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4화 (14/168)

014화. 흑견

곽소혜는 오랫동안, 아주 슬프게 울었다.

갑작스런 소식.

부모의 사망에 슬퍼하지 않을 자식은 세상에 없다.

“곽소혜에게 남편을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나요.”

우는 곽소혜를 보면서 사도명은 은교교에게 설명했다.

“내 친구, 그녀의 남편은 이 마을의 사람이어서 결혼 후 그녀는 이곳에 살게 됐소.”

사도명은 장백산에서 이곳 마을까지 지하수로를 통해 올 수 있기에, 곽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딸을 볼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딸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곽노는 자신의 딸이 사랑을 주는 사위와 함께 행복하기를. 방해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딸을 위해 스스로 외로워지는 선택.

은교교는 평생 외롭게 살았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남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도 생각했다.

“사람은 정말로 저마다 다른 것 같아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누구 하나 같지 않아요.”

두 사람은 곽소혜의 울음이 조금 잦아든 후에야 마을을 떠났다.

사도명의 친구가 마을 어귀까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선물이다. 필요할 거야.”

친구는 기름종이에 싸인 무엇인가를 사도명에게 건넸다.

사도명이 쓰게 웃었다.

“기쁜 선물은 아니군. 곽 소저를 잘 위로해 줘.”

“고마운 건 내 쪽이지. 네 녀석과 아내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고 사라질 사람이 나였잖느냐.”

친구는 사도명의 어깨를 두들겨 주곤,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을 꽤 벗어나고 나서야 은교교가 물었다.

“친구는 어떤 분인가요?”

“좋은 녀석.”

사도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불쌍한 녀석이기도 하고.”

사도명은 신법을 시전했다.

은교교 역시 사도명으로부터 배운 와와 출의 깨달음을 떠올리며, 신법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어요.”

은교교의 신법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사도명에 비해서는 아직도 느려, 따라가기 힘겨워했다.

사도명은 신법의 속도를 그녀에게 맞추며 말했다.

“그는 사부를 잘못 만났소.”

“음. 잘못 만났다는 건, 혹시 나쁜 사람이거나 아니면…?”

은교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니라면, 혹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나요?”

“화왕 소빙유. 당신 사부의 얘기를 하고 싶소?”

은교교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흔들었고, 결국 다시 끄덕였다.

“그래요.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워요.”

“그의 사부는 협의가 넘쳤고, 결코 위선자가 아니었소.”

“아!”

“나의 사부는 의욕과 능력이 합일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부는 그 능력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지. 실로 인중룡이라 할 수 있소.”

사도명은 은교교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며 웃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무림맹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

“너무 무능해도, 너무 뛰어나도, 좋은 것은 아니군요.”

사람의 고민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통하는 바가 있다.

사도명이 친구의 사부를 말하고 자신의 사부를 언급할 때, 은교교 역시 자신의 사부를 생각하면서 속도를 높여서 달렸다.

밤이면 달이 떴다.

달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둥글게 차올랐다.

사도명과 은교교는 열심히 달렸고, 조금씩만 쉬었다.

그리하여, 보름이 되기 하루 전의 날에, 마침내 무림맹 본성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

항마정(降魔亭)은 의천성(義天城)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자다.

의천성은 무림맹의 본성을 이루는 아홉 성인 구천성(九天城)이 시작하는 곳으로, 무림맹주가 거하는 십자대성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다.

무림맹의 결성 직후에 세외팔천 중의 하나인 적마교가 혈겁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그들은 적마강신대법을 이용해 제련한 열 구의 혈강시를 앞세워 무림맹으로 진군했다.

십구성좌의 열아홉 문파에서 내세운 연합군이 적마교의 마군에 맞서 싸웠다.

그들 중 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사하고 나서야, 열 구의 혈강시가 부서졌다.

적마교는 무림맹을 향한 진군을 그렇게 멈추었지만, 죽어간 이들의 목숨을 돌아올 수 없었다.

무림맹은 의천성에 항마정을 세워 죽은 이들의 의기를 기렸다.

의천성과 항마정 주변은, 무림맹 무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천외의 오대 마문과 우내의 삼대 마문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 바로 세외팔천이다.

하지만 그들은 연합된 세력의 이름이 아니었다.

개별적으로 천하를 피로 씻고자 일어났다가 무림맹의 막강한 힘에 의해 제지당한 자들이었다.

언제, 어떠한 형태로 세외팔천이 무림맹을 또다시 침습할지 몰라서, 무림맹은 한 시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것이다.

보름을 하루 앞둔 날, 바로 그러한 항마정으로 노부부 한 쌍이 찾아왔다.

어찌나 늙었는지, 주름이 흡사 지렁이처럼 얽힌 두 노인은 정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울었다.

항마정에서 보이는 의천성을 향해 시선을 둔 채로 그들을 울고 다시 울었다.

보다 못한 경비 무사가 두 노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우는 게요?”

“흑흑흑. 저희는 평생 일곱 명의 자식을 두었지요.”

노부부 중의 할머니가 경비 무사를 보며 흐느꼈다.

“모두 아들이었습니다. 그중의 넷을 어렸을 때 병으로 잃고 세 명이 이곳 의천성으로 일을 하러 들어왔습죠.”

“노인의 자식이 우리 의천성의 무사란 말이오?”

“무사가 아니라 허드렛일을 합지요. 군량을 나르고, 빨래를 하고. 하지만 전란이 일어나면, 흑흑흑 무사는 아니라도 죽을 수밖에 없습지요.”

노파는 자신의 두 아들이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적마교의 겁난이 닥쳤을 때, 마군들과 싸워 죽은 무사들과 더불어 말입니다. 흑흑흑.”

경비 무사들은 가슴이 아파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중의 한 명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의 아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까?”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습죠. 저 안에서 일을 하지. 그런데 우리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구랴. 흑흑. 해서 여기서 울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아들, 죽은 아들. 모두 보고 싶어서.”

경비 무사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노파를 향해서 다시 물었다.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흑견. 검은 개. 여기서는 모두 그렇게들 부른다고 들었수.”

“아!”

모두 흑견을 알고 있었다.

흑견은 무사가 아님에도 의천성에서 유명했다.

그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더럽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으로, 사람들은 뒷간에 배설물이 가득 차면 흑견을 찾았다.

토사물이 쌓여 썩어 가면 흑견이 와서 치우곤 했다.

무사들의 생활은 힘겹지만 화려한 면이 많다.

누군가 화려하게 산다면, 그 뒤에는 더럽고 추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림맹에도 그런 잡일 처리꾼이 많았고, 흑견은 그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흑견을 불러 와.”

“일하는 중일 텐데.”

“시골의 부모가 왔다고 말하고 어서 오라고 해.”

경비 무사는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흑견의 두 형이 무림맹을 위해 일하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한 번 들었던 적이 있어.”

흑견은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달려왔다.

똥을 치우다가 달려온 듯 온몸에서 냄새를 풍기면서, 흑견은 노부부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흑견이 말했다.

“무사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멀리에서 오신 부모님을 제 거처에서 하룻밤만 재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흑견의 거치는 의천성 안에 있었다.

경비 무사들은 무척 곤란해했지만, 동정하는 마음이 이내 그들의 사이에 퍼져나갔다.

“우리 모두가 흑견이 누군지를 잘 알잖아.”

“흑견의 부모는 우리 무림맹을 위해 두 명의 자식을 잃었어.”

“그깟 규칙이 그렇게 중요해? 저 슬픈 울음을 보라고.”

결국 경비 무사들은 흑견의 부모를 의천성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했다.

무림맹의 경계는 삼엄했다.

부맹주이자, 무림에서는 무림삼성 중의 한 명으로 불리는 소림사 법허선사의 명령에 따라, 무림맹 전체에는 제 일호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성벽이라도 빈틈은 존재한다.

부맹주의 엄명조차 하급 무사들이 애타는 노부부에게 보내는 동정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흑견은 의천성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로 노부부를 데려갔다.

“문을 꼭꼭 닫고 있어야 하오, 두 분 노인들은 절대로 성내를 돌아다니면 아니 되오. 높은 분들의 눈에 띄면 큰일이 날 테니까.”

흑견의 편의를 봐 준, 경비 무사는 그렇게 신신당부하고 자신의 근무지로 돌아갔다.

흑견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주변의 동정을 살폈다.

계속 흐느끼던 흑견이 울음을 멈추고 노파를 보았다.

“신분을 밝히시오.”

은교교가 품에서 신패를 꺼내 들었다.

특별순찰의 패를 보자 흑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통한 연락망은 오직 맹의 존망 위기에만 사용토록 정해져 있소. 은령선자 님은 왜 하필 지금 그걸 사용하신 거요?”

은교교가 사도명을 보았다.

“맹에는 특별순찰이 세 명 있어요. 저는 강호를 도는 임무를 맡지만, 보다시피 흑견 님은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 맹에 들어와야 할 때를 대비하고 계시죠.”

“그는 누구요?”

흑견이 미간을 찡그렸다.

“외부인에게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면, 특별 규정에 의거하여 은령선자를 제재할 수도 있소.”

“이분은 외부인이 아니에요.”

은교교가 사도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도명이 품에서 천라옥벽이 든 상자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은교교가 천라옥벽을 열어 보이면서 말했다.

“천라옥벽이에요.”

흑견의 안색이 변했다.

“그, 그럼 맹주께서 중독되셨다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이오?”

“소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맹의 일호 경계령은 누구에 의해서 내려졌나요?”

“부맹주 법허 선사께서 명령하셨다 알고 있소.”

“동심결이 움직이고 있어요.”

은교교는 동심결이 목적하는 설청산의 암살과 무림맹의 접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아. 맹을 위해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쳤다. 한데 어쩌다가 무림맹이 이렇게 변했는가?”

흑견은 너무 큰 충격에 어지러운 듯 이마를 잡고 한숨 쉬었다.

“휴우. 호법들마저 동심결에 속해 있다고? 그럼 혹시 부맹주이신 법허 선사도?”

“자세히 알아볼 참이에요.”

은교교가 사도명을 한 차례 본 후에 말을 이었다.

“맹주님을 만나야 해요. 천라옥벽을 전달하고 무림맹에 암약하는 동심결의 문제를 상의할 생각입니다.”

흑견이 사도명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외부인을 본성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소.”

“그렇지만….”

“이 규칙을 깨뜨리려 한다면, 나는 은령선자마저도 맹주께로 안내하지 않을 생각이요.”

흑견의 눈은 결의에 차 있어, 결코 뜻을 꺾을 것 같지 않았다.

은교교는 사도명을 보았고, 사도명은 웃었다.

“들어가 보시오. 나는 그 사이에 나의 일을 보고 있겠소.”

흑견이 사도명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외부인이니 함부로 성내를 다니시면 아니 되오. 명심하시오.”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견이 은교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사도명은 자신의 얼굴에 씌워진, 특수 제작의 면구를 벗었다.

흑견의 집안 내력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부모가 찾아오면, 그를 성 안으로 데리고 와서 맹주와 만나게 해주는 것이 흑견의 임무였다.

“이로써 은교교는 설청산과 독대할 것이다.”

사도명은 품 안에서 친구가 건네줬던 물건을 꺼냈다.

싸고 있는 천을 벗겼다.

그 내부를 확인한 후에,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상황이 풀릴까? 숨겨진 일은 언제나 드러난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마련. 뒤에 숨은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도명은 눈을 감았다.

한참을 감고 있던 눈을 뜬 후에, 천속의 물건을 손에 쥐었다.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기 싫은데! 하지만 부탁을 받았으니,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도명은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면서 살았다.

“아무래도 이제는 때가 된 모양인가? 모든 일들이, 이런저런 인연이, 나더러 돌아오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

흑견의 공식적인 신분은 무림맹의 일꾼이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흑견이 접할 수 있는 사람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잡부들뿐이다.

그는 은교교에게 또 다른 면구를 주었다.

실제 존재하는 여종의 얼굴을 본딴 면구는, 은교교가 하고 왔던 노파의 얼굴만큼이나 정교했다.

의천성에서 본성 중심부인 십자대성까지 들어가는 길은 길다.

신분 확인이 필요한 절차가 여럿 있었지만, 흑견이 데리고 가는 여종의 신분을 확인하려는 경비 무사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그 여종을 아니까.

“수앵아. 지난달에 준 당고, 참 맛있더라.”

“다음에 내가 야간 근무를 설 때, 나도 좀 가져다 줘.”

모두가 밝은 빛에 주목할 뿐 그늘을 관찰하지는 않는다.

온몸에서 거름 냄새를 풍기는 흑견이 데려가는, 실제 일하는 여종의 신분을 확인할 무사는 없었다.

은교교는 그렇게 해서 마침내 십자대성에 도착했다.

설청산의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녀는 식사가 끝난 후 차를 가지고 맹주실로 들어갔다.

“은령선자가 맹주를 만나러 온 사실은 누구도 모르오.”

맹주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은교교를 향해, 흑견이 말했다.

“이번의 만남에서 맹을 구하는 방도를 찾기를 바라오. 그래야 내가 이 굳은 임무를 마다하지 않은 보답이 되니까.”

은교교는 집무실에 선 채로 한참을 기다렸다.

손에 든 찻잔 속의 차가 차츰 식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는 설청산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낯익은 음성이 그곳으로부터 들려왔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천라옥벽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구나, 교교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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