)!”

“그렇습니다. 독혈당의 절대독고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맹주가 오지 못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이상하군. 독혈당의 절대독고를 아는데, 어이해 동심결은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권제 구양걸이 미간을 더욱 깊이 찡그렸다.

“저는 단지 중독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소문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린다고? 오늘의 무림맹이 왜 이런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소?”

구양걸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패였다.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법허를 향해 물었다

“그런 말씀을 묻는 저의가 대체 무엇입니까?”

“무엇 같소?”

“설마 부맹주님은 제가 동심결과 야합한 배신자 중의 하나일 것이라 의심하십니까?”

법허는 대답하지 않고, 원로들을 보았다.

“동심결과 야합한 자는 맹주의 상태에 대해 알 거요. 야합하지 않은 사람은 관심이 없으니 모르겠지. 그러니, 아무도 맹주께서 오지 않는 이유를 내게 묻지 않는 것이오.”

모여 있는 원로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더욱 퍼져 나갔다.

옆 사람과 이야기했고, 더러 혼자 신음을 삼켰다.

구양걸이 법허를 향해 외쳤다.

“저와 원로회를 의심하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의심이라니 당치 않소.”

법허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나는 확신하고 있소. 여러분들 중에 배신자가 있소.”

법허는 구양걸이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밖을 보았다.

“들어오시오, 맹주!”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했다.

그 방향의 문이 열렸다.

은교교가 바퀴가 달린 의자를 밀고 들어왔다.

그 의자 위에, 정신을 잃은 상태의 설청산이 앉아 있었다.

사도명은 이와 같은 의자를 3개 만들었고, 그중의 하나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은교교가 쓰게 했다.

다시 웅성거림이 원로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원로들 중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맹주의 중독은 대체 얼마나 진행이 된 겁니까?”

그는 집법전을 맡고 있는 팔비풍운 석금보였다.

청성파의 장로로, 평소 성품이 강직하기로 유명했다.

무림맹의 서열 28위.

법허가 은교교를 보자, 은교교가 대신 대답했다.

“절대독고의 독성이 극에 달했어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작의 진행을 멈추고 있지만, 정신을 차리시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매, 맹주를 치료할 방법은 숫제 없는 거요, 은령선자?”

“천라옥벽을 구해왔어요.”

은교교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동심결주에게 빼앗겨 버렸죠. 한시라도 빨리 동심결주를 찾아, 천라옥벽 속의 백옥유액으로 절대독고를 녹여야만 합니다.”

석금보는 힘이 빠지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그런 이유로 부맹주께서는 지금 우리들 중에 배신자들이 있어 맹주의 저런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맹주의 상태를 아는 자들이 동심결주에게 넘어가서 배신자가 되었겠지.”

법허의 대답에, 석금보는 원로들을 둘러보았다.

“대체 누구요? 우리 무림맹의 누가 낙수의 맹세를 깨고 정도를 배신했단 말이오?”

“부맹주께서는 혹시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원로들 중 눈썹이 유난히 짙고 미간 정중앙의 사마귀가 인상적인 노인이 물었다.

그는 천약당주인 당익호로, 구대 세가 중의 사천 당가 출신이었다. 무림맹의 서열 30위.

“물론 있소!”

당익호의 물음에 법허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체 누구입니까?”

“당익호! 나는 누구보다도 그대를 의심하오.”

당익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입니까? 왜 나를 의심하지요? 내가 구파일방이 아닌 구대세가 출신이라 그런 겁니까?”

“말을 돌리는 재주가 재빠르나, 내게는 통하지 않소.”

법허는 태연하게 말했다.

“천약당주는 왜 내게 지금까지 숫제 물어보지 않는 거요?”

“뭐, 뭘 말입니까?”

“나의 안색과 내 몸의 상태! 천약당주라면 내가 절대독고에 중독된 것임을 파악했을 터인데 왜 한 번도 물어보지 않소?”

“!”

“답은 간단하지. 이미 나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그, 그건….”

당익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로들 사이의 웅성거림이 다시 한번 퍼져 나갔다.

식은땀만을 흘리며 서 있는 당익호를 보며 법허가 다시 물었다.

“이미 동심결주를 만났고 낙수의 맹세를 깨뜨려 놓고서, 당익호! 그대는 왜 달아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거요?”

“으아아!”

당익호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바깥으로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당익호는 오히려 법허를 향해 달려들더니 그의 뒤로 돌아가 팔뚝으로 목을 감았다.

“모두 움직이지 마시오. 누구라도 움직이면 즉시 법허 선사의 목을 꺾어 놓을 거요.”

법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과연 나의 중독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군. 중독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대 정도로 어찌 감히 내 목을 움켜쥘까?”

당익호가 소리쳤다.

“한 번 더 말을 하면, 목을 꺾는다 했소! 맹주의 상태를 보시오. 무림맹은 이미 끝장이 났소. 이제 동심결의 시대요.”

“휴우. 동심결은 천외의 오대마문이 만든 것이오. 그런데도 그곳에 충성을 바치겠단 거요?”

법허의 두 번째 한숨은 첫 번째 한숨보다 더욱 깊고 아팠다.

당익호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게 뭐 어때서? 무림맹이든 동심결이든, 나는 나의 삶이 보다 행복한 곳을 택할 거요.”

“그럼 다른 이들의 삶은? 천하인들의 삶은?”

“닥치지 않으면 목을 꺾겠다고 나는 이미 경고했소.”

“그대는 이미 너무 멀리 갔구나. 돌이킬 방법이 없어.”

법허는 눈을 감아 버렸다.

“속히 처리해 주시게.”

법허의 말은, 누가 보아도 당익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법허의 말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그렇게 하지요.”

빛이 날아왔다.

흰색의 빛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스컥!

당익호는 자신의 어깨 근육이 잘린 후에야, 하얀색 빛의 존재를 겨우 알아차렸다.

“…큭!”

빛은 다시 회전했다.

당익호의 팔뚝과 종아리 근육을 차례로 베어 그를 무력화 시켰다.

법허의 목을 감았던 당익호의 팔뚝은 힘을 잃었다.

모든 기력을 잃은 당익호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흰빛의 정체가 하얀색의 작은 검임을 알아보았다.

“백옥소검?”

되돌아간 백옥소검을 받으며, 사도명이 나타났다.

그 역시 바퀴가 달린 의자를 밀고 있었는데, 의자 위에는 화왕 소빙유가 앉아 있었다.

구양걸이 소리쳤다.

“화왕이 왜 거기 있소?”

사도명이 백옥소검을 위로 들어 모두에게 보이며 대답했다.

“이 여자는 동심결 서열 6위의 화왕 소빙유입니다.”

“무, 무슨?”

“소빙유는 무림맹을 무너뜨려 동심결의 것으로 만들려 한 죄목으로 현재 체포되었습니다.”

원로들이 백옥소검의 용도와 권한을 모를 리 없었다.

“세 번째의 특별순찰인가?”

구양걸이 법허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연자강은 이미 파문을 당했지 않소이까?”

“그랬었지. 그래도 파문시킨 내 제자에게 건넬 백옥소검의 행방을 결정한 권리는 여전히 내게 있지 않겠소?”

법허가 사도명을 보았다.

“오늘 그 행방을 정하였다오. 자신을 소개해 주시겠나?”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연자강의 친우로, 그의 부탁을 받고 백옥소검의 의무를 임시로 맡게 됐습니다.”

“백옥소검의 권위가 아무나 맡아도 되는 것이란 말이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 맡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아무도 너를 모르는데 능력과 의지를 어찌 아느냐?”

구양걸의 고함에도 사도명은 얼굴의 미소를 풀지 않았다.

“권제의 눈빛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시군요. 잘 보세요. 나를 모르시겠습니까?”

“!”

“권제께서는 6년 전의 그 날에도, 화운악을 쓰러뜨린 저를 지금과 같은 눈으로 쳐다보셨죠.”

구양걸이 기억을 더듬었다.

원로들 중의 한 명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검몽? 사, 사도명?”

화산파의 장문인 매희구였다.

매희구는 수호성의 성주 자리를 맡고 있기도 했다.

수호성이란 십자대성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2번째의 성으로, 무림맹 전체의 내부 방어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무림태자를 낳은 문파의 장문인이 수호성주를 맡는 것은 일종의 관례였던 것이다.

사도명이란 이름은 원로들 사이에 또 다른 웅성거림이 퍼져 나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검몽 사도명이라고?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고?”

사도명은 일종의 신화였다.

천하비무 사상 최연소 우승자.

19 성좌 출신이 아닌 몸으로, 최초로 검몽에 오른 자.

심지어 그는 무림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떠났었다.

그리고 장백산 깊은 곳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알려졌다.

“정말로 살아 있었다고?”

원로들 중에는 사도명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그래! 분명 저 얼굴이었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구양걸이 소리를 질렀다.

“갈! 얼굴쯤이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죽은 사도명이 가짜이며, 저 녀석이 진짜라는 사실을 대체 누가 증명한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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